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주의 떨쳐낸 새로운 국제 반핵연대가 익어간다
[원폭80년 방미 증언단 기록 ③] 마셜제도의 비극
미국 핵폭탄 실험장이 된 섬나라 마셜제도
비키니 환초에서 강행된 첫 수소폭탄 실험
죽음의 땅,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그곳 원주민들
미 아칸소로 가 육가공 공장 노동자된 마셜 주민들
알맹이와 껍데기가 뒤바뀐 서양의 평화운동
일본 반핵운동, 가해 역사 삭제 피해자 코스프레만
뉴멕시코 앨버커키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7시 비행기를 타고 미국 남부의 작은 주 아칸소(Arkansas)로 향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고향인 아칸소 주가 핵무기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 의아해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아칸소 주에는 마셜제도에서 온 사람들이 무려 2만5천여 명이나 살고 있다. 현재 본국에 4만여 명, 미국 전역에는 8만여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태평양의 여러 섬에 살던 사람들이 미국으로 이주해 오고, 더구나 미국에 더 많은 교민이 살게 된 경위는 비극적이다.
미국 핵실험장이 된 섬나라 마셜제도의 비극
5개의 큰 섬과 29개의 환초, 1220여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된 이곳엔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영국 선장 존 마셜이 이곳에 상륙한 것이 1788년, 그래서 백인들은 이곳을 “마셜제도”(Marshall Islands)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후 긴 식민지 역사가 시작된다. 1885년 독일이 이곳을 ‘보호령’으로 합병했고, 1914년 유럽에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여 태평양에 힘의 공백이 생기자 일본이 재빨리 점령했으며, 태평양전쟁 중 1944년 미국이 일본을 몰아내고 점령했다. 미국 식민지가 된 이 섬에서 미국은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총 67번의 핵실험을 했다.
비키니 환초에서 강행된 첫 수소폭탄 실험
1954년 3월 1일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핵무기 실험이 마셜제도 비키니 환초에서 이루어졌다. 이 수소폭탄 실험의 코드네임은 “캐슬 브라보”(Castle Bravo). 핵과학자들이 폭탄의 파괴력을 잘못 계산했다. 예상치보다 최소 3배 최대 6배나 강한, 히로시마 ‘리틀보이’보다 무려 1000배의 폭발력을 지닌 수소폭탄이 터졌다. 가공할 방사능 낙진이 발생했고 전 지구는 그 파괴력에 경악했다. 또한 인근에서 참치잡이를 하던 일본의 다이고 후쿠류마루(第五福龍丸) 선원 전원이 피폭됐다. 일본에서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이은 세번째 피폭이라며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죽음의 땅,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그곳 원주민들
그러나 아무도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잠깐 섬에서 소개되었다가 며칠 지나면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던 그 주민들을 말이다. 게다가 캐슬 브라보 핵실험은 너무도 파멸적이라, 핵실험 이후 비키니 환초 주민들은 이전처럼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인근 환초나 킬리 섬 등으로 강제이주당했다. 흙과 물, 동물과 식물이 모두 오염되어 죽음의 땅이 되었다. 1972년 100명 가량의 주민이 스스로 비키니 환초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1978년 다시 강제 소개되었고, 이제는 주민이 살지 않는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다.
주민들은 방사능에 오염된 고향을 떠나 한 명씩 두 명씩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 이주가 본격 진행되었다. 당시 아칸소 스프링데일(Springdale)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지금은 두번째로 큰) 육가공 회사 타이슨푸드(Tyson Foods)가 있었다. 닭 가공에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이 회사는 마셜제도 이주자들을 끌어들였다. 먼저 정착한 사람들은 형제자매와 부모를 부르고, 딸과 아들을 데리고 와 결국 스프링데일은 마셜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도시가 되었다.
아칸소로 간 마셜 주민들, 반핵운동가 된 왕족 베네틱
아칸소 페이엣빌 공항에 내리자 마셜제도 출신인 베네틱(Benetick Kabua Maddison)과 그의 동료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베네틱은 2023년 핵무기금지조약 2차 당사국 회의 때도 한국 방문단과 함께 활동했고, 작년 8월 경남 합천의 비핵평화대회에도 참가한 우리의 가까운 동지다. 베네틱은 2013년 비영리단체 마셜교육이니셔티브(MEI)를 설립해 이끌고 있다. 차분하고 진지하며 친절하고 정감어린 베네틱. 그는 사실 마셜제도의 왕족이다. 그의 중간 이름 ‘카부아’가 왕족의 이름이다. 하지만 ‘왕족’ 하면 연상되는 태도와 자세가 그에게선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마셜제도의 문화와 역사, 특히 핵실험의 파괴적 역사를 널리 알리고 핵을 둘러싼 불의를 폭로하며 핵 없는 세상을 향해서 싸우는 젊은 반핵 활동가일 뿐이다.
