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의하고 동의해놓고… 국힘의 간호법 ‘자가당착’
서정숙-최연숙 의원이 대표 발의하더니 거부권 건의
대통령은 대선 공약하고도 거부권 행사할 듯
의사들 강한 반발에 ‘의료기득권’ 옹호 움직임
양곡법 이어 간호법 거부 땐 입법 권력 무시
국민의힘과 정부가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건의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국힘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스스로 무효화하는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4일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 직후 “당정은 간호법이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하는 입법독주법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될 것이란 점에 공감했다”며 “이에 지난달 야당이 일방적으로 의결한 간호법안에 대해 대통령께 재의 요구를 건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정은 ‘의료체계 붕괴법’ ‘간호사만을 위한 이기주의법’이라는 강한 표현을 싸가며 간호법을 비판했다.
당정의 간호법 폐기 움직임은 예견됐다. 지난달 25일 국힘은 의원총회를 열고 야당이 제정안을 강행 처리를 할 경우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을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간호법에 줄곧 반대해왔다. 조 장관은 “(국회에서 간호법이 통과되면) 협업을 어렵게 하고 의료현장의 혼란이 야기돼 결과적으로 국민 건강권 침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국힘의 이런 행태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2021년 3월 간호법 발의 당시 국힘 서정숙, 최연숙 의원이 대표 발의자로 참여했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까지 3명이 대표 발의자였다. 국민 의원 46명이 발의에 동참했다.
당시 서정숙 의원은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사항을 주로 규정하고 있다”며 “의료기관 외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간호사의 업무와 특성을 반영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하기에 한계가 따르는 실정”며 입법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연숙 의원은 “간호업무체계를 정립하고, 양질의 간호·조산서비스를 제공해 국민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간호·조산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현행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된 국민의료법에 기반해 의료인과 의료기관에 대한 규제 중심의 법률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이 때문에 고도로 발전된 현대 의료시스템에서 변화되고 전문화된 간호사의 역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숙련 간호사 등 인력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근무 환경의 개선과 지역 간 인력 수급 불균형의 해소를 위한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입법 과정에서 의사들이 반대할 민감한 조항도 빠졌다. ‘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를 간호사에게 부여하는 조항이 논의됐지만 최종적으로 삭제됐다. 현행 의료법처럼 간호 업무 범위를 ‘의사의 지시에 따른 업무’로 제한했다.
하지만 국힘이 간호법에 대해 수정안을 내며 ‘딴소리’를 하자 민주당이 직격했다. 지난달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자신들이 서명발의한 법안에 자신들이 반대하고 있다”며 “여당이 내년 총선을 의식해 표 계산만 하고 ‘야당 단독법’이라고만 할 뿐 민주당에 협의 요청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국힘은 지금까지 민주당에 간호법과 의료법 관련 협의 요청을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국힘은 여야 합의로 마련한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입장을 명백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남송우 고신대 석좌교수는 최근 중앙일보 기고문을 통해 “국민의힘 대선 공약위키에 간호법 제정을 명시했으며, 당시 원희룡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이 국민의힘을 대표하여 간호법 제정 협약서에 서명했다”며 “그런데 왜 갑자기 간호법 반대 단체의 주장만을 반영한 중재안을 내밀면서 공약 파기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당정의 거부권 제안이 알려지자 간호사들은 반발했다. 간호협회는 14일 성명을 내고 “간호법 제정은 대통령이 약속한 공약으로, 간호법(안)은 국회법에 따라 무려 2년간 4차례 법안심사 등의 적법한 절차를 통해 심의 의결됐다”며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가 허위사실을 나열해가며 거부권 건의를 공식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의사협회, 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의료단체가 구성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15일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데 대해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의료연대는 의료인 결격·면허 취소 사유를 강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거부권 건의 대상에서 빠진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5일 “반복되는 거부권 행사는 입법부를 무시하는 것이자 국민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내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을 정상대로 공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