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한다, 30년 기자인데 언론 윤리를 몰랐다

'방송강령'에 명시된 '보도 준칙' 이제야 떠올라

기자협회 '윤리헌장' 읽어본 기자 몇 명일까

언론 윤리 준수해 '기레기' 사라지길 소망한다

2025-07-02     송요훈 편집위원(전 MBC기자)

고백할 게 있다. 기자로 30년 넘게 밥을 먹고 살았지만, 언론 윤리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입사 이후 언론 윤리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고, 받으라는 지시나 권유를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기자로 살면서 내가 배운 언론 윤리는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우스개 삼아 들려준 ‘기자의 5대 금기어’가 전부였다. 거두절미하지 말라, 침소봉대하지 말라, 아전인수하지 말라, 견강부회하지 말라, 혹세무민하지 말라... 그것이 기자가 절대 해서는 금기사항이었고, 재치 넘치는 누구는 남이 기사를 쓴다고 줏대 없이 따라 쓰는 부회뇌동도 추가해야 한다고 했었다. 그러면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낄낄거리곤 했었다.

기자 생활 20년이 훌쩍 지났을 때, 미드 <뉴스룸>을 보다 얼굴이 화끈거린 적이 있었다. 드라마 속의 뉴스룸에선 제보자는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혹시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건 아닌지 검증하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보도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하는 취재원을 익명으로 보호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혹시라도 불순한 의도가 있어 언론을 이용하려는 건 아닌지 기자와 보도 책임자가 토론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다 얼굴이 화끈거린 건, 기자인 나는 현실에서 단 한 번도 그런 걸 목격한 적이 없어서였다.

MBC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맡은 일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절의 MBC 보도가 공정했는지 따져보는 일이었다. 그때의 MBC는 시청자들에겐 ‘엠빙신’이라는 조롱으로 불렸고, 신뢰는 땅바닥을 뒹구는 정도가 아니라 땅속으로 파고들었다는 자조가 팽배했었다. 손에 피 묻히는 일이라 꺼렸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 그 일을 맡고 말았는데, 막상 맡고 보니 큰 고민에 부딪혔다.

그 고민이란 이런 거였다. 나는 어떤 보도가 불공정하다고 하지만, 그 보도를 한 기자나 그 보도를 승인한 부장, 국장은 공정하다고 하면 무어라 반박해야 하는가. 혹시 정치공작을 하던 국정원 쪽에서 자료를 받아 보도한 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 취재원 보호를 내세워 밝힐 수 없다고 하면 뭐라고 추궁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다 퍼뜩 떠오른 게 미드 <뉴스룸>이었고, MBC는 노사 합의로 ‘방송강령’을 제정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지난 2021년 1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주관·후원으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언론윤리헌장 선포식을 열었다. 윤리헌장은 모든 언론인이 지켜야 할 9가지 핵심 원칙을 담았다. 기자협회보 사진

방송강령을 뒤져보니 거기에 다 있었다. 취재와 보도를 할 때 기자들이 준수해야 하는 ‘보도준칙’이 있었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에서 보았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과 제보자의 신뢰성을 검증해야 하는 이유와 익명이 아닌 실명으로 보도해야 한다는 보도의 원칙이 거기에 글자로 쓰여 있었다. 기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 글자로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그 방송강령은 노사 합의로 제정되었기에 사규와 같은 효력이 있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징계를 받는다. 공정한 보도인가 하는 추상적 가치가 아닌 보도준칙을 지켰는가 하는 행위만 따져보면 된다고 생각하니 모든 고민이 일거에 해소된 것 같았다.

경찰이 피의자를 체포할 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해야 한다. 안 하면 불법이다. 경찰관 복무수칙에 의무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도준칙도 그렇다. 기자가 보도준칙을 준수하지 않으면 불법행위를 저지른 거나 마찬가지다. 검사는 피의자를 재판에 넘길 때 그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나 자료를 같이 넘겨야 한다. 그것이 검사의 객관 의무다. 그러한 객관의 의무는 기자에게도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이재명 정부의 국정기획위원회가 각 부처의 업무 보고를 받던 중에 검찰과 방통위, 해수부의 보고는 도중에 중단시켰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떤 매체는 국정기획위가 보고하는 공무원들에게 호통을 쳤다느니 군기 잡기를 한다느니 갑질을 한다느니 하며 국정기획위를 비판한다. 국정기획위원회가 검찰, 방통위, 해수부의 업무 보고를 중단한 건 사실이다. 그런데, 업무 보고의 내용이 부실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수사와 기소의 완전 분리를 공약했는데, 검찰은 수사권을 놓지 않으려고 했단다. 윤석열 정권에서 방송과 방통위의 독립은 와해되다시피 했는데 방통위의 보고에는 반성도 개선 방안도 없었다 하고, 해수부의 업무 보고에는 부산 이전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 사실상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 사실을 같이 보도해야 독자들은 국정기획위가 업무 보고를 중단시킨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 언론 윤리는 그런 보도를 ‘사실 보도’라 한다.

