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를 하사로…화천 고지전 영웅 계급 바꾼 보훈처
고 김한준 대위 사진 AI복원하며 계급장 오류
민원도 들어왔지만 손 놓다가 온라인에 유포
언론은 검증도 없이 그대로 자료 받아쓰기만
보훈처 "부사관 복무기록 있어서 괜찮다" 해명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국가보훈처가 정전 70주년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업 대상에 선정된 6·25 참전 영웅의 계급을 대위에서 하사로 강등시킨 사진을 배포해 물의를 빚었다.
앞서 보훈처는 지난 11일 '6·25참전유공자 주거여건 개선사업 업무협약'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첫 사업 대상자로 6·25전쟁 참전 유공자 고(故) 김한준 대위를 선정했다. 해당 사업은 주택금융공사 후원으로 6·25 참전 유공자의 노후된 자택을 수리하는 사업이다.
고 김한준 대위는 2011년에 개봉한 영화 '고지전'의 모티브가 된 화천 425고지전투에서 제7사단 제8연대 제1대대 1중대장이었다. 그는 고지전을 6·25전쟁 마지막 승전전투로 이끌어 1953년 6·25전쟁 당시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2019년 2월 이달의 전쟁영웅에 선정되기도 했다.
문제는 보도자료 사진이었다. 보훈처는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배포하면서 인공지능(AI)을 이용해 합성한 고 김한준 대위의 사진을 배포했다. 그러나 보훈처가 배포한 사진에는 고 김한준 대위의 모자에 '대위 계급장'이 아니라 1960년대 '하사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잘못된 사진을 최초로 사용한 매체는 오전 8시 19분에 기사를 개재한 국가기간통신사 <연합뉴스>였다. 뒤를 이어 <뉴스1>을 비롯한 통신사들과 다수의 매체들이 검증 없이 합성된 사진을 사용했다. 보훈처 대변인실에 사진 오류를 지적하는 민원이 제기됐지만 조치는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날 오후 3시를 넘겨 올라온 정책브리핑에도 보훈처는 하사로 강등된 사진을 올렸고, 그 사이 잘못된 사진이 온라인 유포됐다. 오후 6시쯤에야 보훈처 요청으로 다른 흑백사진으로 수정됐지만 12일까지도 일부 매체는 AI로 잘못 만들어진 사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역사 오류의 재확산 우려는 남아 있다.
보훈처가 오류를 범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9월 보훈처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앞두고 기념 온라인 이벤트를 벌이다 당첨자 발표 포스터에 니트 블라우스 차림의 연예인 체형을 연상케하는 유관순 열사 합성 사진을 올려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고 김한준 대위가 병에서 부사관이 됐고 6·25 때 소위로 임관했다"고 해명했다. 고인의 최종 계급이 대위지만 부사관으로 복무한 기록이 있기 때문에 하사로 복원한 사진이 무조건 문제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인데도 언론사에 사진 수정을 요청한 이유를 묻자, "AI로 복원한 사진의 계급장이 논란이 있어서 유족들에게 사진을 받아서 교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 영웅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일류보훈'을 표어로 내건 보훈처가 '부실한 검증'을 했다는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8·15 광복절에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과 국민통합을 실현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수지상작전연구회(LANDSOC-K) 문형철 연구원(육군 예비역 소령)은 "국난은 힘들기도, 부끄럽기도 한 우리의 역사이기에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확한 전달이 매우 중요하다"며 "보훈의 가치를 지키고 키워야 할 정부기관이 매년 전문성 부족과 미흡한 검증으로 인해 역사조작의 도마에 오르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문 연구원은 "이번 문제를 국방부를 출입하는 매체에만 조용히 정정 문자를 보낸 것은, 자신들의 과오를 조용히 지우려하는 처사로 보인다"고 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오는 6월 국가보훈부로 승격할 예정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에 박민식 현 국가보훈처장을 지명했다. 박 처장 역시 검사 출신이다. 보훈에 대한 전문성보다는 '만사검통' 선거 보은 인사 성격이 짙다. 여야는 박 처장의 인사청문회를 오는 23일 열기로 잠정합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