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진상조사보고서가 '역시나'인 두 가지 이유
김만배와 돈거래, 상세하게 조사하고 공개했으나
결과와 방향 제시가 유기적이지 못한 한계 노출
'법조기자단과 검언유착' 비켜간 채 개인 일탈로
한겨레 논조와 내부 문화 향한 더 깊은 성찰 필요
새 경영진과 편집국이 찾아야 할 길, 소중한 기회
김만배 씨와 편집국 간부의 돈거래 사건에 대한 한겨레 진상조사 최종 보고서를 보면서 두 가지 측면에서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하나는 '역시' 한겨레이니까 가능한 과정이고 결과였다는 생각이었다. 한겨레는 서둘러서 외부인사까지 포함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꼼꼼한 조사를 진행했다.
또 그 과정과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모든 독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했다.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 다른 어떤 언론사들은 이만큼이나 신속하고 진지하게 진상조사를 하고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진상조사보고서는 한겨레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고, 어떤 식으로 취재와 기사 작성과 편집과 데스킹이 이뤄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 "취재 시스템과 관행을 혁신하겠습니다" "법조를 비롯한 출입처와 기자단 문제에 대해 권력 감시와 비판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라고 방향을 제시하며 개선의 약속을 하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동시에 이런 노력의 의미를 깎아내릴 수 있는 모순되는 평가와 요소도 담고 있다. 이번 사건이 '법조기자단과는 직접적으로 무관'한 일이었고, '대장동 게이트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와 돈거래 사이의 직접적 영향은 확인되지 않았'고, 따라서 돈거래 사건 자체는 '개인의 일탈'이었다는 평가이다.
결국, 조사 결과와 방향 제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기보다는 나란히 평행선을 달리는 것처럼 읽힌다. 이 때문에 '역시' 처음부터 한계가 정해진 진상조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일으킨 편집국 간부와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에만 치중해서 제한적인 조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정치검사들의 득세와 검언유착 속에서 나타난 한국 언론의 문제들 속에서 한겨레도 자유롭지 않다는 부분은 조사 대상이나 범위가 아니었고, 따라서 그것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한겨레에 쓴소리를 해 온 사람들이 외부위원으로 참가해서 더 철저한 조사를 벌이지는 않았다. 성과와 한계를 모두 담은 진상조사 결과는 처음부터 예정된 셈이었다.
사실 돈거래에 법조기자단이 직접 관련이 없거나, 돈거래를 한 간부가 보도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았거나, 결국은 개인의 일탈이었다는 것은 처음부터 당연했다. 당연히 법조기자단이 조직적으로 논의해서 돈을 거래하고 나눠 가진다거나, 김만배가 '이 돈을 줄 테니 기사를 이렇게 쓰라'고 요구하는 일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 식의 검언유착을 상상하는 사람이 있다면, 유치한 영화를 너무 많이 봤거나 상상력이 빈곤한 사람일 것이다. 이것은 성폭력 사건에서도 비슷하다. 예컨대 특정 단체의 이름을 붙여서 '00000 성폭력 사건'이라고 부른다면, 그 단체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모의해서 A에게 B를 성폭행하라고 사주했다고 보는 게 아니다. (물론 현실에서 이렇게 이해하거나 곡해해서 반발하는 이상한 사람들은 항상 있는 법이다.)
그 공동체의 문화와 규범 속에 어떠한 문제점과 부족함이 있었기에 특정한 가해자의 그러한 '일탈'이 가능하게 됐는지를 함께 돌아보고 성찰하자는 것이 핵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매우 강조하는 사람들은 반발을 무릅쓰면서 '강간 문화', '사회적 강간'이라는 다소 과격하게 들리는 개념과 용어까지 쓰게 된다.
마찬가지다. 편집국 간부가 김만배와 돈거래를 한 것은 당연히 개인의 일탈이었겠지만, 그것이 과연 한겨레가 그동안 보여준 우려스러운 논조와 문화, 편집 방향과 무관한 것인가라는 게 많은 사람의 반응이었다. 정치검사들과 법조기자단, 그들의 유착이 만들어낸 문화 속에서 한겨레도 자유롭지 않아 보인다는 의문이었다.
왜 한겨레의 법조기사들이 검찰의 일방적 주장을 슬금슬금 따라가는 것처럼 보일까? 왜 한겨레의 일부 보도와 논조들이 족벌언론들이 짜놓은 프레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까? 왜 한겨레는 조국 가족과 윤미향 의원에 대한 집단적 공격에서 별 다를 바 없는 일부였을까? 왜 한겨레는 검찰과 언론에 의한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데 소극적이었을까?
왜 한겨레 편집국의 누구도 이미 1년 전에 불거진 김만배-기자 돈거래 의혹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왜 한겨레의 또 다른 간부는 편집국 간부의 돈거래 사실을 알고도 오랫동안 입을 닫고 있었을까? 이것이 과연 서로 무관한 것일까? 한겨레에 형성돼 있는 문화와 규범 속에서 자라나고 가능했던 '일탈'이 아닌가?
많은 사람이 기대한 것은 이러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의문에 대한 답변이었고, 더 진지한 분석과 평가였다. 한겨레가 보여 온 논조와 내부적 문화에 대한 더 깊이 있는 반성적 성찰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석과 평가를 위한 실마리들은 이번 보고서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편집국 간부의 일탈을 알고서도 침묵했던 간부는 "오랜 사회부(법조) 경력이 독이 됐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다. 또 보고서에 담긴 문제의 편집국 간부가 썼던 기사 리스트를 살펴보면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검찰개혁을 '추-윤 갈등'의 프레임 속에 가두면서 검찰 편에서 법무부를 비판하는 글을 많이 썼다는 것이 확인된다.
보고서에서 대장동 게이트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를 분석한 부분을 살펴봐도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한겨레는 대장동 게이트의 핵심적 증거인 '정영학 녹취록'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다. 녹취록에서 '검사, 기자들에게 로비를 했다'는 대장동 일당의 말들을 "진술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기각했다.
"언론인 상대 로비 의혹은 대장동 사건의 본류가 아니라는 판단"을 했다. 한 기자는 "법조 비리, 권력형 비리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런 발제를 몇 차례 했는데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정영학 녹취록'을 바탕으로 끈질기게 파헤친 <뉴스타파>와 달리 한겨레는 '검사, 기자들이 엮인 법조게이트'라는 대장동 사건의 진정한 본류를 놓치고 말았다.
진상조사보고서는 이런 실마리들을 기반으로 '일탈'의 바탕이 됐던 한겨레의 문화와 논조를 되짚으면서 해결책을 찾아가지 않고 있다. 타 언론사들과 비교해서 대장동에 대한 한겨레의 취재와 보도가 특별히 문제는 없었다는 평가에 머물고 있다. 나아가, 문제의 편집국 간부가 대장동 기사들을 의도적으로 데스킹하거나 수정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출입처 제도와 법조기자단의 구조 속에 검찰 받아쓰기 문화가 지배적인 대부분의 다른 언론사들과 한겨레의 논조가 비슷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취재 시스템과 관행을 혁신하겠다, 출입처와 기자단 문제에 대한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이 다소 공허하게 들리는 것이다.
물론, "법조기자단의 전반적인 문제를 진단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일은 이번 진상조사위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이야기도 이해는 간다. 그렇다면, 이후에 새로운 경영진과 편집국이 이번에 못 다한 과제를 이어갈 것을 기대한다. 이번 사건이 그저 '개인의 일탈'로 잊혀질 것인지, 아니면 비판적 언론으로서 한겨레의 창간 정신과 문화를 되살리는 소중한 기회로 남을 것인지가 여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