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이후를 살아가기 위하여
대한민국의 또 다른 내게 건네는 들리지 않는 말
우리가 내란세력을 진압할 수 있을까?
경쟁과 승자독식이 빚어낸 내란세력
자연에는 진보가 없고, 전쟁도 없다
양보다 질을, 개발보다 보전을, 건설보다 유지를
진보와 성장 향한 무한갈망에서 우리를 해방하자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란을 진압할 수 있는가?
대한민국 21대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다. 주요 정당과 사회 세력들은 저마다의 주장을 내 걸고 본격적인 경쟁에 나섰다. 후보들의 출마 선언과 공약집을 살펴보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별로 없다. 물론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 후보가 더 충실한 내용으로 임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집권이 유력한 민주당은 중산층이나 기득권층을 안심시키기 위한 전략에 방점이 찍혀 있고, 민주노동당은 성장보다는 분배, 생산대중과 여성, 소수자에 대한 평등과 권리보호에 주력한다.
하지만 편을 가르고, 나 아닌 타자를 배제하며, 성장을 약속하면서 욕망을 부추기고, 그 욕망에 편승하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이번 선거의 가장 분명한 전선은 내란세력에 대한 척결, 단죄 여부이다. 내란 정당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계엄과 내란 수괴 윤석열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는 논할 가치가 없다. 김문수를 제외하고 다른 정당들의 내란세력 단죄 주장은 목소리의 높고 낮음은 있지만 한목소리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과연 내란세력은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내란세력은 척결이 가능할까?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해방 이후에도 단죄되지 않은 친일 기득권 세력이 친미, 친독재 세력으로 살아남아 더 강고한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는 현실에서, 그것이 가능한 발상인가? 이번 쿠데타 과정에서도 진압되는 것처럼 보였던 내란세력은 고비 고비마다 메두사의 머리를 내밀고 다시 등장했다. 물론 그때마다 광장의 시민들이 이들을 제압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지워져가는 대한민국 공동체
2025년 5월, 21대 대통령 선거를 치르는 대한민국 공동체는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가? 국책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주요 경제 전망기관 중 처음으로 올해 한국 경제가 0%대 성장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내수 부진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으로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KDI는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 수준이 더 오를 경우 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취업자 수 증가 폭은 작년 16만 명에서 올해 9만 명, 내년 7만 명 수준으로 축소될 것이라 한다. 2025년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대 후반으로 추정하고, 2040년대에는 잠재성장률이 0% 안팎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장이 멈춘다고 우리 삶이 풍요롭지 않거나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 외 많은 지표가 대한민국 공동체가 지속 가능성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구는 2020년 5183만 명을 정점으로 2072년 3622만 명으로 감소하고,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 비중도 2025년 현재 20.3%에서 2072년에는 47.7%로 늘어날 전망이다.(KOSIS 인구 상황판)
삶의 만족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자살률은 수십 년째 세계 최고 수준이다. 10만 명당 27.3명(2023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의 두 배에 달한다. 모든 연령층에서 자살률은 증가 추세이며 특히 노년층의 자살률이 높다. 많은 전문가는 이를 궁핍 때문으로 진단한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종합소득세 기준으로 상위 0.1% 소득자가 차지하는 소득의 비중은 10%이며, 상위 1%는 24%, 상위 10%는 56%, 나머지 90%가 44%를 차지한다. 기후 위기는 더 자주 극한 강도로 찾아 오고, 한반도를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땅으로 만들고 있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121곳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대한민국 공동체가 지구상에서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스마트 시티, 컴팩트 시티, 디지털 시티...불리는 이름이 무엇이건 지방도시의 소멸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쟁과 승자독식이 빚어낸 내란세력
다시 대통령 선거 국면으로 되돌아 가보자. 누구를 막론하고 사라져가는 대한민국 공동체에 대한 근본적 진단이 있는가? 내란을 진압하고 이들을 척결하면 대한민국 공동체가 되살아날 수 있는가? 대한민국 공동체 구성원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눈 내란 수괴와 그 잔당들은 그에 합당한 처벌과 단죄를 받아야 하고, 응당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괴물을 잉태한 대한민국 공동체의 구조적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또다시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그 후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참혹할 것이다. 집권이 유력하지만 안타깝게도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희망고문을 넘어 이러한 과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믿음을 주고 있진 못하다.
지금의 위기는 무엇으로부터 연유하는가? 무한한 탐욕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불평등한 국제질서, 청산되지 못한 과거와 기득권 세력의 강고함이 다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도달한 자본주의는 물질적 풍요를 지고지순의 가치로 추앙하며, 나머지 모든 것을 수단화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풍요는 결코 채워지지도 분배되지도 않았으며, 인간은 물론 비인간 자연 모두를 맷돌에 갈아 넣었다.
