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과 장물 재벌공화국, 땜질 처방의 실패사
허점투성이 현행법, 완전히 새로운 규율시스템 필요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모든 재산은 도둑질이다.” 프루동의 이 오래된 선언만큼 한국 재벌의 부가 형성된 과정을 정확하게 꿰뚫는 말은 없을 것이다. 삼성의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 삼 남매가 단돈 16억 원의 증여세로 최소 16조 원 이상의 재산을 일군 과정은 그들이 천재적인 경영능력을 발휘해서가 아니라 회사와 소수주주의 재산에 거대한 빨대를 꽂아 직접적으로, 또 우회적으로 자신들의 배를 불린 결과물이다. 이는 삼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차, SK, LG 등 우리가 아는 거의 모든 재벌의 부와 지배권은 합법의 탈을 쓴 교묘한 약탈의 연쇄 반응을 통해 축적되고 대물림되어 온 거대한 장물의 성격을 띤다.
빨대 꽂기와 터널 뚫기로 계열사의 부를 시도 때도 없이 약탈, 이전한 수단이 바로 재벌총수의 자기거래 특권이다. 이는 국회의원이 자신의 세비나 특권을 스스로 결정하는 셀프입법 특권과 함께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좀먹는 2대 특권이라 할 수 있다. 법치주의와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특정 개인에게만 허용되는 부당한 특권을 해체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이며 그 어떤 가치보다도 앞서는 절대선이다. 이 글의 목적은 지난 수십 년간 이 특권을 어떻게 법이 외면하고 방조해왔는지를 구체적인 실패의 역사를 통해 드러내고 더 이상 단 하나의 허점도, 단 한 뼘의 탈출구도 허용하지 않는 완전한 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있다.
실패를 예약한 허점투성이 입법
우리의 법제는 재벌총수의 명백한 약탈행위를 막기 위해 언제나 뒷북치기와 땜질처방으로 일관해왔다. 그 역사를 되짚어 보면 거대한 경제 스캔들이 터지고 사회적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한 뒤에야 마지못해 내놓은 땜질식 개량입법의 연속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각 제도는 나름의 명분을 가졌지만 재벌총수에게 교묘한 사각지대와 탈출구를 제공하여 실효성이 매우 약하다는 치명적인 공통점을 가졌다.
이사 등의 자기거래 규제의 한계와 사각지대
회사법의 영역부터 살펴보자. 가장 기본적인 통제장치는 이사 등의 자기거래 규제(상법 제398조)다. 이사나 주요 주주가 회사와 거래 시 이사회 3분의 2 이상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게 골자다. 문언 상으로는 그럴듯하지만 두 가지 치명적인 허점을 안고 있다. 첫째, 규제대상을 이사 및 주요 주주 개인과 회사 간의 직접거래로 한정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현대차그룹이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현대글로비스에 그룹의 물류 일감을 몰아주는 계열사 간 거래를 통한 우회 터널링을 포섭하지 못한다.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회장 개인과 거래한 것이 아니라 현대차, 기아와 거래했지만 그 이익은 고스란히 정 회장에게 돌아갔다. 법은 이처럼 명백한 경제적 실체를 외면했다.
둘째, 법은 총수가 임명한 사외이사들에게 총수 견제역할을 기대했지만 현실에선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사 전원을 총수가 선임하기 때문에 이사회 승인은 총수의 ‘셀프승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특히 입증 책임이 이사회 결의의 부당성을 주장하는 소수 주주에게 있기 때문에 사실상 잠자는 조항이 되었다. 2011년 법 개정으로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까지 규제대상에 포함시켰지만, 막후에서 이루어지는 총수의 지시를 외부의 소수 주주가 어떻게 입증하라는 말인가. 이는 애초에 작동 불가능하게 설계된 법이었다.
주주대표소송과 다중대표소송제의 한계
2020년 도입된 ‘다중대표 소송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주주대표 소송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주주의 지분율 요건을 내리며 활성화를 유도했으나 비상장 계열사의 경우 주주 전원이 특수관계인이기 때문에 회사의 총수나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주주가 있을 리 없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모회사 주주가 불법을 저지른 자회사 이사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다중대표 소송의 취지는 좋다. 현실적으로는 소송이 가능해야만 이사의 의무 위반행위에 대한 사법통제가 작동한다. 소수 주주의 제소권한 확장은 시간과 자원이 많이 투입되는 법원 재판에 의한 사후통제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배주주 전횡을 통제하는 데 바람직하다.
