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중도 보수'와 '우클릭'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우클릭'이 아니라 좌와 우를 포괄하는 실용주의?
우려되는 금투세, 코인 과세, 종부세 등에서 후퇴
후퇴 강요한 기득권 카르텔에 대한 비판이 우선
이재명 제거 못해도 길들이기 시도해 온 권력들
선거 위한 타협이 집권 이후에 발목 잡을 가능성
민주당 왼쪽에서는 무엇이 더 효과적 대응일까?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념과 진영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 아닌가", "탈이념·탈진영의 현실적 실용주의가 위기 극복과 성장 발전의 동력", "민주당은 원래 성장을 중시하는 중도보수 정당"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우클릭'에 대한 논란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물론 반도체 분야 주 52시간 노동 예외 추진은 철회됐고, 지난 국회 연설에서도 이재명 대표는 '기본사회'와 '직접민주주의' 등을 강조했다. "민주당의 진보적 가치를 완전히 다 버린다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따라서 '우클릭이 아니라 좌와 우를 포괄하는 실용주의'일 뿐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은 원래 중도 보수였다'라는 말도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워낙 반공주의적 극우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까지 싸잡아 좌파로 낙인찍는 색깔론 공격이 많았고, 진보적 사회운동 출신의 인사들이 민주당에 흡수돼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뿌리나 이념, 역사를 봐도 중도적 자유주의 정당이었지 진보·좌파 정당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실제 진보·좌파 정당들은 민주당을 '보수 양당 중의 하나'라고 비판해 왔다.
그럼에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민주당이 보여 준 정책적 후퇴와 타협들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먼저 1% 초부자들에 부과되는 대표적 세제인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도입하지 않고 폐지하는 후퇴가 있었고, 가상화폐에 대한 과세도 2년 유예됐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도 비록 집권당의 어깃장 탓이지만 협상 과정에서 계속 낮아진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상속세 공제 한도를 높이는 방안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국내 생산 기업에 대한 법인세 공제 등도 제기되고, 이재명 대표 자신이 '친기업', '선성장' 노선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대량학살 전쟁범죄 국가인 이스라엘 대사를 만나서 협력을 약속한 것과 가자 인종청소 망언을 한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한 것도 외교 정책적 '우클릭'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분명히 보수적 족벌 언론들과 국민의힘이 강조하던 방향과 일부 겹치는 반면, 진보적 야당들과 언론들(한겨레, 경향신문 등)이 비판하는 내용이다. 더구나, 민주당이 금투세 도입을 주장하다가 포기하던 과정이나 반도체 주 52시간 노동 예외에서 흔들리던 모습은 앞으로도 다른 여러 진보적 개혁 정책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 과정을 돌아보면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 기득권 카르텔의 압박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자 감세와 친재벌 정책, 한미 동맹과 친미 노선에 매달려 온 이들은 이 모든 정책에서 철저하게 소수의 재벌과 대기업, 기득권층의 편에서 목소리를 내며 민주당의 후퇴와 굴복을 강요했다.
족벌언론들은 '금투세를 시행하면 주가가 폭락하고 시장이 붕괴할 것', '52시간 적용 제외를 안 하면 반도체 무한경쟁에서 패배하며 경제 위기가 올 것', '한미동맹이 무너지고 있다' 라는 대대적 공포 마케팅을 쏟아냈다. 국민의힘에서 갈라져 나왔던 이준석 대표와 개혁신당도 ‘개미 투자자들에게 큰 피해가 간다’라며 금투세 폐지와 코인 과세 유예를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한국의 주식시장이 저평가돼 있고, 주가가 계속 하락할 뿐 아니라 세계시장이 불안정해지면 더욱 크게 추락하는 이유는 금투세 때문이 아니라고 옳게 지적했다. 진정한 이유는 한국 주식시장의 불투명성과 기업 지배구조의 후진성에 있다는 평가였다. 그래서 큰 손들만 떼돈 벌고 투기꾼들이 주가 조작을 하면서 개미 투자자들만 손해 본다는 말이다.
반도체 분야 52시간 적용 예외 문제에서도 원래 민주당은 노동계와 함께 '근로기준법의 기준을 무너트리면 장시간 노동과 노동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반대해 왔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는 노동시간이 적어서가 아니라 재벌 대기업들의 경영 전략의 실패 때문이고, 기술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을 중시하는 첨단 AI시대에 역행하는 발상을 비판했다.
