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해 거듭 밝힙니다

언론, 동료시민, 상주로서의 최소한의 책무

2022-11-15     시민언론 민들레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애도와 민주주의의 길 걷기' 참가자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2022.11.13 연합뉴스

 

시민언론 민들레의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를 둘러싸고 벌어진 격렬한 논란에 대해 민들레는 우리의 이유와 논지를 거듭, 그리고 더욱 상세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시민언론 민들레가 많은 논의와 숙고 끝에 결국 명단 공개를 결정하게 된 이유, 그것은 무엇보다 이번 죽음의 성격으로부터 비롯됐습니다. 이태원에서 158명의 생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명백한 사회적 죽음이었습니다. 희생자 자신의 책임에 의한 것이 아닌 원인으로, 그 자신의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닌 이유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렸던 것이며, 죽임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사회적’ 참사가 되고 있는 것은 그 비극이 일어났던 10월 29일 밤 ‘사고’ 자체의 원인과 규모에서뿐만 아니라 그 길지 않은 시간의 사고 이후 이 참사가 우리 사회에서 애도되고 추모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의 극치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희생자들은 정부의 부재와 실종에 의해 첫 번째로 죽었고, 참사 원인에 대한 무책임과 호도에 의해 두 번 죽고 있습니다.

영정도 위패도 없이 얼굴과 이름을 잃어버린 채 통제된 애도, 일방적 애도에 의해 고인들은 다시 한 번 죽임을 당하고 있으며, 모독되고 있습니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의 공분을 우려해서 참사를 실명(失名)화하고 155이니 158이니의 숫자 속에 가두는 행태, 유족들이 모이는 것을 막고, 시민들과 유족들을 분리시키려 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걸 넘어 분노를 자아내는 정부와 당국의 행태는 희생자와 그 가족, 나아가 사회를 두 번 죽이고 있습니다.

이 사회적 고통과 비극 앞에서 함께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자 하는 시민들은 그를 위해 울어줄 이름이 없고, 그를 위해 꽃을 바칠 얼굴이 없는 참담함과 황망함 속에서, 한편으로는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오히려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묻고 윽박지르는 모습 앞에서 국가는 대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위해 있는가, 라고 묻고 있습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죽은 이들을 위한 애도를 애도답게 하기 위한 길을 찾는 것, 그것은 우리 사회가 보여줘야 할 책무이자 도리라는 판단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출발은 그 잃어버린 이름을 불러 주는 것, 그것이 참된 애도의 출발점이라고 봤습니다.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죽은 이들의 이름을 호명해 줘야 비로소 죽음을 당한 이들을 떠나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봤습니다.

민들레의 명단 공개 결정은 언론으로서의 할 바를 다하려는 것이었고, 동료 시민이 당한 재난에 대해 연대하려는 시민으로서의 책무였으며 또 스스로 희생자들의 부모로서 형제로서 이웃으로서, 상주 아닌 상주로서의 도리였던 것이었습니다. 언론의 책무와 함께 내면으로부터의 의무감이 우리 자신에게 내린 명령이었다고 밝히고 싶습니다.

유족들의 동의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기사에서 밝혔듯이 유가족협의회가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죽음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것, 이 사회 전체가 희생자들의 한 가족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개별적으로 연락, 접촉하는 것은 오히려 실정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사정도 있었습니다. 또 민들레의 명단 공개에 대해 자신의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우리 사회가 마땅히 가져야 할 책무를 이행하는 것으로 이해와 공감을 보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나아가 유족들이 그간 얼굴 없는 추모와 애도 속에서 미처 꺼내 놓지 못한 아픔과 고통을 민들레를 통해 토로할 수 있다면 민들레가 그런 역할을 하고자 하는 다짐과 각오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배 여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건 실정법 위배 여부를 떠나서 언론으로서, 시민으로서, 인간으로서의 본연의 책무감과 도리를 다하려는 마음의 발로가 앞섰다는 것임을 다시금 밝힐 뿐입니다. 그리고 고인들에 대해 진정으로 추모하고 애도하며 자신의 가족의 불행인 듯 슬퍼하는 시민들도 한마음이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태원역 참사 현장 앞 진혼 예불을 올리는 스님들은 ‘나무아미타불’ 만을 몇 시간째 외고 있었습니다. 팔만대장경의 어떤 불경으로도 그 참담함을 담아낼 수 없을 것이고, 가족들의 슬픔을 온전히 담아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인간의 말의 무력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로의 말을 멈출 수 없고, 희생자들의 억울을 풀기 위해 남은 이들이 해야 할 일이 뭔가를 찾는 노력을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민들레의 명단 공개가 우리 자신의 완전한 확신과 빈틈없는 준비에 의해 이뤄진 것이었다고 감히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희생자들의 명단을 밝히는 것에 대해 상처와 충격을 받으신 유족들의 심경을 헤아리려 하는 노력이 충분했느냐에 대해 민들레는 감히 그렇다고 말씀 드리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다만 언론인으로서, 시민으로서, 희생자들의 부모된 마음, 형제된 마음, 이웃된 마음에서 노력하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언론이 말해야 하나 말하지 않는 것을 말하려고 했고, 써야 하나 쓰지 않는 것을 쓰는 것에 우리의 지금의 책무가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라고 얘기할 뿐입니다.

이것이 시민언론 민들레가 희생자들의 이름을 불러낸 이유, 죽은 가족의 이름을 다시 불러내는 처절한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을 가족만의 고통이 아닌 우리 모두의 비통으로 나눌 때 진정 이 비극을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에 이른 이유입니다.

이것이 민들레의 희생자 명단 공개의 배경과 이유와 동기의 요약이며, 앞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진정으로 애도하고, 희생자들의 억울과 통한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가 이 참사를 제대로 이겨내는 길을 찾기 위해 민들레가 보고, 묻고, 쓰고자 하는 것에 대한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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