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 코드 맞추기 급급한 국힘…민심이반 자충수
정부 견제 못하고 지도부가 '나팔수' 노릇만
"대통령 '결단'에 한일관계 '정상화'…야당 선동질"
전당대회 2주도 안 지났는데 지지율 급락 사태
당내 비주류들 "과거 행태 돌아가면 지지율 하락"
굴욕적 한일 정상회담을 두고 각계의 비판과 국민적 반발이 거세지만 국민의힘은 거꾸로 야당과 국민 탓만 하는 태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관계를 '정상화'한 것인데 여론이 더불어민주당의 선동에 휘둘려 조작되고 있다는 식이다.
정부가 민심과 크게 괴리된 잘못된 길을 갈 경우 이를 견제하고 주도적으로 견인해야 할 집권여당이 오히려 '거수기' 노릇에만 급급한 양상이다. 3·8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새 지도부가 출범한 지 이제 2주가 채 안 됐는데도 컨벤션 효과를 누리기는커녕 당 지지율 급락 사태를 맞고 있는 건 당연한 귀결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20일 최고위 회의에서 야권의 '대일 굴종 외교' 공세를 격렬하게 성토하며 '대통령 결사옹위'에 총력을 기울였다.
김기현 대표는 "한일관계 정상화를 두고 민주당의 거짓선동과 극언, 편 가르기가 금도를 넘고 있다"면서 "일본의 하수인이라느니, 전쟁의 화약고라느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내지르고 있다"고 거칠게 쏘아붙였다.
김 대표는 "작금의 민주당 행태를 보면 민주당에게 반일은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내 정치용 불쏘시개로 쓰는 소재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익과 안보까지 방탄으로 사용하려는 민주당이야말로 망국의 장본인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며 "모름지기 대통령이 되겠다는 국가 지도자라면 당장 눈앞의 당리당략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나라의 미래를 위한 '결단'을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지난 주말에도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정부의 한일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폄훼하기 위해 온갖 저급한 레토릭을 꺼내 들어 반일 감정 고취라는 낡은 프레임을 재가동시켰다"면서 "민주당의 주장 어디에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익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물은 누가 뭐래도 지난 정권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던 양국 간의 신뢰를 회복했다는 점"이라고 했다.
조수진 최고위원도 "한일관계가 갈등에서 협력으로 전환됐다"며 "기시다 총리가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고 하면서도 직접 사죄하지 않은 것은 아쉽지만 안보와 경제 부분에서 거둔 성과는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적 부담을 무릅쓴 결단이 아니었다면 얻을 수 없던 것들"이라고 윤 대통령의 '결단'을 부각시켰다. 이어 "그러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은 한일관계를 최악의 구렁텅이로 만든 것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이 또다시 죽창가만 부르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태영호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일의 군사 안보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돼 있다"면서 북핵 위협에 대응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추가 배치'를 촉구했다. 그는 "오는 4월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이제라도 북한의 핵 공중폭발에 실질적으로 대비하는 준비를 하려면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언급했던 '사드 추가 배치안'을 진지하게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며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가의 사활이 걸린 사드 등 MD 구축을 반대하는 이재명 대표와 같이 가짜뉴스 괴담 생산 정치인부터 퇴출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들 지도부는 각자 SNS를 통해 더욱 수위 높은 표현으로 야당 탓을 반복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구국의 결단을 내린 것인데 민주당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며 참을 수 없는 울분을 표출하는 중이다.
김기현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 글에서 "민주당이 여전히 구한말식 '죽창가'를 외치며 '수구꼴통' 같은 반일 선동질에 매달리고 있으니 그저 개탄스러울 따름"이라면서 "이재명 대표는 미래를 위한 윤석열 정부의 과감하고 대승적인 결단에 더 이상 찬물을 끼얹지 마시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태영호 최고위원도 "윤석열 대통령의 대승적 결단은 최악의 상황에 발목 잡혀있던 양국이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큰 걸음을 떼게 했다"며 "무엇보다 이번 윤 대통령의 결단은 과거사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치유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박수받아 마땅하다. 지난 정권이 죽창가를 외치느라 안중에도 없던 인권 문제를 윤석열 대통령은 주도적으로 해법을 추구했다"고 노골적으로 윤 대통령을 칭송했다.
