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생명력으로 견뎌주는 '민들레' 고맙습니다
시민언론 민들레 창간 3주년의 소회
불편한 세력 있겠지만 상대 못 된다
홀씨의 역동성으로 온세상에 퍼지길
미국에서도 봄의 전령은 개나리입니다. 주로 담장에 기대 피어납니다. 노란 개나리가 보이면 이제 겨울의 찬 공기는 내년에나 다시 오겠구나 하고 옷걸이, 장롱, 서랍 정리에 나섭니다. 창문을 열고 기지개도 켭니다.
같은 시기 봄의 또 다른 꽃이 봄을 알려줍니다. 개나리처럼 노랗습니다. 그런데 개나리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불러옵니다. 벌써 주택 관련 백화점 ‘홈디포 (Home Depot)’에 다녀올 때가 돌아왔구나 하고 짜증스럽게 이 꽃을 바라봅니다. 바로 민들레입니다.
미국 집들에는 크기와 관계없이 크고 작은 풀밭이 집에 딸려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도 같습니다. 풀밭은 어디든 있습니다. 풀밭의 꽃들은 필 때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조금씩 새잎이 나오고 꽃망울이 맺히면 서서히 봄이 오는 여정을 느끼면서 이 계절의 변화를 같이 따라갑니다. 개나리, 또 그 외 꽃들은 화병에 꽂혀 춘심(春心)을 이끌어 갑니다.
민들레는 아닙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꽃대가 땅에서 솟아나 있습니다. 개나리처럼 한 곳에 모여 피지 않습니다. 민들레는 풀밭 전체에 퍼져있습니다. 민들레의 꽃대는 가늘고 연합니다.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이 약해 보이는 꽃대가 둥글고 속이 알찬 노란 꽃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이제 전쟁이 시작됩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꽃이 불꽃놀이 때 볼 수 있는 원형의 불꽃과 같은 씨앗 뭉치로 변합니다. 조금 있으면 하얀 실 같은 갓털(pappus)이 솜털에 의지해 하늘을 나릅니다.
이 변화를 러시아 출신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Vladimir Nabokov)는 민들레가 처음에는 태양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달로 변한다고 했습니다. ("Most of the dandelions had changed from suns into moons.") 노란 꽃(태양)이 하얀 홀씨(달)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이런 전파, 재생력으로 처음에는 초록 잔디에 비해 마이너리티(Minority) 였던 민들레는 때로 집 주변을 온통 뒤덮는 머조리티(Majority)가 되기도 합니다.
민들레를 약으로 없애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생명력이 강하니 약도 주기적으로 많이 쳐야 하지만, 민들레는 사람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피는 꽃이 아닙니다. 집 앞과 뒤뜰, 아파트 잔디밭에 있으니, 화학적으로 공격하다간 오히려 내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들레 제거를 위해 제작된 제초제를 쓰지 않고 민들레를 없애는 제안과 조언들이 인터넷에 가득합니다. 그중에는 뿌리에 식초를 뿌리는 방식도 있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뿌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식초를 뿌린다? 스마트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민들레를 발로 짓밟으면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민들레는 뿌리가 깊어 신발 코나 뒷굽은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민들레를 손으로 뽑아 차를 만들어 마시거나, 샐러드로 먹으면 좋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민들레 초콜릿(Dandelion Chocolate)'이란 회사도 있기는 합니다. 모두 텔레비전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비현실적 대안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결국 민들레의 생명력, 종족 보전, 또 전파 능력을 당할 장사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민들레는 봄의 전령보다는 전투원같이 느껴지는 도전이기도 합니다.
해결책이 있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이 알려줍니다. 아이들은 노란 민들레꽃을 좋아합니다. 다른 꽃은 가지에서 떼어내야 갖고 놀 수 있습니다. 팔을 내밀어 꽃을 가지에서 '똑'하고 꺾거나 '쭈욱' 찢어내야 손에 들어옵니다.
민들레는 다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풀밭에서 뒹굴면서 쉽게 민들레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흰 민들레 씨에 후하고 바람을 불어 널리 날아가는 것을 보면 자연의 신비함과 해방감도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꽃이 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아이들처럼 민들레의 친밀함, 아름다움, 역동성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면 봄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아직은 이상일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살다 보니 민들레가 피어난 풀밭을 보며 주변에서 불편해하기도 합니다. 약 좀 치라며 인상을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는 압니다. 민들레는 없앨 수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민들레가 찬 공기, 찬 바람을 이기고 봄을 전하는 당차고 반가운 소식임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지난 3년 굳게 생명력을 지켜온 '시민언론 민들레'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