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한일 정상회담 희망, 미국도 조기회동 촉구
일본 영국 매체들 한국 대선 이후 전망
이재명 대외정책 “G7과 APEC, 6.22와 8.15에 검증”
내란 파도 넘었으나 민심 분단 극복 등 난제 산적
아사히, 이 대통령의 대일 자세 변화에 회의적
보수 국힘당 “지방정당으로 전락할 위기”
이코노미스트 “윤 정권 종말 안도감, 오래 못 갈 것”
4일 한국 대선 결과를 전하는 <아사히신문> 등 일본 매체들은 차분하고 분석적이었다. 이미 지난해 12.3 계엄사태 이후, 그리고 대선 기간에 줄곧 큰 관심 속에 한국상황을 보도하며 그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매체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역시 이재명 정부의 등장으로 한국의 대일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 역사상 가장 좋았다는 윤석열 전 정권 때와는 어떻게 달라질지에 관한 것이었다.
일본 언론 달라질 한국의 대일정책 변화에 촉각
지난 3일 <아사히>의 한국관련 기사는 “이재명 한국 새 대통령, 일본에 대한 자세는? ‘실용외교’에 경계와 낙관”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4일 기사의 제목은 “이재명 새 정권, 사회의 분노를 누를 수 있을까? ‘정책보다 권력에 관심’이라는 지적도”였다. 특히 4일의 제목은 이재명 후보와 경쟁한 반대진영 후보 지지자들 반응에 조점을 맞춘 것으로, 차분하다 못해 별로 반기지 않는다는 느낌조차 준다.
4일 기사는 이재명 후보의 당선 사실을 전한 뒤 바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이어졌다.
“이번 선거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시비와 경제문제에 관심이 집중됐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에서 앞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한미동맹 재정의’ ‘북미 국교정상화’에 대해 논의할 기회를 잃었다. 이 씨는 일본과도 협력할 자세를 보이고 있으나 구체적인 협력방침을 내지는 않았다.”
<일본경제신문>은 그러나 이날 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한 "국익과 실용의 관점에서 접근하겠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반일 자세를 수정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이 대통령이 한미동맹을 토대로 한일협력을 강고하게 다져가겠다는 뜻을 표명했다면서 "국익을 최우선하는 실용주의를 표방하며 과거의 반일자세를 수정했다"고 전했다.
일본 매체들이 얘기하는 이 대통령의 '반일'은 일본의 과거사 범죄에 대한 사죄와 배상, 후쿠시마 핵사고 원전에서 바다로 흘려보내는 핵오염수 방류 중단 요구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본정부의 관련 정책이나 자세에 대한 비판과 시정 요구를 '반일'로 규정하는 잘못된 관행을 일본 매체들은 고수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실용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원칙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보수 국힘당 “지방정당으로 전락할 위기”
그리고 “보수세력에겐 이번 대선은 비상계엄이라는 원죄를 진 선거여서 당초부터 승리를 도외시했다”는 보수계의 한국정부 전 고위관리의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했다.
“윤 씨의 탄핵에 반대한 김 씨(김문수)를 후보로 세운 것도 그에게는 차기 집행부 진입을 노릴 만한 당내 기반이 없고, 내년의 통일지방선거와 2028년의 국회의원선거 공천권을 쥐고 싶은 현 집행부와 이해가 일치한 결과라고 한다. 이런 선거전의 결과 보수는 득표가 크게 줄었다. 수도권에서의 득표도 늘리지 못해 ‘국힘의힘’은 앞으로 경상도 등 한반도 동남부만을 지반으로 삼은 지방정당으로 전락할 위기를 맞았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번 선거에서 표출된 다양하고 복합적인 ‘분노’를 진정시킬 사회 재분배 등의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으나, 미국 트럼프 정권의 고율관세 부과와 미중 대립 영향으로 전망이 밝지 못할 것으로 관측했다.
이시바 총리 한일 정상회담 희망, 주일 미 대사도 조기회동 촉구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이날 이재명 대통령 당선과 관련해 "한국 민주주의 결과로 한국 국민의 선택에 경의를 표한다"며 "취임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는 관저에서 기자들에게 올해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라며 "민간을 포함한 한일 교류를 더욱 활발히 해 나가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일 양국이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인구의 수도권 집중, 미국과 동맹 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 정책 등 공통 과제가 많다면서 "한일 수교 60주년을 계기로 이재명 대통령과 한일, 한미일 협력을 활발히 하고 싶다. 그것이 60주년의 큰 의의"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과거 일본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했던 것과 관련해 "한국 내에는 여론도 있다"며 선거운동 과정에서는 일본을 '중요한 파트너'라고 했고 일본을 좋아한다고 했다는 말도 소개했다.
