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론테 자매, 사회적 억압 이겨낸 '영국 문학의 어머니들'

빅토리아 시대에 던진 '문학적 수류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이야기 전면에

여성의 지위에 대한 인식 전환된 계기

교육개혁·지역차별 해소 등 영향 여전

2025-06-21     김성수 시민기자

19세기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브론테 자매(Bronte Sisters)는 아일랜드계 목사의 딸로 태어나 당시 변방인 영국 북부에서 자랐다. 그러면서 이들은 당시 영국남부 중심으로 이뤄지던 기존 영국사회의 틀과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들이 남자 필명을 쓴 것도, 어떻게 보면 당시 사회적 편견과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 사이에서 찾은 절묘한 타협이었다. 마치 내가 영국과 한국 사이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처럼.

영국 북부 요크셔의 하워스(Haworth)라는 작은 마을. 지도에서 찾기도 힘든 이곳에서 19세기 영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세 자매가 자랐다. 샬럿(1816-1855), 에밀리(1818-1848), 앤(1820-1849). 이들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출신 목사였고,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평범하다 못해 불우하기까지 한 환경이었지만, 이 세 자매는 영국문학사에 핵폭탄급 영향을 남겼다.

 

왼쪽부터, 앤, 에밀리, 샬럿 브론테(위키피디아)

남자 이름으로 변장한 문학계 '007들'

1840년대 영국은 여성이 소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스캔들이었다. 그래서 브론테 자매는 교묘한 전략을 썼다. 남자이름으로 변장한 것이다. 샬럿은 '커러 벨(Currer Bell)', 에밀리는 '엘리스 벨(Ellis Bell)', 앤은 '액턴 벨(Acton Bell)'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 성은 모두 '벨'로 통일해서 "아, 벨 형제들이구나"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마치 문학계의 007처럼 정체를 숨기고 활동한 셈이다.

웃긴 건, 당시 비평가들이 이 '벨 형제들'의 작품을 두고 "너무 거칠고 야만적이다"라거나 "남자답지 못하다"고 혹평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성이 쓴 소설을 남성의 작품으로 알고 "남자답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만약 처음부터 여성작가라고 알았다면? 아마 "여성에게는 너무 과격하다"라고 했을 것이다. 결국 성별에 관계없이 까일 운명이었던 셈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미투 운동' 선구자들

브론테 자매의 소설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샬럿의 〈제인 에어〉(1847)는 가난한 고아 출신 여주인공이 부유한 남주인공과 대등한 관계를 맺는 이야기다. 당시 소설 속 여성들이 대부분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선녀' 역할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제인 에어는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더 파격적인 건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1847)이었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사랑은 그야말로 파괴적이고 강렬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점잖은' 사랑 이야기에 익숙했던 독자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마치 조용한 찻집에서 갑자기 헤비메탈 콘서트가 시작된 격이다.

앤의 〈애그니스 그레이〉(1847)와 〈와일드펠 홀의 주인〉(1848)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와일드펠 홀의 주인〉은 알코올중독과 가정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당시에는 이런 '더러운' 주제를 소설에서 다루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하지만 앤은 '현실을 외면한다고 문제가 사라지나?'라는 식으로 정면 승부를 걸었다.

영국 사회에 던진 '문학적 수류탄'

브론테 자매의 작품이 영국사회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의 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독립하려고 노력하는 인물들이었다. 제인 에어는 가정교사로, 애그니스 그레이도 가정교사로 자활의 길을 모색한다. 이는 당시 '여성은 결혼해서 남편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사회통념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교육 분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브론테 자매들 자신이 가정교사나 교사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당시 영국 교육현실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특히 〈제인 에어〉에 나오는 로우드 학교의 참혹한 실상은 실제 교육개혁 논의에 불을 지폈다.

문학적으로는 '리얼리즘'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그 전까지 영국 소설들이 주로 중산층 이상의 '좋은 사람들'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브론테 자매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후에 찰스 디킨스 같은 작가들의 사회비판 소설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었다.

북부의 자존심, 남부의 편견을 뒤흔들다

브론테 자매가 살았던 요크셔는 영국 북부지역이다. 당시 런던을 중심으로 한 남부지역 사람들은 북부를 '시골뜨기들이 사는 곳'으로 여겼다. 그런데 이 '시골뜨기' 자매들이 런던의 문학계를 완전히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마치 지방에서 올라온 무명가수가 가요계 기존 스타들을 모두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격이었다. 런던의 평론가들은 당황했다. "어떻게 이런 변두리에서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지?"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브론테 자매의 작품들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영국 전역에서 화제가 됐다.

이는 영국 내부의 지역적 편견도 깨뜨리는 효과가 있었다. 문화와 예술이 런던에만 집중돼 있다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냈고, 지방의 문화적 잠재력을 보여줬다. 오늘날 영국의 여러 지역이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자랑하는 전통도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영국북부 요크셔의 하워스(Haworth)에 있는 브론테 자매들이 자란 목사관. 지금은 브론테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지난 1995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브론테 자매들이 생전에 친필로 남긴 서신과 기록을 볼 수 있다.

현대까지 이어지는 '브론테 신드롬'

브론테 자매의 영향은 19세기에 그치지 않았다. 20세기 들어 활발해 진 여성참정권 운동가들은 브론테 자매를 자신들의 정신적 선조로 여겼다. "100년 전에 이미 여성의 독립성을 외친 선구자들이 있었다"고 평했다.

현대 페미니즘 문학연구에서도 브론테 자매는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특히 〈제인 에어〉의 '나는 당신과 동등하다(I am your equal)'라는 대사는 여성해방의 상징적 문구가 됐다. 할리우드 영화나 BBC 드라마로도 수차례 제작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관광산업에도 큰 기여를 했다. 하워스는 이제 전 세계 문학애호가들의 성지가 됐다. 브론테 박물관에는 연간 수십만 명이 방문한다. 작은 마을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요크셔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만 해도 연간 수백만 파운드에 달한다.

브론테 자매는 겨우 30년 남짓한 짧은 생애를 살았다. 에밀리는 30세, 앤은 29세, 샬럿은 38세까지 살았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과 정신적 유산은 2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들은 증명했다. 성별, 계급, 지역적 출신에 관계없이 진정한 재능과 용기가 있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당시의 모든 편견과 제약을 뛰어넘어 자신들만의 목소리를 냈고, 그 목소리는 시대를 초월해 울려 퍼지고 있다.

오늘날 영국이 문화강국으로 인정받는 데에도 브론테 자매의 기여가 적지 않다. 셰익스피어가 영국 문학의 '아버지'라면, 브론테 자매는 영국 문학의 '어머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 덕분에 영국문학은 더욱 다채롭고 깊이 있는 모습을 갖게 됐다.

요크셔의 황량한 들판에서 피어난 세 송이 장미. 그들이 뿌린 씨앗은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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