한국기자협회의 윤리헌장에는 정확한 사실을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맥락으로 전달하고, 정보원과 취재 과정 등을 가능한 한 투명하게 알리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평무사한 자세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기자협회의 윤리헌장을 읽어본 기자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내가 보기에는 1%도 안 될 것 같다. 30년차 기자가 되도록 글자로 된 언론 윤리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나처럼. 

 

우리 언론의 보도에선 특정 정파에 기울어진 보도,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도, 갈등을 조장하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이는 보도, 대중의 분노를 조장하는 괴벨스식 보도가 횡행한다. 문재인 정부 당시에 조선일보가 확산시킨 ‘혼밥 외교’ 보도가 그러하다. 심지어 정치공작에 동원된 듯한 보도도 있었다. 검찰이 국정원 댓글공작을 수사하던 박근혜 정부 초기에 나온 조선일보의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보도’가 그러하다. 그 모두가 ‘언론 윤리’를 성실하게 준수한다면 활자화할 수 없는 보도들이다.

기자들이 잘못 알고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취재원 보호가 그렇다. 내부고발자처럼 그 사람이 아니면 내부의 깊숙한 비리를 알 수 없고, 누구인지 드러나면 신변의 위협이나 심각한 불이익이 예상될 때만 적용하는 게 ‘취재원 보호’다. 미드 <뉴스룸>에도 나오듯이 취재원 보호는 기자가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기자와 보도 책임자가 상의해서 결정하는 거다. 기사에 ‘관계자’로 대표되는 익명을 남발하고 그 익명이 누구냐고 물으면 취재원 보호를 이유로 밝히지 않는 건, ‘취재원 보호’라는 언론의 윤리를 잘못 알고 오남용하는 것이다.

정보든 자료든 의견이든 출처를 밝히는 실명 보도가 언론의 윤리이고 보도의 기본 원칙이다. 조선일보의 ‘채동욱 혼외자’ 특종 보도에는 박근혜 청와대와 국정원이 연루되어 있다. 청와대의 사주를 받은 국정원이 검찰총장의 뒷조사를 했고 조선일보가 총대를 메고 폭로했다는 것이 언론계에 알려진 정설이고 검찰의 수사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에 ‘뒷조사 자료’를 제공한 제보자는 취재원 보호의 대상일까? 아니다. 그 취재원은 내부고발자도 아니고 공익제보자도 아닌 정치적 의도가 있는 제보자이고 조선일보의 보도는 채동욱 검찰총장을 몰아내려는 정치공작의 일부였다고 봐야 한다. 그런 경우의 취재원 보호는 언론 윤리를 오남용하여 정치공작에 연루된 범죄자를 은닉하는 불법행위라 하는 게 옳다.

기사를 읽다 보면 왜 지금 뜬금없이 이런 보도를 할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MBC의 안철수 논문 표절 의혹 보도가 그러했고, 2013년 박근혜 정부 초기에 나온 조선일보의 혼외자 보도가 그러했다. 기자들에게 언론 교과서라 불리는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는 그런 보도를 할 때는 독자, 시청자들에게 정보를 입수한 경위와 사실 여부를 확인한 과정 그리고 왜 보도하기로 결정했는지 등을 독자들에게 설명하라고 쓰여 있다. 그래야 독자, 시청자들이 언론의 보도를 신뢰할 수 있다는 거다.

국정기획위원회의 업무 보고 중단을 ‘호통’ ‘공무원 군기 잡기’ ‘갑질’이라고 왜곡하는 보도가 기자로 살아온 내 눈에는 이재명 정부 5년을 문재인 정부 시즌 2로 만들겠다는 ‘예고편’으로 읽혔다면 과민할 걸까. 맥락이 무시된 비판과 뜬금없는 의혹 제기와 누군가 깃발을 들면 기자들이 이리떼처럼 몰려들어 물고 뜯던 ‘마녀사냥’이 재현될 거라는 전조로 읽혔다면 기우일까.

나는 지금 기자들이 언론의 윤리를 성실하게 준수하면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을 걱정하고 있다. 언론 윤리가 독자들을 홀리는 언론사의 장식품이 아니라 혹세무민의 여론 조작질을 예방하고 차단하는 본연의 기능을 하게 되기를. 그리하여 기자들이 더 이상 ‘기레기’라 불리지 않게 되기를. 이재명 정부 5년은 언론이 언론답게 정상화되는 시간이 되기를. 그것이 기자로 살아온 나의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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