이시바 총리는 또 "한일 정상회담은 조속히 하는 것이 좋다"며 이 대통령과 조기 회동에 의욕을 나타냈다. 이와 관련해 조지 글라스 주일 미국대사가 한일 정상회담을 빨리 하는 게 좋다고 한 발언을 일본 매체가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 “윤 정권 종말 안도감, 오래 못 갈 것”
“많은 한국인들이 윤석열 시대의 종말을 반길 것이다. 하지만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재명(대통령)도 선거 당일 인정했듯이, 한국사회는 ‘여전히 혼란과 불신 속에 있다.’”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확정 공식 발표 전에 작성된 기사에서 그의 당선을 예고하면서, “한국에서 좌익(left-winger)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를 물었다. 이 잡지는 20022년 대선 때 ‘보편적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재명 후보를 “진보적 포퓰리스트”로 규정하고 윤 전 대통령의 탄핵 파면으로 3년만에 치러진 이번 대선에서 실용주의 통합정치를 강조하면서 “중도 보수”를 표방한 그의 변화를 흥미롭게 지켜본 듯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 이번 대선이 “윤 전 대통령의 실패한 대통령직에 대한 강력한 국민투표”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면서, “나는 보통 좋은 정책에 투표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단지 그들(내란세력)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 어느 유권자의 말을 인용했다. 선거 결과는 대다수 유권자들이 내란세력을 거부한 것으로 판명됐다. 김문수 후보가 아니라 이준석 후보에 투표한 보수층 표까지 감안하면, 유권자의 약 60%가 윤석열과 내란세력을 심판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EU, 당선 축하하며 협력강화 희망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유럽과 대한민국간 굳건한 유대를 더욱 심화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파트너십은 무역에서 혁신, 국방에 이르기까지 공통된 가치와 관심사를 기반으로 구축돼 있다"며 "함께 규칙에 기반한 국제규범과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 그리고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수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이재명 정부가 윤석열 계엄선포에 따른 6개월간의 혼란 속에 “분열된 사회와 망가진 경제”, 그리고 “특히 한국에 혹독한 관세를 부과하고 오랜 동맹국 한국에 대한 안보공약을 의심하게 한 도널드 트럼프라는 외부로부터의 큰 도전”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변화 속에서 최근 자신을 “현명한 온건파로 재정립하려고 노력해 온” 이재명이 “우리의 핵심가치는 실용주의”임을 강조하면서 경제성장과 AI(인공지능) 등 미래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 그리고 미국 일본과의 긴밀한 협력, 중국과의 안정적 관계 재정립을 약속한 것에 주목했다.
실패한 윤석열 계엄사태 후폭풍 처리가 최우선 과제
잡지는 집권 민주당이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파인 상황에서 정치적 주도권을 쥐게 될 이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는 국내문제, 그 중에서도 윤의 계엄 실패 후폭풍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것이라며, 민심분열 속에 내란죄로 기소될 전직 대통령이 바로 그 때문에 여전히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될 상황을 먼저 지적했다. 그리고 4년 임기의 대통령 연임제, 계엄령의 정치적 이용 원천 차단 조항 등을 담게 될 헌법 개정,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재정 부양책, 저출산 고령화의 인구위기 대책 등을 이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주요 국내문제로 들었다.
권한대행들이 해결 못한 ‘트럼프 관세폭탄’과 안보 과제
외부문제로는 “세 명의 권한대행이 연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했지만 진전을 보지 못한” 미국 트럼프 정부와의 관세협상을 먼저 꼽았다. 그리고 일부 철수설이 돌고 있는 주한 미군 감축과 중국 억제용으로 주둔 목적을 바꾸려는 주한 미군 유연화, 대만 위기에 대한 대응, 김정은과의 협상 재개 가능성이 있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봤다.
또 다른 주요 외교적 과제로, 대일본 관계를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도 주목했다.
<아사히> 이 대통령의 대일 자세 변화에 회의적
<아사히신문>은 과거에 과거사와 피해자 배상문제, ‘독도문제’ 등과 관련해 대일 강경자세를 보인 이재명이 이번 대선기간에 일본에 대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해 온 중요한 파트너”라며 “역사,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그리고 “사회, 문화, 경제분야에서는 전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응을 해 나가겠다고 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그의 대일관 및 대일정책의 변화를 거론했으나,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아사히>는 이재명이 사상 최고로 일본에 호의적이었던 윤석열 정권의 대일 외교를 비판하고, 핵사고를 일으킨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제1원전의 핵오염수 해양방출에 단식까지 해가며 반대한 사실을 지적했다.
또 “주한 미군의 억지력 약화나 북미 접근에 따른 안보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일 양국이 물품용역상호제공협정(ACSA)과 자위대-한국군 상호왕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협정(RAA) 등을 체결하는 것이 현실적인 정책이지만, 이 씨가 보수정권조차 할 수 없었던 한일 안전보장협력에 나설 것으로 생각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미국은 대중국 견제를 주목적으로 윤 정권 기간에 체결한 한미일 3국의 준군사동맹체제를 제도화해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것이 유지되도록 ‘한미일 조정사무국’을 신설하고, ‘인도태평양전략’을 책정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에서 중국과도 안정적인 관계를 구축하고 북한과의 연락통로를 복원하는 ‘균형외교’를 표방했다. 이에 대해 일본 외무성의 한 간부는 “북한과 중국에 접근하면 저절로 대일, 대미 자세가 바뀌게 된다”고 우려했다.(<아사히> 6월 4일)
이재명 대외정책 “G7과 APEC, 6.22와 8.15에 검증”
<이코노미스트>는 이재명의 대일 자세는 이번 달 중순에 캐나다에서 열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그가 초청될 경우, 그리고 오는 22일 한일 수교(1965년 한일협정 체결) 60주년을 맞아 일단 시금석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8월과 9월에는 한국의 광복 80주년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 기념식이 열리고, 가을에는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회의(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데, 그때 미국 일본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 이재명의 역량이 시험받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