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한 평행이론…상추보다 먼저 시든 트러스와 한덕수

리즈 트러스 감세 밀어부치다 최단명 총리

실시간 중계된 상추와 싱싱함 경쟁서도 져

한덕수의 '새벽의 기적' 하룻만에 '도루묵'

민주주의는 속도전이 아니라 절차전이다

2025-05-27     김성수 시민기자

영국에서 산 세월이 35년이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자녀들은 초중고대를 영국에서 나와 지금은 다 독립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욕심쟁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영국의 리즈 트러스와 한국의 한덕수, 두 정치인의 기묘한 평행이론에 대해 나누고 싶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이미지를 생성해 주는 인공지능 Sora가 만들어낸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왼쪽)와 한덕수 전 대한민국 국무총리. 김성수 시민기자

지난 2022년 가을, 영국에는 ‘상추보다 짧은 총리’ 리즈 트러스가 있었고, 2025년 봄, 한국에는 ‘새벽의 기적’으로 대선 후보가 된 한덕수가 등장했다. 둘은 전혀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지만, 하나의 공통된 질문을 던지게 한다.

“정치, 이렇게 급하게 굴러도 괜찮은가?”

감세로 시작된 몰락: 리즈 트러스의 44일

리즈 트러스는 지난 2022년 9월 영국 보수당 당대표 경선을 통해 총리에 올랐다. 마가렛 대처의 그림자를 좇으며 “감세와 규제완화”를 외쳤고, ‘철의 여인’을 자처했지만, 정작 철이 아닌 알루미늄이었는지 그 정치적 수명은 채 두 달도 가지 못했다.

그녀가 취임 직후 발표한 ‘미니 예산안’은 감세 일변도의 급진 실험이었다. 시장은 이를 외면했고, 파운드화는 급락, 국채는 급등, 결국 영국중앙은행이 긴급 개입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여론조사에서 그녀의 지지율은 급전직하했고, 영국 〈데일리 스타〉는 트러스 옆에 상추를 놓고 ‘어느 쪽이 더 오래 가는가’를 실시간 중계했다. 결과는 상추의 승리였다.

정치라는 무대에서 리즈 트러스는 허무하게 퇴장했다. 44일 만의 사임. 영국 역사상 최단임기 총리라는 불명예와 함께.

새벽의 몰래 등장: 한덕수,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되기까지

2025년 5월 10일 새벽, 한국 정치에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는 김문수 후보의 대선 후보 자격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새벽 3시 40분 한덕수 전 총리를 전격 입당시켰다. 그리고 불과 20분 만에 단독 대선 후보로 등록했다.

당원들은 눈을 떠보니 하루아침에 후보가 바뀌었다. '이건 민주주의인가, 기획사 오디션인가?'라는 반응이 나왔다. 정치라는 중대한 결정을 새벽에, 그것도 극소수의 회의와 서류로 일사천리로 마무리했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들은 마시던 아메리카노 커피를 뿜었고, 일부는 분노했다.

리더십, 절차, 그리고 신뢰

리즈 트러스는 스스로 원한 실험을 너무 빨리, 너무 거칠게 실행에 옮기다 실패했다. 반면 한덕수는 본인의 의사조차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은 채 정당의 ‘긴급수혈’로 소환됐다. 리더십의 탄생 배경이 정반대지만, 두 사람 모두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공통된 시험대 위에 올랐다.

정치는 과정이다. 리더십이란 정책의 내용만큼이나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절차를 통해 결정되었는지를 국민이 보고 판단하는 일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절차를 건너뛰면 ‘무단 횡단 승객’ 취급을 받기 마련이다.

민주주의, 속도전이 아니라 절차전이다

리즈 트러스는 감세폭탄으로 경제를 흔들었고, 결국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한덕수는 아직 정책을 내놓기도 전에 ‘절차와 속도’에서 대중의 의심을 샀다. 상추가 트러스를 이겼던 이유는 단지 농담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의 신뢰가 얼마나 허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경고였다.

한국의 유권자들도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 새벽의 기적이 새벽의 분노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추는 조용히 냉장고에서 지켜보고 있다.

상추보다 오래가는 정치란?

정치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리즈 트러스는 너무 빨리 달렸고, 한덕수는 너무너무 느리게 있다가 갑자기 출발했다. 전자는 시장의 벽에 부딪혔고, 후자는 절차의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한덕수는 상추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그는 상식보다 오래갈 수 있을까?"

한덕수는 결국 상추나 상식보다 오래 갈 수 없었다. 5월 10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와 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한 전당원 찬반투표에서 한덕수는 버림받았다. 다시 한 번 많은 국민들은 마시던 아메리카노 커피를 뿜었고, 연 입을 닫지 못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속도전이 아니라 절차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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