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관계 속에 맺어진 한국의 베트남 참전 거래
[베트남 참전 60돌] ⑭박정희 워싱턴 방문
박, 원조 삭감 않겠다는 '가시적 증거' 요구
존슨, 환대했지만 한국 기대치 낮추기 급급
한국에 식민 지배국 일본에 의지하라 강요
미국, 중간상 노릇하며 전투부태 파병 압박
'만족스러운 방문' '공동목표달성에 긴밀히 협조' '한국안전 위해 군경원 계속'. 박정희의 1965년 5월 워싱턴 방문을 보도한 한국 신문의 기사 제목이다. 한 신문은 박정희가 워싱턴 방문 기간에 밥과 김치를 먹을 수 있게 배려했다면서 백악관이 '사상 처음으로 의전 관례 깨뜨려'란 제목을 달았다. 존슨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듯한 독특한 스케치도 있었다. '백악관의 참모진에게 새벽 2시에 전화. 정력가 존슨'. 정력보다는 자신이 매사에 세부 사항까지 통제해야 하는 집착 증상이었다는 분석이 더 많다.
1965년 5월 박정희는 겉으로 환대를 받았다. 워싱턴과 뉴욕에서 퍼레이드도 했고, 두 도시에서 최고의 방문객에게만 주는 금 열쇠도 받았다. 존슨은 박정희에게 그가 아끼는 반려견을 선보이면서 친근감을 표시했다. 한 신문은 한국과 미국의 밀월 관계의 증표라는 듯, 존슨과 박정희가 백악관 경내를 걸으면서 속말을 주고받았다고 보도했다. 박정희 방미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대한민국 공보부가 제작한 영문 책의 제목은 ‘Bridge of Friendship and Faith’이다. 과연 1965년 5월은 한국과 미국은 ‘우호와 믿음의 다리’ 위에서 조우한 것일까? 아니다. 한쪽으로 기운 다리 위에서 거래했다.
박정희와 존슨의 첫 회담은 1965년 5월 17일 오후 5시쯤 시작됐다. 어젠다가 복잡하지 않아 만남은 짧았다. 5시 51분에 끝난 것으로 기록됐으니 40분 정도 걸렸다. 비밀문서로 분류됐던 이날의 대화 기록은 24년 전인 1989년 공개됐다. 2000년에 나온 미국의 외교문서 모음집 (FRUS: Foreign Relations of the United States)에도 들어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도 번역되어 있다. 한미 관계를 연구하는데 가장 많이 읽히는 문서일 것 같다. (존슨 박정희 대화 내용은 다음 회에 자세히 다룬다.)
존슨과 박정희의 공식 대화 내용을 분석하기에 앞서 구해야 할 답이 있다. 대화 기록 초본에서 미국 측이 수정한 문장과 통째 들어낸 문단이 있다. 무슨 신경이 쓰여 초록을 수정했나? 이 질문은 당시 미국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치·외교 문제를 다루는 역사학도에게 필요한 연구 방식이 있다. 먼저 핵심 자료를 찾아내 분석한다. 다음은 그 문서와 관련된 주변 자료를 본다. 이어서 문서들의 행간을 파악하고, 끝으로 관계자들이 떼어내거나 혹 감춘 내용을 찾아 분석한다. 지금 이 네 단계 연구 방식의 마지막을 하려 한다.
다음은 대화록의 첫 장 수정 부분의 원문이다.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투쟁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지원을 축하하며, 베트남에 대한 한국의 지원으로 한반도에 현재 수준의 군사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며, 1954년 (발효된 한미 방어) 조약에 명시된 (미국의) 공약에 따라 한국의 안보가 피해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President Johnson congratulated President Park on his assistance in the struggle in Viet-Nam, and said that Korean aid to Viet-Nam would mean that there would be kept in Korea a military strength equivalent to that at present so that, in accordance with out commitments under the 1954 treaty, Korean security would not suffer."
