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안보전략 구도 바꿀 한국 핵 잠수함 보유
트럼프 "한국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일본 "안보전략의 전제가 일변할 가능성"
한국 핵잠 보유, 일본처럼 잠재적 핵 보유국으로
북핵 위협 상쇄시킬 또다른 ‘게임 체인저’ 핵잠
피트 헤그세스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훌륭한 일"
미국의 동아시아전략 수정?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경주 정상회담 기간에 나온 발언 또는 안건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끌었던 것 중의 하나는 한국의 ‘핵 추진 잠수함’ 얘기였다.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 한국 핵 추진 잠수함(핵잠) 건조계획 및 핵연료 공급 요청과,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SNS에 올린 “한국이(…) 핵 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는 예상치 못한 응답은 국내외적으로 큰 놀라움을 안겼다.
“일본 안보전략의 전제가 일변할 가능성”
30일 일본 <아사히신문>은 ‘한국의 원잠계획, 동아시아 안보역학 일변, 일본의 보유론에도 영향’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이나 러시아, 북한의 반발은 피할 수 없다. 동아시아에서 ‘원잠 보유 도미노’가 퍼지면 중국 러시아 북한도 대항 전력 증강에 나설 것은 필지의 사실. 일본 안보전략의 전제가 일변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외교부 궈자쿤 대변인은 이날 “관련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지 말도록 요구하면서 ”“한국과 미국이 핵확산금지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원잠 보유, 일본처럼 잠재적 핵 보유국으로?
만일 한국이 핵 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아사히>의 지적대로 일본의 안보전략 전제, 곧 동아시아 전체 안보지형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에 요청한 것이 핵잠 원료공급이라며 핵잠이 핵무기로 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했지만, 예컨대 탄두 중량이 9톤이나 나간다는 ‘재래식 무기’인 현무5나 그 개선 버전인 현무6을 수중에서 발사할 수 있는 수직발사장치(VLS. vertical launching system)를 갖춘 핵잠이라도 동아시아 안보지형을 흔들 수 있다. 만일 북한이 2021년 1월 제8차 조선노동당대회에서 제시한 국방력발전 5개년 계획(2021~2025)에 따라 개발하겠다고 한 신형 전략핵잠수함(SSBN.Submersible Ship, Ballistic missile, Nuclear powered )과 동급의 핵잠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핵무장 핵잠은 한미 원자력협정 등에 따라 지금은 개발 자체가 금지돼 있지만, 20% 이하 저농축 우라늄235 원료를 실은 핵잠의 개발과 핵연료 재처리가 허용된다면, 여러 선결과제들이 널려 있으나 핵무장 핵잠을 향한 길은 열려 있게 된다. 한국은 핵잠에 탑재될 소형 원자로 제조 및 운용기술을 이미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핵연료 공급이 허용될 경우 핵농축과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인정받은 일본과 같은 ‘잠재적 핵 보유국’으로 나아가기 쉬워진다.
또다른 ‘게임 체인저’ 핵 추진 잠수함
핵잠이 다른 디젤 추진 잠수함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연료교체와 산소공급을 위해 자주 해수면 위로 부상할 필요 없이 몇 개월씩 수중에서 작전을 펼칠 수 있고, 그 속도와 출력이 훨씬 더 빠르고 강력하다는 점이다. 디젤 잠수함은 수중 속도가 20노트(시속 약 37km)인 데 비해 핵잠은 30노트(약 55km)로 월등히 빠르고, 소음도 훨씬 더 적다. 무엇보다 전기 추진력 충전을 위해 디젤엔진을 가동하고 공기를 바꾸기 위해 수시로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디젤 잠수함과 달리 몇 개월이고 물속에서만 연속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엄청난 강점을 지니고 있다. 핵무기로 전용할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을 원료로 쓰는 미국 보유 핵잠들은 약 30년의 가동기간 중에 단 한 차례도 연료교체를 하지 않는다. 미국이 한국의 핵잠 보유를 반대해 온 것 중의 하나는 핵잠을 보유하게 될 경우 한국이 결국 고농축 우라늄을 손에 넣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북핵 위협 상쇄시킬 한국 핵잠 보유
만일 한국이 핵탄두를 탑재한 SSBN이나 현무급의 파괴력을 지닌 VLS 핵잠을 보유할 경우 북한의 핵 위협은 그 효력을 상당부분 또는 완전히 상실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한 북의 핵 선제공격이나 선제공격 위협은 한국이 핵잠을 보유하기 전과 후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달리 말하면 북한은 한국에 대해 핵무기를 사실상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용할 경우 동해나 서해 또는 남해 어딘가에서 핵탄두 장착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SLBM)이나 현무 미사일을 탑재한 한국 핵잠들이 북의 표적들을 향해 날리게 될 그 이상의 보복 공격을 각오해야 한다. 물속에서 몇 개월씩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돌아디니는 핵잠들의 위치를 파악해 사전에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럴 경우 북의 핵 위협은 상쇄된다.
이런 핵잠의 억지력은 북한뿐만 아니라 중국 등 주변 모든 나라들에 대해서도 작동한다. 보이지 않는 바다 밑 그 어느 지점에서 날아들지 모를 그 보복공격 가능성 때문에 어느 나라도 핵잠을 보유한 한국을 공격하기 어려워진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수정?
한국은 수십 년 전부터 이런 핵잠 보유를 추진해 왔지만, 미국이 그것을 가로막았다. 미국은 한국이 핵잠을 보유할 경우 한반도의 군사균형이 불안정해진다는 등의 이유로 재래식 잠수함 개발조차 막았다. 한국이 지금 보유 중인 디젤 잠수함들은 그 원천기술을 독일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다.