장예찬 최고위원은 "미래로 나아가려는 윤석열 정부의 노력을 국제사회도 높게 평가하며 신뢰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면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오직 지지율 관리에 급급한 비겁한 통치 행위로 이 문제를 철저하게 방치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지도부와 정부는 전날 오후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고위 당정협의회를 갖고 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뒷받침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김기현 대표 체제 출범 후 처음 열린 이날 고위 당정 회의에서 국민의힘과 정부는 12년 만의 한일 정상 간 단독회담이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의 획기적 계기가 됐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강제동원 피해자·유족 측의 강한 반발 등 문제점을 지적하는 집권당 지도부의 목소리는 없었다. 심지어 이 자리에서조차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향해 시작부터 포문을 열었다.
김기현 대표는 모두 발언에서 "참으로 후안무치하고 국익을 해치는 무책임한 정당이 아닐 수 없다. 마치 구한말에 쇄국정책을 고집하면서 세계정세의 흐름을 무시한 채 국내 권력투쟁만 골몰하는 무능한 국가 지도자들이 결국 나라를 망쳤던 모습이 연상된다"며 "외교 문제까지 방탄의 소재로 삼아 국익을 해치는 민주당의 생떼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이처럼 윤심(尹心)에 코드를 맞추는 데만 급급하면서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로 자리매김하는 김 대표 및 최고위원들의 행보는 자충수를 면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는 새 지도부가 출범한 지 열흘 남짓밖에 안 된 국민의힘이 전당대회라는 대형 정치 이벤트 직후의 상승효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 도리어 민심 이반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실히 입증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 13일부터 17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2505명에게 지지 정당을 물어 20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 37.0%, 더불어민주당 46.4%로 집계됐다.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41.5%에 비해 4.5% 포인트나 하락했다. 3.8%포인트 상승한 민주당과 격차가 9.4% 포인트나 돼 오차범위(±2.2%포인트) 밖으로 크게 벌어졌다.
민주당은 2주 연속 상승, 국민의힘은 2주 연속 하락했는데, 더 심각한 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 하락 폭(2.1%포인트)보다 국민의힘 낙폭이 더 크다는 점이다. 지난 17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14∼16일 전국 성인 1003명 대상)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보다 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두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당 지지율 55%, 대통령 지지율 60%'를 공약으로 내걸고 총선 승리를 약속했던 김기현 대표의 호언장담이 출발부터 무색해지면서 당 내부에서도 불안감이 싹트는 분위기다. 친윤계 측은 아직 입을 다물고 있지만 비주류 측에서는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웅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진석 의원이 '제발 식민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자'라고 방송에서 말했다고 한다. 그럼 나치의 인종학살에 대해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야기하는 것은 유대인 콤플렉스인가?"라며 "독일은 유대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아직도 반성하고 있다. 반나치법을 만들어 나치즘을 옹호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하고 있다. 작년에는 101세의 나치 부역자에 대해서도 실형을 선고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그에 비해 일본의 사과란 것은 고작 '통석의 념'이 전부다. 게다가 식민지 지배나 전쟁 책임을 두둔하는 자들이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면서 "'그래 그건 내가 잘못했다고 치고,'라는 식의 사과에 화해의 마음을 가질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것이 식민지 지배 콤플렉스인가?"라고 거듭 문제를 제기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한 행사장에서 "국민의힘이 민심과 가까워졌을 때 지지율이 올랐고 올드한, 과거 행태로 돌아갔을 때 지지율이 하락했던 것은 김종인·이준석 체제 출범 이후 경험적으로 확인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이 윤 대통령의 이번 방일과 관련해 '이 정도면 일본인 마음을 여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 않나 생각한다'고 브리핑한 것을 두고 "웬만하면 입 닫고 있으려 했는데 한심해서 한마디 한다"고 꼬집었다.
유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일본은 강제징용, 강제노동의 '강제성'조차 부인하고 있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상황을 피해자가 가해자의 마음을 열어야 하는 상황으로 전도시켜 놓고 이것을 외교적 성공이라 자랑하니 어이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닥치고 반일'도 안되지만, 역사를 부정하는 친일도 안 된다. 대한민국의 건전한 정치세력이라면 종북도, 친일도 아니어야 한다"며 '친일'이라는 단어까지 거론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대일 외교에서 지켜야 할 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고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