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을 극락으로 만든 FC안양과 시민의 영화
선수와 서포터즈들이 주연인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은 끈질긴 영화다. 이미 2년 전에 만든 영화지만 작년에 가장 주목을 받았고, 최근 인디그라운드에서 4월 16일부터 온라인 상영을 하며 화제가 됐다.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에 런칭되면 또 화제가 될 것인데, 그것은 넷플릭스가 선택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이 영화에서 다루는 시민구단 FC안양과 그 진짜 주인인 서포터즈가 함께 지금 이 순간에도 기적을 써내려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생 축구팀과 서포터즈들의 미친 에너지에 홀린 감독
사람 냄새 물씬나는 이 다큐 영화의 카메라는 시민구단 FC안양의 서포터즈들을 따라서 이동한다. 이들은 9년을 준비해서 12년 전 FC안양을 ‘스스로’ 창립했다. 자본이 없어서 스타 선수들을 스카우트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줄곧 2부리그에서 머물렀지만, 종료 호루라기를 불기 전까지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화끈한 경기를 선보이는 팀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자기들을 배신하지 않을 팀과 선수들, 그리고 자신들을 진짜 주인이라 여기는 구단주(시장)가 있었기에 함께 힘을 모아가며 매 시즌 발전할 수 있었고 마침내 안양 시민들까지 사로잡고야 말았다. 가족 단위의 팬들이 만 명씩 관람하는 유일한 2부리그 팀이 된 것이다. 이 즈음에 역시 안양 시민이던 나바루 감독은 재미없는 도시에서 유일하게 미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미생의 축구팀과 서포터즈들에 매료되고 만다. 그가 무엇에 홀린 듯이 이들과 구단의 경기를 찍기 시작했던 것은 굳이 다큐영화를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들과 함께 있으면 재미있고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영화는 당연히 서포터즈처럼 FC안양과 운명을 같이하게 됐다. 2부리그 우승으로 자동승격을 노릴 때 영화는 비로소 선을 보일 수 있었고, 2부리그 우승을 확정한 24년에는 많은 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고 상을 받기 시작했는데 10월에 제44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을 수상한 일은 감독들에게는 가장 뜻깊은 일이었다. 물론 정식 개봉을 하고 무려 1만 5천여 관객들을 동원하면서 8.97의 평점을 받은 것도 기쁜 일이었지만, 개봉 당시 서포터즈들은 FC서울의 홈구장인 상암 월드컵경기장 메가박스에서 꼭 영화를 보고 싶어했다. 또 하나의 승리였기에.
가장 값진 승리는 역시 FC안양의 승격이었다. 11월 2일 2부리그 우승을 자력으로 확정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얼싸 안은 서포터즈와 선수단은 1부 리그 첫 경기부터 승리를 따내면서 가장 두려운 팀으로 떠올랐고, 영화 <수카바티: 극락축구단>은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다. 뒷배라고는 진짜 주인들인 서포터즈 밖에 없는 FC안양은 25년 4월 30일 기준 K-리그1 6위에 올라 있고, 무승부가 단 한 번도 없는 유일한 1부 리그 팀이다.
‘닥공’으로 축구장을 극락으로 만드는 ‘무승부가 없는 팀’
‘무승부가 없는 팀’은 FC안양의 축구스타일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름이며 FC안양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FC안양은 최고의 축구팀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열정적인 서포터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팀이다. 서포터즈는 <폭삭 속았수다>의 금명아버지 양관식처럼 선수들에게 말한다. “아빠가 여기서 너희들을 보고 있을 거야. 하다가 하다가 질 것 같으면 빠꾸! 알았지?” 승리하면 얼싸안고 같이 축배를 들고, 지더라도 최선을 다했으면 아낌없이 응원을 보내는, 맨손으로 구단을 만들어낸 진짜 부모와 같은 서포터즈가 있어서, 선수들은 90분 동안 ‘닥치고 공격’을 그치지 않는다. 골을 아무리 먹어도, 종료 호루라기가 울리면 모두 그라운드에 쓰러질지언정,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지 않는 것은, 서포터즈들이 그들과 똑같이 경기장 밖에서 그 경기를 뛰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축구를 하며 재밌는 경기를 만들어내는 그들 때문에 안양의 시민들은 홈경기를 놓치지 않는다. 지더라도 이긴 것처럼 응원하는 서포터즈들 때문에 선수들은 자기 연봉을 깎아서라도 FC안양에서 축구를 하고 싶어 한다. ‘안양’이란 도시의 이름을 산스크리트어로 번역하면 ‘수카바티’ 곧 ‘극락’이다. 도시 전체가 ‘극락’은 아니라고 해도, 팬과 선수들이 하나가 되어 경기 중인 축구장은 ‘극락’이 된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들은 ‘극락’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유일한 축구팀인 것이다.
사실 안양은 30년대만 해도 수도권 최고의 공업도시이자 관광지로, 경기남부권역의 중심도시였다. 하지만 복부인을 영부인으로 둔 신군부의 신도시 개발정책은 안양의 정체성을 파괴하고, 허울 좋은 신도시란 사기극 아래 서울의 베드타운으로 전락시켰다. 영화는 안양의 이 무기력증에서 신기하게도 ‘홍염(紅焰)의 서포터즈’가 탄생했음을 기록한다.
