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에 악담하고 저주 퍼붓는 ‘레거시 미디어’

‘유튜브 권력’ 만든 건 팔할이 그들 자신 아닌가

2025-09-30     송요훈 편집위원
송요훈 편집위원(전 MBC 기자)

1998년의 일이다. MBC ‘카메라 출동’은 학생들의 등록금을 빼돌려 문어발식 확장으로 학교를 늘리고 부정축재를 하는 사학재단 이사장을 고발했었다. 그리고 1년 뒤에 ‘카메라 출동’에 배치된 나는 기사거리를 찾느라 인터넷 검색을 하다 MBC 보도에 대한 보복으로 취재에 협조한 교수들을 재단이 괴롭히고 있다는 걸 다른 매체의 기사를 보고 알게 되었다. 그 매체는 <딴지일보>였다.

사학 비리 보도 계기로 알게 된 <딴지일보>와 인터넷의 위력

나는 재단의 보복에 분노했고, 언론의 보도에도 끄떡없이 학교사업으로 재산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재단 이사장을 두 번인가 세 번에 걸쳐 추가로 고발했다. 그러자 재단의 사주를 받은 게 분명해 보이는 교수와 교수 부인, 심지어 학생회 간부까지 차례로 MBC 게시판에 재단 이사장을 옹호하며 ‘카메라 출동’의 보도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고, 나는 그들을 반박하는 ‘사이버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메일을 열어본 나는 깜짝 놀랐다.

미국에서 유럽에서 남미에서 동남아에서 나를 응원하는 메일이 수백 통이나 쌓여 있었다. 교민이거나 회사에서 파견한 주재원이거나 공부하러 간 유학생들이었다. ‘뉴스데스크’에 보도했을 때는 없던 열띤 응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다 메일을 읽으면서 <딴지일보>의 영향력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딴지일보>가 그 ‘사이버 논쟁’을 중계하다시피 보도했는데, 내게 응원 메일을 보내는 전 세계의 교민들은 <딴지일보> 독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때 인터넷의 위력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었다. 나는 인터넷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인터넷이 기존 매체의 생존을 위협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내겐 그럴 만한 안목이 없었다.

MBC 기자를 ‘딴지세포’라며 스카웃 제안한 배짱

그리고 다시 2년쯤 지나 국방부에 출입하던 시절에 <딴지일보>에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독도는 우리 영토인데 왜 해병대가 아닌 경찰이 지키느냐는 의문을 던진 나의 기사를 보고는 그걸 ‘딴지체 기사’로 써달라는 부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MBC라는 정통 매체의 기자인 내가 듣보잡이고 B급 매체인 <딴지일보>에 글을 쓰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똥꼬 깊쑤키 디벼보자’ 하던 발칙한 딴지체 글쓰기에 호기심이 동하여 MBC 기자라는 걸 숨긴 ‘익명’으로 기고하기로 했었다.

 

딴지일보 총수 시절 김어준 인터뷰, 건치신문 캡쳐

그랬는데, <딴지일보>에 실린 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익명으로 처리하기로 했는데, 칼럼의 끝에는 글쓴이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딴지총수가 국방부에 심어놓은 딴지세포 MBC 기자 송요훈’. 익명으로 하자던 약속을 어기고 정통 매체의 기자인 나를 B급 인터넷 매체의 ‘세포’로 둔갑시켰으니 처음에는 깜짝 놀랐고 이어서 황당했는데, 잠시 머리가 진공상태가 되었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게 없는 거침없는 기발함과 발랄함에 왠지 압도된 느낌이었다.

 

딴지일보 총수 시절의 김어준.

김어준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인연이 끝나는가 싶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연락이 와서 처음으로 대면했는데, 앞으로 세상이 이러저러하게 바뀔 것이고 하던 일을 확장하려 한다면서 대뜸 같이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일종의 스카웃 제의였다. 물론 나는 거절했다. 가난한 집의 장남이라 모험을 할 수 없다고 둘러댔으나 그의 제안이 황당해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MBC라는 안온한 온실에서 뛰쳐나올 용기가 내겐 없었다.

