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28%만 자국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인식

일본의 '전후 80년' 아사히신문 여론조사

과거사 범죄 '충분히 사죄히고 보상했다' 58%

'계속 사죄해야'에서 '그럴 필요 없다'로 역전

극우 아베 정권의 수정주의 역사관과 교육 영향?

떠오르고 있는 '서태평양연합' 구상

'미국 따르는 게 좋다' 24%, 대미 자립외교 68%

"전쟁 나면 미국이 지켜줄 것" 15%, "아니다" 77%

2025-04-27     한승동 에디터
(위)사죄, 보상 충분히 해 왔다고 보나? 왼쪽 푸른색은'충분히 해 왔다', 오른쪽 붉은색은 '아직 불충분하다' 위쪽은 일번 조사 결과. 아래쪽은 10년 전인 2015년 조사 결과.(아래)사죄 메시지를 계속 전달해야 하나? 왼쪽 푸른색은 '계속 전달해야 한다', 오른쪽 붉은색은 '계속 전달할 필요 없다'. 위쪽은 일번 조사 결과, 아래쪽은 10년 전인 2015년 조사 결과. 아사시신문 4월 27일  

일본 과거사 범죄 ‘충분히 사죄히고 보상했다’ 58%

일본이 전쟁이나 식민지지배를 통해 피해를 준 나라와 사람들에게 사죄와 보상을 충분히 해 왔느냐는 질문에, 일본인 응답자의 58%가 ‘충분히 해 왔다’고 대답했고, ‘아직 불충분하다’고 한 사람은 29%였다. 충분하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그렇지 않다고 답한 사람의 2배다.

이는 <아사히신문>이 올해 ‘전후 80년’을 맞아 2월 하순부터 4월 상순까지 우편을 통해 일본 전국의 유권자 3000명을 무작위로 뽑아 실시한 조사(유효 응답 1899. 회수율 63%) 결과 확인됐다.

아베 신조 정권 시절인 10년 전 ‘전후 70년’에 실시한 우편조사 때의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은 ‘충분히 해 왔다’가 57%, ‘아직 불충분하다’는 24%였다.

충분하다고 한 응답과 아직 불충분하다는 응답 모두 늘었으나, 불충분하다는 쪽이 더 많이 늘었다.

‘계속 사죄해야 한다’에서 ‘그럴 필요 없다’로 역전

일본의 정치가가 (일본이) 전쟁 등으로 피해를 준 나라에 사죄 메시지를 계속 전달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47%가 ‘계속 전달할 필요는 없다’고 했고, ‘계속 전달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44%였다.

10년 전에 실시한 조사에서는 같은 질문에 ‘계속 전달해야 한다’가 46%, ‘계속 전달할 필요는 없다’는 42%였다.

10년 전보다 ‘계속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이 ‘계속 전달해야 한다’는 쪽보다 더 많아지는 역전이 일어났다.

 

2015년 8월 14일 '전후 80년 담화'를 발표하는 아베 신조 전 일본총리.    연합뉴스

극우 아베 정권의 수정주의 역사관 영향?

이런 결과는 극우 아베 정권 때보다 일본의 전쟁책임에 대해 성찰하는 일본인들이 다소 늘었으나,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얼버무리며 회피하려 한 아베 정권의 강력한 수정주의 역사관과 세월의 영향으로, 군국 일본의 전쟁범죄와 그 피해자들의 참상과 고통에 대한 기억은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가고 있으며, 그것은 앞으로 더욱 가속될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0년 전 아베 당시 총리는 ‘전후 70년 담화문’에서 일본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정치를 세우고, 독립을 지켰다”면서 일본이 조선 등 아시아 침략을 통해 근대에 쌓아올린 성과를 일본인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칭찬하고,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 아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주었다”면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마치 서구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해 아시아를 구한 ‘아시아민족 해방전쟁’이었던 것처럼 묘사했다.

