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을 해야 하나
[곽노현의 정치 새판] 시대적 과제 대담하게 감당하라
지금의 제1야당 민주당은 169석이나 되는 확실한 과반수 의석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한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 민주당이 상대하는 윤 대통령이 취임 이래 30%대 지지율에 묶여 있는 최약체 대통령인데도 그렇다. 민주당 지지율도 좀처럼 40%를 확실히 돌파하지 못한다. 심지어 사고뭉치 윤 대통령을 옹위하는 국힘당에 밀리다가 요즘에야 대일굴욕외교와 주69시간 탄력근로허용정책으로 역전됐다. 도대체 왜 이러며 무엇이 문제인가?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대승을 거둬서 무려 180석, 재적의석의 60%를 얻었다. 제1당이 기록한 사상 최대 의석이었다. 특히 지역구에서 163석을 얻어 84석을 가져간 미래통합당을 압도했다. 정당투표에서는 민주당(위성정당) 33.4%, 미래통합당(위성정당) 33.8%, 정의당 9.7%, 국민의당(안철수) 6.8%, 열린민주당 5.4% 순이었다. 민주당은 위성정당 소동으로 정당투표에서 미래통합당보다도 적은 33.4%를 얻었지만 의석은 60%나 얻었다. 만약 위성정당 소동이 아니었다면 열린민주당이 안 생겨났을 테고 그 표가 모두 민주당으로 갔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의 정당득표율은 사실상 40%로 보는 게 맞지만 여전히 의석점유율 60%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지역구득표율을 비교해보면 민주당이 얼마나 의석을 횡재했는지가 더 드러난다. 민주당은 49.9%, 미래통합당은 41.5%를 얻었지만 지역구의석수는 66%(163석) 대 34%(84석)으로 더 벌어졌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20대 여소야대 국회에서 당시 새누리당-미래통합당이 일관되게 보여준 끝없는 몽니와 비토에 질린 데다 마침 문재인 정부가 효과적인 코로나방역으로 전 세계 언론으로부터 칭송을 받을 때였다. 20대 국회에서 간신히 통과한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선거제도를 국힘당이 위성정당으로 짓밟고 민주당마저 방어용 위성정당으로 무력화해서 과거와 똑같이 소선거구제(253석, 84%)와 병립형비례대표제(47석, 16%)로 치러진 총선이었다. 여기서 민주당은 정당투표에서 33.4%(실질적으로 40%)를 득표했을 뿐이나 뚜껑을 열고 보니 의석의 60%(180석)을 받았다. 모두가 깜짝 놀란 민주당의 압승이자 소선거구제의 불비례성이 가장 두드러진 총선결과였다.
의석수보다 당지지율 따라 단기적 대응
문제는 21대 국회 들어서 민주당 지지율이 단 하루도 국회의석점유율만큼 올라간 적이 없었다는 데 있다. 당지지율과 의석점유율이 큰 차이가 날 때 당의 행태에 더 결정적인 것은 당지지율이다. 정당은 여론의 반응과 추이를 의식하며 정치적 행위를 선택하기 때문에 입법권 기타 국회 권한을 행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의석수가 아니라 당지지율이다. 의석수로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지지율을 더 떨어뜨릴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적 선택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기 때문이다. 요컨대, 당지지율로 뒷받침되지 않는 의석수는 지금의 민주당 의석이 그렇듯이 금세 허수로 전락한다.
게다가 169석쯤 되는 거대정당은 하나의 입장으로 통일되기 어렵다. 내부적으로는 지도부의 입장에 20~30% 정도의 반대와 이견이 있는 것은 민주정당으로서 건강한 징후이기도 하다. 당지도부에 대한 입장차 외에도 169명 가운데는 개혁 강도와 실현가능성에 대한 온도차가 있게 마련이다. 여기서도 20~30% 정도는 얼마든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이 부분을 줄이는 게 지도부의 역량이다. 국회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을 때 부결 표는 138표에 지나지 않았다. 민주당에서 30표 넘게 반이재명 표가 나왔다는 뜻이다.
나는 이 표결결과를 보면서 민주당이 저항과 논란이 심한 개혁성이 강한 입법안을 밀어붙일 때는 30표보다 더 많은 이탈 표가 나오겠구나 싶었다. 특별한 스타성이 없는 일반 의원들의 경우 당지지율이 재선가능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당지지율을 중단기적으로 떨어뜨릴 시끌벅적한 개혁입법에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볼 때 민주당이 앞으로 내부토론을 치열하게 진행해서 해묵은 개혁입법에 150표 이상을 묶어내지 못하면 향후 남은 1년 동안 패스트트랙에 태우는 방식으로 개혁입법을 추진하기가 난망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대 국회를 이끄는 민주당이 윤 대통령의 명백한 권력남용 행태를 철저하게 응징하거나 중단시키는 데 실패한 이유도 당지지율이 낮은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대통령의 권력이 그만큼 막강하고 거침없이 행사되는 탓도 있고 야대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그만큼 전략적이지 못하고 내부사정이 복잡한 탓도 있다. 분명한 것은 윤석열 정권은 자신의 법적 권한을 최대한 행사하는 반면 민주당은 이상민 장관 탄핵소추를 제외하고는 야대 국회의 법적권한을 행사하기보다 거의 전적으로 언어차원의 정치적 대응, 즉, 규탄과 비난, 조롱으로 그쳤다는 사실이다.