김어준 미워한다고 올드 미디어 세상 다시 오겠나

내가 MBC에서 월급쟁이 기자로 근근이 살아가는 동안 김어준은 인터넷 혁명의 파도를 타고 승승장구했다. 그는 호기심이 많고, 도발적이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었고, IT 혁명으로 인한 세상의 변화를 읽는 직관과 통찰의 안목이 있는 인터넷 세상의 탐험가였다.

기자로 사는 동안에 딴지총수든 <뉴스공장> 공장장이든 김어준을 좋게 평가하는 기자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김어준 미워하지 마라,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다. 우리 식당에 오던 손님이 길 건너에 새로 생긴 식당으로 옮겨 갔다면, 음식 맛이든 친절함이든 우리 식당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니면 우리가 상상도 못 했던 기발함을 팔고 있거나. 그것부터 살펴봐야 해법을 찾을 수 있지 김어준 미워한다고 과거의 화양연화가 다시 찾아오는 게 아니다.

겨우 한 번 대면한 얄팍한 인연 때문에 그를 두둔하는 게 아니다. 김어준 미워하는 기자들의 눈빛에서 이글거리는 질시가 보였고 거친 말투에선 우월주의에 취한 오만함이 보였으며 허공을 휘젓는 손짓에선 버스 떠난 뒤에 손을 흔드는 올드 미디어의 상실감이 보이는 듯하여 그런 말을 했을 뿐이다. 아날로그 시절의 기자였던 나 역시 인터넷 세상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상전벽해, 천지개벽이란 표현으로 부족할 정도로 세상은 급속도로 바뀌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몇 안 되는 신문과 방송이 정보 공급을 독점했었고, 세상이 궁금하면 신문을 보거나 정시 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텔레비전 앞에서 대기해야 했었다. 언론을 통하지 않고는 세상을 알 수 없었고, 정부도 기업도 언론을 통하지 않으면 국민 또는 소비자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없었다. 언론이 권력이 된 건 정보 공급을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겸손은 힘들다’ 화면 캡처.

1인 미디어 시대의 ‘불신 1위’ 매체 <조선일보>

그런데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독점 구조가 깨지고 뒤죽박죽이 되었다. 한강에 몇 개뿐이던 다리가 무한정으로 늘어 강을 덮을 정도가 된 것처럼, 수직적이고 일방적이던 정보 소통은 수평적이고 쌍방향으로 바뀌었다. 컴퓨터를 켜면 온갖 정보가 쓰나미처럼 쏟아지고, 예전에는 기자가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게 전부였으나 지금은 기사에 댓글로 팩트 체크도 하고 시시비비를 따지기도 한다. 기자로 살기가 예전보다 훨씬 힘들어졌다.

예나 지금이나 신문사나 방송사를 세우려면 막대한 자금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그 비용이 진입장벽이 되어 기존 매체들을 보호해 주었으나 인터넷이 있는 지금은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1인 미디어의 사주도 되고 기자가 될 수 있다. 그뿐인가. 인터넷 무림에는 기자 명함만 없을 뿐 기자들을 능가하는 고수들이 즐비하다. 그들이 진짜 전문가이고, ‘1등 신문’을 자처하는 <조선일보>의 기사, 사설, 칼럼도 식탁에 오르기가 무섭게 행간에 숨은 의도까지 들춰내니 예전처럼 원하는 대로 여론몰이를 할 수도 없다. <조선일보>가 신뢰도에서 몇 년째 ‘불신 1위’ 매체로 꼽히는 건 인터넷으로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예전처럼 ‘밤의 대통령’ 행세를 하며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예전에는 하나밖에 없는 큰길에 진입장벽으로 보호되는 큰 식당 몇 곳이 있었고 오가는 손님을 독점했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길이 생기면서 여기저기 작은 식당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고, 그중에 어떤 ‘뉴 미디어’ 식당은 기존의 ‘올드 미디어’ 식당과 차별화한 틈새 전략으로 손님들이 줄 서서 먹는 맛집이 되었다. 손님을 뺏긴 올드 미디어 식당은 배가 아파 악담을 하고 저주를 하고 팬덤이 어쩌고 하며 뉴 미디어 식당 손님들의 수준이 낮다고 비아냥댄다. 그래 봐야 바뀌는 건 없다. 열패감만 깊어질 뿐.