페이엣빌 공항에서 우리 방문단은 2명이 합류하여 8명이 되었다. 대구에서 출발한 '생명평화아시아'의 성상희 님이 3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총 40여시간만에 아칸소에 도착했다. 또 한 분, 베를린에서 유학하며 식민주의에 대해 공부하고 있는 이승주 님도 합류했다. 이제 10명 중 8명이 모였다.
스프링데일의 마셜 교육 이니셔티브
첫 행선지로 스프링데일에 있는 마셜 교육 이니셔티브를 방문했다. 손으로 짠 멋진 공예품들 사이에 특이한 나무 공예품(?)이 눈에 띄었다. 베네틱에게 물어보니 전통 항해지도라고 한다. 이름이 적힌 덩어리가 섬/환초이고 나무가닥이 섬 사이의 해류의 흐름을 가리킨다고 한다. 유럽 ‘과학’의 도움이 없어도, 선주민은 체험으로 축적한 집단적 지혜에 기반하여 정교한 생존 ‘과학’을 실천하고 있었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짧은 회의를 마치고 마셜제도 친구들이 마련해 준 아늑한 에어비앤비 주택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려는데, 베네틱이 타이 음식을 포장해 왔다. 며칠 뒤에 있을 핵무기금지조약 준비로도 바쁠텐데 음식까지 바리바리 싸서 찾아 온 그의 마음이 따뜻하게 전해져 온다. 베네틱과 우리는 밥과 술을 함께 하며 몇 시간 깊은 얘기를 나누었다.
알맹이와 껍데기가 뒤바뀐 서양의 평화운동
그는 서양이 주도하는 반핵운동이 알맹이와 껍데기가 전도된 것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서양 평화단체들은 핵 피해자들을 초대해 행사의 실속을 채우고, 그것을 근거로 정부나 기관의 보조금을 받고 시민들의 후원금을 모은다. 자신처럼 초대받은 핵 피해자들은 주체가 아니라 들러리일 뿐으로, 그저 교통비와 체류비를 제공받는 ‘초대손님’에 불과하다고 그는 통렬하게 비판했다. 베네틱은 새로운 국제 반핵연대를 만들고 싶어한다. 핵 피해자들을 ‘활용’하는 사업으로서의 반핵운동이 아니라, 실질적 피해자들과 진정한 활동가들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반핵 연대 말이다. 그래서 그는 뜻이 맞는 핵 피해자들을 모아 선주민, 피해자를 운동의 주체로 세우는 ‘핵진실프로젝트’(Nuclear Truth Project)를 시작했다. 핵진실프로젝트는 권리, 존중, 상호성을 핵심원리로 하는 규약(Protocol)을 정하고, 그 약속을 견결히 지키는 운동을 일구어 나가고 있다.
일본 반핵운동, 가해의 범죄역사 삭제 피해자 코스프레만
핵무기 피해의 역사가 자신들의 구미에 맞춰진 내용으로 변질되어 ‘상품’으로 전시되는 또다른 실상으로, 우리는 일본의 사례를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인류의 유일한 핵폭탄 ‘투하’의 역사인 것도, 그곳에서 수많은 죄없는 희생자들이 발생한 것도 모두 맞다. 하지만 일본의 핵무기 피해는 일본의 전쟁 가해의 결과임을 잊으면 안 된다. 실제로 히로시마에는 일제의 제2육군사령부, 육군 5사단 등 많은 병영이 있었고, 나가사키에는 미쓰비시 중공업 등 대규모 군수 공장이 밀집해 있었다.
매년 8월 6일과 9일 사이 전세계에서 엄청난 방문객이 찾는 두 도시의 공식 행사에는 전쟁 범죄의 역사는 삭제되어 버리고 ‘피해자 코스프레’만이 난무한다. 이 과정에서 식민 지배의 소산인 한인 피해자를 포함한 수십 개 국적의 핵 피해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도 함께 소거되어 버리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유일 피폭국’이라는 상품팔이를 그만 두고, 가해자로서의 반성과 사죄 및 배상이라는 바탕 위에서 핵 없는 세상을 향한 피해자의 운동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피폭자인 마셜제도공화국 총영사관
깊은 밤까지 우리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이튿날은 마셜제도공화국(RMI) 총영사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총영사 앤저넷 앤젤(Anjanette Anjel)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가 우리의 핵피해자들을 냉대하거나 무관심으로 일관했던 기억을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정부기관이 핵실험의 유산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고민하고 애쓰는 모습이 신선해 보였다. 물론 마샬제도는 전 국민이 피폭자인 점을 고려해야 하지만 말이다.