미국이 한국의 핵잠 보유를 인정할 경우 한국의 미국 핵능력(핵 억지력)에 대한 의존도는 크게 떨어질 것이다. 그럴 경우 주한미군의 존재이유도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그것은 동아시아 주둔 미군의 전면적인 철수 압력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한국의 핵잠 보유와 핵연료 재처리를 허용한다면 그것은 미국이 그런 기존 방침 내지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다. 트럼프 정권이 이런 전략 수정에 나선 데에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과시하려는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계산도 있었겠지만, 한국의 대규모 대미 투자, 특히 한국 조선능력을 미국의 해군력 재건과 제조업 부활을 위해 일종의 교환조건으로 끌어들이려는 계산, 한국 해군력 증강을 중국 억제에 활용하려는 계산 등이 작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상대적 쇠퇴기에 접어든 미국 자신의 힘의 한계에 대한 자각도.
미국에겐 한국의 돈과 반도체, 배터리,조선 등의 분야 고도기술과 제조능력 그리고 패권 경쟁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국의 군사안보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힘이 커진 한국을 과거와 같은 강압이 아니라 주고 받기식 거래(딜)로 대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피트 헤그세스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훌륭한 일”
트럼프의 ‘딜’이 대체로 그렇듯이 한국의 핵잠 보유에 대한 그의 ‘승인’도 어느 정도로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남기고 있다. 그는 한국의 핵잠 보유를 승인했다고 한 뒤 곧 한국 핵잠 건조는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 조선소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를 전제조건처럼 붙이는 글을 또 올렸다. 한국 핵잠이 사용할 핵연료를 공급해 달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핵잠 건조는 한국에서 할 테니 핵연료만 공급해 달라는 얘기였고, 거기에 맞춰 핵 재처리와 원자력의 군사이용을 금지하는 한미 원자력협정을 개정하자는 것이었는데, 트럼프는 ‘승인’ 뒤 미국 내 건조를 조건처럼 덧붙여 그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필리 조선소가 한국 한화그룹이 인수한 조선소이긴 하지만, 그곳에서의 핵잠 건조를 조건처럼 언급함으로써 제조업 부활과 일자리 증가를 바라는 미국 유권자들을 달래고, 특급 군사기술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가라앉힐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후속 협상을 지켜봐야겠지만, 한국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회수’ 추진을 두고 “훌륭한 일”이라며 “한국은 전투에서 믿음직한 파트너의 아주 훌륭한 사례”라고 한 피트 헤그세스 전쟁부(국방부) 장관의 얘기도 트럼프의 핵잠 보유 허용 발언과 함께 트럼프 정권의 이런 행보가 단지 미국 안보부담 축소 및 동맹국 안보분담 증대를 겨냥한 것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헤그세스 발언의 진의는 그가 방한하는 오는 3~4일에 확인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의 최근 잇따른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됐듯이 트럼프 정권은 북한을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의 인식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경주 APEC에서의 북한 비핵화 논의에 대해 “개꿈” 버리라고 한 북한이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게 될 경우 온통 핵 보유국에 둘러싸인 한국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게다가 트럼프 2기 정권 이후 기존 동맹국 전략을 해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핵무장을 지지하든 반대하든 한국은 다른 선택지도 없이 핵잠 보유 또는 핵무장 쪽으로 내쫓기다시피 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 핵잠 보유는 일본 핵잠 보유로 이어질 것
그런 의미에서도 트럼프 정권은 한국의 핵잠 보유와 전시작전통제권 회수를 반대할 아무런 명분도 실리도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한국이 핵잠을 갖게 되면 당연히 일본도 핵잠을 가지려 할 것이다. 일본은 경주 APEC 전인 지난 9월 방위성 산하 ‘방위력의 발본적인 강화에 관한 유식자(有識者)회의’가 핵잠 도입을 염두에 둔 “차세대 동력” 활용 검토 보고서를 냈고, 다카이치의 자민당과 일본유신회의 연립정권 구성을 위한 합의서에서도 핵잠 보유 추진을 위한 ‘차세대 동력’ 활용을 명기했다. 트럼프의 한국 핵잠 보유 ‘승인’은 아직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구석이 있지만, 일본의 핵잠 보유 기세를 일거에 끌어올릴 것이다.
한국 핵잠 보유의 역설
한국과 일본의 핵잠 보유 및 잠재적 핵무장 가능성과 관련해 몇 가지 역설을 떠올릴 수 있다.
하나는 앞서 지적했듯이 북한의 핵 보유 인정이 북한의 핵 위협 내지 핵 억지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완강한 핵 보유 집착은 한국을 핵잠 보유나 핵무장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 그렇게 될 경우 그야말로 진정한 ‘자주국방’이 완수되는 순간이다. 결국 북한의 핵 보유는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 오히려 북한의 핵 억지력을 무화 내지는 상쇄하게 될 역설적 상황이 도래할 수 있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남북한은 어쩌면 그런 바탕 위에서야 비로소 상생을 위한 제대로 된 협상을 벌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한 가지는 북의 핵 보유 인정이 한국과 일본의 핵잠 보유 또는 잠재적 핵무장으로 연결될 경우 주한, 주일 미군 주둔 이유에서 북한의 위협이라는 요소는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주한, 주일 미군이 철수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길은 중국과의 생존을 건 패권전쟁을 벌이면서 한국과 일본을 거기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과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해 온 트럼프의 행보를 볼 때 미국은 북한마저 거기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미국편을 들어 이웃 중국과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싸우는 것보다 손을 잡는 것이 훨씬 더 이로운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