먼저 한국의 베트남 참전이 "축하 (congratulate)" 받을 성취인지는 여기서 따지지 않기로 한다. 나중으로 미룬다. 위의 문장 (파란색)은 아래(붉은색)처럼 수정됐다.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남베트남 투쟁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지원을 축하하며, 그 지원과 관련하여 1954년 조약에 따른 (미국의) 공약에 따라 한국의 안보가 침해되지 않도록 현재 수준의 군사력을 한국에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President Johnson congratulated President Park on his assistance in the struggle in Vietnam-Nam, and said with reference to that aid, that we would keep, in Korea a military strength equivalent to that at present so that, in accordance with out commitments under the 1954 treaty, Korean security would not suffer."
무엇이 달라졌나? 문장이 간결해졌다. 동시에 발언의 뉘앙스가 바뀌었다. 원문은 한국이 베트남을 지원하니 미국은 한반도에서 현재의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란 뜻으로 읽힌다. A (베트남 파병)와 B(한반도의 군사력)가 밀접하게 연계됐다.
수정문은 한국의 도움과 관련해서, 한반도에서는 현재의 군사력이 유지된다는 뜻이다. 풀어 보면 미국은 박정희가 베트남 파병이 한반도에 미국의 군사력을 묶어 둘 수 있는 방편으로 판단하지 않도록 연결고리의 가능성을 없애려 들었다.
존슨은 이런 조언까지 들었다. 한국은 박정희의 방문 기간에 미국으로부터 추가 양보(원조)를 끌어내기 위해 베트남 추가 파병 문제를 이용하려 들 것이라 했다. 그러니 여기에 휘말리지 말고, 보상에 관한 구체적인 논의를 피해야 한다고 했다. ("the Koreans had hoped to use the question of further troops in order to pry major additional concessions out of the U.S. Government during the Park visit; for this reason we should avoid specific discussions at this point.") 가벼운 표현으로 베트남 때문에 한국에 뜯기지 말라는 경고였다.
다음은 잘려 나간 문단이다.
"존슨 대통령은 박 대통령의 지도력이 의회와의 원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원조 프로그램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원조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늘 지적해 왔다. 하지만 박 대통령 정부(의 성과)와 베트남에서의 입장(도움)은 원조가 강한 동맹을 구축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강력한 증거다."
“President Johnson reiterated that Park’s leadership had helped him very much in his dealings with Congress on aid problems. The critics of the aid program always were trying to point out that aid did not produce results; but Park’s government and its stand in Viet-Nam was a very strong indication that aid could be well used in building up strong allies.”
덕담으로 들을 수 있는 이 발언을 왜 지웠을까? 다시 또 존슨의 정책 보좌관들의 치밀함을 읽을 수 있다. 첫째, 잘려 나간 존슨의 발언대로라면 한국에 대한 경제 원조는 더 늘리는 게 합리적이다. 미국의 도움으로 강해진 한국이 이제는 도움을 제공하는 미국에 군사적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많이 원조를 제공해 더 강해지면 더 큰 베트남 파병도 가능할 것 아닌가?
이유가 또 하나 있다. 한국의 베트남 참전과 미국 원조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존슨이 인정했다. 더욱이 미국의 원조 프로그램의 축소를 추진하는 미 연방의회를 설득하는데 한국이 일종의 마케팅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베트남 참전=원조 지속'의 등식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 발언은 자기 부정이다. 존슨과 박정희는 남베트남이 자유세계 전체를 지키는 마지노선이라 수없이 외쳐왔다. 그래서 인도차이나와 한반도의 연계성을 인식한 박정희가 파병을 결정했다는 주장을 펴왔다. 자유세계를 위한 순수한 희생이란 주장인데 설득력이 없었다.
이렇듯 미국은 한국군 파병을 원했다. 동시에 박정희가 광범위한 반대급부를 요구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했고, 파병과 관련해서 한미간의 서로 다른 해석의 공간을 없앴다. 아무리 당시 한국의 언론들이 1965년 5월을 '박정희-존슨 밀월'의 시작으로 묘사했어도 바뀌지 않는 사실이 있다. 우방, 아니 혈맹이라도 미국의 도움을 당연시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강하다. 미국은 준 만큼 받는다고 해도 된다. 미국의 이런 원칙은 박정희가 미국에 오기 전에 정해졌고, 그도 알았다.
