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대표회의 소집…'사법 쿠데타' 유감 표명 나올까

"법원 정치적 중립, 사법 신뢰 훼손 논의 위해"

과거 회의에서 내부 자정 목소리 내왔지만…

이번엔 가까스로 소집...반대표가 훨씬 더 많아

서울고법 공판기일 변경도 일정 부분 영향 준 듯

"판사들 안일한 대처땐 국민들 개혁 요구에 직면"

이재명 "사법부 신뢰하지만 총구 난사하면 고쳐야"

2025-05-09     김성진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14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5.4.14 [전국법관대표회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기사 종합 : 오후 8시 6분]

전국 법관 대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대법원 '파기환송'으로 불거진 사법부의 정치적 중립 문제 등을 논의한다. '조희대 사법 쿠데타' 이후 법원 내부에서는 사법부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 후보에게 '초고속' 유죄 파기환송 판결을 내려 파문을 일으킨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자진 사퇴 요구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더해 조 대법원장의 '극우 법조 카르텔'에 대한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향후 법원회의 결과에 따라 사법파동으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이러한 비판적 움직임과 반대로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사법부의 내부 저항도 감지된다. 이번 임시회 소집도 법관 대표들의 반대 속에 가까스로 열린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의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국민의 대의 기관인 입법부를 중심으로 한 사법개혁 추진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9일 "구성원의 5분의 1 이상이 법원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의심과 사법에 대한 신뢰 훼손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입장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전국법관대표회의 임시회의 소집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에서 선출된 대표 판사들이 모여 사법행정에 관한 의견이나 요구사항을 수렴하는 회의체다. 매년 2차례 정기회의를 여는데, 의장 직권 또는 구성원 5분의 1 이상(26명)의 요구가 있으면 임시회의를 소집할 수 있다. 해당 규칙에 따라 임시회는 조만간 소집될 예정이다. 다만 임시회의 일정은 오는 26일로 잡혔지만, 구체적인 안건은 정해지지 않았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현재 안건 상정 절차가 진행 중"이라며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법관대표들이 신중하고 깊이있는 검토 과정을 거쳐 안건을 상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임시회의에선 조 대법원장 주도로 이 후보 사건을 이례적으로 '초고속' 처리해 사법부가 정치 개입 및 선거 개입 문제를 일으킨 데 대한 논의가 우선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법관대표회의가 지난 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국면에서도 유감을 표명하고 조사를 요구하는 등 일정한 역할을 했던 만큼 이번에도 대법원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에 유감 표명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일각에서는 나온다. 정치 의견 표명에 보수적인 사법부가 내부 비판에 이어 임시회의를 소집했다는 자체도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연합뉴스 자료사진

다만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법관들의 움직임도 만만찮은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법원 안팎에선 사법부의 대선 개입 문제뿐 아니라, 대법원의 이 후보 사건 파기환송과 관련한 청문회 개최 등 더불어민주당의 사법 독립 침해 행위에 대한 규탄 문제도 함께 다룰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법관대표회의는 제안자를 제외한 4인 이상 동의가 있는 경우 안건을 그대로 상정해야 하며, 제안자를 포함해 10인 이상 동의를 얻으면 회의 현장에서도 추가로 안건을 상정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돌발적인 안건 제안과 격론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법관대표회의는 전날 임시회의 소집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투표를 진행했으나, 이날 오전까지 연장해 의견을 받았다. 전날까지 소집을 요청한 구성원 수가 회의 소집 요건인 5분의 1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법률신문> 단독 보도에 따르면 임시회의 소집 여부에 대한 비공식 투표에서 26명의 법관대표가 찬성표를 내며 의결정족수(26명)를 가까스로 넘겼다. 반면, 반대표는 70표로 나와 회의 소집 찬성보다 3배가량 많았다.

법관대표회의 관계자는 반대표가 70표였다는 데 대해 "상정한 안건에 대한 공식적인 찬반투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며, 내부에서 논의된 구체적인 사항은 확인해드리기 어렵다"면서 "구성원 5분의 1이상의 소집 요청이 있다는 사실 외에 확인해드릴 수 있는 내용이 없다"고 밝혔지만, 사실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법부의 보수적인 움직임은 대법원장과 대법원에 대한 내·외부의 비판에도 판사들 상당수가 여전히 '신중론'에 기울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서울고법이 이 후보 사건 첫 공판기일을 대통령 선거 뒤인 다음달 18일로 옮김으로써 논란이 일정 부분 해소됐다는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다만 법원이 권위에 기대어 '조희대발 사법 쿠데타'를 적극적인 사법부 내부 자성으로는 이어가지 못한다면 국민의 대의 기관인 입법부를 통한 권력 감시 및 견제는 피할 수 없는 수순으로 보인다.