아베는 또 그 담화문에서 “일본에서는 전후에 태어난 세대가 이제 인구의 8할(80%)을 넘고 있다”면서 “그 전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의 자녀나 손자, 그리고 그 뒤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명기해, 더는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겠다고 사실상 선언했다.

이런 변화에는 과거사로 일본을 무릎꿇게 해선 안 된다고 했던 윤석열 정권의 대일 저자세 외교도 한몫 했을 것이다.

을사늑약 120년, 광복 80년, 한일협정 60년 ‘을사년’

지금 일본인들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문제는, 올해를 1905년의 을사늑약 120년, 광복 80년, 1965년의 한일협정 60년이 되는 을사년으로 기억하는 한국인들에게도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떠오르고 있는 ‘서태평양연합’ 구상

이 문제는 일본의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서태평양연합’ 구상과 관련해서도 주의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서태평양연합’이란 일본과 한국, 동남아시아국가연합, 그리고 호주와 태평양 도서국들을 망라한 지역연합 같은 것으로, 이를 통해 중국, 러시아, 인도, 그리고 미국 등 이 지역 대국들에 하나의 대등한 플레이어로서 대응하자는 구상이다.(<아사히신문> 4월 21일)

최근 한국 내에서도 재계 등을 중심으로 그런 관점에서 일본과의 ‘연합’ 구상들이 거론되고 있으나, 제대로 된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전제되지 않는 ‘서태평양연합’ 구상은 성사되기 어려우며, 설사 성사된다 하더라도 또 하나의 ‘대동아공영권’으로 전락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 정치가가 일본이 자행한 전쟁 등으로 피해를 본 나라에 대해 사죄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자민당 지지층의 응답은 ‘계속해야 한다’가 41%, ‘계속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50%로, 전체 응답보다 더 많았으나 큰 차이는 없었다.

일본의 근대전쟁이 ‘침략전쟁’이었다는 인식 28%

그리고 ‘1945년에 끝난 전쟁’이 어떤 전쟁이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침략전쟁’이라 응답한 사람은 28^%, ‘자위(방어)전쟁’ 응답자는 8%였으며, ‘침략전쟁과 자위전쟁 양면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42%였다. 10년 전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은 각각 30%, 6%, 46%였다. 10년 전보다 일본이 자행한 전쟁을 침략전쟁으로 보는 응답이 더 줄었고, 양면이 있다며 모호하게 얼버무리는 듯한 답을 고른 사람들이 주는 대신 자위전쟁이었다고 응답한 사람은 약간 늘었다.

이는 ‘잘 모르겟다’는 답을 고른 사람이 10년 전 15%에서 이번 조사에서는 21%로 많이 늘어난 것과도 상응하는 변화다.

 

(위)일본 외교는 미국의 의향에 어떻게 대응할까? 왼쪽 푸른색은 '가능한 한 따르는 게 좋다', 오른쪽 붉은색은 '가능한 한 자립하는 게 좋다'. (아래) 만일의 경우 미국은 정말로 일본을 지켜줄까? 왼쪽 푸른색은 '정말로 지켜 줄 것', 오른쪽 붉은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사히신문 4월 27일 

 

‘미국 따르는 게 좋다’ 24%, 대미 자립외교 68%

한편 일본의 대미국 외교에 대한 생각을 묻는 항목에 대한 응답도 최근 트럼프 정권 등장 이후의 국제정세를 반영한 흥미로운 변화 추이를 보여 주었다.

일본의 대미 외교에 대해 미국의 의향에 ‘가능한 한 따르는 것이 좋다’는 응답은 24%였는데 비해, ‘가능한 한 자립하는 쪽이 낫다’는 대미 자립외교 촉구형 응답비율이 68%였다.

“전쟁 나면 미국이 지켜줄 것” 15%, “아니다” 77%

미일 안보조약 체제하에서 ‘(전쟁 발발과 같은) 만일의 경우’ 미국이 정말로 일본을 지켜 줄까라는 질문에 ‘지켜 줄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15%였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7%였다.