어떤 나라든 두 나라 정상의 만남은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의제를 다룬다. 한국 같은 분단국가, 여러 강대국에 둘러싸여 이익 충돌 가능성이 주는 압력을 견뎌야 하는 나라, 치열한 대립과 마찰의 소재가 많은 한국. 이런 국가의 지도자가 중요 사안 없이 해외 순방에 나선다면 반국가 행위가 분명하다. 1965년 5월의 존슨과 박정희의 만남은 그들의 앞날과 직결되어 있었다. 특히 박정희는 질문을 두 개 들고 갔다. 미국에 한국은 무엇인가? 일본은 미국에 무엇인가?
백악관은 철저히 준비했다. 한데 따지고 보면 정책 측면에서는 준비할 것이 많지 않았다. 존슨 정부는 이미 한국의 패를 다 파악해 놓고 있었다. 한국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미국이 한국에서 멀어지지 않는다는 증표는 경제, 군사 원조였다. 성서의 표현을 빌리면 돈이 있는 곳에 마음도 있는 법이다. 원조가 줄면 마음이 떠나고 있는 것이라고 박정희는 우려했다.
박정희의 마음을 미국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미국의 원조가 계속될 것이라는 가시적 증거를 바란다. 이를 통해 미국이 한국을 일본에 떠맡기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기 원한다. 이 확신이 있어야 박정희는 한일협정 인준을 반대하는 비판 세력을 무력화할 수 있음을 존슨은 알았다. 딜에 앞서 한국이 얼마나 간절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조급함은 미국이 동기를 제공했다.
"President Chung Hee Park has come to Washington for one paramount reason: he seeks the strongest possible indication from us, both through our courtesies to him and through tangible evidence of continuing U.S. assistance, that we have no intention of abandoning Korea to Japanese control in the wake of a Japan-Korea settlement."
독립전쟁에서 승리해 영국을 물리친 미국은 이후 식민 통치를 경험해 보지 못했다. 20년 전까지도 제 나라를 식민 통치했던 일본을 아시아의 새로운 전주(錢主)와 동맹국으로 받아들이라는 주문이 한국에게 어떤 짐인지 몰랐다. 정치적으로나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이 정책을 미국은 더는 끌 수 없다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미국이 한국의 손을 늘 같은 악력으로 잡아줄 것이라는 확신을 원하는 한국에게 미국은 어떤 태도를 보였나? 4년 전 박정희가 케네디에게 요구했던 '속 시원한' 답을 주었나? 존슨 정부는 박정희에게 알쏭달쏭한 반응을 보였고, 그래서 박정희는 더 불안했다. 다음이 좋은 예다. 박정희 방문에 맞추어 존슨을 위해 준비한 백악관 브리핑 자료다.
존슨 정부는 한국에 경제 원조를 지속할 것임을 확인시켜 줄 준비가 되어 있다. 향후 몇 년간 한국에 제공할 개발 차관을 1억 5000만 달러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도 알고 있듯이, 미국은 지원 규모를 계속 축소할 계획이다. 한국의 곡물 생산 자급률이 증가함에 따라, 미 공법(PL 480)을 통해 제공하는 잉여 곡물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끝으로, 박정희가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아직 수립 초기 단계로 이에 대해서 언급하기가 너무 이르다.
"We are prepared to confirm continuation of our economic aid to Korea. We expect to increase our Development Loans to Korea ($150 million over the next few years). But, as the Korean Government knows, we expect to continue to reduce supporting assistance. With increasing Korean self-sufficiency in grain production, we expect to reduce surplus food grain provided under Title I of PL 480. It is too early to comment on the Second Five-Year Plan, which is still in the early stages of formulation."
