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청산 종지부 없다더니…숄츠, 한일관계에 딴소리

일본 거쳐 한국 온 독일 총리 "윤 대통령 용단 경의"

"한일관계, 민감한 역사적 주제"…부적절한 '3자 개입'

독일 총리 공식 방한, 1993년 헬무트 콜 이후 30년만

2023-05-22     이유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21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독 정상회담 공식 만찬에서 건배하고 있다. 2023.5.21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우리 시각에서 봤을 때 과거사 청산에 있어 종지부는 있을 수 없다. 기억은 보존되고, 후세대의 시각에서 확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말이다.

숄츠 총리는 공식 방한을 앞둔 지난 19일 연합뉴스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독일의 과거사 청산 원칙을 묻자 "서로 간의 대화 속에서 과거사를 청산하는 것은 독일 사회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히로시마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마친 숄츠 총리는 21일 공식 방한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독일 총리의 공식 방한은 1993년 헬무트 콜 총리 이후 30년 만이다.

인터뷰에서 숄츠 총리는 "과거사 청산은 독일의 중심에 있는 전 사회적인 과제"라고 단언했다.

그는 "먼저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범죄에 대한 기억과 청산이 있고, 동독에서의 공산주의 독재나 통일 전 동서독 관계, 동서독 통일 등 독일 역사 속 다른 측면들에 대해서도 지속해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숄츠 총리는 "과거사 청산의 끊임없는 목표는 우리가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 자유와 민주주의 속에서 우리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당연한 말이다. 문제는 숄츠가 일제의 식민 지배와 반인륜적 전쟁범죄로 점철된 한일관계의 흑역사와 관련해선 이런 독일의 과거사 청산 원칙과는 결이 전혀 다른 주장을 했다는 점이다.

 

13일 서울 시청앞에서 열린 39차 촛불대행진에 참석한 시민들이 연사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2023.5.13.사진작가 이호

숄츠, 가해 일본에 면죄부 준 '한일관계'에 "윤 대통령 용단"

인터뷰에서 숄츠 총리는 최근 한일관계에 대해 "독일 정부는 한국과 일본 간 접근을 분명히 환영한다"고 말하고 "이러한 이니셔티브에는 정치적 용기와 선견지명(kluge Weitsicht)이 필요하다. 나는 윤 대통령에게 이런 정책에 대해 분명히 경의를 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실제로 21일 한‧독 정상회담 직후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민감한 주제인 일본과의 관계에서도 윤 대통령이 용감한 결단을 내려주신 데 대해 존경 의사를 표한다"고 언급했다. 최근 한일관계의 본질을 비껴간 피상적 관찰에 따른 평가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윤 정부가 주장하는 '한일관계 개선'이 일제 식민 지배와 전쟁범죄의 피해자인 한국민의 일방적 희생을 전제로 진행되고 있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출발점이 된 것은 일제의 불법적 강제동원(징용)에 면죄부를 주는 윤 정부의 '제3자 변제안'이었다. 강제동원 피해자의 기본 권리와 한국 대법원의 사법주권을 포기한 굴욕적 해법이었다.

한국민 대다수 여론을 묵살한 윤 정부의 대일 굴종 외교를 규탄하는 시국선언이 대학교수와 대학생, 종교계, 언론계, 시민사회 등 전국으로 확산하는 '한국의 현실'을 외면한 셈이다.

다음은 지금의 '한일관계 개선'은 진정한 일제 과거사 청산 위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잔혹했던 일제 과거사를 부인하는 기시다 후미오 일본 정부와, 한일관계를 위해선 무조건 일제 과거사를 '잊자는' 윤 정부가 만들어낸 합작품일 뿐이다. "과거사 청산에 종지부는 있을 수 없다"고 숄츠 총리 스스로 전한 독일의 과거사 청산 원칙과 어긋남은 물론이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개막한 19일 일본 히로시마현 미야지마섬에서 G7 정상들과 EU(유럽연합) 간부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쓰쿠시마 신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3.05.19. 연합뉴스

숄츠 "한일관계, 민감한 역사적 주제"…부적절한 '3자 개입'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의 전후 행보는 천양지차였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를 비롯해 과거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책임자 처벌과 함께 기회 있을 때마다 사죄‧배상함으로써 유럽의 다른 피해국들과 화해‧협력의 길을 찾은 독일은 일본과는 너무 다르다.

일본은 여전히 일제 식민 지배를 합법이라고 주장하고 불법적인 위안부와 강제동원 행위의 존재를 부인하고 여전히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기고 있다.

윤 대통령은 백악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4월 24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을 가지고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하는 건 저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해 큰 물의를 빚었지만, 과거 서독은 1970년대 빌리 브란트 총리가 무릎을 꿇고 사죄함으로써 폴란드와의 과거사 배상을 일단락짓기도 했다.

숄츠 본인의 말대로 한일관계는 "역사적으로 매우 민감한 주제"이다. 독일이 절대적인 반인륜범죄로 여기는 홀로코스트와는 결이 다르지만, 36년간의 식민 지배를 통해 일제는 군대 위안부와 징용, 징병 등 강제동원과 민족문화 말살 정책을 펴는 등 그 잔인성에선 만만치 않았다.

'제3자'인 독일 총리가 끼어들어 왈가왈부할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꼭 훈수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면,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기간에 전범국이면서 '원폭 피해'를 앞세워 피해자로 변신을 꾀했던 기시다의 이벤트에 들러리만 서지 않고 기시다에게 진정한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중단 없는 과거사 청산에 매진하는 독일을 본받으라고 충고하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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