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 뜨고 뽀얀 피부…" 윤석열 우상화한 기자들
[언론 복기의 시간②] 당선후에도 쏟아진 미화·찬양
중앙 주필 '인간 전두환' 수준 역대급 아부 칼럼
KBS·TV조선·MBN 등 방송들 특집편성해 '찬송가'
뉴시스·뉴스1 등 민영통신들 우상화·신격화한 기사
주류언론들, 국민배신자에 아부… 사과 왜 안하나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 여러 주류언론들은 즉각 ‘검증의 시간이 왔다’고 썼다. 예컨대 동아일보는 다음날 “이 후보는 이제 국정 최고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국민 검증을 받아야할 시간”이라는 사설을 냈다. 맞는 말이다. 투표일인 6월3일까지 약 한 달여 동안 그는 ‘국정 최고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검증받아야 한다. 그동안 정치인 이재명에게 별로 호의적이지 않았던 주류언론들은 이제 촘촘한 잣대와 날 선 칼을 들이대며 혹독한 검증에 돌입할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민주당 후보인 이재명에게 ‘검증의 시간’을 힘주어 말하는 것을 보노라면 왠지 불편하다. 그동안 대선 후보들에 대한 언론의 검증이 과연 공정했는가란 의문 때문이다. 나라를 사적 이윤추구의 도구로 이용하다 징역 17년 형을 받고 감옥에 간 이명박, 무능과 국정농단 사태로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박근혜에 대해 언론이 검증다운 검증을 했을 리 없다.
윤석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번 칼럼(“내란수괴 윤석열과 언론, 복기의 시간이 왔다”)에서 본 것처럼 주류언론들은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는 한없이 느슨한 잣대와 병아리 깃털만큼이나 가볍고 부드러운 칼을 들고 검증에 나섰을 뿐이다. 그것은 검증의 칼이라기보다는 윤석열의 무능·무개념·무자격·무도를 덮어주기 위한 방패였다. 부실검증을 넘어 미화와 찬양 기사도 수두룩했다.
윤석열에 대한 언론의 부실한 검증과 낯부끄러운 미화·찬양 보도가 불러온 결과는 경제·외교·민생의 총체적 파탄과 혼란, 그리고 12.3 비상계엄 내란으로 인한 민주주의·헌정질서 파괴였다. 주류 언론들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에 대한 부실검증-비리은폐와 미화·찬양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류언론들에게 그런 겸손과 용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윤석열을 찬양·미화했던 주류언론들 가운데 어느 곳도, 그 언론에 몸 담고 있는 수많은 기자들 가운데 누구도 잘못했다고 반성하거나 사과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검증의 시간’이 끝난 뒤에도 주류언론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당선자 윤석열과 대통령이 된 윤석열에 대해 견제와 감시, 비판이 아니라 차마 입에 올리기 민망한 찬송가를 불러댔다. 윤석열-김건희 부부를 미화·신격화한 기사와 칼럼은 너무 많아서 다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내용도 낯부끄러울 정도로 유치했다. 북한 로동신문 기사인가 혹은 아프리카 후진국의 기사인가 싶은 수준의 아부 기사가 주류언론에 버젓이 등장하고 포털을 통해 유통됐다. 다 찾아서 기록해두기 어려울 정도로 많지만 대표적인 아부 기사(칼럼) 몇가지만 소개한다.
동아일보 전주영 기자는 윤석열 당선 직후인 2022년 3월12일 “친구에게 주머니 털어주고 동네 여학생 짝사랑한 순정파 윤석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 미담(美談) 기사에는 윤석열이 ‘칸트 철학에 심취’ ‘양심의 명령대로 살아왔다’ ‘철학, 사회과학, 역사를 폭넓게 공부‘ ‘리더십이 강하고 보통 꼼꼼한 게 아니었다’는 등의 찬사가 담겨있다. ‘사시 9수’ ‘쩍벌남’ ‘열차 구둣발’ ‘술꾼’ 같은 윤석열에게 부정적 이미지가 이 기사에서는 모두 긍정으로 바뀌었다. 전주영 기자에게 묻고 싶다. 기자는 대통령 당선자를 미화하는 글을 쓰는 사람인가 감시 비판하는 사람인가?
