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대통령궁, 베트남의 비극과 승리의 증언
인민의 자유와 독립 의지 생생히 보여주는 총탄 흔적
풍자 만화가이자 교육자인 고경일 교수(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학부)가 동아시아 각국을 직접 발로 누비며 그 땅의 풍경과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그리고 쓴 그림과 글로 담아내는 <동아시아 기억여행>을 연재합니다. '작가의 말'과 함께 베트남 기행으로부터 이 연재를 시작합니다.
"우리와 가까운 듯 먼 이웃 나라들의 역사적 상흔과 현재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동아시아 시민들 간의 진정한 이해와 연대를 모색하고자 합니다.
단순한 여행 에세이를 넘어 시민의 눈으로 본 동아시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기억의 아카이브를 만들고자 합니다. 한 장 한 장의 그림과 한 줄 한 줄의 글이 모여, 평화와 연대의 다리를 놓으려 합니다.
첫 기행지는 베트남으로, 20세기 베트남의 근현대사를 통해 식민지배, 전쟁, 학살, 그리고 재건의 과정을 관통한 인류사의 축소판을 담아내려 합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의 저항, 일본군 점령기, 20여 년에 걸친 미국과의 전쟁은 수많은 민중들의 삶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습니다. 특히 올해는 베트남 전쟁 종전 50주년의 해로, 베트남의 근현대사의 영욕의 현장을 살펴보는 것이 더욱 의미가 깊다 할 것입니다.
고통의 역사 속에서도 베트남 사람들은 끈질긴 생명력과 공동체의 연대로 회복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베트남 기행은 ‘베트남 민중의 아픔과 영광을 예술과 기록으로 복원’함으로써 그 땅의 역사적 현장을 되살리고 ‘아시아 근현대사의 공유된 상처와 화해의 기억’을 함께 사유하고자 합니다."
호치민시의 심장에 서 있는 대통령궁은 단지 하나의 건물이 아니다. 그것은 베트남의 비극과 승리가 벽돌로 새겨진 역사의 증언이다.
1906년, 이 궁은 프랑스 인도차이나 식민지 총독의 거처로 완성되었다. 아름다운 건축물로 칠해진 이곳은 사실 억압의 상징이었다. 베트남의 자주권을 빼앗은 프랑스 통치자들이 호화로운 방에 앉아 이 땅의 자원을 수탈하고 인민을 착취했다. 일본의 점령, 그 이후 미국이라는 새로운 제국주의의 그림자 아래, 이 건물은 여전히 식민지 권력의 소굴이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 중, 남베트남 대통령들은 이 궁에서 미국의 입김을 받으며 자국민을 향해 폭탄을 쏟아내는 명령을 내렸다. 대통령궁의 방 하나하나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결정짓는 장소였다. 베트남은 형제끼리 죽고 죽이는 지옥으로 변했다.
그러던 1975년 4월 30일, 역사가 뒤집혔다. 북베트남 해방군의 탱크가 대통령궁의 철문을 부수고 들어섰다. 그 탱크는 백 년 식민지배와 20년 내전의 사슬을 끊는 소리였다. 사이공이 함락되는 순간, 남베트남 마지막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도망쳤다. 그들이 버린 궁전에는 이제 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깃발이 펄럭였다.
오늘날 대통령궁의 벽에는 여전히 총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창문들이 깨진 자국, 파편으로 팬 자국들. 각각의 흉터가 몇십만 명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건물 안팎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상,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베트남 인민의 의지가 그 자국들에 새겨져 있다.
이제 호치민시민들은 이 궁을 자유의 박물관으로 찾는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가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를 본다. 그리고 깨닫는다-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었고, 독립은 무수한 생명의 대가였다는 것을.
호치민 대통령궁은 더 이상 권력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고통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정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