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몸 이룬 극우세력과 사이비 종교
내란 종식과 사회대개혁이 곧 사이비 종교 청산
주로 개신교를 숙주 삼아 발흥하는 사이비 종교
종교는 원래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을 대변하기 위해 탄생했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세계관과 인생관을 제공함으로써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할 수 있게 해주었고 천국이나 극락에 대한 이론 등을 통해 사람들의 이상사회에 대한 꿈을 대변해 주었다. 종교의 부작용이나 비과학성에도 불구하고 이런 순기능으로 인해 종교는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었다.
반면에 종교에서 순기능은 제거하고 악기능만 극대화하는 사이비 종교는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사람들과 사회에 해를 끼쳐왔다. 한국의 경우 사이비 종교는 지배층인 극우세력과 융합, 결탁함으로써 사회의 진보와 발전을 가로막는 반국민적이고 반역사적인 역할을 해왔으며 지금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전광훈이나 손현보 목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사이비 종교가 대체로 천주교나 불교보다는 개신교 쪽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왜 사이비 종교는 주로 개신교를 숙주 삼아 발흥하는 것일까?
대기업 직장인 같은 사제, 각자도생 내몰린 자영업자 목사
천주교 공동체는 로마 교황으로부터 사제로까지 이어지는 정연한 조직체계를 가지고 있다. 천주교의 사제들은 천주교 공동체로부터 생존을 보장받는다. 쉽게 말해 성당에서 월급을 받아 생존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천주교 사제들은 결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병적이거나 세속적인 욕망에 잠식되지 않는 한, 생존 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적다. 개신교는 다양한 교파로 분열되어 있는데, 그 교파들 간에, 또 각 교파들 내에 질서정연한 조직체계가 없는 편이다. 개신교 목사들은 개신교 공동체나 교파 공동체로부터 생존을 보장받지 못한다. 대부분의 개신교 목사들은 자신이 교회를 운영하면서 재주껏 생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게다가 목사들은 결혼도 하기 때문에 가족 부양이라는 책임감과 부담감까지 짊어지고 있다.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기준으로 비교하자면 천주교 사제는, 비록 그 액수가 많지는 않다 하더라도, 대기업에서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직장인이고 개신교 목사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돈을 벌어 생활하는 자영업자라고 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은 영업을 잘 하지 못하면 망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의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개신교 목사들도 이런 자영업자와 처지가 비슷해서 포교를 잘 하지 못해 교회에 신도가 오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이 때문에 일부 목사들은 특정한 사회집단에 특화된 포교를 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예를 들면 극우세력 혹은 보수층을 겨냥한 포교가 돈벌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그쪽에 올인하는 것이다. 전광훈이나 손현보 같은 사이비 개신교 목사들은 극우세력 시장이 매우 크다는 것을 감안하여 일찍이 그쪽에 특화된 포교를 하다가 점점 극단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천주교 공동체로부터 생존을 보장받는 천주교 사제들에 비해 각자도생의 경쟁으로 생존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개신교 목사들이 사이비 종교의 길,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기 쉽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지금처럼 각자도생의 개인 간 서열경쟁으로 생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사람들의 타락과 변질 나아가 그들이 악에 물드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해준다. 사실 천주교 사제들은, 그 생활수준과는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천주교 공동체가 제공해주는 기본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주교가 개신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이비화에 대한 면역력이 더 강하고, 사제들이 상대적으로 덜 타락하는 것은 한국이 기본사회가 되었을 때 어떤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인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배타성을 공통분모로 하는 극우 파시즘과 사이비 개신교
종교 중에는 하나의 신만 섬기는 일신교도 있고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교도 있다. 일반적으로 다신교가 배타성, 폐쇄성에 취약한 일신교보다는 개방성, 포용성에서 앞선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는 일신교여서 하나의 신만 섬기고 다른 신은 인정하지 않는 반면 불교는 다신교 – 평범한 사람도 깨달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교리 때문에 불교를 무신론적 종교라고 말하기도 한다 – 여서 여러 신을 섬긴다. 과거의 십자군 전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떤 국가에 일신교인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전파되어 일반화되면 그 나라의 토속 신들은 추방당하곤 했다. 반면에 다신교인 불교가 어떤 국가에 전파되어 일반화될 경우 불교는 그 나라의 토속 신들을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했다. 예를 들면, 한국 사찰에 있는 산신령 그림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한국에 전파된 불교는 토속 신인 산신령을 여러 신들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다신교보다는 일신교가 배타성을 특징으로 하는 사이비 종교에 더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일신교이기는 하지만 기독교 사상의 핵심은 ‘사랑’이다. 한마디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인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기독교, 참된 기독교는 배타성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반면에 사이비 개신교는 사랑이 아닌 배타성, 증오와 혐오에 기초한다. 사이비 개신교는 자기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이나 사회집단을 이단, 사탄으로 낙인찍고 배타시하면서 증오하고 혐오한다. 이를 위해 사이비 개신교는 기독교 사상의 핵인 사랑을 지하 깊숙이 봉인해두고는 일신교 교리만을 절대화한다.
