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분향소 영정 내린 유가족 "오세훈과 대화는 없다"
서울시 철거 예고 하루 앞두고 분향소 서울광장으로 통합
연대와 추모의 공간 이태원 분향소 62일 만에 자리 옮겨
유가족 "언제 녹사평역 간다 했나…언론플레이 그만하라"
"윤석열, 국민도 못 돌보는 사람이 튀르키예 지원하다니"
유족·시민·상인, 이태원역 안전과 기억의 거리 조성 협조
지난해 12월 14일 세워진 녹사평역 인근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 분향소가 서울광장 시민 분향소로 이전·통합했다. 녹사평역 시민 분향소가 설치된 지 62일 만이다.
유가족들은 녹사평역을 떠나며 그동안 연대와 지지를 보낸 이태원 상인과 지역 주민에게 감사와 위로를 전하고 사고지 인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을 '안전과 기억의 거리'로 만들어나갈 것을 약속했다.
또 서울시의 철거 강행에 맞서 시민과 함께 새로 마련된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추모할 권리를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서울시는 15일 오후 1시 서울광장 분향소를 철거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유가협)과 시민대책회의는 14일 오후 2시 녹사평역 시민분향소 앞에서 분향소 이전·통합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종교인, 상인 대표 등이 함께 했다.
유가족들은 영정들을 서울광장 앞으로 옮기기에 앞서, 서울시의 분향소 철거에 대해 규탄하고 시민들에게 분향소를 지켜줄 것을 호소했다.
고 이지한 씨 아버지인 이종철 유가협 대표는 지난해 국가애도기간에 이뤄진 윤석열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추모에 분통을 터뜨리고, 서울광장 시민 분향소 철거를 예고한 오세훈 서울시장에 대해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가애도기간에 서울광장에 설치했던 영정도, 위패도 없고 상주도 없는 분향소에 윤 대통령 이하 많은 분이 와서 조문했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며 "어떻게 영정과 위패와 상주도 없는 분향소에 와서 사과했다고 하나. 상식이 있느냐"고 질타했다.
이어 "온전한 추모를 할 수 있는 공간과 소통할 수 있는 사무실을 부탁했지만 50여 일 동안 정부와 서울시는 어떠한 소통도 하지 않았다"며 "광화문 광장 한 켠에 조그마한 분향소를 설치하겠다고 서울시에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말한 것이 잘못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아울러 유가족이 녹사평역 지하 4층으로 추모공간 이전을 제안했다는 서울시의 주장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서울시에서 녹사평역 지하 4층을 제안했다. 그것을 저희 유가족이 제안했냐"며 "더 이상 서울시는 언론 플레이 그만하라. 애들 장난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관(官)급 건물이 없다고 해서, 이태원역도 녹사평역도 용산구청도 있고 시청 로비도 있다, 찾으면 찾을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렇게 이야기한 걸 가지고 (유가족이) 제안했다고 하냐"며 "더 이상 서울시청, 오세훈 시장과 대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서울시에 분명히 우리 아이들을 죽인 책임이 있다. 그런 사람들과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며 "저희들은 윤 대통령과 대화할 것이다. 다시 한번 요청드린다. 윤 대통령은 저희들의 이야기를, 면담 요청을 거부하지 말고 자신있게 받아들이라"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튀르키예 지진 구호 활동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정지로 인해 영향을 받는다는 대통령실을 향해 강하게 비판을 하며, 윤 대통령에게 "국민조차 돌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나라 이웃에 조문한다고 하냐"고 힐난했다.
이어 "10월 29일 당일에도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행동을 안 해서 (대통령은) 지켜만 봤냐"며 "당신들은 우리들에게 패륜을 저질렀다. 그리고서 지금까지 말 한마디 없다. 이것이 공정과 상식이냐"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서울광장 분향소와 이전·통합해 시민들과 함께 온전한 추모를 할 것"이라며 "이태원 참사 희생 원인에 국가의 부재가 있었고 행동 하지 않은 국가 공무원들이 있었다. 진상규명을 통한 책임자 처벌을 국민들과 함께 이어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시민사회의 연대 목소리도 이어졌다. 시민대책회의에서 활동하는 서채완 공동상황실장은 "애초에 제대로 된 기억과 추모가 이뤄졌다면 국가와 지자체가 사과하고 희생자와 피해자를 위한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2차 가해로 159번째 희생자가 발생하는 일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 실장은 "기억과 추모는 참사 피해자의 권리이기도 하지만 연대하는 우리의 권리이기도 하다"면서 "기억과 추모는 결국 우리 모두의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외쳤다.
이어 "분향소 철거는 피해자뿐 아니라 우리의 존엄성을 해하는 조치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태원 참사가 피해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의 문제라는 걸 분명히 인식하고 피해자들 곁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억과 추모를 위한 분향소가 당연히 정당하다고 함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면서, 오는 15일 서울시의 철거 시도로부터 서울광장 분향소를 지켜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이태원 상인들은 떠나는 유가족들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했다. 장하림 이태원 상인 통합대책위원장은 "너무 긴 시간 지속되는 상권 침체는 저희 힘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웠다"며 "유가족분들이 상생의 맘으로 저희 요구를 받아들여 시청 앞 분향소로 이전·통합을 결단한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했다.
그는 또한 녹사평역 분향소 주변에 걸려 있는 용산 주민과 이태원 상인, 주민 명의의 2차 가해성 현수막에 대해서 "이태원 주민과 상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나아가 이런 혐오 표현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 주민과 상인,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 피해자에 마음 깊은 위로와 애도를 전한다"며 "유가족들의 마음을 받아 이후에도 이태원원역 1번 출구에 '안전과 기억의 거리' 조성 협약 이행에 협조할 것"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이에 "같은 참사의 피해자이면서 지금까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지지해준 이태원 상인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면서 "녹사평 분향소에 깃든 추모와 위로, 그리고 연대의 마음을 기억하며, 서울시로부터 분향소를, 그리고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추모를 지켜낼 것"이라고 답했다.
이날 기자회견 뒤 유가족은 종교인들과 함께 영정 사진을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내렸다. 유가족들은 영정 사진을 어루만지거나 끌어안으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오열했다. 가족이 오지 못한 영정은 유가족들과 종교인들이 흰 천에 싸서 보관했다가 가족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