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특권 해체를 위한 '5중 방어벽'
단편적 땜질과 수리 아닌 구조적 수술 필요
'특수관계인 거래' 규율법제 근본적 재설계해야
21세기 첨단 대한민국 속의 봉건 지배구조
21세기 첨단기술로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 자본주의의 심장부에는 놀랍게도 서양 중세의 봉건제도를 닮은 지배구조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법적으로는 주주 모두가 주인인 수십, 수백의 주식회사들이 실제로는 황제처럼 군림하는 총수 한 사람의 사유물처럼 운영되는 기이한 역설이 바로 우리 재벌체제의 민낯이다. 우리의 법, 특히 회사법은 이 명백한 현실을 오랫동안 외면해왔다. 법의 눈에는 오직 개별 법인으로 등기된 수많은 독립된 회사들만 보일 뿐 이들을 하나의 제국처럼 지배하는 총수의 존재는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했다. 바로 이러한 법적 허구와 경제적 실체 사이의 거대한 균열 속에서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related party transactions, 이하 RPT)’라는 이름으로 총수를 위한 총수에 의한 약탈행위가 수십 년간 공공연히 자행되어 왔다.
특수관계인 간 거래는 재벌체제의 가장 어두운 구석에서 그룹 전체의 부와 기회를 총수 일가의 개인적 부로 전환시키는, 총수 일가에게만 열려 있는 약탈 통로라는 점에서 법의 특별한 관심과 경계를 요구한다. 재벌총수의 약탈행위는 두 가지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는 직접 터널링(direct tunneling)이다. 이는 총수 일가가 그룹의 핵심 계열사에 직접 빨대를 꽂아 회사가 보유한 알짜 부동산이나 유가증권, 미래가치가 높은 지적재산권 등을 자신들의 개인회사로 헐값에 빼돌리는 노골적이고 고전적인 방식의 도둑질이다. 다른 하나는 더욱 교묘하고 파괴적인 우회 터널링(indirect tunneling)이다. 이는 총수의 보이지 않는 손, 즉 그룹의 비서실이나 전략기획실의 지휘 아래 계열사와 계열사 간의 자본거래나 자산거래를 조작함으로써 총수 일가의 사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이다.
총수 지분이 낮은 회사의 가치를 의도적으로 억누르고 총수 지분이 높은 회사에 유리한 비율로 합병을 강행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사건은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이 이 거대한 우회 터널링이라는 범죄 앞에서 얼마나 무력했는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례다. 실은 이재용 회장과 이부진, 이서진 자매가 부친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될 때까지 본인명의로 보유한 재산은 모두 신주 헐값발행이라는 직접 터널링을 통해 취득한 에버랜드와 SDS 지분밖에 없었다. 그들이 현재 보유중인 재산 중 일부 상속재산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은 직접 터널링을 통해 취득해서 우회 터널링을 통해 가치를 증식했다고 보면 된다. 직접유형이건 우회유형이건 터널링의 본질은 같다. 바로 총수가 그룹 전체에 미치는 절대적 지배력을 이용해 회사와 소수주주의 부(富)를 자신에게 이전시키는 현대판 연금술이자 총수의 자기거래라는 점이다.
총수 견제를 향한 개정상법의 의미 있는 진일보
지난 7월 우리상법은 재벌개혁을 향해 의미 있는 일보를 나아갔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의 회사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하고, 사외이사의 비중을 높여서 역할을 강화하며, 그 명칭을 ‘독립이사’로 바꿨다. 또한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총 3%로 묶고 전자주주총회를 확대하는 등 재벌총수를 견제하고 소수주주를 보호하는 여러 장치를 도입했다.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그동안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던 비상장 계열사를 이용한 총수일가의 교묘한 ‘빨대 꽂기’와 사익편취를 막으려는 입법자의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개정상법은 중요한 진일보이긴 하지만 이 정도의 재벌개혁으로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총수가 자사주를 마법처럼 활용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문제, 알짜 사업부를 물적 분할하여 중복 상장함으로써 기존 주주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문제, 그리고 이사 선임 시 소수주주의 목소리를 반영할 집중투표제 문제를 해결할 과제들이 여전히 상법 추가개정안으로 논의 테이블에 올라와 있는 이유다. 추가 개정안의 국회통과 여부는 향후 민주당의 재벌개혁 의지에 대한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거대재벌의 익숙한 엄살과 국힘당과 보수언론의 재벌비호 논리를 정면 돌파할 개혁의지가 있는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재벌개혁의 발걸음을 뗐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는 역부족
이미 이재명 정부의 목표를 넘어 시대의 과제로 부상한 느낌마저 드는 ‘코스피 5000 시대’가 추가 상법개정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것은 향후 모든 정책과 입법이 이 목표에 독이 될지, 득이 될지에 따라 큰 영향을 받으리라는 점이다. 최근 정부가 주식 양도차익 과세대상을 한 종목당 50억 원 보유기준에서 윤석열 이전의 10억 원으로 되돌리겠다는 정책안을 발표했을 때 이 점이 분명해졌다. 그 여파로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자 며칠 전 여당 대표가 이례적으로 소속 의원들에게 공개발언 자제령을 내렸을 정도다.
