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만명 생활기반 90초 만에 "와르르"…튀르키예 '지진 지옥'

[이혜승 통신원 속보 ①] 안전 지대 찾는 필사적인 행렬

히로시마 원폭 355배 위력, 우리나라 면적의 70% 파괴

엄동에 단전, 단수 고통, 겨울옷·담요·비상식량 등 절실

"죽음은 지진 아니라 부실건물 탓" 토건 업계 피해 키워

2023-02-11     이혜승 통신원
이혜승 튀르키예 통신원

지난 2월 6일 새벽 4시 17분 튀르키예 남동부의 대도시 카흐라만마라쉬에서 리히터규모 7.8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후 수백여 차례의 여진이 뒤따랐다. 9시간 후 발생한 2차 지진 역시 7.5도의 강진이었다. 6일 하루 동안만 100여 차례의 여진이 있었고, 그 중 53회의 여진이 4도 이상이었다. 지진은 대한민국 면적의 약 70%를 웃도는, 벨기에와 네덜란드 두 나라를 합친 크기에 맞먹는 지역을 강타했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대도시 카흐라만마라쉬, 가지안텝, 하타이, 디아르바크르, 아다나, 산르우르파를 비롯해 이스켄데룬, 킬리스, 말라티아, 오스마니에, 아드야만 등이 피해를 입었다. 1500만 명을 웃도는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단 90초 만에 초토화됐다. 튀르키예의 지진 전문가 아흐메트 에르잔(Ahmet Ercan)에 따르면 6일 지진은 히로시마 원폭 335개의 위력을 보였다. 각국의 많은 지진 전문가들이 이번 지진을 당대 최악의 지진으로 보고 있다.

필사적 구조작업, 전국이 초상집 분위기

지진 발생 첫날 수백 명이었던 희생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 나흘째 아침에는 1만 5000명을 넘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망자가 2만여 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는데, 이 수치를 넘어설 가능성이 짙어지고 있다. 공식적인 통계로는 건물 6444채가 붕괴됐다. 첫 지진이 새벽에 발생해 피해가 컸다. 설상가상으로 기온은 섭씨 영하 10도까지 떨어지고 매서운 칼바람이 더해져 콘크리트의 잔해 아래 깔려 있을 생존자들이 버텨 내기 버거운 상황이었다. 구조작업도 난항을 겪었다.

 

튀르키예 강진 발생 닷새 만인 10일 카흐라만마라쉬의 폐허더미 속에서 구조대원들이 필사적으로 생존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3.2.10 로이터연합뉴스 

도로가 유실되고, 통신망이 파괴되어 구조대가 재난지역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여진이 계속되는 점도 어려움을 더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부터 생존자들을 구출해 내기도 전에 또 다른 건물들이 그 위로 힘없이 주저앉는 장면을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침울하고, 비통한 분위기가 튀르키예 전국에 드리운 가운데 구조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생후 2개월 신생아는 24시간이 지나 건강하게 살아나왔고, 14개월 아기는 35시간 만에 세상의 빛을 다시 보았다. 7살 어린이도 78시간을 버티어 냈다. 86시간 만에 구출된 46세 여성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걸어 나왔다. 기적의 장면이 연출될 때마다 구조대원과 가족, 취재기자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터트린다. 그러나 이들이 나오기 전까지 대부분 재난 피해지역에는 침묵이 흘렀다. 무거운 콘크리트의 잔해를 뚫고 실낱 같은 목소리라도 들리지 않을까 하여 구조대원들도 기자들도 숨죽이는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참사 이후 90시간이 지난 9일 현재, 생존자 구조의 골든타임이 지났지만, 작업은 지속되고 있다.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단 한 명이라도 살아나오기만을 온 국민이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조만간 포크레인이 굉음을 울리며 활동을 개시할 때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일 것이다. 생존자보다는 시신을 수습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도시 기능 마비, 가늠 못할 희생자 수

피해지역 주민 중 1000만여 명이 도시민들이다. 주민들은 모두 도심을 떠났다. 시내는 전기가 끊어져 어둡고, 춥고, 부서진 시멘트와 구부러진 철근이 나뒹구는 흉물로 변해 버렸다. 지진 발생 당일, 가지안텝에 사는 지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가지안텝은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시리아 국경에 가까운 튀르키예 남동부 최대의 경제 중심지이다. 이곳은 6일 새벽 6.4도의 지진으로 건물 900여 채 이상이 붕괴됐다. 안부전화의 폭주 때문에 구조작업이 어려워지지 않도록 정부는 국민들에게 통화 자제를 요청했다.