극우 파시즘 사상도 증오와 혐오를 특징으로 하는 배타성에 기초한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비롯한 타 인종을 배타시하면서 증오하고 혐오했다. 한국 극우세력은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면서 국민들을 빨갱이, 종북세력,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고 배타시하면서 증오하고 혐오한다. 이것은 극우 파시즘과 사이비 개신교가 ‘배타성’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배타성이라는 공통분모 덕분에 한국에서 극우 파시즘 세력과 사이비 개신교 세력은 긴 세월 동안 하나로 융합되어 한국 사회를 마녀사냥이 판치는 아수라장으로 만들어왔다.
그들이 세를 확장하는 수단은 공갈협박의 공포 마케팅
극우 파시즘과 사이비 종교가 자기 세력을 확장하는 기본방식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공포 마케팅이다. 한국의 극우세력은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을 활용하여 한국을 색깔 공포증이 뒤덮고 있는 파쇼사회, 병든 사회로 만들어왔다.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인들은 빨갱이,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낙인찍혀 언제라도 수거될 수 있다, 죽을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 속에 살도록 강요 당했다. 한국 극우세력은 색깔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을 향해 “반국가세력으로 몰려 죽고 싶지 않으면 극우를 지지하는 게 좋을 거야”라고 외치면서 세를 확장해왔다. 여기에 더해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생존이나 (인간관계 파탄이 초래하는) 존중 등과 관련된 심각한 불안과 공포에도 시달리고 있다.
사이비 개신교는 일신교 교리를 악용하여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들에게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지옥 간다, 나한테 복종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고 외치면서 세를 확장해왔다. 한마디로 한국의 지배층인 극우세력과 사이비 개신교 집단은 사람들을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도록 강요하고는 그들의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고 악화시키는 공갈, 협박을 통해 세를 확장해온 것이다. 물론 극우세력은 계엄 같은 국가폭력을 무기삼아 국민들이 보수화되도록 압박하지만 사이비 개신교는 지옥팔이 같은 정신적 폭력을 무기삼아 국민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지도록 압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극우 파시즘과 사이비 개신교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 특히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갈, 협박을 하는 공포 마케팅을 통해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한국의 극우세력, 내란세력은 사이비 개신교와 결탁, 융합되어 있다. 사이비 개신교 집단은 윤석열 일당의 내란사태 이후에도 악착스럽게 내란을 지지하고 있다. 내란과 사이비 개신교는 그야말로 한 몸인 것이다. 이것은 사이비 개신교의 확장을 막고 나아가 그들을 청산하려면 반드시 내란부터 종식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란이 종식되고 사회대개혁에 성공한다면 극우세력은 (국가보안법 폐지로 인해) 국민들을 향해 종북세력, 반국가세력이라는 협박질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내란이 종식되고 한국이 기본사회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불안과 공포, 무력감, 소외감 등에서 해방되기 시작할 것이므로 사이비 개신교의 공포 마케팅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될 것이다. 내란 종식과 사회대개혁이 곧 사이비 종교 청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