대한민국도 정부 차원의 연대와 풀뿌리연대가 이렇게 함께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총영사님은 직조 공예품도 선물해 주시고 꽃공예를 박정순 님의 머리에 직접 꽂아 주셨다. 박정순 님은 머리에 꽃을 처음 꽂아본다며 정말 즐거워하셨다. 총영사님은 근처의 ‘홈그로운’(Homegrown)이란 식당에서 우리 모두에게 점심도 사주셨다. 감자, 샌드위치, 오믈렛, 스크램블에그 등, 미국에 온 지 10일만에 처음 먹어보는 미국 가정식이라 모두 정말 맛있게 먹었다. 박정순 어머니는 식사 내내 꽃공예 장식을 꼽고 계셨다.
백인 서사 중심으로 꾸며진 오자크 박물관
점심을 마치고 베네틱의 안내로 오자크(Ozark) 역사박물관에 왔다. 오자크는 이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으로 프랑스어 "aux-arcs"(아칸소의,~로, ~에)를 소리 나는대로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박물관은 전형적인 향토 박물관이다. 오자크 지역의 역사와 생활상의 변화를 시대별로 보여준다. 그런데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베네틱은 이 박물관의 전시물과 서술 내용이 맘에 들지 않는다. 백인 중심의 서사이고 토착민과 비백인의 기여와 역할을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료를 보니 19세기 중반 아칸소 주의 백인과 흑인 노예의 비율은 4:1에 달했지만, 흑인들의 얘기는 귀퉁이 한 구석에 보일락 말락할 뿐이다. 아칸소가 자랑하는 타이슨푸드 공장의 작업장 사진에는 깨끗한 옷을 입은 백인이 웃고 있다. 그 공장에서 실제로 일했던 베네틱의 조상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워싱’(washing/ 세탁)된 박물관이 어디 한두 군데랴.
바다-하늘-땅-우리 뜻의 마셜 원래이름 ‘아일릉긔나’
씁쓸한 마음을 품고 저녁에 증언대회가 열릴 마셜 교육이니셔티브로 다시 왔다. 행사를 기다리는 동안 베네틱의 모국어 교육이 시작되었다. 마샬제도의 원 이름은 ‘아일릉~긔나’(AelōñKeinAd)다. ‘아이’는 바다, ‘릉’은 하늘, ‘긘’은 땅, ‘아’는 우리를 뜻한다. 나라 이름이 ‘바다하늘땅우리’인 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의 동학과도 통하는, 전세계 선주민들이 공유하는 심원한 세계관이 나라의 이름에 담겨있다. 말을 처음 배우는 초등학생처럼 우리는 베네틱의 본토 발음을 따라 했다. “아일릉긔나, 아일릉긔나.”
그럼 ‘아일릉긔나 사람들’은 ‘아일릉긔난’이냐고 물어보니, 아니었다. 뒤에 ‘n’이 붙으면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은 영어적 선입관! 앞에 ‘리’(ri-)를 붙이면 ‘사람’을 가리키게 되어, ‘리아일릉긘’이 된다고 한다. 앞에 ‘리’(ri)가 붙으면서 맨 뒤의 ‘아’(Ad, 우리)가 빠지게 되는데, ‘사람+우리’가 중복이 되기 때문이란다. 너무 합리적이지 않은가? 다시 본토 발음으로 연습해 본다. “리아일릉긘, 리아일릉긘.” 우리는 식민주의자들이 자기 이름으로 멋대로 붙인 ‘마셜’이란 호칭을 버리고 이제 선주민의 말을 쓰기로 약속했다. 지금부터 ‘마셜‘이라는 단어를 입밖에 내면 1달러씩 벌금을 내기로 약속했다. 저녁 행사 때도 좌중에게 인사할 때 이렇게 원어민의 말로 인사하기로 했다.
자식들에게 피폭 사실 숨긴 피폭자 1세대
5시 30분, 방미 증언대회가 시작되었다. 증언단의 대표 이대수 님의 인사말에 이어, 피폭 1세 박정순 님, 피폭 2세 김규리 님(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부산지회), 이태재 님(한국원폭피해자후손회 회장)의 증언이 차례로 진행되었다. 이번에는 연재 1회 때 소개하지 못한 김규리 님 얘기를 하고 싶다. 김규리 님은 박정순 어머니의 1남 4녀 중 차녀이다. 하지만 어머니가 피폭자인지, 그래서 자신이 피폭 2세인지 전혀 모르고 살았다. 피폭자임을 공개했을 때 돌아올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너무도 잘 아는 어머니가 오랫동안 비밀로 했기 때문이었다.