 

튀르키예 하타이의 잔해더미 속에서 8일 생후 20개월 된 아기 케람 아지르타스가 기적적으로 구출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생존자가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2023.2.8 로이터연합뉴스

일단은 문자로 안부를 확인했다. 다음날 음성통화로 현지 소식을 물었다. 도시 전체에 전기, 가스, 수도, 통신 등 기반시설이 활동을 멈춘 것 같다고 했다. 가지안텝 시내의 응급실을 갖춘 종합병원을 제외하고 상점, 식당 등 모든 영업장이 문을 닫았다. 도시 외곽으로 나가는 교통도 제한됐다. 공황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자동차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도로가 막히면 구조 활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인은 가지안텝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는 안과의사로, 도시 외곽에 있는 타운하우스 단지에 살았다. 단지 내 주민들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래도 주민들은 안전상의 이유로 단지 내 대피소에 머무르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고급 단지였고, 자체 발전소도 있어 일부 전기를 공급받을 수도 있었다. 물과 음식은 자원봉사자들이 가져다 줘서 문제가 없었지만, 기온이 평년보다 5도 이상 낮아 영하 7~8도의 강추위를 담요만으로 버티는 일이 어렵다고 했다.

 

하얀 헬멧을 쓴 구조대원들이 8일 시리아 잔다리스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어린 소녀를 구출하고 있다.  2023.2.8 로이터연합뉴스 

지진 발생 사흘째 에게해 변 이즈미르에 사는 또 다른 지인과 통화했다. 지인은 인근 더트욜(Dortyol, 가지안텝과 하타이 사이의 소도시)에 사는 장모와 처제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수백㎞를 운전 중이었다. 교통통제가 일부 완화되자 튀르키예 각지에서는 친지, 일가족들을 구하려고 피해 지역으로 향하는 자동차 행렬이 도로를 메웠다. 참사 현장으로 향하는 자동차와 화물비행기는 구호품들을 내려놓고 돌아오는 길에 이재민들을 실어 나른다고 지인이 전했다. 터키의 동남부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수백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했던 지역이었다. 이제는 이곳의 시민들이 이재민이 되어 도시 외곽의 대피소, 시골 휴양지, 친척집, 다른 도시의 수용시설 등으로 대피한다. 집이 무너지지 않았다고 해도 여진의 공포를 피해 가급적이면 멀리 떠난다. 현재는 아무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업계 탐욕이 키운 '인재(人災)의 겹참사'

이번 참사의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배경에 자연의 불가항력만 있는 건 아니었다. 토론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토목 경제와 건설업계의 폐해를 지목한다. 수천 채의 아파트를 지진대, 해발 고도, 농지 등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는 가느다란 기둥으로 고층 건물을 떠받쳤다. 주차장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주상복합건물도 마찬가지다. 상가의 크기를 늘리기 위해 기둥의 면적을 대폭 감소시킨 경우가 허다했다. 시청자들의 눈앞에서 맥없이 주저앉은 아파트는 불과 1년 전에 지어진 신축 건물이었다. 최고급 재료를 사용했고, 내진설계가 되어 있다는 이유로 인근 아파트보다 가격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 지진으로 건물의 실체가 드러났다.

건설업자들은 사후 보상도, 책임도 지지 않는다. 튀르키예 여당의 명칭은 ‘정의와 개발’ 당으로 건설업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통치하는 10여 년 이상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설계, 시공 등 전문가들이 부족한 상태에서 대규모로 추진한 신도시 건설 등은 부실공사를 부추겼다. 불량 건축물을 가려내는 감사의 부실이 이번 참사의 큰 원인이라고 튀르키예 대표적 지성인 일베르 올타이는 지적했다. 튀르키예에는 거의 매해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나 막대한 인명과 재산 손실이 빚어진다. 재난 현장을 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죽음은 지진이 아니라, 건물이 가져온다”라고. 지질학자들은 이스탄불과 에게해가 다음 차례라고 경고한다. 튀르키예는 달라질 수 있을까.

