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그러나 따로 가는 러시아와 중국
유례없는 우호 과시 속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최근의 국제정세만 보면 러시아와 중국은 마치 ‘영원한 친구’, ‘전략적 동반자’처럼 보인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서방 제재로 막힌 러시아 경제에 물자와 소비재를 공급하며 숨을 쉬게 도와주고 있다. 반대로 러시아는 중국에게 민감할 수밖에 없는 홍콩 문제, 위구르 인권 문제, 대만 관련 이슈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역사상 더 이상 가까울 수 없는 두 나라의 밀월관계
세계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지 않은 나라가 많지 않은데 중국은 그중 하나다. 서방 기업들이 빠져나간 러시아 시장에 중국 브랜드들이 대거 진출했고 자동차부터 가전, 식료품까지 중국산으로 대체되고 있다. 러시아도 가스와 석유의 유럽 수출이 막히자 중국에 팔기 시작했다. 양국 정상들이 만날 때마다 ‘불변의 우정’, ‘전천후 전략적 협력’ 같은 표현들이 쏟아진다. 푸틴 대통령이 "중러 관계가 지금처럼 좋았던 적은 없었다"고 말한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7세기, 러시아가 자국 영토를 태평양 방향으로 확장하던 시기에 중국과 충돌했고 결과적으로 러시아가 승리했다. 오늘날 중국 내 일부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러시아 극동 지역이 “원래 중국 땅이었으니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중국 정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적은 없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런 인식이 앞으로 양국 관계의 잠재적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20세기에도 중러 관계는 그리 우호적이지 않았다. 1920년대에는 소련이 장제스를 지원했지만 1927년에는 관계가 단절되어 모든 교류가 중단되었다. 1930년대 일본이 중국을 침략하자 소련은 다시 중국을 지원했고 이후 마오쩌둥과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1960년대부터 다시 갈등이 깊어지며 단교로 이어졌다.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양국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1989년,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가 중국을 방문하면서부터 양국은 화해 모드로 전환되었고 2000년대 들어 푸틴이 집권하면서 관계는 본격적으로 개선되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중러의 밀착된 모습은 2014년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이후 서방의 강도 높은 경제 제재를 받으면서부터 조성되었다.
“중국이 우리를 훔쳐보고 있다” NYT가 보도한 러 연방보안국 문서
하지만 이런 표면적인 모습 뒤에는 꽤 복잡한 현실이 숨어 있다. 정부 차원의 메시지와 일반 국민들의 인식 사이에는 꽤 큰 온도차가 존재한다. 예전에도 러시아인들의 중국에 대한 태도는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나고 자란 블라디보스토크처럼 중국과 가까운 동부 지역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많았고 러시아 서부 지역에서는 비교적 중립적이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양국 간 교류가 많고 경제적으로 협력하는 부분도 많다. 실제로 지금 러시아 자동차 시장은 거의 중국 브랜드들이 장악한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러시아 인터넷 여론을 보면 조롱과 농담이 넘쳐난다. “품질은 별로인데 가격도 싸진 않다”는 평가가 흔하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기대 이하라는 인식이다.
얼마 전에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흥미로운 문서를 하나 입수해 보도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내부에서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서였고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신빙성이 높다고 평가되었다. 그 문서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의 대러시아 스파이 활동이 훨씬 활발해졌고 중국 내부의 러시아 관련 언론 보도나 여론도 꼭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문서에 지적된 중국의 주요 전략을 간단하게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러시아 기술 사냥: 유학생, 연구자, 전문가 등을 적극 유치해서 기술 흡수.
▽ 러시아 극동지역에 대한 야심: 블라디보스토크 및 러시아의 극동이 옛 중국 땅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한 관심.
▽ 중앙아시아 영향력 확대: 러시아와의 이해관계가 직접 충돌할 수밖에 없는 지역.
▽ 전쟁 경험 분석: 드론 운용, 군사 기술 개발 등 새로운 군사적 노하우를 연구 중.
중국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중국 내 러시아에 대한 여론이 나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다고 보긴 어렵다고 한다. 서로 견제하고 의심하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고 지금은 임시적으로 가까워졌지만 장기적으로는 목표가 다르기 때문에 진짜 ‘파트너’라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이는 사실 러시아의 일반 국민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영원한 친구’라면서 무비자 입국은 노
상징적인 사례가 하나 있다. 중국은 코로나 이후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 왔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를 비롯해 북미, 남미, 그리고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까지 총 74개국 국민이 30일 동안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전략적 파트너’니 ‘영원한 친구’니 말만 무성한 러시아는 여전히 사전에 비자를 받아야 중국에 입국할 수 있다. 진정한 동맹국이라면서 이런 대우를 할 수 있을까?
결국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지금은 상황상 가까워진 사이지만 BRICS나 상하이협력기구(SCO) 같은 기구 내에서도 양국의 목적과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점이 올해의 브라질 BRICS 회담을 비롯해서 여러 번 드러난 적 있다. 공동의 가치에 기반한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구조다. 지금은 이해가 맞아 떨어져서 함께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각자의 길로 갈 가능성이 높은 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