자본주의는 시스템은 손대지 않고, 오히려 가속으로 위기를 모면해 왔다. 도입된 새로운 기술과 기법은 다음 단계에서 반드시 새로운 위기를 낳았다. 하지만 자본은 한순간도 쉬지 않고 기꺼이 새로운 위기에 덤벼든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역사다. 자본주의가 추구한 물질문명, 더 빠른 속도와 직진만을 추구하는 근대는 결국 6차 대절멸의 위기를 낳았다. 그 자본주의 체제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했다는 국뽕 공동체 대한민국에서 내란 세력이라는 괴물이 등장한 것이다.
내란 세력은 누구인가? 누가 만들어 냈는가? 윤석열, 김용현, 한덕수, 최상목, 심우정, 이창수, 조희대, 지귀연, 고성국, 김문수...나, 그리고 또 다른 나인 너의 이름 석자가 거명되지 않는다고 나는 그 정의(定義)와 현실로부터 자유로운가? 오로지 경쟁, 직진, 승자독식의 산지옥 대한민국이 빚어낸 정치인, 관료, 법률가, 사회운동가의 다른 이름이 내란세력 아닌가?
패배와 후퇴가 공동체를 살린다
설국열차라는 지옥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열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어떤 이는 그것을 패배와 후퇴, 일탈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혁명적 전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일 수도 있고, 나아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관성 즉, 삶의 가치관이나 목표, 생활 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우리에게 파국은 예정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불안을 인지하고 안고 살아가지만 기본 방식을 바꾸지 못한다. 관성의 역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성이 관성을 이기기 위해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홋타 신고로, 堀田新五郞, “후퇴는 지성의 증거: 후퇴학의 시도,” 한 걸음 뒤의 세상: ‘후퇴’에서 찾은 생존법(이숲, 2024).
더 이상의 인구 증가, 더 이상의 경제성장이 불가능할 때 우리는 새롭게 사고하고,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지구공동체는 기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인류에게 경고한 지 오래고 눈 밝은 많은 이들은 이를 설파했다. 인구 증가와 경제 성장을 근대의 상징으로 이해할 때 근대의 극복은 이미 이뤄졌고, 벗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욕망의 공동체, 성장하는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승리가 아닌 패배, 전진이 아닌 후퇴, 경쟁이 아닌 협력, 독점이 아닌 공유, 배제가 아닌 공존, 상호부조, 호혜와 협력의 가치를 전면에 세워야 한다. 승자는 대한민국 공동체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지만, 패자는 오늘의 대한민국 공동체를 지켜내고 있다. 대한민국 공동체를 생명평화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은 여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란을 진압하고, 내란세력을 잉태한 구조를 허무는 첫걸음이다.
우리가 만들어 낸 내란 세력
누군가 이 시대 희망을 이야기하는 자는 사기꾼이고, 절망을 이야기하는 자는 개자식이라고 말했다(볼프 비어만, Karl Wolf Biermann). 우리는 언제나 절망과 희망 사이 현실에서 살아간다. 패배와 후퇴는 뒤로 되돌아 가는 것이 아니다. 문제의 원인을 근원에서 살피고, 직진과 속도 추구만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다양한 해법들을 찾는 과정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대한민국 공동체의 위기는 총체적이고 복합적 위기다. 이 위기가 이른 시간 내에, 단순명쾌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너의 문제이자 나의 문제임을 말해준다. 해법을 찾는 과정은 지난할 것이며, 많은 인내와 공동체적 지혜를 요구할 것이다.
내란세력 척결, 경제성장 구호만으로는 절대로 이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없다. 배제를 정당화하고, 욕망을 부추기는 정치로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권력을 쥐려고 하는 자는 다수의 지지를 얻기 위해 적대감을 부추기고, 무지라는 기초 위에 거짓을 재료로 성곽을 쌓는다. 트럼프 지지자의 미국 의회 난입과 윤석열 지지자의 서부지법 폭동은 그 결과물이다. 악의적 선동에 노출된 대중의 정치적 무지에 더해, 나 자신이 그 배제의 정치구조를 만들고, 그 욕망의 가치관 구현을 위해 달려왔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진보와 성장을 위한 욕망을 버려야
진보를 목표로 하지 말자. 성장을 목표로 하지 말자. 자연에는 진보가 없다. 자연은 진보라는 가치를 위해 전쟁을 하지도 않는다. 성장을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굶어 죽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양적 확대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지구촌에서 식량이 부족해서 사람들이 굶어 죽고, 날마다 전쟁을 하는가? 규모를 키우지 않고, 사람과 돈, 시간을 골고루 나누고, 서로를 돌보면 된다. 양보다 질을, 개발보다 보전을, 신설보다 유지를 중시하는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 진보와 성장을 향한 끝없는 갈망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 21대 대통령 선거는 아직 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연명을 이유로 그 욕망의 구조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나 자신 또한 그러하다. 고통스러운 시간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아니 우리는 이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