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역사적' 리야드 연설…"더는 중동 일 개입 없어"

"중동 운명, 중동 인민 스스로 그려야"

NYT "중동 정책 방향 완전히 뒤집어"

"미, 외국 지도자 영혼 조사‧죄 심판"

네오콘 등 개입주의자들 잘못들 인정

'패싱' 불만 네타냐후, 가자 폭격 단행

2025-05-15     이유 에디터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너무 많은 미국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들의 영혼을 조사하고 그들의 죄를 심판하는 데 미국의 정책을 쓰는 게 우리 일이란 관념에 시달려왔다...나는 심판하는 건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는다. 나의 일은 미국을 지키고 안정과 번영, 평화란 근본적 이익을 증진하는 것이다."

백악관 발표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 압둘라지즈 국제컨퍼런스센터에서 진행된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 연설에서 이렇게 말하고 지난날 중동에 '개입'해 잘못을 저지른 역대 미국 행정부를 비판했다. 그리곤 중동의 운명은 중동 인민 스스로 그려 나가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킹 압둘라지즈 국제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사우디-미국 투자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 05. 23 [AP=연합뉴스]

'역사적인' 트럼프의 리야드 연설
"미국, 더는 중동 일에 개입 없어"

더는 미국이 중동국가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트럼프의 발언이 나오는 순간 포럼에 참석한 아랍 국가 주요 인사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고 뉴욕타임스가 14일 전했다. 

사우디 '아랍뉴스'의 파이살 J. 압바스 편집국장도 '역사적인 트럼프의 리야드 연설 분석'이란 14일 자 칼럼에서 "깊은 공감을 불렀다"면서 "2025년 5월 13일 트럼프의 리야드 연설은 사우디아라비아-미국 관계는 물론 중동 지역 전체에 하나의 전환점으로서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란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평가했다.  한 참석자는 트럼프가 행사장을 뜨겁게 달궈 마치 록스타 같았다고 말했다.

연설에서 트럼프는 사우디의 혁신을 이끄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등을 겨냥해 "우리 눈앞에는 새 세대의 지도자들이 오래된 분쟁과 지긋지긋한 과거의 분열을 뛰어넘어" 중동의 새 미래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건 중동 하면 혼란이 아닌 상업이 연상되고, 테러리즘이 아닌 과학기술을 수출하고, 서로 다른 국가·종교·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죽이려고 폭격하는 게 아니라, 함께 도시들을 건설하는 그런 미래"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네오콘을 비롯한 미국 개입주의자들이 과거 중동에서 자행한 잘못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5일 카타르 도하의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에서 출국을 위해 미 공군 1호기에 탑승하면서 손짓 하고 있다. 2025. 05. 15 [AP=연합뉴스]

"중동 전체에 하나의 전환점"
미국 개입주의자들 잘못 인정

트럼프는 아랍 청중들을 향해 "이 위대한 변화는 여러분에게...어떻게 살지, 또는 국정을 펼칠지를 강의하는 서방 개입주의자들로부터 온 게 아니다. 리야드와 아부다비의 빛나는 성취는 수조 달러를 쓰고서도 카불과 바그다드, 그리고 아주 많은 다른 도시들을 개발하는 데 실패했던, 이른바 '국가 건설업자들'과 '네오콘들' 또는 '리버럴 비영리기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현대 중동의 탄생은...여러분 자신의 주권국가를 발전시키고, 여러분 자신의 독특한 비전들을 추구하며, 여러분 자신의 운명을 그려 나가는 (중동) 지역 인민 자신에 의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가 건설업자들은 본인들이 건설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나라들을 파괴했고, 개입주의자들은 심지어 자신들도 모르는 복잡한 사회들에 개입해왔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아메드 알샤라 시리아 임시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2025. 05. 14 사우디 왕궁 제공 [AP=연합뉴스]

"중동은 세계의 지리적 중심이자
가장 위대한 종교들의 정신적 심장"

이란을 향해서도 압박과 함께 '화해의 손짓'도 했다. 또 이란을 '중동에서 가장 파괴적 세력'이라고 지칭한 트럼프는 "나는 과거 이란 지도자들의 혼란을 비난하는 것뿐 아니라, 그들에게 훨씬 더 낫고 희망찬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길과 훨씬 더 나은 길을 제안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언제든지, 평화와 파트너십을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란 지도부가 '올리브 가지'(화해)를 거부하고 이웃 국가들을 계속 공격한다면 이전처럼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제로'로 만드는 최대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레바논을 향해선 "나의 행정부는 경제 발전과 이웃들과의 평화를 지닌 미래를 만드는 걸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고, 미국의 제재 해제를 약속한 시리아의 아메드 알샤라 신정부를 향해선 "국가 안정과 평화 유지에 성공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이를 입증하듯 트럼프는 14일 리야드에서 사우디의 빈살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리아의 알샤라 임시대통령과 만났다.

