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 이름은 '리재명' 아닌 '이재명'입니다

북 김여정, 이재명을 "리재명"으로 호칭

북, 2002년 군사합의서 때도 '리' 고집

남 "성은 표기 문제 아니다" 설득

정부, 북한에 재발 방지 요구해야

2025-08-21     이유 에디터

2002년 9월 18일. 남과 북은 각자 자기 지역에서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철도 연결사업 착공식을 열었습니다. 분단 이후 반세기 만에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는 작업에 들어간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다시 끊겼지만 말입니다. '자유(흡수) 통일'을 목표로 압박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폈던 윤석열 정권에 질세라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북한 김정은 정권은 작년 10월 15일 개성공단과 금강산 등을 오가게 했던 이들 도로와 철도를 폭파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단 오찬 간담회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2025.8.21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대한민국 21대 대통령 이름은
'리재명' 아닌 '이재명'입니다

23년 전 그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경의선·동해선 도로와 철도 복원은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6·15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본격화했습니다. 그리고 2년여만에 연결 착공식을 하기에 이른 겁니다.

유엔사령부(UNC) '모자'를 쓴 미군의 방해로 지뢰 제거 작업이 막판 차질을 빚기도 했지만, 마침내 그 해말 경의선과 동해선 임시도로들이 완공됐습니다. 이듬해 6월엔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MDL)에서 남북 철도 연결식도 열렸습니다.

경의선·동해선 도로·철도 연결사업 착공식은 그 전날인 2002년 9월 17일 남북 군사 당국이 안전하고 원활한 지뢰 제거와 도로·철도 연결 작업을 보장하기 위해 합의서를 채택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습니다.

'남북관리구역 설정에 관한 합의서'로 불리는 이 문서의 공식 명칭은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설정과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작업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입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7일 이틀 전 있었던 경의선·동해선 남북연결 도로·철도 폭파 소식을 전했다. 통신은"이는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국가로 규제한 공화국헌법의 요구와 적대세력들의 엄중한 정치군사적 도발책동으로 말미암아 예측불능의 전쟁접경에로 치닫고 있는 심각한 안보환경으로부터 출발한 필연적이며 합법적인 조치"라고 밝혔다.2024.10.17 연합뉴스

남북 관리구역 군사보장 합의서
2002년 9월 17일 진통끝에 성사

남북 군사 당국은 9월 14일과 16일, 17일 판문점의 평화의집(남측)과 통일각(북측)을 오가며 제6~8차 군사실무회담을 열었고, 17일 8차 군사실무회담에서 합의서의 공식 채택에 성공했습니다. 당시 남측 수석대표는 김경덕 국방부 준장이었고, 북측 수석대표는 유영철 인민무력부 대좌였습니다.

근데 막판 진통이 있었습니다. 내용들을 남북 협상 대표들이 서로 일일이 따져보고 '내용'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합의서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전혀 의외의 문제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남과 북이 각각 합의서를 만들어 남측은 당시 '이준 국방부 장관', 그리고 북측은 김일철 인민무력부장'이 서명하고 문건을 교환하면 그때부터 효력이 발생합니다.

최종 걸림돌은 이준 국방부 장관의 이름 표기 문제였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이 만든 합의서에 '이준' 장관을 '리준'이라고 표기했고, 우리 측이 만든 합의서에도 '리준'으로 표기하도록 요구했다고 합니다. 단어 첫머리에 'ㄹ'이나 'ㄴ'이 올 때 'ㅇ'으로 표기하는 남한의 두음법칙을 북한이 인정하지 않는 건 양해하지만, 남한 국방장관의 이름 표기까지 바꾸려고 했다는 겁니다.

 

2002년 9월 17일 채택한 남북 관리구역 군사보장 합의서 뒷 부분. [출처 통일부 남북관계 관리단]

북 '이준'을 '리준'으로 표기 고집
남 '성'은 표기 문제 아니다 설득

당시 상황을 아는 전직 정부 당국자에 따르면, 북측 수석대표인 유영철 대좌가 '리준'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우겼지만, 우리 측은 국방부 장관의 '성'을 바꿀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우리 측은 '리준'을 요구하는 건 단순한 표기의 문제가 아니다, '성'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혈통과 가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란 취지로 반박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북측이 고집을 꺾지 않고 이 문제로 대사를 그르칠 우려마저 제기된 가운데, 우리 대표단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서 마지막 관문을 뚫었답니다. 우리 측은 한국에서는 "이영희"라고 쓰는 분들이 대다수이지만, "리영희 선생"도 있다, 본인이 쓰는 '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서 마침내 북측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숨 막히는 하루이틀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유영철 대좌는 자신들이 가져가 당시 김정일 위원장에 보고할 합의서에만은 '리준'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했지만, 결국 우리 측의 설득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과 북이 지금도 보존 중인 두 개의 원본 합의서엔 '이준'으로 표기된 상태랍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4일 당·정부, 무력기관의 지도간부들과 함께 '반제계급교양의 거점'인 신천계급교양관을 돌아봤다고 조선중앙TV가 26일 보도했다. 이날 참관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붉은 원안)이 동행한 모습이 북한TV 화면에 방영됐다. [조선중앙TV 화면] 2025.7.26 연합뉴스

북, 이재명을 "리재명"으로 호칭
대통령실, 북측에 수정 요구해야

23년 지나 이런 숨겨진 일화를 소환한 건 최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대남 담화를 하거나, 그의 발언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할 때 '이재명 대통령'을 "리재명 대통령"으로 "이재명 정부"를 "리재명 정부"로 부르거나 표기하고 있어섭니다.

김여정은 '조·한 관계는 동족이라는 개념의 시간대를 완전히 벗어났다'는 7월 28일 첫 대남 담화에서 "리재명 정부"를 세 번, "리재명"이란 표현을 한 번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19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김여정의 외무성 국장 협의회 발언에선 "리재명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을 위인이 아니다"란 도발적 내용과 함께 "리재명 정권"이란 표현이 3번 나옵니다.

비록 북한이 지금은 한국을 '주적'으로 규정하고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놓였지만, 싸울 때 싸우더라도 한국 대통령 이름을 "이재명"으로 바르게 호칭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남북 화해·협력 흐름이 확산하던 23년 전 '리준' 표기에 북측이 수긍했던 일화도 있습니다. 우리 정부도 이 문제를 간과해선 안 됩니다. 이제라도 북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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