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 무너뜨린 스님의 소신공양

베트남 꾸옥뚜 사원 다바오 탑과 틱꽝득 스님

민중의 자유 향한 투쟁에 도화선, 통일 앞당겨

2025-11-11     고경일 동아시아 기억여행

1963년 6월 11일 오전 10시, 사이공 중심가 도로 한복판. 66세의 틱꽝득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젊은 승려가 휘발유를 쏟아붓자, 스님은 손수 성냥을 켜 스스로 몸에 불을 붙였다. 순식간에 화염이 온몸을 뒤덮었지만, 스님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합장한 채 육신을 불태웠다.

뉴욕타임스 특파원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이렇게 증언했다. "불꽃이 솟구치더니 몸이 서서히 오그라들면서 머리는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너무나 충격을 받은 나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극도로 혼란스러워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AP통신 사진기자 말콤 브라운이 촬영한 이 충격적인 장면은 전 세계로 타전되어 서구 사회에 경종을 울렸고, 이 사진으로 그는 퓰리처상을 받았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응오딩지엠 대통령은 국민의 90%가 불교도인 베트남에서 불교를 압살하려 했다. 1963년 5월 부처님오신날 경축 행사를 금지시킨 것이 발단이 되어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군의 발포로 승려와 시민이 사망했다. 꽝득 스님의 열반 후 36명의 승려가 소신공양을 뒤따르는 등 극한 투쟁이 전개됐다. 그해 말 미국의 묵인 아래 쿠데타가 발생해 지엠 정권은 무너졌고, 지엠도 암살됐다.

틱꽝득의 소신공양은 남베트남 사회의 공분과 응오딘지엠 정권의 종식을 불러와 베트남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한 승려의 숭고한 희생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고, 베트남 민중의 자유를 향한 투쟁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는 결국 베트남 통일을 앞당기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

틱꽝득 스님의 유해는 화장되었으나, 놀랍게도 심장만은 손상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남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심장 사리는 현재 호찌민시의 베트남 꾸옥뚜 사원 다바오 탑에 봉안되어, 불의에 맞선 한 승려의 숭고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게 한다. 틱낫한 스님의 말처럼, "틱꽝득 스님의 소신공양은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려는 데 가장 큰 목적이 있었다."

* 풍자 만화가이자 교육자인 고경일 교수(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가 동아시아 각국을 직접 발로 누비며 그 땅의 풍경과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그리고 쓴 그림과 글로 담아내는 <동아시아 기억여행>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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