중앙일보 현일훈 기자는 서면 인터뷰 기사(3월11일)라며 “김건희 ‘밥해준단 말 10년 지킨 윤, 국민 약속도 지킬 것’”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애틋한 애정사를 전하며 김건희 씨가 다른 정치인에게 ‘정갈한 글씨체의 손편지’를 보내고 ‘소외계층을 중심으로 조용한 내조에 주력하겠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학력위조·논문표절·주가조작 등 숱한 파렴치 범죄 의혹에 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김건희 씨를 착하고 소탈한 대통령의 아내라는 이미지 만들기에 나선 기사다. 현일훈 기자에게 묻는다. 국민에게 알려야 할, 국민이 알고싶어하는 영부인 김건희 씨는 남편 사랑이 애틋하다는 김건희 씨인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주가조작으로 돈을 벌고 명품백을 받아챙겼다고 알려진 김건희 씨인가?
‘윤비어천가’의 압권은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의 2022년 8월22일자 “어둠 속 반지하 계단에서 미끄러진 대통령” 칼럼이다. 윤석열이 침수피해를 입은 신림동 반지하 주택을 찾아가 둘러본 장면을 놓고 쓴 칼럼인데 “대통령이 만류를 뿌리치고 출입금지선인 폴리스라인을 넘어 어둠 속 계단을 걸어내려가 경호원들이 당황했”고 “도중에 미끄러져 넘어질 뻔했고 구두와 바지를 흙탕물에 적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저 먹먹한 슬픔의 공간으로 몸을 밀어넣은 것은 국민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라는 무한책임과 연대의 증거”라고 칭송했다.
또 “윤 대통령은 한겨울에 어머니가 사준 외투를 입고 나선 첫날 노점상에게 벗어준 대학생”이었다면서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겠다고 했다...제1 공복의 겸손한 언어” “투박한 소신과 철학이 확인됐다” “국민 아픔 품으려는 대통령다움” “김건희 여사의 절제있는 행보” 등등 언론인이 쓰기에 민망한 표현들을 끌어모아 윤석열 찬미가를 불렀다. 이하경 주필에게 묻고 싶다. 혹시 이 칼럼은 조선일보의 저 유명한 ‘인간 전두환’ 기사를 보고 따라한 것인가? 칼럼의 윤석열과 국민 배신자-내란수괴 윤석열은 다른 사람인가?
윤석열에 대한 언론의 미화·찬양·신격화 보도는 참으로 다양했다. 취임식 날 하늘에 뜬 무지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주류언론들의 기사가 쏟아졌다。종편방송에서는 대놓고 “아주 상서로운 그런 무지개가 떴고”(MBN 백운기 앵커) “대한민국에 서광이 비친 것 같다. 상서로운 기운이 윤석열 정부의 첫날을 이렇게 축하했다”(최수영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고 했던 TV조선이 떠오른다. 최수영 전문위원은 지금도 YTN 등 방송에서 정치평론을 하고 있다. ‘취임식 무지개 타령’을 했던 기자들과 정치평론가들에게 묻고싶다. ‘상서로운 무지개’의 결과는 혹시 나라를 통째 뒤엎을 뻔한 12.3 비상계엄 내란이었는가?
민영통신사인 뉴시스 강진구 기자는 2023년 10월2일 “윤 대통령 부친 반야용선 태운 연기 ‘용의 입 모양’ 화제”라는 기사를 썼다. 윤석열의 부친 윤기중 씨의 49재 마지막 날 옷·소지품 등을 넣은 종이 ‘반야용선’을 태우는 도중에 연기가 ‘용의 입’ 형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 정도면 구름 사이로 비쳐 내려오는 햇빛을 보고 ‘윤석열취임 축하를 위한 신의 축복’이라고 하는 기사가 주류언론에 나올 기세다.
