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가자 소유' 포기?…"누구도 팔 주민 내쫓지 않아"

아랍-미국 협의 직후 '발언'…진의 불투명

아일랜드 총리 답변 차례 가로채

하마스 "후퇴한 것이라면 환영"

아랍·이슬람, 가자 재건 계획 승인

77조 원 투입…팔 주민 이주 반대

2025-03-13     이유 에디터

"누구도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내쫓고 있지 있다(Nobody is expelling any Palestinian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백악관에서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가진 언론 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만나고 있다. 2025. 03. 12 [AFP=연합뉴스]

트럼프, 아일랜드 총리 답변 가로채

"팔레스타인인 쫓아내지 않고 있다"

이는 트럼프가 지난달 4일 백악관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공동 회견에서 가자 주민을 모두 내쫓은 뒤 미국이 가자를 장악, 소유하고 "중동의 리비에라(휴양지)"로 만들겠다고 밝힌 것과 180도 달라진 것이어서 아랍권에선 발언의 진의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트럼프는 말 바꾸기와 뒤집기, 거짓말과 식언을 밥 먹듯이 하는 데다가, 앞뒤 맥락 없이 이 발언만 툭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이날 언론 간담회에서 미국의 VOA 기자가 마틴 아일랜드 총리에게 "팔레스타인인을 가자에서 내쫓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마틴 총리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놓고 트럼프와 견해가 다른 점을 파고든 것이다. 아일랜드는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며 작년 5월 팔레스타인국가를 승인했다.

그런데 마틴이 답변할 틈을 주지 않고 트럼프가 불쑥 끼어들어 "누구도 어떤 팔레스타인인도 쫓아내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관련 발언은 그뿐이었다. 게다가 "쫓아내고 있지 않다"는 표현이 앞으로 '쫓아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인지도 불분명한 게 사실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백악관에서 미할 마틴 아일랜드 총리와 가진 언론 간담회 자리에서 아일랜드 총리를 상대로 한 VOA(미국의 소리)의 질문을 가로채 "누구도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 2025. 03. 12 [타임스오브이스라엘 캡처]

'가자 소유' 구상과 180도 달라

하마스 "후퇴한 것이라면 환영"

가자를 통치해온 하마스는 일단 환영을 표시했다. 알자지라와 아랍뉴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 등에 따르면, 하젬 카셈 하마스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이 가자 주민의 축출 구상에서 후퇴한 것이라면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극단적 시오니스트(유대 민족주의자) 우파의 비전에 동조해선 안 된다"라고 촉구했다.

알자지라는 "트럼프가 지난달 미국의 가자 장악을 제시하고 팔 주민을 영구히 축출해 인근 국가에서 살도록 하겠다고 발언한 이후 충격파가 중동과 그 너머로 밀어닥쳤다"고 전했다. 아랍뉴스도 "그의 제안은 고향에서 영구히 쫓겨난다는 오래된 팔레스타인의 공포를 강화한다는 우려 속에서 광범위한 국제사회의 비난과 저항을 불렀다"라고 비판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75만 명이 내쫓긴 나크바(대재앙)의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주지로 지목된 이집트와 요르단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걸프 아랍국가들은 이런 트럼프 구상은 아랍 전체의 안정을 뒤흔들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4일(현지시간) 아랍연맹(AL) 특별정상회의에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오른쪽)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5. 03. 05 [EPA=연합뉴스]

아랍·이슬람, 가자 재건 계획 승인

77조 원 투입…팔 주민 이주 반대

그 대신 팔 주민이 계속 가자에 살도록 아랍국가들은 530억 달러(77조 원) 규모 이집트의 가자 재건 계획을 승인했다. 지난 4일 카이로에서 열린 아랍연맹(AL) 정상회의에서다.

8일에는 이슬람협력기구(OIC) 57개 회원국이 사우디 제다에서 긴급 외무장관 회의를 열고 이같은 아랍연맹의 가자 재건 계획을 공식 승인했다. 그 내용을 보면, 첫 6개월은 가자에 중장비를 들여 건물 잔해를 치우고 임시 주택을 설치한 뒤 이후 2년간 주택 20만 호를 건설하고, 마지막 단계 2년 반은 추가로 주택 20만 호와 공항을 건설하게 된다. 재건 작업은 하마스가 아닌, 팔레스타인당국(PA)의 관리하에 진행된다.

이에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8일 공동성명을 통해 "현실적인 방안"이라며 "실행된다면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의 재앙적인 생활 환경을 신속하고 지속 가능하게 개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다면서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과 지상공격으로 파괴된 건물들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이스라엘 남부서 찍은 사진. 2025. 03. 10 [AP=연합뉴스]

알자지라, 트럼프 발언 시점 주목

"아랍-미국 협의 직후에 나왔다"

이 연장선에서 아랍 외무 장관들은 이런 가자 재건 계획을 들고 12일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의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와 협의했다. 이 자리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사무총장도 참석했다. 이와 관련해 아랍 외무장관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아랍-미국 협상이 "가자 재건 작업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타르 외무부도 별도 성명을 통해 "아랍 외무 장관들은 (가자) 재건 작업의 기반이 되는 이 계획을 놓고 계속 협의, 조율해 나가기로 미국 특사와 합의했다"라고 밝혔다.

알자지라는 "트럼프의 (가자 구상에 대한) 분명한 번복은 12일 카타르에서 아랍 외무장관들이 미국의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특사와 가자 재건에 관해 협의를 이후 나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한 트럼프의 '진의'가 미심쩍은지 아랍과 이스라엘 언론들이 집중적 관심을 보인 것과는 달리, 로이터 통신만 스치는 식으로 다뤘을 뿐 미국과 서방 언론들은 무시하고 지나가는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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