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반도 위기, 미·중 대리전으로 이어지나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다. 북한은 작년에 미사일을 73발이나 쏜 데 이어 올해 들어와서도 세 차례 시험 발사했다. 특히 최근 들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고각발사(2.18) → 한·미 전략자산 전개(2.19) → 북한의 방사포 발사(2.20) → 한·미·일 미사일 방어훈련(2.22)으로 맞대응 양상을 보이면서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위험한 것은 미·중 패권경쟁 및 대만 위기와 맞물려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과 연계된 한반도 3월 위기설
북한의 ICBM 발사는 한국을 넘어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김여정 당 부부장은 19일 화성-15형 시험발사 뒤 담화에서 “남조선 것들을 상대할 의향이 없다”고 밝힌 데 이어, 20일 한·미 공군기지를 겨냥한 600mm 방사포 발사 뒤 담화에선 “태평양을 우리의 사격장으로 활용하는 빈도수는 미군의 행동 성격에 달려 있다”며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 한층 강화된 군사 대응을 경고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태평양상의 미사일 시험발사가 한반도 위기가 고조됐던 2017년 8월과 9월에도 나왔던 얘기이며, 이날 쏘아 올린 화성-15형은 북한이 ‘국가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할 때 쐈던 ICBM과 동종이란 점이다. 만약 북한이 태평양을 향해 미사일을 쏜다면, 이는 2017년 8월 예고했다가 철회한 미국의 서태평양 전진기지가 있는 괌도 포위사격이나 같은 해 9월에 언급한 태평양상의 핵실험 또는 IRBM·ICBM의 시험발사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한·미의 대응도 심상치 않다. 한·미는 북한의 ICBM에 맞서 미국의 전략자산을 동원한 연합공중훈련을 서해상에서 진행했다. 그 이전까지는 중국을 의식해 주로 동해에서 실시해 왔지만, 올해 세 차례는 모두 서해상에서 실시했다. (이유, 미국 전략자산 잇단 ‘서해 전개’...대중 압박 본격화) 이것은 북한 위협에 대한 대응조치의 성격을 넘어 대만 유사시 한반도-대만의 전장을 연계해 관리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작년 12월 말에 발표한 <인·태 전략> 보고서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중요하다”고 명시했다. 이것은 2021년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과 2022년 윤석열-바이든 정상회담, 그리고 2022년 11월 한·미·일 프놈펜 공동성명에서 밝힌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전이 중요하다”는 입장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만약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날 경우 한국이 스스로 ‘연루’될 것임을 공식화하는 자충수를 둔 것이다.
2017년 위기와 닮은 듯 다른 2023년 한반도 위기
그렇다면 2017년 한반도 전쟁위기는 어떻게 전개됐나. 2017년 7월 4일과 28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은 화성-14형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화성-14형이 ICBM으로 최종 확인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를 외치며 격하게 반응했다. 그러자 김정은 위원장은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으로 미국의 서태평양 전진기지인 괌도 4곳을 포위사격하겠다고 맞받아쳤고, 트럼프 대통령도 군사적 해법을 경고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다.
북한의 괌 포위사격 계획이 발표되자 미 합참의장이 긴급 방한하는 등 미 군부는 빠르게 움직였다. 결국 8월 14일 김정은 위원장이 “미국의 행태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며 계획을 철회하면서 상황은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이 이어진 가운데, 북한은 8월 29일 일본열도를 가로지르는 미사일을 쏘고 9월 3일에는 수소폭탄실험을 실시했으며, 9월 21일에는 ‘태평양상에서의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단행할 수 있다고 미국에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수면 위에서는 군사충돌 일보직전까지 나아갔지만, 수면 밑에서는 외교로 풀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른바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60일 법칙’이 작동되고 있었다. 60일 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동결을 조건으로 북·미가 물밑에서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성과가 없자 11월 20일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11월 23일 대규모 연합공군훈련 Vigilant ACE의 실시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맞서 북한도 11월 29일 미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ICBM 화성-15형을 시험발사한 뒤 ’국가핵무력의 완성‘을 선언했다.
이처럼 2017년 상황과 2023년 상황은 비슷한 점도 있지만, 차이도 크다. 첫째, 지난 정부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힘에 의한 평화 구현’을 내세우고 있어 ‘강 대 강’ 맞대결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당시 중·러의 대북 제재 동참과 달리 지금은 중·러가 추가제재나 규탄성명 채택을 거부하는 등 국제공조가 깨졌다. 셋째,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위기를 우선하면서 직접 대화에 나서기보다 한·미·일 안보협력에 주력하며 사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2017년만 해도 남북 및 북·미 간에 대화채널이 살아있었고, 이것이 2018년 이후 공식 대화채널로 전환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을 이끌어내 한반도 위기를 진정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에 들어와 남북 및 북·미 채널마저 다 끊긴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군사분계선이나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이 발생할 경우 남북한이 강경하게 맞대응함으로써 자칫 국지전, 전면전으로 확전될 위험성을 안고 있으며, 이는 미·중의 대리전으로 성격이 바뀔 수 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가동해야
2017년의 한반도 위기 국면은 결국 북한의 빈곤 탈출 실패와 ‘전략국가’ 지위 확보(수소폭탄 실험, ICBM 보유)라는 상처만 남긴 채 끝났다. 한·미와 북한이 물밑대화를 통해 대화 재개에 합의해 2018년에 들어와 일시적으로 대화 국면이 찾아오긴 했지만, 북한의 비타협적 자세와 즉각 비핵화를 주장하는 한·미·일 강경파의 반대에 부딪혀 모처럼 열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기 위해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부터 추진해온 한국형 3축 체계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넘어 미 확장억제력의 실효성 제고나 한·일 안보협력을 내세워 비례성 원칙을 넘어선 과잉 대응이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미 전략자산의 과도한 한반도 전개와 선을 넘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는 북한당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마저 차단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남북 대화채널을 시급히 복원하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일이다. 대화채널이 마련되면 위기관리를 통해 우발적 군사충돌을 예방하고 확전을 막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한·미 군사연습의 일방적 중단이 어렵더라도, 2017년 12월 문 대통령이 한·미 군사연습 연기로 대화국면을 만들었던 것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을 조건부로 한·미 군사연습의 규모와 방법, 시기를 조정할 수 있다고 선제적으로 제의한다면 위기국면을 진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남북간의 화해야말로 대만해협 위기와 한반도 위기의 연동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