문제는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 50%를 초과하여 보유해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요건을 달아 정작 감시가 필요한 수많은 핵심 계열사들을 법망에서 제외시켰다는 데 있다. 재벌들은 지분율을 49.9%로 맞추는 간단한 방식으로 이 법을 얼마든지 조롱하며 피해갈 수 있다. 더욱이 자회사에 대해서만 적용되기 때문에 재벌체제에서 흔하디 흔한 손자회사나 자매회사(계열사) 간의 터널링을 통한 사익편취에 대해서는 아예 손도 대지 못하는 법의 사각지대가 그대로다. 마지막으로 주주대표 소송과 다중대표 소송은 입증 책임 문제를 극복하고 어렵사리 승소해도 손해배상금이 회사금고로 들어갈 뿐이라서 소수주주의 제소유인이 매우 낮다는 근본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외이사제도의 한계: 자산총액 2조 미만 비상장계열사 예외
주주대표 소송제도와 함께 재벌개혁의 2대 핵심 수단인 양 회자돼 온 사외이사 제도는 현행법상 치명적인 문제점과 한계를 안고 있다. 회사법은 공정거래법과 달리 대규모 기업집단을 법적 실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여부를 불문하고 회사의 상장 여부를 기준으로 사외이사를 달리 의무화하는 이유다. 일단 상장사에 대해서는 규모에 따라 사외이사를 과반수(이자 3인 이상) 혹은 1/3 이상을 요구하되, 비상장사에 대해서는 자산총액이 2조 원을 넘는 초대형 회사에 한해서만 사외이사가 2/3 이상을 차지하는 감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대규모 기업집단의 절대다수 비상장계열사들은 자산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사외이사 선임의무에서 유유히 벗어난다.
재벌체제에서 특정 계열사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그 회사의 장부상 자산규모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산규모가 2조 원에 현저히 못 미치는 회사라도 복잡한 출자구조를 통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사실상의 지주회사 역할을 할 수 있다. 제일모직과 합병하기 전 에버랜드가 오랫동안 그랬다. 브랜드 로열티나 핵심 특허권을 소유하며 그룹 전체에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는 회사도 자산규모는 작을 수 있다. 현행법은 이렇듯 작지만 핵심적인 회사들을 규제의 사각지대에 그대로 방치한다. 이는 기업집단, 즉 그룹이라는 실체를 보지 못하고, 개별 회사라는 껍데기에만 얽매인 전형적인 형식논리의 오류다. 총수는 지금도 얼마든지 자산 2조 미만의 회사를 여러 개 운영하며 각각을 중요한 지배 고리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감사위원(2/3이상 사외이사) 선임 시 3% 룰의 한계와 우회로
더 큰 문제는 사외이사를 둘 의무조차 없는 자산총액 2조 미만의 비상장 계열사들이 그룹 전체의 부당 내부거래와 사익편취의 핵심 통로, 즉 빨대 꽂기와 터널 연결의 허브(hub) 역할을 한다는 데 있다. 재벌총수는 지배구조의 핵심이 되는 회사(특히 부문별 지주회사들이나 3, 4단계 피라미드출자의 모회사)나 그룹의 부가 집중되는 알토란 회사(IT서비스, 물류, 건설 등)를 의도적으로 비상장상태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현행법에 따르면 이런 비상장계열사들도 장부상 자산총액이 2조 원 미만이면 사외이사를 두지 않아도 된다. 자산총액이 2조 원을 초과해서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을 의무적으로 둬야 하는 대형 비상장계열사의 경우에는 감사위원과 사외이사 선임과정에서 이른바 3% 룰이라고 불리는 총수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행사 제한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주주들이 모두 특수관계인들이라 3% 룰을 적용하면 이사 선임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총수는 100% 자신의 사람들로 감사위원과 사외이사를 구성하여 내부감시 기능을 완전히 무력화할 수 있었다.
사외이사를 이사정원의 과반수이자 3인 이상 두어야 하는 자산총액 2조 이상 상장계열사의 경우에도 감사위원을 뽑을 때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총3%까지만 인정하는 조항은 손쉽게 우회된다.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에는 3% 룰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대기업 지배주주들이 사외이사를 먼저 뽑아놓고 다시 감사위원을 뽑을 때만 3% 룰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3% 룰을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3% 룰 무력화가 시도되면 사외이사를 선임할 때부터 3% 룰을 적용한다고 법을 개정해서 무력화시도를 틀어막는 게 당연하지만 정부와 국회다수당은 이를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이렇듯 재벌이 선출하는 사외이사에게 독립적인 감시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그들은 총수 감시자가 아니라 총수 방패막이 역할을 할 뿐이다. 이처럼 현행법상 사외이사제도의 실체를 속속들이 알고 나면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게 아니냐는 공분과 탄식을 금할 수 없다.