그러나 코스피 5000 시대로 가는 길의 진짜 장애물은 세금 같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바로 수십 년간 한국 자본시장의 발목을 잡아 온 고질병, ‘코리아 디스카운트’라 불리는 거대한 불신의 벽이다. 그리고 그 벽의 가장 두꺼운 부분은 총수의 전횡을 사실상 허용하는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는 회사법의 미비에 있다. 따라서 진정한 도약을 위해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해 온 재벌 총수의 ‘쌍방대리 특권’을 해소하고, 재벌총수가 부당한 내부거래로 회사와 일반주주의 재산을 약탈하지 못하도록 막는 근본적인 재벌개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재벌총수의 쌍방대리 거래와 약탈적 사익편취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서는 국내외 투자자들의 한국증시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는 살아나지 못한다. 강자의 약탈이 공공연히 용납되는 경제에 무슨 정의가 있겠으며 어떤 법치주의가 설 수 있겠는가. 코스피 5000 시대는 바로 불의한 총수의 자기거래 특권을 해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새로운 규율의 출발점: 과거의 실패를 넘어 RPT를 정의하다
모든 개혁은 현실을 정확하게 조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법제는 재벌총수의 자기거래라는 명백한 실체를 외면한 채 주변부만 맴도는 단편적인 땜질로 일관해왔다. 상법은 아주 오랫동안 ‘이사’라는 형식적 직책에만 얽매여, 이사가 회사와 직접 거래하는 경우에만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소극적 규제에 머물렀다. 그러다 201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법이 한 걸음 더 나아가 10% 이상 지분을 가진 ‘주요주주’나 지분율과 무관하게 ‘사실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이는 소수주주가 그 영향력이나 지시의 존재를 무슨 수로 법정에서 입증할 것인가라는 거대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사실상 잠자는 조항이 되고 말았다.
공정거래법 역시 2013년 ‘사익편취 금지’ 조항을 도입하며 의욕을 보였다. 총수 일가에 대한 회사기회 유용 등을 금지한 이 조항은 그 자체로 진일보한 것이었으나, 그 이익제공의 객체를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인 회사로 한정함으로써 치명적인 허점을 드러냈다. 이는 재벌들에게 이 지분율 아래로만 유지하면 합법이라는 친절한 탈출구를 제공하는 역설을 낳았고 규제대상이 아닌 계열사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손쉽게 법망을 피해 갈 수 있었다. 실은 이렇듯 실효적이지 않은 방식과 허점투성이 규제로 그친 것은 저절로 생긴 게 아니라 재벌의 힘이 작동한 결과다.
이러한 규제실패의 역사는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준다. 더 이상의 부분적 수리는 무의미하다. 이제는 재벌의 구조적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하고 있는 공정거래법의 ‘동일인(총수)’ 개념을 회사법으로 가져와 규제의 대상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재정의해야 한다. 즉, 특수관계인 거래란 공정거래법상 공시대상기업집단에서 ①동일인 및 그 친족과 그 소속 계열회사 간의 모든 거래; 또는 ②그 소속 계열회사 상호 간의 모든 거래를 의미한다고 말이다.
