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놓고 미‧중 대립 격화…유엔서 유례없는 설전
한‧미‧일, 북한 도발 규탄…"중‧러, 북한 정권 비호"
시진핑-푸틴 "미, 북 합리적 안보 우려 호응해야"
중‧러, 미국 동맹국들 역대급 연합 군사훈련 비판
북한 문제를 두고 한‧미‧일 3국과 중‧러 간의 대립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한‧미‧일 3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전쟁 전야와 같은 현 한반도 상황을 촉발한 주된 책임이 계속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묵살하고 대규모 한미 연합연습 등을 통한 미국의 대북 압박에 책임을 돌렸다. 한‧미‧일과 중‧러의 시선이 서로 전혀 다른 곳에 가 있음을 보여준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선 두 진영 간에 전례 없는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한‧미‧일은 추가적 대북 제재 결의안이나 의장 규탄 성명 등 안보리 차원의 단합된 공동 대응을 통해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며 중‧러의 참여를 촉구했지만, 중‧러는 북한의 ICBM 발사는 한미 연합훈련 등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맞서면서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다.
20년 전인 2003년 8월 남북한과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베이징에서 6자회담 첫 회의를 시작해서 2년여 머리를 맞댄 끝에 2005년 9·19 공동성명을 도출해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북한에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을 해준다는 게 그 골자였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사이 6자회담 당사국 관계에도 메우기 쉽지 않은 도랑이 패인 셈이다.
서방국들 "중‧러가 북한 비호"…안보리 대응 촉구
이날 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 대표들은 북한의 지난 16일 화성-17형 ICBM 발사와 19일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발사와 전술핵 폭발 모의시험을 강하게 규탄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가 포문을 열었다. 안보리 브리핑에 따르면, 그는 잇단 북한의 도발을 비난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비호를 멈출 때까지 북한이 안보리 결의안에 규정된 의무를 얼마나 많이 위반해야 하는가"라며 상임이사국인 두 나라의 행태를 비판했다.
토머스-그린필드 대사는 ‘안보리의 침묵’은 글로벌 핵비확산 체제를 위태롭게 하고 북한을 더 대담하게 만든다면서 국제사회는 북한에 안보리 결의안 준수와 불법적 핵프로그램 포기 및 대화 참여를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런 내용의 의장성명 채택을 제안했다.
미츠코 시노 일본 차석대사도 가세했다. 그는 "북한이 국제사회 전체를 볼모로 잡게 해선 안 된다"라면서 "모든 안보리 회원국은 핵비확산 촉구에 동참하고 북한에 구멍을 제공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다.
니콜라 드 리비에르 프랑스 대사는 "프랑스는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 되는 것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라고 했고, 제임스 카류키 영국 차석대사도 북한을 규탄하고 안보리가 '침묵'에서 벗어나 단호하고 단합된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당사국 자격으로 참석한 황준국 주유엔 대사도 △ 그간 북한이 한미연합훈련과 무관하게 핵·미사일 시험을 했다는 사실 △ 2018∼2019년 북한의 '비핵화' 조치는 쉽게 복원 가능한 몇 가지에 불과했다는 점 △ 대화 요구를 거절한 것은 한미가 아니라 북한이라는 사실을 들어 북한과 중·러의 주장을 반박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시진핑 3기' 중국, 미국과 동맹국들 거침없이 비판
중국과 러시아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폈다. 북한의 도발보단 한반도 상황의 악화 책임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중국 대표는 3연임에 성공하면서 안착한 시진핑 3기 정권의 분위기를 반영한 듯 미국 상대로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 눈길을 끌었다.
겅솽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단도직입으로 미국의 책임을 거론했다. 그는 "미국은 선의를 가지고 대응하지 못해 비핵화 달성의 중요한 기회를 버렸다"고 비판했다. 그리곤 그는 미국과 동맹국들의 "전례 없는 대규모의 군사연습"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북한의 안보 불안감을 강화하고 있다면서 '자유의 방패'(FS) 한미 연합연습과 한‧미‧일 연합훈련 등을 질타했다.
특히 겅 부대사는 "워싱턴은 진정성을 보이고 실질적 제안을 내놓고 평양의 정당한 우려에 직접 호응해야 한다"면서 긴장 완화, 대화 복원 등 정치적 해결책 도출을 위한 안보리의 건설적 역할을 주문했다.
또한 그는 오커스(AUKUS) 동맹국인 호주‧영국‧미국 간의 핵잠수함 이전 계획을 겨냥해 미국의 '이중기준'을 따졌다. 그는 "북한에는 핵무기 포기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비핵 국가에 무기급 농축우라늄을 이전하는 미국의 이중기준은 안보리의 신뢰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도 "한반도와 동북아 국가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군사 활동에도 반대한다"라고 말하고 한미 쌍용연합상륙훈련이 지난 5년간 시행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통상적인 훈련이라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시진핑-푸틴 "미국, 북한의 합리적 우려에 호응해야"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입장은 이튿날인 21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재확인됐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실제 행동으로 북한의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에 호응해 대화 재개의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력을 취해서는 안 되고, 그것은 통하지도 않으며, 대화와 협상만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그러면서 두 정상은 중국이 제시해온 "쌍궤병진의 사고와 단계적, 동시적 행동 원칙에 따라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과정을 끊임없이 추동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중국의 '쌍궤병진' 해법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