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 정권에 친일 경찰"…또 일본 대사관 행진 금지

촛불행동, 옥외집회 금지통고 집행금지 가처분 신청

휴일인데 일본 대사관 '기능 침해'된다는 한국 경찰

극우단체 대형확성기로 음악틀고 욕설해도 수수방관

"경찰당국은 정권의 사병 아니라 국민의 공복 돼라"

2023-03-10     김성진 기자
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29차 촛불대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이날 시민들은 오후 6시 30분 쯤 본집회를 마친 뒤 시청역에서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 일본 대사관을 향해 행진했다. 안중근 의사와 동지들이 피로 '대한독립(大韓獨立)'이라 쓴 대형 혈서 태극기가 행진 대열의 맨 앞에 펼쳐졌다. 2023.3.4. 사진 이호 작가

경찰이 또다시 촛불 시민들의 일본 대사관 앞 행진을 금지했다. 매주 토요일 '촛불대행진'을 이끌고 있는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법원에 경찰의 옥외집회 금지통고에 대해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한편,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촛불행동은 1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대사관 앞 행진을 금지하는 경찰을 규탄했다. 기자회견에는 촛불행동 김은진 상임공동대표와 박재동 화백 등이 참여했다.

촛불행동 권오혁 사무처장은 "경찰이 공권력이라 부르기 부끄러울 정도로 윤석열 정권의 사병 노릇을 하고 있다"며 "특히 일본 대사관 행진 금지 행태 자체는 친일 정권의 친일 경찰이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사무처장은 "일제시대 친일 경찰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 번도 청산되지 못한 경찰이 또다시 친일 정권을 만나서 본색 드러내는 것인가"라며 "국민들에게 지탄받는 현실이 부끄럽지 않냐"고 질타했다.

휴일인데 일본 대사관 '기능 침해'라는 경찰

촛불행동이 규탄하고 있는 경찰 처분의 핵심은 일본 대사관 앞 행진 여부다. 촛불행동은 11일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와 강제징용 해법을 규탄하기 위해, 평화의 소녀상을 지나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나는 경로에 집회 신고를 마쳤다.

그러나 경찰은 집회 이틀 전인 지난 9일 행진 경로 일부 구간이 일본 대사관 100m 이내 장소인데다가, 신고 인원인 5만명이 행진하는 경우 일본 대사관 기능 침해 우려가 있고, 주요도로에 교통체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했다.

촛불행동은 3·1절 이후 처음 열렸던 지난 4일 '29차 촛불대행진'에서도 같은 경로로 행진을 신고했지만, 경찰로부터 집회 하루 전 금지 당해 대사관 건너편을 행진해야 했었다. 금지 이유 역시 이번과 동일했다.

하지만 경찰의 금지 이유는 여러모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는 게 촛불행동 측의 주장이다.

소녀상 앞에선 매주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고, 지난 1일에도 1000여 명의 시민이 참가한 3·1절 범국민대회가 촛불행동이 신고한 경로와 똑같은 경로에서 진행됐다. 경찰 논리대로면 이들 집회도 금지해야 했지만 이는 허용했다.

또 행진 경로 100m 이내에  미국 대사관이 있지만 경찰은 일본 대사관은 불허하고 미 대사관 앞 행진은 허용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게다가 휴일에 열리는 집회가 대사관 기능을 '침해'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1조는 외교기관 앞 시위와 관련해 업무가 없는 휴일에 개최하는 경우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허용하고 있다.

 

'104주년 3.1절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1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해 욱일기가 그려진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3.3.1 [공동취재] 연합뉴스

촛불행동 하기연 행사국장은 "이와 같은 금지통고 기준이라면 서울 시내 어느 곳에서 행진이 불가능하다"며 "사대문 안에 주요 도로가 아닌 곳이 없다. 사대문 안에서 집회 행진은 할 수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 국장은 "교통체증은 경찰도 안전지도를 하고, 촛불행동도 안전요원을 배치해 교통체증이나 안전을 고려해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연이어서 금지통고했다"며 "불합리하고 부당한 경찰 조치는 최근 친일 윤석열 정권의 본색을 그대로 드러낸 일본 눈치 보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촛불행동은 지난 9일 경찰로부터 금지통고를 받은 즉시 서울행정법원에 옥외집회금지통고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심리 결과는 금명간 나올 예정이다.

극우단체 악의적 방해하는데 경찰 '수수방관'

아울러 촛불행동은 이날 경찰이 극우단체의 집회 방해 행위를 방관하고 있다며 규탄했다. 극우단체의 촛불대행진 방해는 거의 일상이 됐다.

