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건 AI디지털교과서 아닌 AI교육
AI시대 살아갈 우리 아이들을 진정 위한다면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최근 오보로 판명되면서 몇 시간 만에 번복되긴 했지만 새 정부 AI디지털교과서(이하 AIDT) 정책이 교육계를 긴장시켰다. 교육부장관 후보의 인사청문 준비 출근 일성이 AIDT 긍정적 검토였던 것이 이런 교육계 반응에 기름을 부은 게 아닌가 싶다.
이재명 대통령 선거공약은 AIDT를 폐지하고 ‘교육자료화’하는 것이었다. 이는 교육을 고민하는 거의 모든 이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도 이를 입법화했으나 윤석열 정부 거부권 행사로 폐기되었다가 다시 발의되어 현재 교육상임위를 통과하고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1년 반만에 뚝딱 만들어낸 수준 미달 AI교과서
‘AI시대 AI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필요하고, 교과서를 아예 AI로 만들어 쓰면 더 확실한 AI교육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주호 윤석열 정부 교육부장관은 이런 다소 표피적이고 단순한 논리로 국민설득이 가능하다 믿고 자신만만하게 AIDT를 밀어붙였다. ‘세계 최초 AI디지털 교과서’, ‘맞춤형 개별화교육’을 외치며.
2023년 6월 「AI 디지털교과서 추진방안」을, 두 달 만인 8월 개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며 AIDT정책을 시작한 교육부는 단 1년 6개월 만에 뚝딱 AIDT를 만들어내 전국 모든 학교에서 사용하도록 강제하려 했다. 우리나라 AI기술이 교육부가 그렇게 강조한 세계 최초 AI교과서를 이렇게 초단기간에 만들어낼 정도였나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놀라지 마시라. 하도 궁금해 AIDT 연수에 참석해 보았다. 당시에는 완성본이 없어 프로토타입이었지만, 학습지 업체들이 이미 상용화하고 있는 디지털 학습기기 수준에 단지 학생 학습이력 통계로 교사가 전체 학생 문제풀이 상태를 확인할 자료가 생성된다는 점이 부가되었을 뿐이다. 맞춤형 개별화교육이라면서 단순 구분된 난이도에 따라 문제풀이를 반복하는 수준이다.
이는 거의 빛의 속도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AIDT 제작일정의 필연적 결과다. AI 교과서의 교육적 효과논의는 차치하더라도, ‘무엇이 AI교과서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커녕 최소한의 교육전문가와 AI전문가 내 논의조차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교과서부터 만들어냈으니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격도야’ ‘민주시민 자질 함양’ 사라지고 ‘클릭’만 남는 교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AIDT의 수준에 있지 않다. AI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교과서’라는 것이 진짜 문제다. 교과서는 아이들 학습의 기본교재다. 국가가 정한 공식 교육과정을 전달하는 핵심매체다. 교과서는 여러 교재 중 하나지만 전국 공통의 필수교재다. 전국 1만 1800여 모든 초·중·고 학교에서 500만이 넘는 우리 아이들이 12년 동안 사용한다.
윤석열 정부 이주호 장관은 전국 모든 아이들이 대부분의 과목을 AIDT로 공부하게 할 계획이었다. ‘디지털 대전환시대 교육 현장을 변화시킬 중요한 전환점’이라며 AIDT 도입을 추진했다. 교육계, 무엇보다 교사들, 그리고 학부모와 사회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도입 첫해 적용 교과목을 축소하고 속도를 좀 늦췄을 뿐이다. 이제 정치상황이 변해 계획 실현이 어려워졌지만, 이주호 장관 계획대로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국 모든 아이들이 학교 수업시간에 종이교과서 대신 디지털 기기를 앞에 놓고 학습을 한다. 이제 거의 하루 종일 종이책 교과서를 ‘읽는’ 대신 기기 화면을 ‘보고’, 무언가를 ‘쓰는’ 대신 ‘클릭’을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 설명을 듣고 옆 친구와 대화하는 대신 기기화면에 집중해야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다.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는 이제 교실에서 사라지거나 보조적인 활동이 된다.
유초중등교육은 지식을 매개로 관계맺기를 배우는 일이다. 공교육을 보통교육이라 하며 교육기본법에 ‘인격도야,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 자질 함양’을 목적으로 규정한 이유다. 심지어 지식습득 그 자체조차 교사가 설계한 수업설계에 따라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과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즉 관계맺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학생은 인쇄 교과서와 교사의 전문 지식을 통해 배워야 한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교재는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교사 자신이다. 교사는 교육과정을 해석하고 수업을 설계하며 이를 실행하는 주체다. 같은 교과서로 가르치지만 전국 모든 교실 수업이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AIDT 전면화로 학생과 교사와의 상호작용은 사라지고 교사는 아이들이 기기로 학습하는 일을 지원하고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AIDT에서 설계되어 이루어지는 아이들 간 디지털 협력학습도 네트워크를 통한 간접적 관계형식을 통해 이루어질 뿐이다. 이제 교실에는 관계를 통한 학습활동은 사라지고 기기와 각각의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디지털 역량 격차가 또 다른 학습격차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현재 불완전한 학교 디지털 교육환경이 모두 해결된다고 해도 그렇다는 말이다.