중동의 미래와 관련해 트럼프는 "이 지역의 책임 있는 나라들이 이 순간을 낚아채고, 여러분의 차이는 제쳐두고 여러분을 단결시키는 이익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때는 이 세계의 지리적 중심...가장 위대한 종교들의 정신적 심장인 바로 여기에서 곧 목격하게 될 일에 전 인류가 놀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오른쪽)와 극우 유대광신자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이 주간 각료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4. 01. 07 [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중심' 1기 정책과 달라
"중동 정책 방향 완전히 뒤집어"

트럼프 연설을 '역사적'이라고 했던 압바스 편집국장은 △ 중동의 역학 변화 가능성을 내비치며 이란에까지 화해의 메시지를 보낸 점 △ 제재 해제 등 시리아 위기 대응 △ 팔레스타인인인 여건 개선 공약 △ 레바논 재건 지지 약속 등을 포함한 중동 지역 안정의 포괄적 접근법을 보여준 것에 주목했다. 또한 과거 중동에서 저지른 미국의 잘못을 시인하고 조지 W. 부시 같은 네오콘과 오바마 같은 민주당 행정부의 개입주의적 전략들을 비판한 부분을 평가했다.

이날 연설은 트럼프 집권 1기(2017~2021년) 때의 중동 정책 기조와는 사뭇 달랐다. 1기 때는 전통적 맹방인 이스라엘의 이익을 중심에 놓고 베냐민 네타냐후 정권을 전폭 지원하는 한편, 이슬람 시아파 정권인 이란을 '주적'으로 삼고, 팔레스타인의 존재는 의도적으로 부정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까지 모든 중동의 핵심 현안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반감을 지닌 일부 주민과 중동의 지도자들은 트럼프의 발언을 환영하고 있다. 사우디의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외무 장관은 회견을 통해 트럼프 연설은 "꽤 중요했다"면서 연설 내용은 "파트너십과 상호 존중의 접근 방식"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미국의 중동 정책 방향을 완전히 뒤집은 이날 연설 관련 영상은 중동 국가들에서 SNS를 통해 빠르게 퍼지며 화제가 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덧붙였다. 

 

이스라엘군 병사들이 남부 이스라엘의 가자 접경 근처 대기 지역에서 탱크와 장갑차들을 운용하고 있다. 2025. 05. 15 [AP=연합뉴스]

트럼프, 중동 순방서 이스라엘 '패싱'
네타냐후, 가자 폭격 단행…분풀이?

상대적으로 전통적 맹방으로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던 이스라엘은 '패싱'의 수모를 겪고 있다. 트럼프가 백악관 복귀 후 첫 공식 해외순방(5월 13~15일)으로 사우디, UAE, 카타르 3국만 찾고 이스라엘은 쏙 뺀 데다가 실제 내용도 이스라엘의 뜻과는 많이 달랐다.

당장 시리아 대응만 해도 그렇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알아사드 정권 붕괴 이후 시리아 공습을 강화하며 점령 지역인 골란고원 영유권을 굳히는 한편, 미국의 제재 해제에 반대해왔다. 특히 네타냐후가 지난달 방미 때 시리아 제재 유지를 요청했지만, 트럼프는 제재 해제를 발표했을뿐더러, 알샤라를 '매력적'이라고까지 하면서 관계 정상화에 나섰다.

트럼프와 네타냐후 간 이상 신호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7일 공개된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와의 휴전 합의를 사전에 이스라엘과 조율하지 않았고, 가자지구에 억류돼있던 미국‧이스라엘 이중국적 인질인 에단 알렉산더의 석방을 위해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직접 협상'을 진행해온 사실도 미리 통보해주지 않았다.

한편,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14일 오후 늦게 가자 북부 가자시티 내 여러 지역에 새로운 대피 명령을 내리고 공습을 가했으며, 폭격당한 자발리아 주택가를 중심으로 어린이 등 최소 80명이 사망했다. 이번 공습은 이스라엘에 휴전을 압박하는 트럼프의 중동 순방 중에 단행됐다는 점에서 '소외'된 네타냐후의 분풀이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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