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돈 돈 하지만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양심
시민의 소소한 몸짓으로 세상을 바꾸자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 과학과 예술의 영역마저도 자본의 지배 논리 아래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의 모든 가치가 돈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듯하다. 진심보다 이익이, 양심보다 효율이 우선되는 사회. 이 냉정한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인간이 본래 품어야 할 고결한 품성과 정신이 값싼 상품처럼 취급되며 무시되는 사회에 대한 절망감을 느낀다.
매일매일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뉴스 속에서 우리는 돈이 만들어 낸 위력과 그것이 생산해내는 어두운 그늘을 목격한다. 정치인은 후원금의 크기로 영향력을 얻고, 기업은 광고비라는 무기로 언론의 방향과 시민의 시선을 뒤흔든다. 예술은 시장의 취향에 맞춰 길들고, 학문은 자본의 지원 없이는 꼼짝달싹 못하며 존재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다. 이렇게 돈이 사회의 모든 층위를 관통할 때, 인간의 존엄과 양심은 그 거대한 물살에 힘없이 뒤로 물러서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19세기 독일 출신의 경제학자 겸 사회학자인 카를 마르크스(Karl Marx)는 1844년에 쓴 경제학-철학 초고에서 "돈은 인간 능력의 밖으로 드러난 형태"라고 했다. 인간이 지닌 고유한 능력과 품성이 돈의 양으로 환산될 때, 인간은 더는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Socrates)도 부와 권력에 대한 집착이 인간의 도덕적 성찰을 무디게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묻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의 길이라 보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사회는 '얼마나 많이 가지는가'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한다. 진실보다 거래가, 양심보다 효율이 더 높은 평가를 대접받는다.
돈의 질서가 지배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인간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정직한 이가 손해를 보고, 정의로운 이가 고립되며, 침묵과 아부가 생존의 수단이 되는 풍경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체념에 익숙해진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라는 말은, 어쩌면 시대의 가장 슬픈 변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안에서도 나는 인간의 양심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고 여전히 믿는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하여 급변하는 세상이라고 해도 세상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은 거대한 제도나 기술 혁명에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정직을 택하는 한 사람,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는 한 사람의 작고 조용한 양심의 실천에서 완성된다. 우리가 잊지 말고 관심을 가져야 할 사실 하나는, 세상을 빠르게 회전시키는 것이 돈이라면,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양심이라는 점이다.
덕(德)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꿈꾸는 일은 결코 허황한 이상이 아니다. 미국의 윤리학자이자 공동체주의 사상가인 로버트 스파이크 브루어(Robert S. Brewer)는 "덕의 회복 없이는 사회의 회복도 없다"고 말했다. 덕이란 단지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실천적 지혜다. 양심이 도덕적 판단의 기준이라면, 덕은 그 판단을 실천하는 힘이다. 정직, 책임, 배려, 절제 같은 덕목이 생활의 기준으로 자리 잡을 때, 사회는 비로소 건강하게 숨을 쉬기 시작한다.
물론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돈이 곧 권력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견제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제도는 언제나 인간의 의식만큼만 작동하는 법이다. 결국 사회를 바꾸는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다.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 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세상은 조금씩 바로 선다고 하겠다.
나는 여전히 믿는다. 인간의 본질은 선하며, 진실은 언젠가 거짓을 이긴다고. 세상이 돈의 노래에 맞춰 춤추고 노래할지라도, 그 속에서 묵묵히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존재가 바로 희망의 등불이다. 돈은 세상을 빠르게 돌아가게 할 수 있지만, 정의롭게 이끌 수는 없다. 진실과 도덕, 그리고 선량한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오래도록 지탱하게 하는 힘이다.
우리는 모두 양심적으로 깨어 있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세상이 부조리할수록 더 맑은 눈으로 바라보고, 작지만 진실한 행동으로 변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일터에서 부당한 지시에 정직하게 거부하는 용기, 소비 행위 하나하나에 담긴 윤리적 의미를 숙고하는 지혜와 같은 일상의 정직과 연대가 거대한 구호나 혁명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긴다.
희망은 거창한 구호 속에 있지 않다. 희망은 바로 지금,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양심을 지키며 만들어가는 소소한 몸짓, 그 삶 속에 깃들어 있다. 건강한 민주시민이 자발적으로 서로를 믿고, 작은 몸짓으로 세상을 바꾸어 간다면, 언젠가 이 땅에도 진실이 존중받고 양심이 빛나는 시대가 다시 올 것이라고 믿는다.
빛을 지켜 - https://youtube.com/shorts/gyE4zbeIs-g?feature=share
소소한 몸짓 - https://youtube.com/shorts/wOjDT14v3LQ?feature=sha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