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 카드로?…알래스카 LNG 사업은 ‘독배’
협상 지렛대로 삼기에는 리스크 너무 커
총 사업비 60조 넘어 경제성도 문제지만
탄소 비용도 수천 조에 달할 것으로 추정
사업 참여 합의 두고두고 골칫거리 될 것
자동차 관세 면제 등과 맞바꿀 사안 아냐
협상 최대한 늦추면서 새 정부에 넘겨야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한국과 미국의 관세 협상의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알래스카 주지사가 한국을 방문해 관련 인사들을 접촉하기도 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과 대미 통상협상을 이끄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내주 미국으로 날아가 관세 협상에 나설 예정인데 이 문제도 다룰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장관은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가 관세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답했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은 “알래스카 LNG 사업에 대한 한미 양국의 실무 협상이 진행되고 있으며 조만간 알래스카로 출장을 떠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지난 14일 경제안보전략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조만간 알래스카 LNG 사업과 관련해 한미 간 화상 회의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정부가 현장 실사를 준비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도 포기한 알래스카 LNG 사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에 대응하려면 ‘당근’이 필요하기는 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비관세 장벽에 대해 협의하고, 미국 농산물과 에너지 수입을 늘리는 정도는 얼마든지 협상할 수 있다. 하지만 관세 폭탄을 피하는 게 시급하더라도 합의해서는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도 여기에 속한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우선 위험성이 너무 크다. 매장량이 한국이 연간 수입하는 가스의 14배에 달할 정도로 많기는 하다. 그러나 지금 개발을 시작해도 2029년에야 생산이 가능하다. 거의 모든 국가가 기후 위기에 대응해 신재생 에너지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LNG 수요가 유지될지도 따져봐야 한다. 무엇보다 1300km에 달하는 가스관을 건설해야 하는데 천문학적 사업비가 필요하다. 최소 57조 원에서 최대 64조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여러 제약 조건 탓에 이 사업은 번번이 중단됐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혹한의 날씨에 땅도 꽁꽁 얼어붙어 난공사가 예상되는 데다 이에 따른 투자비도 엄청나 경제성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지난 2010년 사업 추진을 위해 주정부 산하 알래스카 가스라인 개발공사(AGDC)가 설립된 이후 BP, 코노코필립스, 엑손모빌 등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이 뛰어들었다가 모두 손을 들었다. 지난 2017년에는 중국과 공동개발 계약을 체결했으나 3년 만에 무산됐다. 매장량이 아무리 많아도 공사비 등을 고려하면 수익을 내기 힘든 사업이기 때문이다.
최대 6300조 원으로 추정되는 탄소 비용도 리스크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화석연료인 LNG를 생산하면 막대한 탄소 비용을 부담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출범한 공익법인 기후솔루션은 최근 알래스카 LNG 사업을 분석한 자료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알래스카 LNG 개발로 30년간 발생하는 총 탄소 비용이 3300조~63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에너지부(DOE)가 2023년 공개한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최종 환경영향평가서를 근거로 분석한 내용이다. 프로젝트 참여로 탄소 비용의 일부만 부담한다고 해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미국 에너지부의 최종 환경영향평가를 보면 알래스카 북부 슬로프에는 가스가 약 9억 3480만 톤이 매장돼 있는데 2029년부터 약 30년에 걸쳐 약 6억 3230만 톤을 각국에 수출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은행과 금융감독기구 협의체가 제시한 연도별 데이터를 적용해 계산하면 탄소 비용은 최대 63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기후솔루션은 “막대한 사업비와 30년에 걸친 가스 생산 계획, 그리고 천문학적인 탄소 비용과 매몰자산 위험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해당 사업은 한국에 탄소 부담만 떠안게 하는 위험한 투자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신재생 에너지 생산 늘고 있어 LNG 수요 감소할 것
앞으로 LNG 수요가 급속히 줄어들 확률이 높다는 점도 위험 요인이다. 전 세계 신재생 에너지 투자는 2015년 이후 화석연료를 추월했다. 작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2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런 흐름을 고려하면 LNG 같은 화석연료 수요는 줄고 신재생 에너지 생산은 늘어날 것이다.
시대착오적인 알래스카 LNG 사업 참여는 막대한 탄소 비용을 내면서 수익성도 떨어져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기후솔루션은 “주요 국제기구들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석유·가스 수요가 빠르게 줄어들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며 “에너지 안보와 공급 다변화라는 이유로 위험성이 큰 프로젝트에 투자하면 기후 대응 실패로 한국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를 독려하는 이유는 미국으로서는 싼값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확보하면서 세수도 늘리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막대한 개발비와 탄소 비용을 한국에 떠넘기면서 미국의 국익을 챙기려는 노림수인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 자동차 관세 등을 면제받더라도 엄청난 부담을 떠안게 된다.
최상목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오직 국익 관점에서 생각하겠다”고 했다. 알래스카 LNG 프로젝트 참여는 한국 국익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관세 협상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이 아무리 심해도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