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의 영웅은 강자가 아니라 그에 맞서는 이
김종훈 기자의 「항일로드 2000km」를 읽고
마블의 세계관에서 히어로(hero)는 '강한 자', 즉 '우월한 자'입니다. 그나마 배트맨이 '영웅의 책임'을 말하지만, 그것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같은 엘리트주의의 표현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프랑스어 noblesse oblige, 영어 Nobility Obliges)란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열등한 자들이 우월한 자를 추종하고 숭배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김종훈 기자의 <항일로드 2000km>(필로소픽 펴냄)에서 보이는 우리 역사의 영웅은 미국의 히어로와 다릅니다. 우리의 영웅은 '우월한 자'가 아니라, 우월한 자에 '맞서는 자'입니다. 우리의 영웅은 '강한 자'가 아니라 '힘이 없음에도 불의에 저항하는 자'였습니다. 우리 영웅이 가진 힘의 원천은 '슈퍼 파워'가 아니고 이웃의 상처와 고통에 대한 공감(共感)과 연민(憐愍)이며, 자신의 약함을 알면서도 스스로의 죽음을 각오한 '결연함'이었습니다. 안중근 장군, 윤봉길 의사, 그리고 숱한 우리의 영웅들은 자신의 의거로 인하여 자신이 죽을 것임을 당연히 예견했고, 이를 감내했습니다. 현대 한국의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저항의 역사 뿌리에는 이러한 항일 영웅의 서사가 있었습니다.
체르노빌의 피해를 다룬 노벨문학상 수상작 <체르노빌의 목소리>(1989)의 저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가 2016년 11월에 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 피해지역을 돌아봤습니다. 그리고 도쿄 외국어대학교에서 강연을 하였는데, 그 제목은 <일본 사회에는 저항 문화가 없다>였습니다.
"후쿠시마 지역을 돌아본 뒤 체르노빌 사고 때처럼 일본 정부가 인간의 생명에 대해 전체적인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본 사회에는 사람들이 단결해 저항하는 문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같은 주장과 요구를 몇천 번 계속하면 사람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도 바뀌게 됩니다. 전체주의가 장기간 문화로 박혀 있던 소련에서도 사람들이 사회에 대항하는 저항 문화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왜 저항 문화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엄청난 재앙에 일본 정치 주류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고, 그런 상태에서 자민당이 다시 집권하였습니다. 그보다 1년 전인 2015년 아베 정부가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변신하기 위해 안보 관련 법안을 국회에 통과시켰을 때, 12만 명의 시민과 학생들이 국회를 포위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자유와 민주사회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SEALDs)이라는 단체가 시위를 주도했는데, 그것이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습니다. 그렇기에 리버라루(Liberal의 일본식 발음) 또는 카쿠신(革新)이라고 표현하는 일본의 진보 세력들은 2016년 한국의 촛불 집회에 주목하고 부러워했습니다. 100만 명의 촛불 집회는 일본 진보 세력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였던 것입니다. 결국 안보법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SEALDs(실즈)는 다음 해에 해체되었습니다. 일본의 민중들은 권력의 불의에 맞서 저항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일본의 정치는 부패한 채로 정체되고, 그래서 일본의 민주주의는 태동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비롯해 미군정에 의한 전쟁의 종식 과정에서 일본은 국가와 사회의 모든 변화가 하향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킨 천황과 그 잔재들이 여전히 일본을 지배하는 이유는 일본인들의 세계관이 '힘의 질서'에 오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근대 이전 막부시대에도 막부의 통치는 '무력'에 의존했고, 미군정의 통치도 미국이 강한 나라이기에 저항하지 않고 수용했던 것입니다.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를 지배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 그들의 관념이며, 이것이 일본의 '무사도'(武士道)입니다. 이러한 세계관이 인류 문명의 지향점에 대척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저는 <항일로드 2000km>에서 제가 몰랐던 너무나 많은 우리의 영웅들을 만났습니다. 해방정국의 좌우 갈등 속에서 북으로 간 김학철 지사가 김일성의 우상화에 반대하다가 중국으로 쫓겨 가고, 거기서도 모택동의 1인 독재를 끊임없이 비판하다가 결국 반동분자로 지목돼 옥고를 치렀다는 대목을 보고, 어쩌면 제가 그 시대에 있었다면 그와 같은 길을 걸었을 거라는 생각에 깊은 연민과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박재혁 의사의 일대기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습니다. 의거로 체포된 의사는 일본제국 법원의 사형 집행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 단식을 하여 목숨을 끊었는데, 그때가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습니다. 너무나 슬프고도 찬란한 청춘에 뭉클함이 가슴을 저미었습니다.
김종훈 기자의 <항일로드 2000km>는 우리 영웅들의 역사를 무겁게 전하면서도, 한편으로 항일 영웅들에 관련된 일본의 지방 곳곳을 소개하고 있어 마치 여행을 함께하는 듯한 경쾌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안중근, 윤봉길, 윤동주 님과 같은 유명한 분들만이 아닌, 우리가 모르고 있었던 우리의 영웅들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이 잊혀서는 안 됩니다.
'항일의 역사'는 단순히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했던 과거의 기록에 그치지 않으며, '불의에 항거한 저항의 역사'로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저항의 정신'은 부당한 정부에 대항했던 '시민혁명의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1960년 4․19혁명, 1980년 5월 광주 민주항쟁, 1987년 6월 항쟁, 2017년 촛불혁명, 2024년 12월 비상계엄 반대항쟁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의 정신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확장된 민주주의를 이루는 데에 그 뿌리가 될 것입니다. <항일로드 2000km>는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에 이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