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바이든 정상회담…미국이 청구할 '세 가지'
윤 대통령의 우크라 군사 지원 '공식화' 촉각
미국, 한국에 대중 반도체 디커플링 압박 예고
바이든, 동맹국인 한국의 경제적 희생은 외면
백악관 "회담서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 논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마주 앉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진행형이고,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비롯해 미‧중 간 전략경쟁은 격화되고 있으며, 남북 군사 대치 등 한반도 정세도 극히 위태로운 시점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두 정상의 회담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이 한국 대통령으론 12년 만에 윤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한 까닭이 있다. 윤 대통령에게 꼭 얻어내야 할 것들이 있어서다. 미국의 화려한 '국빈 만찬'이 공짜일 리 없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 군사 지원 '공식화' 촉각
바이든이 회담에서 들이밀 청구서는 크게 세 가지다.
맨 먼저는 우크라이나에 무기 등 군사적 지원을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공식 약속이다. 미국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인 한미가 글로벌 이슈인 우크라이나 전쟁 대처에 공조하는 차원에서 그동안 살상 무기 등 한국의 '군사 지원'을 강하게 요구해왔다.
이와 관련,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24일 국무부 외신기자클럽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분명하게 규탄하는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잔뜩 치켜세운 뒤 "한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이 미국의 압박에 밀린다면, 이미 폴란드에 도착했거나 도착할 50만 발의 155㎜ 포탄을 우크라이나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한국이 허가하는 게 그 첫 번째가 될 것이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주 로이터 인터뷰에서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 등을 '조건'으로 해서 군사 지원을 시사했다. 이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식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비쳤다.
이에 러시아는 "전쟁 개입"(크렘린궁 대변인‧4월19일)이라거나 "반러시아 적대 행위"(4월 20일‧외무부)라고 비난하고 실제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한다면 상응 조치로 북한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경고했다.
윤 대통령이 군사 지원을 확약한다면 그야말로 한‧러 관계는 파탄이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불안정한 한반도 정세는 더욱 위태로워지고 식량 및 천연가스 수출대국인 러시아의 무역 보복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물론, 러시아 내 한국 기업과 교민의 안전도 우려된다.
미국, 한국에 대중 반도체 디커플링 압박 예고
다음은 '반중국 전선'에 확실히 서겠다는 윤 대통령의 다짐이다. 중국이 제일 예민하게 여기는 대만 문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공식 개입'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반도체 등 공급망과 관련해 한국이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더 무게를 두는 쪽은 후자다. 반도체 등 공급망의 대중국 디커플링을 동맹국인 한국에 요구하는 동시에, 한국 대기업의 미국 내 투자를 유치해 반도체 등 제조업 공급망을 미국에 구축하겠다는 게 목표다.
커비 조정관은 "우리는 한국을 포함한 동맹과 안전하고 유연한 공급망 체계를 구축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매우 강력한 대화를 나눌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해 내일 회담에서 한국을 강하게 압박할 뜻을 분명히 했다.
바이든, 동맹국인 한국의 경제적 희생은 외면
특히 문제는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국의 경제적 희생은 외면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파운드리 공장(170억 달러)과 메모리 반도체 첨단 패키징 제조시설(150억 달러) 건설 등 미국 내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거나 진행 중인데도 부당한 대우를 받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의 방미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기업인 122명이 대거 동행한 것을 두고 재선 출마를 앞둔 바이든에 '투자 선물'을 주려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국의 호의에도 불구, 미국 정부는 '반도체와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른 반도체 보조금 지급 요건으로 '영업 기밀' 자료 제출과 초과이익 환수 등 무리한 조항을 내걸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른 국내 자동차 업계의 보조금 제외도 마찬가지다. IRA는 최종적으로 북미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현대차·기아 차량은 미국 정부가 최종 발표한 보조금 지급 대상 전기차에서 모두 배제됐다.
FT, 한국 기업에 대한 미국의 부당한 압박 보도
여기에 중국이 미국 마이크론의 반도체 판매를 금지해 반도체 부족난을 겪을 때 한국 기업이 그 공백을 메우지 않게 해달라고 미국이 한국에 요청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가 나와 충격을 주었다. 커비 조정관은 "확인할 위치에 있지 않다"라고 했지만, 사실일 공산이 크다. 최근 대중국 반도체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미국의 방침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한국 내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70년 역사의 한미동맹'이라면서 한국의 경제적 희생 위에 미국의 이익만 챙기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그래서 윤 대통령이 '가치 동맹'만을 되풀이하지 말고 미국을 상대로 한국 기업에 대한 부당한 압력 철회 요구하고 국익과 경제주권을 지켜내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다.
백악관 "정상회담서 한‧미‧일 삼각동맹 강화 논의"
끝으로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목표로 군사협력 강화를 비롯한 '3국 연대' 강화다. 이를 위해 한‧일 간 군사협력 가속화에 동참을 요구할 개연성이 높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커비 조정관은 "일본과 함께 훌륭한 대화를 이어왔으며, 군사적 역량 측면에서 한층 심화하고 발전하고 있다. 정상회담에서 삼각동맹 강화 문제도 물론 논의될 것"이라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미국은 한·미·일 군사협력을 다그치는 명분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한·미·일의 군사협력, 나아가 3국 동맹은 북한보단 중국과 러시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문제를 먼저 풀어야 할 한국에는 적절한 틀이 아니다.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 관리, 분단 해소와 평화통일 등의 문제들이 한국에는 가장 절박하기 때문이다. 특히 '3국 동맹의 틀'에 갇히면 한국은 남북문제와 북핵 문제에서 자율성을 발휘할 공간을 찾기 힘들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관련해 한국에 대한 새로운 '확장억제'(핵우산) 강화 방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확대와 나토의 핵기획그룹(NPG)과 유사한 한·미·일 협의체 창설이 거론된다. 미국은 핵전력을 제공하고 한·미·일 3국이 핵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으로 기획하고 훈련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