당지지율이 탄탄하지 못해서 단순히 의석수를 믿고 법적 권한을 행사했다가는 우려되는 역풍을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의원들이 너무 많았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장악한 야대 국회는 윤 대통령이 만들어낸 정치검찰 세상과 시행령 통치, 인사와 외교안보 참사를 효과적으로 저지하거나 응징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야대국회는 헌법기관장 인사동의권, 장관(급) 인사청문권, 국무위원 해임건의권, 정치검사 탄핵권 등 다양한 인사통제권을 동원해서 야대 국회의 본때를 보여줬어야 했다.
민주당은 입이 닳도록 정치검찰의 선택적이고 자의적인 (불)수사와 (불)기소를 규탄하면서도 정치검사 탄핵소추권을 한 번도 발동하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과정에서 공약한 중요입법안들을 패스트트랙에 태우지 않았으며 윤 대통령의 시행령에 의한 입법우회를 눈 뜨고 지켜볼 뿐 사후에라도 입법권을 행사해서 응징하고 바로잡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의 여당 시절에 비난했던 야당 행태를 야당이 되고나서 그대로 답습하는 내로남불 모습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기후위기나 정치개혁 등 마땅히 앞장서야 할 시대적 과업에서 누가 봐도 진정성 있게 앞장서지 못하는 모습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민주당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최소한 2018년 문재인 촛불헌법안의 취지에 부합하는 개혁입법을 21대 국회에서 해냈어야 했다. 공무원, 교사의 정치기본권 보장입법이 하나의 보기다. 2022년 대선에서 여야 후보가 공통공약으로 내걸은 개혁입법도 반드시 잊지 않고 입법했어야 했다. 나아가서 진보진영의 해묵은 10대 개혁입법의제를 골라 과감하게 입법해냈어야 했다. 국가보안법 7조 폐지안, 노랑봉투법안, 내놔라내파일법안 등이 보기다. 대선 당시 철석같이 공약했던 정치개혁안도 구체화하는 입법을 해냈어야 하고 최소한 위성정당 금지조항은 진즉 만들어냈어야 했다.
'촛불헌법안'에 맞는 개혁입법 해냈어야
민주당은 최소한 선거구제 개편 기타 정치개혁안은 국회의원이 당사자로서 이해충돌성격을 갖기 때문에 미니시민으로 구성된 중립적인 시민의회에 맡기겠다고 선언할 수 있었다. 소속 시도지사와 시군구장을 통해 향후 숙의적인 시민의회나 시민배심을 민주주의적 문제해결수단으로 적극 활성화할 방침이라고 천명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민주당 지자체장들이 기후위기대책과 교육대전환을 공통주제로 삼아 시민의회를 선보일 수 있었다. 누구도 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다.
민주당은 범여권의 대선불복 프레임과 입법독주 프레임을 이른바 역풍과 후폭풍 프레임으로 내면화해서 ‘부자 몸조심’ 모드를 유지했다. 윤 정권의 권력남용을 입법권, 국정조사권, 해임건의권, 탄핵권 등 국회의 법적 권한을 행사해서 무섭게 응징하고 중대한 입법과제를 담대하게 처리함으로써 진보진영의 신뢰와 희망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민주당 내부에선 아직도 2024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물고 늘어지는 정도의 소극적 대응이면 족하다는 입장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윤 정권의 정치적 실수와 정책적 악수가 끊이지 않는 마당에 야당이 할 일은 자근자근 말 펀치를 날리며 야금야금 민심을 얻으면 되지 무리하게 개혁입법을 밀어붙이며 법적 권한을 휘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년만 꾹 참고 기다리면 내년 총선에서 무능한 윤석열 정권을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데 굳이 모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인 셈이다. 게다가 내년 총선은 정권심판선거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굳이 논란 많은 개혁으로 실점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논리다.
본래 당면한 선거승리를 정치목적으로 삼는 현실논리에서는 시대와 국민이 요구하는 중대과업을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내겠다는 정치적 의지와 전략, 구상이 설자리를 찾기 어렵다. 이런 소극적인 논리는 총선이 지나고 나면 다시 지방선거와 대선 승리를 겨냥해서 동일한 얘기를 하게 마련이다. 민주당 다수파의 ‘손님 실수’에 기대는 무난한 선거승리론은 정치의 임무를 사실상 기성질서의 치안과 관리에 한정한다는 점에서 지독하게 보수적이고 현상유지적인 정치논리다.
