노동자 유혈진압에…한국노총, 경사노위 불참 결정

7년 5개월 만에 노사정 대화 단절

8일 대통령실 앞에서 공식선언 예정

국제앰네스티 “한국 집회 대응 우려” 성명

2015년 '물대포 사망' 이래 8년만에

2023-06-07     박승철 기자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경찰 곤봉에 맞아 머리에 피를 흘리며 끌려내려 오고 있다. 2023.5.31. 김준영씨 페이스북

윤석열 정부의 유혈 사태를 불사하는 강경 진압이 사회적 대화를 파국으로 이끌었다.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가 윤석열 정부의 집회 대응에 우려를 제기하는 등 물불을 가리지 않는 강경 진압이 국내외에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7일 대통령 직속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참여를 전면 중단했다. 한국노총은 이날 한국노총 전남 광양 지역지부 회의실에서 제100차 긴급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이같은 방침을 결정했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 불참한 것은 7년 5개월 만에 처음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이미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어 한국노총의 불참 선언은 사실상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단절을 의미한다. 한국노총은 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노사정위 불참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박근혜 정부 시절 저성과자 해고를 가능케 하는 내용의 지침 추진에 반발해 사회적 대화 참여를 철회했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다시 참여한 바 있다.

한국노총의 경사노위 참여 중단 결정의 직접적 원인은 지난달 31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김준영 한국노총 금속노련 사무처장의 머리를 곤봉으로 내리쳐 김 처장이 피를 흘리며 인근 병원으로 호송된 사건이었다. 경찰의 유혈사태를 부른 강도 높은 진압이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파탄으로 내몬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검찰총장 출신답게 출범 직후부터 검사독재정권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각종 요직에 검사 출신을 앉히는가 하면 사상 초유의 제1야당 당사 압수수색, 제1야당 대표 소환조사 및 체포동의안 청구, 330번이 넘는 압수수색 등 역대 정권에서 찾아보기 힘든 검찰권 남용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최근 들어서는 검찰권 남용에 더해 경찰을 통한 공안 통치의 본색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행정안전부에 경찰국을 신설하면서 경찰 장악 의도를 분명히 한 윤석열 정부 경찰은 올해 들어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에 대한 유혈진압뿐 아니라 지난달 말 민주노총 집회에서 집회 해산을 위해 최루탄 캡사이신 분사를 준비하기까지 했다. 이미 집회 현장에서 사라진 진압 무기를 재도입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지난달 25일에는 대법원 앞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문화제와 노숙 농성을 ‘불법 집회로 변질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원천 봉쇄하고 강제 해산하기까지 했다.

 

31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인근에서 건설노조의 정부 규탄집회에 '예비캡사이신' 글자가 적힌 가방이 놓여져 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불법행위가 발생할 경우 캡사이신 분사기를 활용해 해산 조치하겠다고 재차 경고했다. 2023.5.31. 연합뉴스

집회 대응뿐 아니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각종 법률도 위헌적인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7일 오전 국회에서 국민의힘, 행정안전부, 경찰청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당정협의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국회 행안위 간사인 이만희 의원은 "심야 야간 집회 시위 제한, 소음 문제 부분들은 이미 법안 제출이 돼 있다"고 말했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난 야간 집회 시위 제한을 입법화하겠다는 계획을 노골화한 것이다. 법적 근거가 없음에도 지난달 비정규직 노동자 야간 문화제를 강제 해산한 것도 이러한 정부, 여당의 방침과 맥이 닿아 있다.

이같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 진압’ 드라이브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파탄 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위상마저 흔들고 있다.

국제적 인권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한국 정부의 집회 및 시위 대응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국제앰네스티가 한국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성명을 낸 것은 지난 이른바 ‘명박산성’을 쌓았던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지난 2015년 전국민중대회 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故 백남기 농민의 사건 등 굵직굵직한 이슈가 있을 때뿐이었다. 국제앰네스티의 이번 성명은 현재의 강경 진압 수위가 2008년, 2015년과 유사한 수준일 수 있다는 상징적 조치로 해석된다.

국제앰네스티는 성명서에서 “대한민국의 헌법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집회·시위를 규율하는 국내법 및 관행은 국제인권법 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서 “최근 윤석열 정부가 천명한 집회·시위에 있어서 강제해산 조치 및 캡사이신 분사기를 포함한 위해성 경찰 장비 사용 예고 등 엄정 대처 방침은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집회·시위에 있어 정부의 가장 우선적 책임은 ‘불법 집회에 엄정 대응’이 아니라 ‘평화적 집회의 촉진과 보호’”라면서 “주최자가 평화적 의도를 표명했다면 그 집회는 평화적인 것으로 추정돼야 하며 당국은 집회 관리에서 폭력과 물리력 사용을 예상하기보다 평화적 집회 촉진의 개념에 의한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국 사회는 지난 2015년 집회 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故 백남기 농민의 사건을 통해 평화적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를 확인한 바 있다”면서 “시민들이 집회 시위의 자유를 완전히 향유할 수 있도록, 당국이 법과 제도적으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5년 11월 14일 서울 시내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종로1가 인근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모습. 2017.6.15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와 관련해 국제 인권 조사관을 한국에 급파해 인권침해 사례를 심층 조사한 바 있다. 아이린 칸 전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유린하는 한국의 상황에 대한 우려를 담아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직접 작성한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당정협의회를 개최한 것 등 최근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면서 “추후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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