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4·19 기념식서 '사기꾼' 운운…저열한 정치 선동
대통령 연설문에 '사기꾼' 단어 등장…헌정사 처음
'거짓 선동, 날조' '인권운동가 행세' 등 거친 언사
지도자로서 말의 품격 실종…"국민에 선전포고문"
'돈에 의한 매수'는 민주당 돈 봉투 의혹 겨냥한 듯
'민주주의 위협 세력' 바로 윤 정권…적반하장 극치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4·19혁명 기념사에서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대통령 기념사와 연설문을 통틀어 '사기꾼'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그 밖에도 절반 가까이가 '돈에 의한 매수' '거짓 선동, 날조'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 '거짓과 위장' 등 야권과 민주진영 인사들을 겨냥한 듯한 과격한 언사로 가득했다.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최소한의 말의 품격도 못 갖췄음은 물론, 대한민국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4·19혁명 기념식마저 저열한 정치 선동의 장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최악의 기념사였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거짓 선동,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은 바로 윤석열 정권임에도 자기 성찰이라고는 전혀 없이 적반하장의 극치를 보였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윤 대통령은 19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민주묘지에서 열린 4·19혁명 기념식에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6분가량의 기념사에서 으레 그랬듯 '자유'라는 단어를 14차례나 남발하며 "우리가 피와 땀으로 지켜온 민주주의는 늘 위기와 도전을 받고 있다. 독재와 폭력과 돈에 의한 매수로 도전을 받을 수도 있다"면서 "지금 세계는 허위 선동, 가짜뉴스, 협박, 폭력, 선동, 이런 것들이 진실과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기반해야 하는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왜곡하고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거짓 선동, 날조, 이런 것들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은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겉으로는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행세를 하는 경우를 세계 곳곳에서 저희는 많이 봐 왔다"며 "이러한 거짓과 위장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 4·19혁명 열사가 피로써 지켜낸 자유와 민주주의가 사기꾼에 농락당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4·19혁명의 과정이나 의미에 어울리지도, 맥락이 닿지도 않는 억지스러운 연설 흐름에선 오로지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헌신해온 이들을 폄훼하고 욕보이려는 의도만이 읽힌다. 특히 '돈에 의한 매수'라는 표현은 더불어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을 연상시키려는 의도적인 문구이고, '사기꾼'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인신공격을 노린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기념사는 윤 대통령이 전날 밤늦게까지 직접 고쳐가며 준비한 내용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이 행사장에 들어오고 나갈 때 이재명 대표와 악수하긴 했으나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 이 대표는 기념식장 첫째 열에 앉아 윤 대통령의 연설을 굳은 얼굴로 지켜봤다.
야권에선 경악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은 국회 소통관 브리핑에서 "야당과 언론을 가짜뉴스, 선동꾼으로 매도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을 위협하는 사기꾼이라고 칭하고 싶은 것이냐"며 "윤석열 대통령이 굴욕 외교와 국정 무능으로 추락한 국정 지지도를 가짜뉴스와 선동의 결과라고 강변하고 있으니 한숨만 나온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4·19혁명 기념일에 국민 통합을 강조하지는 못할망정 갈등을 조장하는 저주의 단어만 나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4·19혁명 기념사를 야당과 언론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나아가 '국민을 향한 선전포고문'이라고 규정했다. 이재랑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4·19혁명 기념사를 들으며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면서 "기념사가 아니라 무슨 선전포고문처럼 들린다"고 지적했다. 또 "대통령 기념사는 누구보다 대통령 자신에게 적용되어야 할 대목들로 빼곡하다. 노조에 대한 '거짓 선동, 날조'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언론에 대한 '협박'을 일삼으며, 독재자를 기념하면서 '독재와 전체주의 편을 들면서도' 마치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인 양 행세하는 대통령이 현재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가장 위협하고 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정부를 향한 분노와 비판의 목소리를 '거짓 선동, 날조, 전체주의 독재'라 이야기한 적대적 기념사는 실로 국민을 향한 선전포고에 가깝다"면서 "4·19혁명 정신이 가장 필요한 곳은 바로 저 오만한 대통령실이라는 비판을 대통령은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손바닥으로 반사한다. 사돈 남 말하는 말씀을 그대로 돌려드린다"며 "피로써 지켜낸 자유, 사기꾼에 농락당해선 안 돼"라고 비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