대규모내부거래 공시제도와 사익편취금지제도의 한계
공정거래법의 규제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규모 내부거래’ 공시 및 이사회 승인 제도는 재벌총수의 이사회 장악으로 말미암아 실효성이 없고 주주총회라는 최종 통제장치가 빠진 절차적 통제에 불과하다. 2013년에 도입된 사익편취 금지조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듯 보였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총수 일가에 대한 회사기회 유용 등을 금지한 이 조항은 그 자체로 진일보한 것이었으나, 그 이익제공을 받는 객체를 상장사의 경우 총수일가 지분이 30%, 비상장사의 경우 20% 이상인 회사로 한정함으로써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다. 이는 재벌들에게 최저 지분율만 피하면 합법이라는 친절한 탈출구를 제시하는 역설을 낳았다. SK그룹이 총수 지분율 19.9%의 SK C&C를 통해 그룹지배력을 완성한 것처럼 재벌들은 규제기준 직전까지 지분을 보유하거나 규제대상이 아닌 계열사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법망을 피해 갈 수 있다. 법이 들키지 않고 우회하는 방법을 친절하게 가르쳐 준 셈이다.
땜질처방으로 일관한 배경: 포획된 국가와 침묵의 카르텔
1987년 민주화 이후 수많은 정권이 들어섰지만 이런 땜질 처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단순히 입법기술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재벌의 성장이 곧 국가경제의 성장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아래 재벌개혁은 기업의 발목을 잡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위험한 시도로 왜곡되었다. 재벌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언론, 학계, 법조계를 동원해 형성한 성장제일주의와 재벌옹호론의 포로가 된 정치권은 개혁의 칼날을 들기보다는 그들과의 타협을 통해 발등의 불을 끄는 수준의 미봉책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모든 개혁법안은 국회의 문턱을 넘는 과정에서 재벌의 조직적인 로비에 의해 수많은 예외조항과 탈출구가 삽입된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 한마디로, 정치과정이 재벌권력에 포획당한 뼈아픈 역사였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은 셀프입법 특권까지는 못 가졌어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상당 수준의 입법비토 특권을 누려왔다.
더욱 통탄할 일은 전문가집단의 침묵과 공모다. 빠져나갈 구멍 없는 완벽한 특권해소 규율시스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사실을 참여연대나 경제개혁연대 같은 시민단체와 양식 있는 재벌개혁론자들이 줄기차게 연구하고 제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류 학계와 전문가집단은 눈앞의 이득을 위해 침묵하거나 재벌의 논리를 대변하며 규제실패의 역사에 공모해왔다. 그들의 외면과 침묵, 동조와 협력 속에서 총수의 특권은 더욱 공고해졌고 법은 정의의 도구가 아닌 약탈의 알리바이가 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사각지대와 허점투성이 땜질처방전들은 우리사회에 강고하게 뿌리내린 정경법언 유착의 생생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누구보다도 입법부와 사법부, 법무부와 공정위를 장악해온 법률가집단이 입법실패의 역사에 가장 책임이 크다. 법무부와 공정위는 각각 상법과 공정거래법의 주무부처로서 법의 사각지대와 우회로를 재빨리 파악하고 개정안을 내야함에도 그렇지 못했다. 입법부도 법의 문제점을 외면하고 손을 놨다. 검찰은 재벌총수의 명백한 배임행위에 대해 합리적인 경영판단이라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을 남발했고 법원은 드물게 기소되더라도 국가경제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솜방망이 처벌과 집행유예로 일관했다. 특히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사건에서 대법원이 총수 일가에 대한 명백한 부의 이전을 회사에 대한 손해가 아니라는 기이한 논리로 무죄를 선고한 것은 사법부가 총수 일가의 지배권 승계를 위한 약탈에 합법성의 날개를 달아준 사법농단에 가까웠다. 지난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불공정합병에 대해서 대법원이 전원무죄, 전부무죄 판결을 내린 데서 볼 수 있듯이 법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대법원마저 재벌의 자기거래특권 통제임무를 헌신짝처럼 저버렸다는 사실이 개탄스럽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규율시스템의 골자
이제 실패의 역사를 끊어낼 때가 왔다. 더 이상 부분적인 수리는 무의미하다. 재벌의 구조적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의 ‘동일인(총수)’ 개념을 회사법으로 가져와 규제의 대상을 명확히 재정의하고 완전히 새로운 규율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 출발점과 토대는 법의 특별한 관심사와 규율대상을 ‘특수관계인간 거래’(related party transaction, RPT)로 규정하는 데 있다. 특수관계인간 거래는 공정거래법상 공시대상 기업집단에서 동일인 및 그 친족과 소속 계열회사 간의 모든 거래 및 소속 계열회사 상호간의 모든 거래를 말한다.