지역 축구팬들에게 단비로 변한 폭력적 지역연고제
1995년은 많은 사람들에게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해로 기억되지만 FC안양의 서포터즈는 안양에도 지역 연고를 둔 축구팀이 생겨날 것이라는 희망이 싹트던 해로 기억한다. 1995년 2월 한국프로축구연맹 이사회는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지방 축구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면서 강제로 서울 연고지 구단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낸 것이다. 일화 천마, 유공 코끼리, LG 치타스가 각각 천안, 부천, 안양으로 가서 둥지를 틀게 된다. 구단들은 가뜩이나 수익을 내기 힘든 상황에 지역으로 쫓겨났다는 생각에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폭력적인 이 선택이 지역의 축구팬들에게는 은혜의 단비였다.
이미 지역연고제를 탄탄히 발전시켜 강력한 팬덤을 만들어낸 프로야구와 달리, 지역연고제가 지역감정을 유발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주장을 하면서 오로지 축구광인 전두환 각하의 심기 보전에만 신경을 쓴 덕에, 프로축구 리그는 대통령배 국제축구대회보다 인기가 없었다. 지역 연고는 그저 무늬에 불과할 뿐 홈&어웨이의 기본 룰마저 지키지 않는 전국순회시합의 프로리그는 사실 국가대표와 그 나머지 팀들일 뿐이었다. 그런 상황이 서울 공동화 정책 아래 개선되기 시작한다. 특히 IMF의 직격탄을 맞은 안양의 청춘들에게, LG 치타스의 대활약은 힘든 시간을 견디게 해 주는 유일한 낙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98년의 코리아컵 우승, 2000년 K리그 우승, 이듬해의 준우승은 서포터즈들에게 덕질이 무엇인지, 희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빼앗긴 LG 치타스(FC서울) 대신 다시 만든 진짜 내 고장 팀
2002년 월드컵의 대성공 이후 축구팬들을 대거 K-리그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기업가 서울시장이 등장했고, 서포터즈들은 묘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상암 월드컵경기장의 활용을 명분으로 LG 치타스는 FC서울이 되어 서포터즈들을 버리고 안양을 떠났고, 서포터즈들은 삭발에 경기장 난입에 모든 방법을 동원해 봤지만 결국 미치게 좋아했던 축구팀을 빼앗기고 말았다. 신자유주의는 그렇게 약자에게서 가장 중요한 것을 빼앗아 가진 자에게 더 많은 것을 주는 체제인 것을, IMF를 겪고도 깨닫지 못했던 그 사실을 서포터즈들은 축구단을 빼앗기고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진짜 시민구단을 만들기로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업이 진짜 주인인 구단은 언제든 사주의 이익에 따라 배신할 수 있다. 시민이 주인이어야 한다. 그렇게 FC안양을 만들려는 시도가 시작되었고, 그 꿈을 위해 다시 일을 시작했고, 심지어는 시민구단 공약을 하는 사람을 의회로 보내는 운동까지 하게 되었다.
이렇게 정치와 축구단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도 발견한 그들은 카메라 앞에서 마지막 소원을 말한다. “반드시 북패(FC서울)를 꺾고야 말겠다”고. 그 소원은 2004년에는 복수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 의미만은 아니다. 많은 시민들이 그 소원이 성사되기를 응원하는 것은, 그 소원이 이뤄져 K-리그의 주도권이 시민 주도의 클럽으로 옮겨지길 원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이 선순환 구조로 연동되기를 바라고, 성남FC의 우수 사례처럼 지자체의 정책과 풀뿌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어 시민들의 꿈이 마침내 온전히 이뤄지는 해피엔딩으로 이 상실의 이야기가 마무리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1부 리그로 승격한 뒤 처음 만난 FC서울과의 게임에서 그들은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도 K리그1 역대 홈 개막전 최다 관중 2위에 해당하는 4만 1415명의 관중을 동원했고, 우승 후보라는 FC서울은 2부리그 승격 팀에게 혼쭐이 났다. 5월 6일 두 번째 맞대결이 펼쳐지는데 현재까지의 순위는 FC안양이 더 높다. 그것만으로 이미 FC안양은 승리한 것이니, 어쩌면 이후의 FC서울과의 경기는 오롯이 두 팀이 얼마나 재밌는 축구를 할 것인가로 승부를 가리게 되지는 않을까?
승패 보다 도전이 중요하다는 걸 알려줄 다큐멘터리 시리즈
확실한 것은 2월 22일의 경기에 이어 5월 6일의 경기 역시 <수카바티: 극락축구단> 시즌2를 미리 엿보는 일이란 것이다. 콘텐츠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아직 채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를 미리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다. 어쩌면 <수카바티 : 극락축구단>이란 이름의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시민 서포터즈와 구단이 시즌을 이어가면서 이미 제작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시리즈를 계속 보면서 “무승부가 없는” FC안양과 같은 도전이, 인생에 승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도전임을 배우게 된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뜨겁게 무엇인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또 그렇게 사랑할 줄 아는 다음 세대들을 길러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