상대 실수 기대는 선거승리론에 갇혀
뿐만 아니다. 이런 논리는 자칫하면 여론조사결과라는 표층민심을 등에 업고 구조개혁의 시점을 무한 연기하며 종국에는 그 실현가능성을 부정하는 개혁포기 주장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작지 않다. 이른바 저항이 심하거나 민감한 개혁입법을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하나도 해내지 않은 사실은 민주당의 상당수 국회의원이 이런 구조개혁포기론에 포획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선거공학을 앞세우는 정치적 함정에 빠지고 나면 여론의 눈치를 살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위와 같은 민주당의 지배적 논리에 따르면 ‘손님 실수’ 덕에 2024년 총선에서 승리해서 과반수 의석을 다시 확보한 후에도 지방선거와 대선을 앞둔 야당의 입장이 계속되기 때문에 국회선진화법의 각종 장애물을 뚫고 선제적으로 개혁입법을 추진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손님실수’는 이어질 게 틀림없지만 그 사이에 우리나라를 살릴 도끼자루는 더 썩을 게 틀림없다. 위와 같은 현상유지 논리는 선거전략의 관점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손님실수에 기대는 소극적인 정당에 선거승리의 기쁨을 안겨주지 않는다. 특히 민주당에 대해서는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을 통해 모든 정치권력을 몰아줬는데 도대체 뭘 했느냐는 지지자들의 원망이 심하고 다시 의석을 몰아줘도 잘할 것 같지 않다는 의심이 강하다. 민주당이 개혁의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다음총선에서는 막판에 이상한 대중심리기제가 작동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아무리 밀어줘도 아무것도 못한 민주당을 또 밀어줘서 윤석열 정부를 계속 식물정부로 만들기보다는 여소야대 국회 때문에 아무것도 못한 윤석열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번에는 국힘당을 한번 밀어주자는 식으로 대중심리가 작동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다음 총선에서 국힘당을 밀어서 국회다수파를 만들어줄 경우 윤석열 정부가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한 유권자들도 적지 않지만 더 많은 유권자들은 이번에도 민주당의 야대 국회가 계속되면 윤석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윤석열 정부가 일을 할 수 있도록 국힘당을 밀어주자고 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윤석열 정권의 '뻘짓'이 계속된다고 해서 민주당 지지율이 저절로 높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여러 전선에서 상대방의 실수를 비판한다고 해서 민주당 지지율이 높아지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이재명 방탄이 풀린다고 민주당 지지율이 자동 반등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민주당이 개혁진정성과 공약이행의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민주당 지지율은 답보를 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민주당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크다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야대 국회 피로감' 의외의 총선결과 낳을 수 있어
그 뿌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당이 그때그때 현안에 대응하는 것 외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갖고 진정성 있게 강령적이고 개혁적인 뭔가를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정치개혁을 생각해보자.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 시절 여러 차례 정치개혁 의지를 피력했다. 민주당은 작년 5월초 이재명 후보의 다당제 정치개혁안을 임시전당대회를 열어서 추인하기도 했다. 그 사이에 김동연이 민주당으로 넘어오고 안철수가 국힘으로 넘어간 탓에 다당제의 주체들이 사라지고 정의당은 당세가 현저히 약해지는 등 사정변경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이재명 대표가 침묵을 지키고 있을 일은 아니다.
예컨대, 이재명 대표가 이번에는 위성정당금지조항을 입법해서 위성정당을 원천봉쇄하고 2024년 총선을 현행 선거법의 준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치르자고 제안할 수 있다. 총선이 1년도 안 남은 현 상황에서는 각 당이 선거제도 개편안의 유불리를 상당부분 예측할 수 있어서 아무리 좋은 안이 나와도 여야합의가 어렵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선거구제 개편과 정치개혁 논의를 21대국회가 책임을 지고 진행하되 2028년 총선부터 적용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선거제도와 정치개혁 추첨시민의회 조직과 운영을 공신력 있는 학회에 의뢰해서 본격적으로 ‘깨어 있는 국민의사’를 확인해보고 그에 기초해서 종합적인 정치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할 수 있다.
개혁의지의 진정성 안 보여주면 지지층 이탈 많아질 것
결론적으로 민주당의 문제는 시대의 과제를 도전적이고 전투적으로 감당함으로써 지지율 상승기회를 잡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그나마 있는 지지율도 까먹을까 겁내며 현상유지에 만족한다는 데 있다. 절대과반 의석에 따라오는 입법권과 국정조사권, 탄핵권 등 여러 권한을 대담하게 사용해서 때로는 극적으로 정치의 온도와 속도를 높이는 대신 소소한 현안대응을 둘러싼 입씨름에서 승리하는 데 자족했다. 민주당은 중앙정치를 통해서건 지자체들을 통해서건 기후위기, 저출산 노령화, 지역균형발전, 경제양극화 등 시대적 의제를 붙들고 진정성 있게 대처하는 역량을 보이지 못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를 조금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도무지 시대적 과제를 감당하려는 정치적 기획이란 것이 보이지 않고 도무지 기득권을 내려놓는 자기희생이 없으며 도무지 새롭고 혁신적인 구석이 없다. 정말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비상한 용기를 내고 개혁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민주당과 헤어질 결심을 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질 게다. 선택은 그대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