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한 미국 자본주의 위기의 전면화

미국 자본주의와 미국시장에 기댄 성장전략의 한계

자유무역 버리고 중상주의 국가로 바뀐 미국

트럼프 관세전쟁의 첫 번째 요인은 ‘중국’

지적 재산권 침해, 정부 보조금에 미국 속수무책

‘플라자 합의’와 ‘트럼프 관세전쟁’의 같고 다른 점

2025-08-03     한승동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8월 1일, 로스앤젤레스 항구의 APM 터미널에서 운송 컨테이너가 처리되고 있다. 2025.8.1 AP 연합뉴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25년간 세계경제 규모는 3배로 늘어났다. 이런 세계경제 확장의 가장 큰 기여자 중 하나는 미국이고 미국시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른바 ‘선진국’으로 불리는 주요국들을 포함한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에 파격적인 고관세를 일방적으로 부과했는데도 모두가 전전긍긍하며 그것을 조금이라도 경감하기 위해 미국과 거의 굴욕적인 협상을 벌이는 걸 마다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수많은 나라들의 경제성장이 수출, 그리고 미국시장과 엮여 있기 때문이다.

지속 불가능한 거대한 불균형

2000년 이후 세계경제 규모가 4반세기만에 3배로 늘어나는 동안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도 3배로 늘어, 1조 1000억 달러(약 1527조 원)에 이르렀다. 주로 무역수지 적자 때문이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거대한 (무역)불균형은 미국도 다른 나라 경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미국 의회 예산국은 미국정부 부채가 5년 뒤 2차 세계대전 직후 전쟁수행을 위해 빚을 잔뜩 진 상태였던 1946년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

 

트럼프 지지자들.  2024년 8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트럼프 유세집회. 미국 내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적어도 당분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경제신문  8월 3일

미 공화당원 70%가 “무역하면 손해”

이런 상황에서는 트럼프가 아닌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그와 비슷한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는 지적들이 있다. 미국 국내 여론이 그것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미국 조사회사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특히 공화당 지지자의 70%가 ‘무역을 늘리면 손해’라고 생각한다.

무역적자가 곧 패배는 아니다. 미국 절대 우위의 ‘달러 체제’ 자체가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 토대 위에 구축된 것이다. 미국의 패권은 그런 달러 체제를 근간으로 유지돼 왔다. 달리 말하면 미국은 무역적자를 통해 패권국으로서의 막대한 이익을 향유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은 무역장벽을 낮추는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주도하면서 자유무역체제를 선도해 왔다. 그런데 이제 그것을 미국이 무너뜨리고 있다.

 

114년만에 20%를 넘는 미국의 관세율 추이, 트럼프의 상호관세가 발동된 2025년에 수직상승해 1930년대의 대공황기와 같은 수준이 됐다. 일본경제신문 7월 27일

미국 관세율 2%대에서 20%대로

7일부터 새로운 상호관세를 발동하는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이 이번 달에 20.2%에 이를 것이라고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예측했다. 트럼프 정권 이전에 그것은 2%대였다. 18%대였던 1930년대 대공황기 이후 약 100년만의 최고치다. 한마디로 미국은 자유무역을 버리고 보호무역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다. 국부 유출을 막고 해외의 부를 어떻게든 끌어들여 흑자국이 되려는 중상주의 국가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경제신문>은 그 원인을 크게 3가지로 꼽았다. 1. 국가자본주의체제 중국의 등장, 2.포퓰리즘을 부추긴 미국 국내 공동화, 3. 세계 전체의 경제자유화의 정체다.(7월 27일)

 

중국 비야디(BYD) 전기자동차(EV)들이 지난 3월 24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46회 방콕 국제 모터쇼에 전시되어 있다. 2025.3.24. 로이터 연합뉴스

자유무역체제 파탄의 첫 번째 요인 중국?

중국의 경우 2001년 WTO 가입 이후 경제규모가 15배로 커졌다. 이것 자체가 미국에겐 안보상 위협으로 다가왔고, WTO에 가입한 중국에게 자국 시장을 열어 압축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자유무역체제를 미국 자신이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됐다.