이는 10년 전 조사에서 미국이 지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60%가 채 되지 않았던 것과 비교하면, 미일 안보조약에 따른 미국의 일본 방어 약속에 회의적인 일본인들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국제사회의 미국 신뢰도 43%, 불신 54%

세계평화 유지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미국의 역할을 어느 정도로 신뢰할 수 있을지에 대한 4지선택형 질문에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43%였으나, ‘크게 신뢰한다’는 3%에 지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신뢰한다’가 40%였다. 이에 비해 ‘신뢰할 수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54%로 훨씬 더 많았다. 이들 중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가 48%,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가 6%였다. 이에는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제일주의)를 강조해 온 트럼프 정권 등장 이후의 미국 움직임이 큰 영향을 끼쳤음이 분명하다.

‘미국을 신뢰할 수 없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는 미국의 일본 방어 약속이행에 회의적인 사람들의 90%, 일본의 대미 자립외교를 촉구한 사람들의 80%가 그렇게 대답해, 양쪽 모두 미국애 대한 신뢰가 추락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안보의 대미 의존이 아시아 제휴론 압도

그러나 일본외교가 대미국 우선에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과의 제휴를 강화하는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찬성, 반대를 묻는 질문에는 ‘반대’가 66%로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찬성’은 16%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10년 전 조사 때의 응답과는 크게 달라진 결과인데, 중국의 대두와 우크라이나전쟁 등에 따른 최근의 국제 안보상황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완전히 믿을 순 없지만 중국 러시아 북한의 위협 속에 그래도 기댈 곳은 미국뿐이라는 얘긴가.

미국이 국제적으로 어느 정도로 존경받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존경받고 있다’는 응답이 55%였는데, 이 중에서 ‘크게 존경받고 있다’는 5%에 지나지 않았고 어느 정도‘ 존경받는다는 응답이 50%였다. '존경받고 있지 못하다'는 42%였는데, '별로 존경받지 못한다'가 37%, '전혀 존경받지 못한다'가 5%였다.

미국은 '민주주의 모범국이다' 43%, '아니다' 54%

미국의 민주주의가 타국에 모범이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모범이 된다'는 응답이 43%('크게 모범이 된다' 3%, '어느 정도 모범' 40%)인데 비해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54%('별로 모범이 못 된다' 47%, '전혀 못 된다' 7%)였다.

 

(맨 위)일본의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 여부에 대해.  푸른색은 '가입하는 것이 좋다' 오른쪽 붉은색은 '가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중간)일본은 미국의 핵무기에 의존할 필요가 있을까? 푸른색은 '필요하다', 붉은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맨 아래) 일본정부는 세계로부터 핵무기를 없애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것으로 비칠까? 푸른색은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 오른쪽 붉은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사히신문 4월 27일

유엔 핵무기금지조약(TPNW) 가입에 대해서는 '가입하는 것이 좋다'가 73%로, '가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 22%보다 훨씬 많았다. TPNW 발효 전년도인 2020년 11월 전화조사 때는 '참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은 응답자가 59%였다.

미국 핵우산 '필요하다' 38%, '필요없다' 55%

일본의 대미 핵무기 의존에 대해서는 미국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가 38%,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미국 핵우산 불필요론자가 55%였다.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비율은 '(미국) 핵우산이 필요없다'고 응답한 사람들 중에서는 82%를 차지했으며, '미국 핵우산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사람들도 65%가 가입하는 것이 좋다고 답했다.

일본정부가 세계의 핵무기를 없애려고 '진지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응답은 19%에 지나지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7%였다.

핵무기 보유국들이 어떤 이유가 있든 핵무기를 폐기해야 한다고 보느냐, 아니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핵무기를 보유해도 어쩔 수 없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68%가 무조건 폐기 쪽을 택했고, 보유할 수도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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