이 간명한 정의는 재벌총수가 관여하는 모든 직접 터널링과 우회 터널링을 그물코 하나 없이 완벽하게 포섭한다. 이렇게 정의된 RPT는 그 자체로 총수의 사익추구 가능성이 의심되는 수상한 거래이므로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정상적인 거래는 입증책임 전환을 전제로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규모가 크고 위험성이 큰 거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5단계의 강력한 방어벽을 통과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첫째, 관련소송이 제기되면 입증책임을 완전히 전환한다. 다시 말해서 총수와 이사들이 직접 그 자기거래가 회사에 전적으로 공정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책임을 180도 전환한다.
둘째, 사전 공시를 의무화한다. 모든 RPT는 거래 실행 최소 4주 전까지 상세히 공시하여 시장의 사전 감시를 받도록 한다.
셋째, 이사회 승인요건의 실효성을 높인다. 지난 7월 상법 개정으로 강화된 이사의 충실의무와 입증책임 전환을 결합하여 ‘독립이사’ 중심의 감사위원회가 법적 책임을 먼저 생각하며 RPT를 심의하게 한다. 사외이사 선임에도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 상한(3% 룰)을 적용한다. 집중투표제를 강행규정으로 도입해서 소수 주주의 목소리를 대변할 독립이사를 반드시 둔다.
넷째, 주주총회의 통제를 실질화한다. 중대한 RPT는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한다.
다섯째, 이때 이해관계가 있는 총수와 그 친족, 그리고 모든 계열사의 의결권 행사를 원천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주주총회가 재벌총수의 셀프승인 도구가 되지 못하도록 한다.
이제는 특권을 해체할 시간
지금 우리에게는 실패를 극복할 기회가 주어져 있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대첩을 거둔 이래로 1년 만에 치러진 조기대선에서 정권교체에 성공해서 정치적 여건이 어느 때보다도 좋다.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는 겉으로는 조용한 것 같아도 속에서는 마그마처럼 끓기 때문에 정치권과 학계의 대형 스피커들이 입을 열고 앞장서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호응이 예상된다. 더 이상 이른바 재계의 지칠 줄 모르는 엄살과 보수언론의 공포마케팅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
재벌개혁이 주가를 하락시키고 알토란 기업들을 해외 투기자본의 노략질에 무방비로 노출시킬 것이라는 주장은 허구에 불과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총수 중심의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내부거래를 통한 총수의 빨대 꽂기 특권이라는 가장 큰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기업의 내재가치가 상승해서 주가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해외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시도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든다. 진정한 경영권 방어는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아니라 주주들의 신뢰를 받는 투명한 지배구조에서 나온다.
다시 강조하지만 위에서 제시한 재벌특권 해소책은 기업활동의 손발을 묶는 불합리한 규제가 아니다. 오직 총수의 부당한 자기거래특권과 지대추구 행위를 해소하는, 오래 지체된 정의의 실현일 뿐이다.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의 특권을 그대로 놔둬서 망한 나라는 역사에 숱하게 많았지만 특권을 없애서 망했다는 나라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제 우리사회 전체가 재벌의 인질 상태에서 벗어나서 재벌특권과 단호하게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재벌총수들은 이미 3대에 걸쳐서 충분히 누렸고 국가는 이미 60년 넘게 넘치게 봐줬다. 부와 지위의 불법적인 대물림이 3대를 넘어 4대로 이어지는 봉건적 행태는 이제 정치적, 경제적으로 우리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암적 환부일 뿐이다. 반드시 지금처럼 정치 여건이 좋을 때 정신 바짝 차리고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끝내야” 한다. 이렇게 재벌체제의 고질병인 재벌의 자기거래특권을 해소해야 한국증시의 고질병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장하준 교수가 제안하는 재벌경영권 상속관련 사회적 대타협 역시 총수의 자기거래특권 해소를 전제할 때 비로소 논의의 출발점에 설 수 있다. 두려워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