설명이 복잡한데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미국은 경제 원조의 방향을 무상 원조에서 개발 차관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렇지만 차관도 원조는 원조이니 한국 경제에 관한 관심과 지원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또 한국의 곡물 생산 자급률이 늘어나니 식량 지원은 줄이는 것은 합리적이다.
박정희가 놀랄 분석이고 정책 조언이다. 한국 정부는 1968년까지 곡물의 완전 자급자족 목표를 달성하고, 그 다음해부터는 남은 곡물을 수출해 외화를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농사는 계획과 전망을 무색하게 만든다. 홍수와 가뭄에 취약한 한국의 농경지는 증산 추세를 예측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농부들로부터 쌀을 낮은 가격으로 수매했다. 그칠 줄 모르는 비와, 논바닥을 가르는 뜨거운 태양, 여기에 수매 가격을 통제하는 정부. 이래서 농부들의 삶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식량 자급자족 운운한 미국은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끝으로 박정희는 2년 뒤인 67년에 시작되는 제2차 경제 5개년 계획을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머지않아 완전한 자립경제를 달성할 것을 기약하면서 제2차 계획 기간 동안 식량의 자급, 공업생산의 배가 및 수출의 증대로써 국민소득을 크게 증가하며 국제수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자립경제의 기반을 더우 굳힐 것을 꾀한다." 박정희가 요약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목표였다. '산업구조 근대화, 자립경제의 확립'이 캐치프레이즈였다.
물론 미국의 협조가 필요했다. 위 백악관 브리핑에 나온 'The early stage of formulation'은 외교 수사이다. 한국의 경제 개발에 대해서 미국의 만트라(주문)는 한결같은 삼박자였다. '건전한 통화 및 재정 정책과 물가 안정화 (sound monetary and fiscal policies and the stabilization of price levels).' 경제의 기본 체질을 강화하란 주문인데, 급한 마음은 기본을 무시하기 일쑤다. 팽창이 유일한 선이 된다.
미국이 한국을 더욱 일본에 의지하도록 할 것이란 우려에 대해서도 미국의 반응은 애매모호했다. 존슨을 위한 브리핑 자료에 한국의 걱정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라는 모범 답안이 있다. 한국은 워싱턴만 바라보지 말라! 도쿄를 자주 쳐다보아야 한다.
한국이 일본과 관계 정상화를 해도 미국의 원조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원조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 계속해서 경제 자립의 자구책을 최대 한도로 찾으면서(after maximum self-help efforts of all kinds), 일본 또 그 외 다른 나라에서 원조(in-take from Japan and other areas)를 받으라.
한국 경제는 더 이상 미국의 무상 지원에 의지할 수 없었다. 앞으로 수년간 미국의 판단에 따라 프로젝트별로 제공될 1억 5000만 달러 차관으로 버텨야 한다. 미국이 빌려주는 돈은 한국 마음대로 쓸 수가 없었다. 경제에 공백이 생기면 당시 놀라운 수준 자본 축적을 하는 일본을 통해 메우고, 동시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존슨을 위한 브리핑 자료에는 한일 공조에 대해 민감한 정책 제안이 들어 있다. "우리는 또한 한국 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와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일본을 핵심 회원국으로 하는 (자본)기부국 간 국제 협의체 구성을 장려하고 있다. 서독과 세계은행(IBRD)도 제안된 그룹에 회원으로 포함될 것이다. (We are also encouraging formation of an international consultative group of donor nations with Japan as a key member to exchange information and views on Korean assistance programs; West Germany and the World Bank (IBRD) will also be members of the proposed group.)"
한국의 개발 정책과 관련해 일본의 자본, 지도, 또 조언을 받으라는 말이다. 한일 관계 정상화는 일본과 한국 '두 보완적 경제와 두 지리적 동맹국 사이에 새로운 상호 생산적 관계'를 가져올 것이라 했다. ("A settlement should bring a new and mutually productive relationship between two complementary economies and two natural allies.")
한일조약은 나라 파는 일이라는 비난이 나올 만했는데, 미국이 중간상 노릇을 했다. 이 거래가 끝나면 전투부대를 베트남으로 보내는 것도 잊지 말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