이 간명한 정의는 재벌총수가 관여하는 모든 직접 터널링과 우회 터널링을 그물코 하나 없이 완벽하게 포섭한다. 더 이상 특정 회사의 지분율이 몇 퍼센트인지, 총수가 등기이사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소모적인 논쟁은 필요 없게 된다. 공정위가 지정한 기업집단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내부거래는 이제부터 우리가 설계할 다층적 감시 시스템의 테이블 위에 자동으로 올라오게 된다.
완벽한 통제: 5단계 다층 방어벽의 구축
이렇게 정의된 RPT는 그 자체로 총수의 사익추구를 의심받는 수상한 거래이므로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회사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증명될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 혹자는 이러한 포괄적인 규제가 그룹의 효율적인 경영과 시너지를 위해 수시로 일어나는 모든 계열사 간 거래의 발목을 잡는 과잉규제가 될 것이라 비판할지 모른다. 이는 기우에 불과하다. 우리가 제안하는 시스템은 무차별적인 규제가 아니라 거래의 위험성과 규모에 따라 각기 다른 강도의 필터를 적용하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정교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일상적이고 정상적인 거래, 예를 들어 계열 IT 회사가 다른 계열사에 시장가격으로 컴퓨터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같은 거래에 대해서는 감사위원회나 이사회의 특별한 승인 절차가 모두 면제된다. 다만 이 경우에도 만약 사후에 문제가 제기된다면 그 거래가 정말로 공정한 정상거래였음을 입증할 책임은 회사 측에 남겨두어 도덕적 해이를 방지한다. 반면 비일상적이지만 규모가 작은 거래에 대해서는 독립이사로 구성된 감사위원회의 승인을 요구하여 1차적인 내부통제를 거치게 한다. 그리고 마침내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성 기준’을 넘는 중요한 거래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설명할 가장 강력한 다층적 방어벽을 모두 통과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어벽은 개혁의 토대가 되는 입증책임의 완전한 전환이다. 지금까지 RPT는 일단은 합법적인 경영활동이라는 안일한 추정 아래 그 부당함을 주장하는 피해자에게 모든 입증책임을 지워왔다. 이는 정보를 독점한 가해자와 모든 정보에서 차단된 피해자에게 동등한 무기를 들고 싸우라는 것과 같은 기만적인 규칙이었다. 이제 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아야 한다. 관련 소송이 제기되면 총수와 그 거래를 승인한 이사들이 직접 이 거래가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회사에 전적으로 공정했다(entirely fair)는 사실을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을 180도 전환해야 한다. 이는 미국 델라웨어주 판례법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원칙으로서 정보와 권력을 가진 자에게 그 정당성을 증명하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다.
두 번째 방어벽은 외부의 눈이 내부를 감시하게 만드는 사전공시 의무화다. 거래가 모두 끝난 뒤에 공시하는 현재의 사후공시 방식은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한 부고장 송달에 불과하다. 진정한 감시는 예방을 전제해야 한다. 따라서 규모와 무관하게 모든 RPT는 거래 실행 최소 4주 전까지 그 목적, 상대방, 규모, 조건 등을 상세히 공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햇볕이 최고의 방부제’라는 격언처럼 사전 공시는 그 자체만으로도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던 밀실 거래를 광장으로 끌어내는 효과가 있다. 이는 소수주주와 시장이 부당한 거래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보장하는 시장감시 기능을 ‘사후 기록’에서 ‘사전 예방’으로 전환하는 필수적인 절차다.
세 번째 방어벽은 이사회를 진정한 문지기로 만드는 실효성 있는 이사회 승인이다. 현행 상법이 이사 등의 자기거래에 요구하는 이사 3분의 2 이상 찬성 요건은 현실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비상장 계열사는 사외이사조차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사 전원이 총수가 임명한 부하직원인 상황에서 어떻게 총수의 의사에 반하겠는가. 상장사의 사외이사 역시 총수의 영향력 아래 선임되는 총수 선출 사외이사인 현실에서 그들에게 독립적인 판단을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착각이다. 이들을 진정한 감시자로 만드는 힘은 바로 앞서 말한 입증책임의 전환에서 나온다. 또한 최근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를 넘어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한 상법 개정은 이사들의 법적 책임을 한층 무겁게 만들었다. 이 두 가지 개혁이 결합될 때 비로소 이사들은 총수의 눈치가 아닌 주주들의 소송을 먼저 두려워하며 안건을 심사하게 될 것이다. 이사회가 이런 막중한 책임을 지고 RPT를 심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이사회를 고무도장에서 진정한 게이트키퍼로 변모시키는 길이다.