2011년에 히로시마에서 어머니와 이모들이 건강수첩을 발급 받았다고 할 때 김규리 님은 어리둥절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2019년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후손회 창립식에 참여한 이후, 주위의 원폭 피해자분들을 만나면서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짓누르고 있는 원폭의 실상을 알게 되었다. 왜 자신이 평생 수많은 병을 달고 살아 왔는지, 입원과 통원 치료, 독한 투약을 반복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었다.
이제 그녀는 어릴 때부터 허약했던 것이 부모의 안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남편도 그녀가 아픈 건 원폭 때문이라고, 그녀 탓이 아니라고 위로해 준다. 수많은 병마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쾌활하고 긍정적이며 주변을 배려한다. 그녀의 가방과 호주머니 속에는 항상 나눠 먹을 무언가가 있다. 그녀는 핵무기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는 수많은 피폭 2, 3세들의 삶이 내버려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핵이 없는 세상을 향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핵실험 피폭지 ’루닛 돔‘ 방치
증언이 끝나고 아일릉긔나 중학생들의 발표가 있었다. ‘루닛 돔’(Runit Dome)에 관한 주제 발표였다. 아일릉긔나의 루닛 섬에는 핵실험으로 인한 플루토늄-239 등의 핵폐기물과 오염된 토양을 저장해 놓은 거대한 콘크리트 돔이 있는데, 그 이름이 루닛 돔(일명 ‘무덤’)이다. 1980년에 완공된 이 핵 무덤은 이후 주요한 균열들이 발견되었고, 자연적 노후화와 해수면 상승, 태풍의 엄습 등으로 현재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2020년 미국 에너지부는 루닛 돔이 당장 붕괴할 위험이 없고, 내부의 방사능 물질이 유출되어 어떤 측량가능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향후 20년간 없다는 후안무치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의 얘기를 전하는 중학생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은 무척 아팠지만, 환하게 웃는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스프링데일에서의 공연과 토론
마지막은 매튜(Matthew John)의 노래 공연이 있었다. 매튜는 베네틱의 가까운 동료로서 마샬교육 이니셔티브에서 기획을 담당하고 있는데, 원래는 국가대표 축구선수였고 지금은 가수이기도 하다. 그는 아이를 가진 여성이 뱃속의 아이에게 전하는 사랑의 노래를 통기타를 치며 들려주었다. 유튜브에서 그의 예명 마크 하모니(MARK Harmony)를 검색해 보면, 그가 부른 아름다운 노래들을 들을 수 있다. 매튜의 노래에 대한 답가로 우리 8명은 함께 손을 잡고 감격스럽게 아리랑을 불렀다. 매튜는 ‘감사’의 노래로 화답했다.
총영사님과 영사관 직원들도 시간을 내서 다시 오셨고, 지역방송국(abc 40/29)에서 나와 행사 촬영과 박정순 님 인터뷰를 진행했다. 촬영분은 당일 저녁 뉴스에 나왔다. 박정순 님은 “미국은 세계 초강대국 아니냐, 그런데도 우리에게 저지른 일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미국은 사죄하고 배상하고 보상해야 한다”고 일갈하셨다. 행사가 끝나고 중학교 학생 한 명이 박정순 님을 찾아와 “미래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을 해달라”고 부탁한다. 어머니는 “넓은 세계에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자유롭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듣더니 학생은 밝게 웃으며 포옹을 한다. 80년의 세대 간격이 눈 녹듯이 녹아버리는 것 같다.
7시에 끝날 예정이던 행사가 8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오늘의 행사를 준비한 베네틱과 그의 동료 4명이 ‘우리 집’에서 9시부터 늦은 저녁을 같이 했다. 즐거운 만남에 술이 빠질 수 없는 법. 월마트에서 사 온 오자크 토착 맥주를 나눠 마시며 한국어로 ‘짠’을 외쳤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로싸(Rotha)는 한국어에 관심이 많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라는 한글단어도 말할 줄 안다. 다음에 만날 때는 한국어를 훨씬 잘할 것 같다. 11시가 다 되어 ‘리아일릉긘’은 모두 귀가하였지만, 한국인들은 잘 생각이 없다. 비핵평화운동의 방향과 방법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다 보니 2시가 넘었다. 스프링데일은 잠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