기울어진 운동장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기득권 언론

김어준이 유튜브 권력이란다. 요즘 기성 언론계에 김어준 물고 뜯는 유행병이 도는지 여기저기서 김어준 힐난하는 기사가 보인다. 민주당에선 김어준은 비판해선 안 되는 성역이고, 민주당 의원들은 너도나도 김어준 방송에 나오려 하며, 민주당의 정당 기능이 김어준에게 이전되었다고 민주당과 김어준을 싸잡아 비판한다. 김어준을 일컬어 ‘선출되지 않은 유튜브 권력’이라 하고, ‘유튜브 권력에 조아릴 언론은 없다’고 악담을 한다.

그런 기사들을 볼 때마다 이런 의문이 든다. 조중동이 좌지우지하는 한국의 언론은 팥쥐 어멈이 콩쥐 대하듯이 민주당을 대했다. 그러지 않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민주당과 국힘당을 똑같이 공평하게 대했다면, 그래도 민주당 의원들이 김어준 방송에만 나왔을까? 한국의 언론이 양비론이나 기계적 중립에 함몰되지 않고 기자협회의 윤리강령에도 있듯이 불편부당한 태도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 본연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민주당 의원들이 굳이 김어준 방송을 찾을 필요가 있었을까?

한국의 언론 지형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불린다. 거의 절벽처럼 기울어진 경사면에서의 양비론과 기계적 균형은 기울기를 고착화하는 편향적 보도이지 시시비비를 가리는 공정한 보도가 아니다. 경사면과 평행을 이루는 건 그 자체가 기울어졌다는 의미인 거다. 그럴 때는 무게중심을 옮겨 기울기를 조금이라도 평평하게 해야 한다. 이쪽저쪽을 똑같이 야단치는 양비론은 중립을 가장하여 강자의 편을 드는 편파이고,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50대 50으로 보도하는 기계적 균형은 시시비비를 가릴 능력이 없는 무능을 감추는 핑계일 뿐이다.

이른바 ‘비정통 언론인’이 차지한 신뢰도 1~4위 언론인들

며칠 전에 나온 <시사IN>이 보도한 ‘사회 신뢰도 조사’를 보면, 4위까지 이른바 ‘정통’ 언론인이 없다. 신뢰도 1위는 손석희이고, 2위는 김어준, 3위는 유시민, 4위는 ‘매불쇼’ 진행하는 최욱이다. 네 사람 모두 기자 시험을 거쳐 기자생활을 한 ‘정통’ 언론인이 아니다. 12.3 계엄 당시 김어준의 <뉴스공장> 주변에는 계엄군이 깔리고 수돗물 단수 지시도 있었지만,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와 ‘윤석열 낙하산’이 사장인 KBS는 평온했다. <조선일보>와 KBS의 사장이 정통파 언론인이라면 그걸 수치스러워해야 한다.

김어준은 공영방송인 TBS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오세훈 시장이 그를 내쫓지 않았다면 김어준은 지금도 그 방송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고 지금처럼 ‘유튜브 권력’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매불쇼’의 최욱은 KBS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KBS에 낙하산 사장이 투입되면서 최욱은 곧바로 강제 하차를 당했고 그가 진행하던 시사프로그램은 폐지되었다. 최욱을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4위로 만든 건 윤석열과 윤석열을 추종하는 언론인들이었다.

 

'KBS 2 더 라이브'를 진행하던 시절의 최욱.

김어준이 ‘유튜브 권력’이라 치자. 누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인터넷 시대의 탐험가 김어준인가, 그를 쫓아낸 ‘수구파’ 레거시 미디어인가. 이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공허한 물음이 아니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언론 생태계가 바뀌고 언론 소비자들은 진화하고 있는데도 ‘언론권력’이란 기득권에 취하여 보도가 아닌 선동을 하고 대중심리전으로 선거에 개입하고 마녀사냥을 일삼던 ‘레거시 미디어’가 오늘의 김어준을 만들었다. 그걸 인정하고 언론다운 언론으로 환골탈태하겠다는 각오를 다지지 않는 한, 기성 언론은 퇴화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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