 

독일에서 급파된 ISAR 구조대원들이 튀르키예 키리한에서 구조작업을 벌이던 중 몸을 녹이고 있다. 2023.2.10 로이터연합뉴스 

일상의 복귀가 언제나 가능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생지옥을 지켜본 튀르키예 국민의 트라우마가 쉽게 치유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눈앞에서 세월호가 가라앉고, 세계의 핫플인 서울 한복판에서 젊은이들이 압사당하는 광경을 지켜본 한국인들에게는 특히 먼 나라 일로만 여겨지지 않을 듯하다. 지난 8일 긴급구호대를 파견한 대한민국은 서둘러 구조대원들과 구호물자를 보낸 나라에 속한다. 전 세계에서 구조의 물결이 튀르키예로 흘러들고 있다. 튀르키에의 언론인 아르단 젠투르크(Ardan Zenturk)는 개인 유튜브 채널에서 이번 지진을 통해 드러난 국제 정세의 특이점을 지적했다.

적대국들도 지원 나서, 인류애 차원 도움 절실

그리스는 튀르키예와 전통적인 적대국으로 최근 몇 년간 해양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튀르키예 경제 제재에 그리스가 동참해 양국 관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그러나 양국은 ‘지진 외교’라는 독특한 전통을 갖고 있기도 하다. 1999년 8월 터키의 마르마라해에서 강진(진도 7.6)으로 1만 7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그리스는 선뜻 터키에 손을 내밀었다. 우연히 한 달 뒤 그리스 아테네에서 5.9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터키가 도와줄 차례였다. 양국 사이의 긴장은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오히려 풀리는 양상을 보였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주목할 만하다. 2010년 이스라엘 군대가 팔레스타인을 원조하러 온 전세계 시민운동가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튀르키예 시민운동가 9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양국은 외교를 단절했고, 2022년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냉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스라엘은 지진 피해지역에 의료인력들을 지원했다.

 

 튀르키예 남부 안타키야의 주민들이 8일 자원봉사 구호대원들이 나눠주는 구호품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고 있다. 혹한기에 지진이 발생한 탓에 방한용품과 식량 지원이 절실한 형편이다. 2023.2.8 AP연합뉴스

이보다 더욱 놀라운 변화는 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일어났다. 양국은 외교가 아니라 미사일을 주고받는 숙적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러시아 국방부 장관의 권고를 받아들여 반군이 장악한 시리아 북부 지역에 의료지원팀을 보냈고, 시리아 적십자사는 도움의 손길을 수용했다. 전쟁의 화염 속에 처해 있는 우크라이나도, 러시아도 참사를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두 나라 모두 구호팀을 보냈다.

국가 간 외교 관계는 비정할 수 있다. 그러나 재난을 당한 나라에 보내는 원조의 손길은 국가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을 어루만진다. 이웃 나라의 불행을 외면하지 않는 세계 각국, 세계 시민들의 실질적인 도움은 공황 상태에 빠진 튀르키예 국민이 다시금 일어서는 데 큰 힘이 되어줄 것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이혜승 통신원은

튀르키예 에게해에 접한 도시 아이발륵에 거주하며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2005년 출판한 <두번째 터키>의 저자이다. Instagram/hesungli

 

<튀르키예 구호물품·구호금 전달 어떻게>

'튀르키예를 위한 기도'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은 아래 물품의 긴급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겨울의류(성인, 어린이용) : 코트·재킷, 우비, 부츠, 점퍼, 바지, 장갑, 스카프, 모자, 양말, 속옷 *취침용품 : 텐트, 매트리스(텐트용), 담요, 침낭, 보온병, 손전등, 식품 박스(통조림 등)  *기타 : 유아식, 기저귀, 세척 및 위생물품, 아동용 식품, 생리대, 위생 티슈 등

☞ 한국무역협회 구호물품 지원 안내 


☞ 대한적십자사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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