극우단체들은 매주 맞불집회를 열고 "문재인 구속" "이재명 구속"을 반복해서 외치거나, 집회 참가자들에게 욕설을 하는 등의 방법으로 방해하고 있다. 대형 확성기로 집회 참가자 발언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악을 틀기도 한다.

또 극우 유튜버들이 집회장을 난입하거나, 군복을 입고 '육사' '학군' '학사' 등이 써진 부대기를 든 단체들이 행렬 뒤를 쫓아오면서 시민들을 위협하는 경우도 있었다.

촛불행동은 이에 지난해 대형 확성기로 집회를 방해한 극우단체와 함께 신고된 집회에 대해 반복적으로 해산방송을 한 종로경찰서를 경찰청에 고발했지만, 고발인 조사 뒤 수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촛불행동 홍덕범 홍보국장은 "최근부터 경찰들이 촛불대행진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달라진 거 같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민감하게 대응하고 집회를 방해한다"며 "집회 참가자들이 불편할 정도로 통제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 국장은 경찰을 향해 "극우세력들이 고출력 스피커로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불편 끼칠 때 데시벨(dB) 측정으로 통제한 적 있냐. 왜 이렇게 불공정하고 차별적으로 대하냐"며 "경찰들이 극우세력과 협력하는 게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14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숭례문 앞 대로 구간에서 열린 '23차 촛불대행진'(4차 전국집중촛불)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 1. 14. 사진 이호 작가

이뿐 아니다. 촛불행동에 따르면 경찰은 대통령실 앞 집회 및 행진에 대해 극우단체의 신고만 받아주고, 촛불행동의 신고에 대해서는 후순위라는 이유 등으로 금지통고를 내리고 있다.

집시법 제8조2항에 따르면 경찰은 서로 다른 성격의 집회·시위가 중복되면 시간·장소를 달리하는 방법 등으로 집회가 방해없이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촛불행동이 집회 30일 전 경찰서에서 4~5시간 대기하다 자정에 맞춰 신고해도 극우단체만 집회 장소를 선점하는 상황이다.

특히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역 사거리는 극우단체가 매주 사거리 전체를 선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쟁기념관 후문 인근 모퉁이에서 수백 명만 모이는 집회만 열릴 뿐이다. 충분히 장소를 분할할 수 있음에도 경찰이 촛불대행진만 금지하는 것이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이 삼각지역 사거리 행진 금지통고 관련 소송에서 "대통령 집무실은 집시법에서 보호하는 '관저'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촛불행동 측의 손을 들어줬지만, 행진과 별개로 극우단체가 매주 사거리 집회를 신고하고 있어 향후에도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민 사회에서는 하반기 대통령실 앞 집회를 제한하는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의 시행을 앞두고 있어, 경찰이 계속해서 금지통고를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찰, 정권의 사병 아니라 국민의 공복 돼라"

촛불행동은 이날 기자회견을 마친 뒤 서울 경찰청에 일본 대사관 앞 행진 금지와 집회방해 방관에 대해 항의하는 서한을 보냈다.

김은진 상임공동대표는 "경찰은 더 이상 무리수를 두지 말고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집회를 보장하고, 극우단체들의 집회방해 범죄행위에 대해 엄중 조치하고 직무를 유기하지 마라"며 "촛불행동은 경찰당국이 정권의 사병이 아니라 국민의 공복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재동 화백은 "우리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군사 독재 정권을 체험했다"며 "군인들이 모든 조직을 차지하고 국민을 탄압하고 억압하고 때리고 가두고 그렇게 정권을 이끌어왔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이제 민주화가 됐다 싶은데 다시 검찰이 군인을 대신해서 모든 행정을 다 한꺼번에 움켜쥐고 우리 국민을 옥죄고 있다"고 비판하며, 기자회견 참가자들과 함께 윤석열 정권을 규탄하는 의미에서 "대한독립 만세" "독재퇴진 만세" "집회방해 중단 만세"를 외쳤다.

 

촛불승리전환행동(촛불행동)은 10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서울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대사관 앞 행진을 금지하는 경찰을 규탄했다. 2023.3.10. 촛불행동 제공

한편 '30차 촛불대행진'은 오는 11일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시청역부터 숭례문 앞까지 구간에서 열린다. 촛불대행진은 경찰의 금지통고에 따라 일본 대사관 건너편으로 행진을 준비하고 있지만, 집행금지 처분이 결정되면 소녀상과 대사관 앞을 통해 행진할 계획이다.

오는 18일에는 오후 4시부터 서울 지하철 시청역~숭례문 앞 구간에서 '6차 전국집중촛불'(31차 촛불대행진)이 개최된다. 16~17일 일본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만큼, 일본 대사관 에워싸기 형식으로 행진이 진행될 예정이다.

관련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