윤석열이 당선 직후 남대문시장을 찾았다. 상인회 관계자들과 점심을 먹었는데 “(윤이) 회장단 일원에게 직접 후추를 뿌려주거나 수저를 놓아주는 친절을 베풀었다”(뉴스1, 김일창 기자)고 한다. 또 며칠 후에는 경북 울진 산불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이번에는 ‘짬뽕을 먹었는데 윤 당선인이 매상을 올려주고 싶어 짬뽕 식당을 방문한 것’이라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 다음날은 김치찌개 식당에서, 또 그 다음날은 피자 가게에서, 또 그 다음날은 육개장과 비빔냉면을 먹었다는 보도가 중앙일보 등에 이어졌다. 매일경제신문은 “음식에 일가견이 있다고 알려진 윤 당선자”가 국자로 앞에 앉은 이에게 국물을 떠주는 장면을 사진으로 보도했다. 일거수일투족을 상세히 보도하고 미담을 만들어내는 것은 누군가를 우상화할 때나 쓰는 수법이다.
윤석열의 ‘뽀얀 살결’ 기사는 우상화 보도의 압권 중 압권이다. 윤 당선자가 대중목욕탕을 이용한 장면을 목격했다는 한 변호사가 SNS에 글을 올렸다. 이 글을 인용해 “아침에 동네 목욕탕 찾은 윤...주민 ‘피부 뽀얀 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여러 주류언론에 보도됐다. (동아일보 기사는 현재 온라인에서 삭제된 상태다. 창피해서 그랬을까.) 아마 이 기사를 보고 구역질이 난 독자도 있었을 것이다.
TV조선 신동욱 앵커는 윤석열 당선 직후인 2022년 3월10일 메인뉴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윤석열의 행로를 이렇게 그려봅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지지층이 싫어할 일도 밀어붙입니다. 고통이 따르거나 생색이 나지 않는 일을 다음 정부로 떠넘기지 않습니다. 공은 아랫사람에게 돌리고 책임은 스스로 떠안습니다. 전문적인 국정 분야는 이념과 정치색을 빼고 전문가에게 맡깁니다. 불리한 일이 터져도 침묵의 장막 뒤에 숨지 않습니다.” 신동욱 앵커는 이렇게 윤석열 찬송가를 부르고 국민의힘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얻었다.
같은날 MBN도 “제20대 대선 특집 윤석열, 국민이 부른 내일의 대통령”이란 제목의 46분 특별편성 프로를 방영했다. 윤석열의 친구, 동창, 국힘당의 친윤 의원들이 출연해 윤석열 ‘신화’를 쓴 방송이었다. ‘땡윤방송’으로 전락한 KBS는 윤석열 2년차 연말 ‘시사기획 창-원팀 대한민국, 세계를 품다’ 제목의 방송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 성과를 한껏 추켜세우며 스스로 ‘국정홍보 방송’임을 증명했다. 이듬해 초 박장범 앵커는 윤석열을 만나 김건희 씨가 받은 명품백을 ‘작은 파우치’로 축소하고 결국 KBS사장에 올랐다.
윤석열를 미화·찬양하고 우상화한 기사는 차고 넘친다. ‘윤비어천가’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묻는다. 윤석열이 12.3 비상계엄으로 내란사태를 벌이고 파면된 지금 기분이 어떤가? 그땐 윤석열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고 할 것인가?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문에 따르면 윤석열은 ‘국민 배신자’다. 국민 배신자를 그토록 미화·찬양·우상화했던 언론과 기자들은 국민 앞에 사과 한마디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윤비어천가’를 노래한 언론과 기자들은 묵묵부답이다. 국민은 아는데, 기득권에 아부하는 언론과 기자들만 스스로가 ‘기레기’인 줄 모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