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도청] 미국 정부와 한국 수구의 뻔뻔한 이중잣대
미, '정찰풍선' '틱톡' 간첩 몰아 혐중몰이
트위터·페북 정보수집은 문제 안 삼아
한국 족벌언론, 서울 중식당 '비밀경찰서' 지목
그렇게 호들갑 떨더니 미국 도청엔 전혀 다른 태도
정치권, 매카시즘·공안 정국 조성 '닮은꼴'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의 국가안보실을 도청했다는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고 있다. 보수언론들은 '도청'이 아니라 '감청'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는데, 어떤 단어를 쓰느냐부터 정치적 판단을 반영한다. <뉴욕타임스>는 "유출된 문서들은 미국이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스파이(간첩) 행위를 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일단 전혀 놀라운 소식이 아니다. 미국이 전세계 주요 나라의 정부와 핵심 기관들을 도청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미국 정보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10년 전에 내부고발하며 폭로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최첨단 인공위성, 스텔스 정찰기, 드론 등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감시와 정찰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물론, 미국 정보기관이 우방국인 한국의 대통령실까지 도청했다는 점은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것도 윤석열 대통령이 졸속으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고, 특히 미국의 첨단 도청 장치들이 넘쳐날 주한미군기지 바로 옆으로 이전한 것이 가져온 자업자득 성격이 있다. 이는 거의 대놓고 도청하라고 판을 깔아준 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태에서 정말로 놀라운 점은 미국 정부와 한국의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들이 보이는 뻔뻔스러운 이중성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바로 얼마 전까지 중국이 '정찰풍선'을 보내서 다른 국가와 정부들을 도청하려 한다고 맹비난했다. 그래서 최첨단 전투기를 출격시켜 그 조잡한 풍선들을 격추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사일로 파괴된 잔해 속에서 그 정찰풍선이 실제 무엇을 한 것인지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산산조각난 파편에서 증거를 찾기는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40만 달러짜리 미사일로 격추한 풍선 중에 몇 개는 미국인들의 동호회가 취미와 오락용으로 하늘로 올린 몇백 달러짜리였다는 게 밝혀지기도 했다.
최근에도 미국 정부와 정치권은 SNS 플랫폼인 '틱톡'이 청소년에게 유해하고 데이터를 수집해 중국에 넘기는 것 같다면서 사용금지와 퇴출을 추진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미국 정부는 '그러면 청소년에게 유해할 뿐 아니라 실제로 데이터를 수집해서 이용한 것이 이미 밝혀진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왜 문제 삼지 않냐'는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못해 왔다.
한미동맹을 위한다며 이 문제를 덮고 미국을 감싸주기 바쁜 <조선일보> 등 한국 족벌언론들의 이중잣대도 기막힌 수준이다. 많은 이들이 지난해 연말에 이들 언론사 지면을 도배했던 중국 '비밀경찰서' 소동을 기억할 것이다. 그때 이 언론들은 어떤 해외 반중단체의 주장만을 근거로 갑자기 시내 한 중식당을 '산업스파이 행위와 군사정보 염탐을 하고 있는 비밀경찰서'로 지목했다.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주장은 사실로 입증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북한 무인기에 대한 이들 언론의 보도 또한 호떡집에 불난 식이었다. 당장 '서울의 방공망이 뚫렸다'며 군사적으로 대비하고 맞대응해야 한다고 흥분하면서 관련 보도를 쏟아냈다. 이 모든 보도의 공통점은 항상 입증되지도 않은 사실을 기정사실처럼 반복해 보도하면서 '아니면 말고'로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중국이나 북한 관련에서는 명확한 증거도 없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첩보 행위가 의심된다'며 호들갑을 떨던 이들이 미국의 도청과 염탐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태도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면과 침묵, 축소를 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한미동맹'만 강조한다.
<조선일보> 사설은 "안보에 민감한 국가들 모두가 다른 나라를 감청한다. 하지 않는다면 무능이거나 바보일 뿐이다. … 국가가 존재하는 한 이런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라며 미국을 변호해 줬다. 이 모든 것은 정찰 풍선, 중국의 비밀경찰서, 틱톡 퇴출, 북한 무인기 등에서 실제 첩보 행위가 있었는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미국과 한국의 보수우파와 권력자들은 이를 통해 중국과 북한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부추기면서 냉전적 대결 의식을 더욱 강화시키며 국내 정치적으로도 이용했다. 예컨대 정찰 풍선으로 시끄럽던 시기에 미국 하원에서는 공화당 주도로 일한 오마르 의원을 외교위에서 추방하는 일이 벌어졌다.
민주당 소속이면서 동시에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오마르 의원은 최초의 이주민 출신 여성이고 무슬림이었는데, 공화당은 오마르 의원이 '무슬림형제단의 조종을 받는 스파이'라는 식으로 공격하다가 결국 축출해 버렸다.
이어서 공화당 극우파들은 '사회주의 공포 규탄 결의안'도 발의하고 통과시켰다. 스탈린, 폴 포트 등의 독재자를 언급하며 '사회주의 사상은 전체주의적 지배와 독재를 초래한다'고 규탄하는 이 결의안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것이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미중 갈등과 반중국 혐오 정서가 어떻게 국내 정치에서도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성장과 매카시즘의 부활을 낳고 있는지를 보여 줬다. 미국 민주당의 주류세력은 여기에 타협하고 굴복했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 정찰풍선을 격추했고, '사회주의 규탄 결의안'은 민주당 의원들 상당수의 동참으로 통과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북한 무인기 사태를 이용해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한껏 부추기고 남북대결 공세를 펴면서 '북한과 내통하는 내부 세력' 운운하다가 결국 '간첩단 조작과 공안 탄압'을 위한 바람잡이에 이용했다. '문재인 5년 동안 간첩 천국이 됐고, 이런 간첩들이 국가 안보에 치명적인 정보들을 북한에 넘기고 있다'고 흥분했다.
이러한 공포와 혐오 선동은 최근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진보당 강성희 의원에 대한 공격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일보>는 강성희 의원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배치되면 국가 안보에 대한 민감한 정보들을 열람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면서 "진보당은 '간첩 당원'들에 대한 입장부터 밝혀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윽박질렀다.
경제적, 군사적 경쟁으로 유지되는 이 세계체제 속에서 거의 모든 국가가 서로를 불신하며 불법적인 첩보 수집과 스파이 행위를 하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가장 많은 자원과 수단을 가지고 그걸 가장 많이 해 온 힘 있는 나라와 그 동맹세력이 자기 편은 깨끗한 척하면서 별 근거 없이 남들만 비난하며 냉전적 대결을 부추기는 데 이용하는 모습은 보기가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