WTO체제는 주로 물품 거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미국의 우위를 보장해 준 주요 장치 중의 하나인 ‘지적 재산권’ 침해에 대처할 수 없다는 것과 중국의 막대한 보조금 정책에 대해서도 제대로 손을 쓸 수 없게 한다는, 미국에게는 차명타가 될 수 있는 약점을 갖고 있다. 미국이 지적 재산 침해로 입고 있는 연간 피해액은 2250억~6000억 달러(약 301조~802조 원)에 이른다. 중국 국가자본주의가 자국 기업들에 뿌리는 보조금과 그 보조금 덕에 값싼 가격의 가성비를 무기로 밀어내기 수출전략을 구사해 교역상대국 제조업을 초토화시키는 폐해도 그에 못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WTO 체제 내에서는 제대로 손을 쓸 수 없다고 본다.

중국은 WTO체제에서 수출주도형 성장전략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 결과 중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전체의 28% 비중을 차지하게 됐고, 이는 17%로 쪼그라든 미국을 압도한다.

이런 뒤틀림은 소비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의 소비는 세계 전체소비의 12%를 차지해, 31%인 미국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말하자면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중국은 막대한 지적 재산권 침해와 천문학적인 정부 보조금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해 미국 제조업과 그 토대 위에 형성된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있는 데도 자유무역체제에선 뾰족한 대응방법이 없다.

달리 보면, 중국은 트럼프의 '관세전쟁'을 비판하면서 자유무역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으나, 중국이야말로 자유무역체제를 위기로 몬 주역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지적 재산권 침해, 천문학적인 정부(국가) 보조금, 그리고 과도한 자국시장 보호정책과 자유무역체제는 양립하기 어렵다.  

중국이 아니라 미국 과잉소비가 문제라는 지적 외면

중국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인들의 과소비,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길들여진 과잉소비의 거품경제가 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냐, 미국이 값싼 중국제품 구입 등 자유무역체제에서 누려온 이득이 그보다 더 크지 않느냐고 비판해 봤자, 미국 정치인들과 일반대중들에겐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그들은 모든 것이 중국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중국 탓으로 여기는 그런 분위기가 지금 미국에 조성돼 있다.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자국 내부 문제보다 중국이라는 ‘외부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 제조업이 무너진 것은 값싼 중국산 수입품의 범람 외에 저임금과 값싼 원자재, 더 넓은 시장을 찾아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 미국 제조업의 ‘미국 탈출’도 함께 얽혀 있지만, 어쨌든 미국 제조업은 기업들의 도산이나 해외이전으로 공동화됐다. 2007~08년의 월스트리트발 국제 금융위기(‘리먼 브러더스 파산 쇼크’) 이후 가속화한 미국 제조업 공동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부정기적인 서비스업 수입에 의존하는 저소득층(하위 20%)의 소득은 제자리 걸음이었으나 주로 금융과 IT(정보통신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상위 20%의 소득은 같은 기간에 1.6배로 늘었다. 일자리를 잃은 제조업 분야의 노동력을 금융 IT의 고소득산업 쪽으로 이동시키는 노동정책 부재가 미국 중산층의 빈곤과 불만을 더 키웠다.

WTO체제도 2001년에 시작된 ‘도하 라운드’에서 농축산품 수출입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정체되기 시작했다. 유럽과 일본 등의 정치가들은 미국이 압박한 농산품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농업 종사자들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고, 개도국들도 자국의 수입 농산품 관세 인하를 거부했다.

 

G20 국가들의 2023년도경상수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맨 아래)는 돌출적으로 크다.  0을 기준으로 왼쪽은 적자, 오른쪽은 흑자. 한국은 6번째로 큰 경상수지 흑자국이다. 위로부터 중국, 독일, 일본,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이탈리아 순.   단위:억 달러.  일본경제신문 7월 27일

만년 적자국 미국, 만년 흑자국 일본과 유럽, 그리고 한국

결국 세계의 국제수지는 크게 왜곡됐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9184억 달러(약 1275조 원, 2024년)에 이르렀고, 중국과 독일 일본은 항상적인 경상수지 흑자국이 됐다. 이들 나라는 미국을 최종 소비지로 하는 무역 자유화의 은혜를 가장 많이 받아 왔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최근 연간 1000억 달러(약 139조 원)가 넘는 대미 무역흑자를 보면서 7%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베트남도 수혜국가의 하나다. 베트남은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본격화하면서 중국에서 빠져 나간 자본들의 미국수출 중간 경유지로 활용되고 있다. 베트남 수출의 70%가 한국 삼성전자 등 베트남 현지의 외국기업들에 기대고 있다.

