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콧 국힘 "범죄자" "꺼져라"…이 대통령은 정중히 목례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재명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보이콧하며 침묵 시위를 벌였다. 이 대통령이 국회에 도착하자, 이들은 "범죄자 왔다, 범죄자"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대통령은 국민의힘의 힐난에도 정중하게 목례한 뒤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지난해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명태균 게이트가 터진 상황에서 국회 시정연설에 무단으로 불참했던 것과 비교되는 장면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4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6년도 예산안 관련 국회 시정연설을 하러 국회에 도착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대통령이 도착하기 전인 오전 9시 30분부터 검은 마스크, 넥타이에 어두운 정장 차림으로 국회 본청 로텐더홀 앞에서 기다렸다. 손에는 '명비어천가 야당파괴' '야당탄압 불법특검'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이 대통령 접견을 위해 로텐더홀 입구로 오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장이 뭐하는 거냐" "우원식 정신차려라"라고 소리쳤다. 이어 이 대통령이 로텐더홀로 들어서자, 국민의힘 의원 일부는 이 대통령을 향해 "꺼져라" "범죄자"라고 외쳤다.

이 대통령이 정중하게 목례를 한 뒤 다가가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악수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라고 고성을 질렀다. 이 대통령이 지나간 뒤에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재명식 정치탄압 폭주정권 규탄한다" "민주당식 정치보복 국민들은 분노한다"고 구호를 외쳤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바로 의원총회를 열어 시정연설 보이콧을 결정했다. 내란특검팀이 전날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게 보이콧의 배경이 됐다.

우 의장은 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앞서 "국민의 삶을 1년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당연히 보고할 의무가 있는 대통령이 오지 않는 것을 유감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국민의힘 출신인 윤석열이 지난해 11월 4일 정부 예산안을 다루는 국회 시정연설에 무단으로 불참한 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당시 정치권에선 윤석열이 명태균 게이트로 제기된 공천 개입 의혹을 회피하기 위해 불참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우 의장은 이어 "오늘 새로운 정부 첫 시정연설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은 점에 대해 참으로 유감스럽다"며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시정연설은 내년도 국민들의 삶을 우리 국가가 어떻게 책임질지에 대해서 머리를 맞대는 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듭 "(국민의힘과) 함께 듣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럽다"며 "참석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시정 연설 시작하기 전 텅 빈 국민의힘쪽 좌석을 보며 "좀  허전하네요"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시정 연설을 마무리하면서도 "비록 여야 간 입장의 차이는 존재하고 이렇게 안타까운 현실도 드러나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진심은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예산안이 법정기한 내에 통과되어 대한민국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초당적인 협력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내란 특검의 추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에 반발에 보이콧한 데 대해서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은 입만 열면 민생을 얘기하지만, 정작 민생을 위한 예산을 설명하는 자리에 모습을 감췄다"며 "국회를 정쟁의 장으로만 이용하는 이중적 행태에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문대림 대변인은 논평에서 "국민의힘이 내란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악랄한 정치 보복'이라 규정하며 대통령 시정연설마저 보이콧한 것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파렴치한 행태"라고 했다.

문 대변인은 "국가의 헌정질서가 무너질 뻔한 중대 사태에서 (계엄 당시) 집권당 지도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진지한 해명 없이 '야당 탄압'이라는 공격적 프레임만 되풀이하는 것은 도덕적 불감증의 극치"라고 했다.

그는 이어 "시정연설 보이콧은 국회의원으로서의 책무를 스스로 포기하는 직무 유기"라며 "작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거부하고, 올해는 국민의힘이 시정연설을 보이콧한 기막힌 '릴레이 보이콧'이야말로 정치쇼"라고 말했다.

한편 야당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보이콧한 것은 두 번째다. 윤석열 정권 첫 해인 2022년 10월 25일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국회 시정 연설에서 역대 처음으로 불참을 선언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로텐더홀에 모여 '국회무시 사과하라' 등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당시 민주당은 ▲윤석열이 미국 해외 순방 중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나"고 발언한 것 ▲윤석열이 국민의힘 당협위원장들과 오찬 자리에서 야당을 향해 종북 주사파 발언을 한 것 등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협치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며 시정연설을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