민주당에서는 지난 1일 대법원이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이 후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한 뒤, 이미 사법부 개혁을 위한 절차를 밟아 나가고 있다. 이번 이 후보 사건에서 드러난 소수 대법관들의 '사법 쿠데타' '선거 개입 행위'가 이러한 개혁 움직임에 역으로 속도를 붙인 셈이다. 법원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한 법안도 신속하게 발의됐다.

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지난 8일 대법원장을 포함해 14명에 불과한 현행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장 의원은 "연간 수만 건에 달하는 사건이 대법원에 접수되고 있으나, 대법관 1인당 연간 수천 건에 이르는 사건을 감당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로 인해 개별 사건에 대한 충분한 심리와 판단이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어 상고심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심각하게 저하되고 있다"고 밝혔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참석해 있다. 2025.5.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또한 민주당은 이 후보 사건 파기환송 이후 조희대 대법원장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동시에, 조 대법원장에 대한 청문회·특검법 발의·탄핵 추진을 공식화한 상황이다. 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 3일 유튜브 채널 <박선원TV>에서 '조희대 사법 쿠데타'의 배경으로 김앤장 출신의 서석호 변호사를 지목하면서 "윤석열과 조희대 사이를 다리 놓았다"며 "후보 탈취 작전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병철 변호사는 지난 6일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서석호는 조희대와 (대구)경북고 3년 선후배 사이, 윤석열과 서석호는 ​서울 법대 동기다. 민주진영은 이념이나 정당성, 헌법 이런 거로 판단하지만, 저 쪽은 그런 거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0.001% ​네트워크의 힘이 있다"며, '조희대 사법 쿠데타'의 배경에 윤석열과 법조 카르텔이 자리잡고 있음을 내비쳤다.

청문회에서 내란 우두머리인 윤석열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 조희대 대법원장, 서석호 변호사 등을 둘러싼 법조 카르텔의 실체가 드러난다면서, 특검 등의 수사는 물론 사법부 개혁 드라이브는 더욱 거세게 걸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에 민주당뿐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도 이 후보 사건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법관들은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조 대법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된 조희대 대법원장 사건을 수사팀에 배당하고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법원 내부의 자정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전날도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희대 대법원장과 9명의 대법관들은 유례없는 신속함을 위해 정의의 구현이라는 목표를 내팽개쳤으며, 조 대법원장의 재판 지휘권 남용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다"면서 "조 대법원장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위반과 사법부 신뢰 훼손의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민언론 민들레>와 통화에서 법관대표회의가 반대 속에서 가까스로 열린 상황과 관련, "법관 대표들이 모여서 '조희대 사퇴'까지 요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사법부를 향해 "적어도 대법원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건 옳지 않다는 메시지 정도는 나와야 하는데, 판사들이 안일한 자세로 대처하고 스스로 자정 능력이 없음을 보여준다면 거센 국민들의 개혁 요구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제3차 골목골목 경청투어로 경북지역 방문에 나선 9일 경북 고령군 대가야역사공원 내 대가야정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2025.5.9. 연합뉴스

한편 공직선거법 재판 당사자인 이 후보는 이날 경북 김천시에서 '경청 투어'를 진행하던 중 기자들을 만나 전국법관대표회의 관련 질문을 받고,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거듭 보여주면서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뜻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 대해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 중 일부"라며 "법원은 우리 국민이 얼마나 사법부를 신뢰하고 기대하는지 기억해야 한다. 그 믿음과 신뢰를 깨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내에서 조 대법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나오는 것에 대해선 "사법부는 최후의 보루이며 이 보루를 지키는 것이 어떤 길인지는 우리 국민께서, 그리고 사법부 구성원들이 다 알고 있다"며 "저는 대부분의 사법부 구성원을 믿고, 우리 사법 체계를 믿는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거듭 "제가 지금까지 수많은 억지 기소를 당하고 검찰로부터 핍박당했지만, 저는 사법부를 최종적으로 믿었다. 그 공격을 받고도 사법부에 의해 지금까지 살아있다"며 "구속영장 청구 때에도 대부분 구속 가능성이 높다고 했지만, 법원이 영장을 기각했다"면서 법원에 대한 신뢰를 강조했다.

이어 "윤석열 검찰 정권에서도 제가 11건 기소를 당했는데 그들이 가장 (유죄) 가능성이 높다고 기대한 게 위증교사 건이다. 저는 대법 판례에 따라 당연히 무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며 "그래서 지금까지 정치인 이재명, 인간 이재명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 법원에 대한 제 믿음은 유효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후보는 "최후의 보루가 오염되면 뭘 믿고 살겠나. 멀쩡히 잘 나가던 브라질이 퇴락한 것을 보라"면서 "'최후의 보루'의 총구가 우리를 향해 난사하거나 자폭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고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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