 

베트남 북부 박닌 성에 있는 삼성 디스플레이 공장. 삼성의 현지공장들은 베트남의 수출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일본경제신문 8월 3일

‘플라자 합의’와 ‘트럼프 관세전쟁’의 같은 점과 다른 점

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은 가트(GATT,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체제를 통해 자유무역을 주도하면서 관세율을 5%대로 대폭 내렸다. 그 결과 개방된 미국시장을 패전국 일본과 독일은 적극 이용했다. 그것은 미국이 의도한 것이었다. ‘마셜 플랜’ 등을 통해 적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을 패전의 폐허에서 일으켜 세워 냉전의 동맹국으로 키우기 위해서였다. 대전 뒤에 누리던 미국의 절대적인 경제적 우위는 이들 나라의 급성장과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달러 태환을 중단한 1971년 ‘닉슨 쇼크’를 거쳐 1985년에 레이건 정권은 감당할 수 없게 된 무역적자를 완화하기 위한 ‘플라자 합의’를 일본에 강요했다.

미국 자본주의 위기의 전면화

‘트럼프 관세전쟁’과 비슷한 것이지만, 그때는 일본 일국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고 지금은 전 세계,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달리 말하면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겹친 ‘쌍둥이 적자’로 표출된 당시의 미국 자본주의 모순과 위기는 일본 한 나라에 대한 공세와 압박으로 어느 정도 완화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해야 할 만큼 더 위중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위기의 전면화다.

게다가 플라자 합의 당시 미국 경제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자본주의 주요 선발국 몇 나라와 손을 잡으면 당시 신흥국 일본의 산업정책 수정을 강요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그럴 힘이 없다. 지금은 그 주요 타겟이 동맹국 일본이 아니라 패권 경쟁국 중국이라는 점도 다르다. 일본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이 자체 생존에 결국은 유리하다고 판단했으나, 중국은 고분고분하지 않다.

주로 미국 시장을 겨냥한 수출에 기대면서 급속한 성장전략을 추구해 온 중국은 독일 일본 한국 등이 먼저 걸어 간 길을 뒤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할 게 없을지도 모른다. 중국공산당의 국가자본주의 압축 성장전략은 박정희가 밀어붙인 성장전략과 많은 점에서 닮았다는 지적들이 있다. 다만 그 엄청난 규모(덩치) 때문에 미국과 세계경제에 던진 충격파가 다를 뿐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플라자 합의 당시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총리는 무역수지, 경상수지 적자 불균형 시정을 강압한 미국의 요구에 맞춰 주기 위해 자신의 사적 자문기구인 ‘국제협조를 위한 경제구조조정연구회’에 보고서를 쓰게 했다. 마에카와 하루오 전 일본은행 총재가 좌장을 맡고 있던 연구회의 보고서(‘마에카와 보고서’)는 수출입과 산업구조의 근본 개혁, 금융자본시장 자유화 국제화 등을 추진해 미국산 제품 수입과 소비를 증대시켜 대미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들을 담고 있었다.

플라자 합의로 엔 시세가 2배로 뛰는 초강세가 단기간에 진행됐지만 일본의 미국산 수입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일본은 거액의 대미 무역흑자를 지속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작성된 마에카와 리포트는 일본 내수를 자극하기 위한 급진적 금융완화정책으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부풀어 올랐던 거품경제가 1990년대 초에 꺼지면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일본은 지금까지 별로 바뀐 게 없다.

일본기업들 역시 '잃어버린 30년'을 거치면서 돈벌이가 되지 않는 국내시장에 등을 돌려 해외투자에 치중하게 됐다. 2024년에 30조 엔(약 270조 원)을 넘긴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는 주로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벌어들인 투자 배당 덕이었다. 이제 적자로 돌아선 무역수지도 미국에 대해서는 도요타 등 자동차의 수출로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 미국이 시도하고 있는 것이 그 플라자 합의의 확대판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사정으로 볼 때 어느 정당 누가 집권을 하든 ‘관세전쟁’은 옳고 그름을 떠나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 책임을 미국에게만 덮어씌울 수도 없고, 덮어씌운다고 해도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미국을 키워 온 자유무역체제의 부정이라는 자폭적인 트럼프 관세전쟁의 창 끝은 결국 미국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내수 진작을 위한 각국의 과감한 구조개혁? 중국의 수출 위주 압축성장전략의 수정? 가능할까? 어쩌면 세계가 성장 자체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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