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무너뜨린 스님의 소신공양
베트남 꾸옥뚜 사원 다바오 탑과 틱꽝득 스님
민중의 자유 향한 투쟁에 도화선, 통일 앞당겨
1963년 6월 11일 오전 10시, 사이공 중심가 도로 한복판. 66세의 틱꽝득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젊은 승려가 휘발유를 쏟아붓자, 스님은 손수 성냥을 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화염이 온몸을 뒤덮었지만, 스님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합장한 채 육신을 불태웠다.
뉴욕타임스 특파원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이렇게 증언했다. "불꽃이 솟구치더니 몸이 서서히 오그라들면서 머리는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극도로 혼란스러워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AP통신 사진기자 말콤 브라운이 촬영한 이 충격적인 장면은 전 세계로 타전되어 서구 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이 사진으로 그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응오딩지엠 대통령은 국민의 90%가 불교도인 베트남에서 불교를 압살하려 했다. 1963년 5월 부처님오신날 경축 행사를 금지시킨 것이 발단이 되어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군의 발포로 승려와 시민이 사망했다. 꽝득 스님의 열반 후 36명의 승려가 소신공양을 뒤따르는 등 극한 투쟁이 전개됐다. 그해 말 미국의 묵인 아래 쿠데타가 발생해 지엠 정권은 무너졌고, 지엠도 암살됐다.
틱꽝득의 소신공양은 남베트남 사회의 공분과 응오딘지엠 정권의 종식을 불러와 베트남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한 승려의 숭고한 희생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베트남 민중의 자유를 향한 투쟁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는 결국 베트남 통일을 앞당기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틱꽝득 스님의 유해는 화장되었으나, 놀랍게도 심장만은 손상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남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심장 사리는 현재 호찌민시의 베트남 꾸옥뚜 사원 다바오 탑에 봉안되어, 불의에 맞선 한 승려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게 한다. 틱낫한 스님의 말처럼,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은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려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었다."
* 풍자 만화가이자 교육자인 고경일 교수(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가 동아시아 각국을 직접 발로 누비며 그 땅의 풍경과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그리고 쓴 그림과 글로 담아내는 <동아시아 기억여행>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