또한 디지털 기기 활용학습이 문해력과 기초학력을 저하시킨다는 연구결과나 사례들은 널려있다. 미국 카르페 디엠 차터스쿨의 실패, “(학생들은) 인쇄된 교과서와 교사의 전문 지식을 통해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왕립 카롤린스카 연구소와 국가적 차원에서 학교도서구입비를 획기적으로 증액하기로 한 스웨덴.
디지털 미디어로 정보를 입력받을 때와 종이책(문서)을 읽을 때 전혀 다른 형태의 뇌 활동이 일어나고 디지털 의존 교육이 피상적 학습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 과학자, 교육학자, 뇌과학자들의 많은 연구들. 학습활동에서 디지털 사용 시간이 1시간 증가함에 따라 수학점수가 우리나라는 3점, OECD 평균은 4점 하락한다는 디지털 자원 사용 시간과 수학 성취 관계를 밝힌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2023 디지털교육백서’.
AIDT 아니라 디지털 활용수업 가능한 환경 조성이 우선
스마트폰을 신체 일부처럼 여기고, SNS가 중요한 소통방식이며, 책이나 사전 대신 유튜브에서 거의 모든 것을 검색하는 아이들이다. 오히려 전 사회적으로 지나친 디지털 기기 의존도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이 외에도 AI교과서를 전체 학생들이 사용할 때 발생할 학생 개인정보 보호 문제, 매해 수천 억에서 조 단위가 예상되는 교과서 예산 부담 문제도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AIDT 연수 참여교사 1만 명 정보유출 사태가 일어난 것이 먼 옛날이 아니라 작년 일이다.
AI시대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디지털 기기와 문화에 친숙하다. 따라서 교사들은 교육활동 중 교육효과를 높이기 위해 ‘필요에 따라’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때로는 AI 도구를 수업에 교육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시대적 흐름이기도 하지만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디지털 활용수업에 익숙해진 많은 교사들이 이미 실제 수업에서 이를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오히려 필요한 건 AIDT가 아니라 교사들이 보다 자유롭게 디지털 기기와 자료들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일이다. 교사들의 디지털 활용교육 연구와 학습에 대한 충분한 지원, 학교 디지털 교육환경을 제대로 구축해주는 일이 그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학교 Wi-Fi 여건 개선이 이루어졌지만, 여러 학급이 동시에 디지털 기기 활용수업을 하기에는 아직도 물리적 여건은 턱없이 부족하다.
AI를 교육에 적용하거나 활용하는 문제는 결코 ‘AI시대=AI디지털교과서’라는 단순도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AI의 교육적 효과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와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가히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인류사적 대전환이라 할 만한 AI시대에 인간의 삶은 어떻게 변화하며,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AI에 종속되지 않는 인간을 키우는 교육
AI디지털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에 힘 빼는 대신 오랫동안 고착되어 온, 현재와 같은 분과형 교육과정이 적합한지, AI가 인간보다 더 어려운 수학문제를 더 빨리 풀어내며 언어장벽을 허물고 새로운 소통방식이 일반화될 시대에 소위 주요과목이라 여겨 온 수학과 영어 혹은 외국어 교육은 어떻게 변화해야 될지, 정보가 가치원천이 되고 정보홍수에 무한노출 되는 시대에 미디어 리터러시를 어떻게 갖추게 할지 등등 결코 가볍지 않은 일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미 현재가 되어버린 미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전화번호 외는 기능을 퇴화시키고, 네비게이션이 지도를 읽고 길 찾는 능력을 퇴화시킨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문제가 우리 아이들 앞에 놓여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어떤 능력을 퇴화시킬지, AI에 종속되지 않을 인간의 고유한 역량과 요소는 무엇이며 어떻게 준비해야 될지 등 AI시대를 살아갈 준비를 시켜주어야 할 교육이 가장 먼저, 가장 깊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유초중등교육은 AI전문가를 기르는 교육이 아니다. AI시대를 살아갈 시민에게 요구되는 준비를 시켜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단순히 기능과 기술 문제로 접근할 일도 아니다. 교육 패러다임을 전면 전환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AI 발전 속도에 비하면 지금도 이미 늦었다. AI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소모적 논쟁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아야 한다. AIDT 대신 AI시대 교육을 이야기 하자.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