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한진 자사주로 총수 방어…이재명 "소각해야"

자사주 활용해 대주주 우호 지분 늘리기 '작당'

LS, 자사주 기반 교환사채 대한항공에 넘겨

대한항공 채무상환 급한데도 교환사채 인수

한진 사내 기금에 자사주 출연…우호 지분 늘려

대주주 우호 지분에 자사주 쓰면 기업가치 훼손

이재명 "자사주 소각 의무화해 기업가치 제고"

2025-05-21     장박원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한국증시 저평가(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 중 하나로 의무적으로 자사주를 소각하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미국 등 선진국 상장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하는 즉시 소각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재벌기업은 회사의 현금을 주고 사들인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가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에 사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자사주 매입해 소각하는 것은 유통 주식을 줄여 주당 가치를 높인다. 자사주 소각이 대표적인 주주환원 정책인 이유다. 하지만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지배주주 경영권 방어에 사용한다면 일반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사회가 이런 의사결정을 했다면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런데도 대기업 이사회는 총수 일가의 우호 지분을 늘리는데 자사주를 활용하는 결정을 내린다. 이재명 후보가 자사주 소각과 함께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일반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하는 것도 이런 폐단 때문이다.

 

대한항공 [대한항공 제공] 연합뉴스

LS·한진, 호반그룹 경영권 위협에 자사주 동원 '꼼수'

‘자사주 소각 제도화’의 필요성을 보여준 사례가 또 나왔다. LS와 한진그룹이 각각 교환사채 발행과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이라는 꼼수를 통해 의결권 없는 자사주를 의결권 있는 주식으로 바꿔 총수 일가의 우호 지분으로 삼으려는 것이다. 두 그룹 모두 호반그룹이 지배주주 경영권을 압박하자 방어에 나섰다. LS는 한진그룹 계열사인 대한항공에 자사주를 기초 자산으로 하는 교환사채(EB)를 발행했고,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은 자사주의 사내 기금 출연을 통해 지배주주 우호 지분을 늘렸다. 

LS 이사회는 650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대한항공에 발행하는 안건을 16일 의결했다. 대한항공이 LS 교환사채를 취득하면 LS가 보유한 자사주 38만 7365주를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지분율로는 1.2%다. 회사채의 일종인 교환사채는 발행기업이 보유한 자사주 또는 타사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이에 앞서 한진칼은 15일 자사주 44만44주를 사내근로복지기금에 출연했다. 금액으로는 약 663억 원이며 지분율은 0.66%다. LS그룹과 한진그룹은 지난달 25일 사업 협력과 협업 강화에 관한 업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기도 했다.

 

LS·한진그룹 [연합뉴스 자료사진]

자사주가 우호 지분으로 탈바꿈…총수 지배권 강화

두 그룹은 시너지 창출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한 협력이라고 주장하지만, 시장에서는 공동의 적인 호반그룹의 경영권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차원으로 본다. 거래의 진짜 목적이 LS와 한진 모두 지배주주 우호 지분 확보에 있다는 이야기다. 호반그룹은 LS전선 경쟁사인 대한전선의 모기업이다. 대한전선과 LS전선은 특허침해 소송을 벌인 바 있다. LS전선이 최종 승소했으나 소송 과정에서 호반그룹이 LS 총수 일가를 위협할 정도의 LS 지분을 매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호반건설은 한진칼 2대 주주로 계열사를 동원해 한진칼 지분율을 18.46%까지 확보했다. 한진칼 지배주주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의 지분 격차는 2.29%포인트에 불과하다. 호반건설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으나 한진그룹 쪽에서는 대한항공 경영권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의심한다. 호반건설은 지난 2022년 한진칼과 경영권 분쟁을 벌인 사모펀드 KCGI로부터 지분을 사들여 2대 주주에 올랐다. 지난 2015년에는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인 금호산업 인수전에 뛰어드는 등 항공 사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LS그룹 정기 주주총회 [LS그룹 제공] 연합뉴스

대한항공, 채무상환은 뒷전 총수 일가 구하기

호반그룹이 공격적으로 지분을 매집하자 LS그룹과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추가로 인수하는 등 추가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대한항공은 교환사채의 교환권을 행사해 LS의 보통주를 취득하고, 교환권 행사로 자기주식을 처분하게 된 LS는 그 자금을 한진칼 지분 매입에 사용할 것”이라며 “한진칼과 LS 모두 호반그룹의 지분 매입에 대비해 지배권 보호장치를 마련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지배주주 경영권 방어에 자사주를 사용하는 것이 전형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경제개혁연대는 대한항공의 LS 교환사채 인수가 두 가지 측면에서 전체 주주의 이익이 아닌, 모기업인 한진칼의 지배주주를 위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첫째, 대한항공이 LS의 교환사채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할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두 그룹은 사업상 제휴를 내세우고 있으나, 사채나 지분 인수 없이도 사업상 제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LS의 교환사채는 표면 이자율 0%, 만기 이자율 2%로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유망한 투자상품으로 보기 어렵다. 사채를 LS의 보통 주식으로 교환한다고 해도 실익이 있을지 미지수다. 한진칼의 우호 지분 확보가 아니라면, 대한항공으로서는 굳이 LS 교환사채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둘째, 대한항공의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채무상환 목적으로 총 2000억 원의 사채발행이 예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650억 원을 투자해 LS의 교환사채를 인수한다는 것은 재무적 관점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라고 볼 수 없다. 교환사채 인수에 앞서 채무상환을 먼저 해야 했다. 경제개혁연대는 “대한항공의 교환사채 인수가 회사와 전체 주주에게 어떤 이익이 되는지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면, 이 거래는 즉각 철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자사주를 우호 지분에 활용하는 건 주주가치 훼손

LS 역시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에 자사주를 활용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LS는 지배주주와 그 특수관계인이 지분 32.11%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친인척 수십 명이 지분을 쪼개어 보유하고 있어 경영권이 불안한 상황이다. 호반그룹은 지난 3월 LS의 지분 약 3%를 보유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LS는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한진그룹과 손을 잡았다. 교환사채를 통해 대한항공에 넘긴 자사주는 LS그룹 총수 일가의 우호 지분으로 볼 수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자사주를 총수 일가의 우호 지분에 활용하는 것은 주주가치를 높이는 게 아니라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LS그룹과 한진그룹이 협업 강화와 관련해 주주 이익 극대화를 내세웠지만 현실은 그 반대”라며 “자사주는 지배주주 자금이 아닌 모든 주주의 돈인 회사의 현금으로 매수한 것이라 지배권 방어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거버넌스포럼은 또 “애플과 구글, 대만의 TSMC 등 세계적 기업들은 수십 년간 긴밀한 협업 관계를 유지했지만, 상호 주를 보유하지 않았다”며 “지배권 방어는 높은 주가와 기업가치를 유지하는 정공법을 써야 하며 자사주를 우군에 매각해 지배권을 강화하는 것은 반칙”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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