네 번째 방어벽은 회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거래에 대한 주주총회의 통제다. 회사의 합병이나 영업 전부의 양도처럼 극히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만 요구되는 ‘주주총회 특별결의’의 반열에 재벌의 중대한 RPT를 올려놓아야 한다. 이는 ‘총수의 사익을 위해 회사의 자산을 빼돌리는 행위는 회사를 팔아넘기는 행위만큼이나 중대한 범죄’라는 사회적 합의를 법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중대함’의 기준을, 예를 들어 영국 회사법은 회사의 순자산 대비 10%를 초과하는 경우로 규정하지만 더 낮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RPT는 본질적으로 재벌총수의 사익추구를 위한 의심스런 거래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 논의 중인 집중투표제를 반드시 강행규정으로 도입하여 소수주주들이 추천한 최소 한 명의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하여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어야 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방어벽은 이 모든 개혁의 화룡점정이자 가장 강력한 무기인 ‘셀프승인 특권’의 원천 봉쇄다. 주주총회 승인절차의 심장은 바로 거래에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의 의결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데 있다. 이 장치가 없다면, 총수는 다른 모든 주주가 반대하더라도 자신이 가진 지분과 계열사 지분을 동원해 안건을 유유히 통과시키는 셀프승인 코미디를 연출할 것이다. 따라서 해당 RPT 안건에 대해서는 총수와 그 친족의 지분은 물론 그들의 통제 아래 있는 모든 계열사가 보유한 지분의 의결권까지 모조리 배제해야 한다. 이는 이미 영국, 프랑스, 인도 회사법 등이 채택하여 그 효과를 입증한 제도로서 총수가 자신의 지배력을 남용해서 회사와 일반주주의 재산을 약탈해온 권력남용 구태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민주적 통제의 최종 보루다.
맺으며
위에서 체계화해서 선보인 재벌총수의 자기거래특권 해소방안은 사실 거창하거나 심오한 게 아니다. 누구나 상식과 정의감만 있으면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는 수준이다. 실제로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를 비롯해서 박상인 교수 등 재벌개혁론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방안이기도 하다. 나는 이것을 유기적으로 체계화했을 뿐이다. 만약 이 주제의 중대성을 감안해서 대통령이나 국회가 추첨시민의회에 붙여 숙의과정을 거친다면 일반시민의 집단지성이 똑같은 처방을 권고할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지난 40년간 문제의 본질과 핵심을 정밀 타격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돌며 과녁을 비껴가는 헛발짓을 계속해온 이유는 국민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거대재벌들이 막강한 경제권력으로 국가경제를 인질로 삼고 입법·사법 · 행정 3부와 언론, 학계 등 전문가집단을 숱한 떡고물로 구워삶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원 아래 몸집과 영향력을 불린 거대하고 강력한 특수이익에 국가가 포획된 전형적인 경우다.
특권과 비리를 방임해온 입법의 실패는 정의와 합목적성의 체감 실패로 귀결되고 이는 다시 법과 당국에 대한 불신과 조롱, 특히 민주정치에 대한 불신과 체념으로 이어진다. 일단 이런 악순환이 정착되면 구조개혁과 제도개혁이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대중심리의 근저에는 언제나 특권과 반칙에 대한 공분과 원칙과 정의에 대한 요구가 꿈틀거리기 때문이다. 막강한 여대야소 정권의 새 출범은 대중정서와 상식, 원칙의 힘을 믿고 오래 지체된 근본개혁 추진에 최적의 계기와 조건을 제공한다. 국민주권정부와 국민대표국회는 재벌(총수)의 반칙과 특권을 더이상 용납하면 안 된다. 추가 상법개정이 절호의 기회다. 위에서 정리한 재벌특권 해소개혁의 방향과 내용이 다 나와 있고 국민공감대도 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말처럼 폭풍처럼 밀어붙여 전광석화처럼 해치워야 한다. 한 시대의 종식과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우렁찬 나팔소리가 될 것이다. 시민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질 것이다. 특권과 반칙을 바로잡아 흥한 나라 얘기는 숱하게 있어도 망한 나라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무엇이 두려워 주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