그러나 거대 금융자산가들과 재벌 대기업들을 대변하는 정치세력들은 금투세 폐지, 코인 과세 유예, 노동시간 연장, 법인세 감면 등의 정책만을 요구했고, 족벌언론과 경제신문들은 그 목소리만 일방적으로 확대해서 퍼 날랐다. 이런 정책들은 마치 주식과 코인 시장에서 개미들의 요구인 것처럼,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보통 사람들의 요구인 것처럼 포장됐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그것에 동조하는 세력과 목소리들이 늘어났고, 결국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 지도부도 흔들리다가 '우리도 경제 성장과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중도 보수'라면서 그것에 타협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민주당의 타협과 후퇴가 윤석열 정권이 지지율 추락 속에 정치적 위기에 몰리거나 쿠데타 실패로 자멸하는 상황에서 나타났다는 것은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마저 물러선다면 기득권 우파의 힘이 강력하고 많은 지지를 얻고 있을 때는 더욱더 쉽게 물러서고 타협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러한 타협과 후퇴를 주도하는 게 이재명 대표라는 것도 역설적이다. 이재명 대표는 이낙연 전 대표와 같은 기존 민주당 주류보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며 기득권 카르텔에 비타협적으로 맞설 것이라는 기대 속에 인기를 얻었었다.
그래서 이재명은 ‘종북좌파의 숙주’로 낙인찍혀서 검찰의 표적 수사와 먼지떨이에 시달렸다. 족벌언론들은 그를 증오하며 '악마화'했다. 그 집요함과 증오심은 놀라운 수준이었고 실제 살인미수 정치테러까지 낳았다. 결국에 그들은 이재명을 제거하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재명을 길들이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이제 '조선일보 OUT' 팻말을 들고 ‘집권하면 적폐들을 싹 정리하겠다’라며 사이다 발언을 날리던 이재명의 모습은 찾기 힘들어졌다. 지금의 이재명은 '우리는 진보나 좌파가 아니고 중도 보수'라고 하면서 보수적 여론의 눈치를 보고 있다. 과거의 사이다 발언에 환호하며 강력한 지지를 보냈던 지지자들이 지금의 고구마 같은 태도를 변호해주는 역설도 나타나고 있다.
반면 그동안 기계적 양비론을 펴면서 이재명을 향해서 ‘사법리스크에 대한 방탄을 중단하고, 강성 지지층에서 벗어나 중도로 가서 외연을 넓혀야 한다’라고 주문하던 대다수 진보 언론과 진보 지식인들은 막상 이재명이 그런 압박을 받아들여서 변화를 시도하니까 '우클릭'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물론 핵심에는 다가오는 대선과 선거 공학적 계산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0.73% 차이로 졌으니 ‘종부세와 금투세 등에서 양보하면서 수도권과 중도층에서 기반을 확장해야 한다’라는 논리이다. 집권을 위해서는 선거에서 이겨야 하고, 선거에서는 지지층만을 넘어서 더 넓은 지지 기반의 확장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문제는 '선성장 후분배', '강력한 한미동맹이 중심' 등의 보수우파 프레임을 받아들이는 그 방식에 있다.
이것은 오히려 보수우파의 프레임을 더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이런 접근은 기존 지지층의 자신감과 효능감을 떨어트리고 실망을 낳아서, 오른쪽으로 늘어난 지지층이 왼쪽에서 빠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권 이후에 나타날 문제이다. 기득권 카르텔에 대한 타협과 양보는 강력한 개혁 추진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탄핵안 통과 직후에 국회 앞 집회 연설에서 “지난 촛불혁명 때 우리 국민들이 그 한겨울에 아이들 손잡고 힘겹게 싸워서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렸지만, 그 후에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내 삶은 바뀌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다"라면서 사과했는데, 개혁의 실패는 문재인 정부 때의 이러한 오류를 다시 반복하게 되는 길이 될 수 있다.
현재, 이재명 민주당의 '우클릭'에 대한 기득권 카르텔의 반응은 떨떠름하고 양면적이다. 갈수록 극우화하는 국민의힘의 권영세 비대위원장은 "과거 중국 공산당이 내놓았던 '흑묘백묘론'까지 끄집어" 냈다고 꼬투리 잡으며 사람들이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기라도 하면 나라 전체가 공산 전체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걱정"한다고 공격을 계속했다.
조선일보는 "진심이면 옳은 방향"이라면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기 바란다"라고 주문했다. 그동안 국민의힘이 요구해 왔던 것을 민주당이 받아들여서 "연금 개혁, 반도체법, 그리고 AI기본법까지 숙제를 풀어내야 한다"라는 요구이다. 민주당의 '우클릭'을 깎아내리면서도 기득권 카르텔의 오랜 과제들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자세가 노골적이다.
반면, 민주당 왼쪽의 진보적 야당들과 시민사회 단체들은 당연히 반발하며 비판하고 있다. 민주당이 금투세를 폐지할 때, 가상화폐 과세를 유예할 때, 52시간 노동제 예외를 수용하려 할 때마다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과 민주노총, 참여연대, 민변 등은 그것을 반대하고 규탄했다.
예컨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해야 주식시장이 사는 게 아니고, 주가조작 관여 후 23억을 번 ‘살아 있는 권력’을 봐주는 검찰청을 폐지해야 주식시장이 산다"라고 비판했다. 또 '성장 우선론'이 아니라 자산과 주거 불평등을 해소할 진보적 정책을 중심으로 '반윤석열 다수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원외의 진보정당과 좌파 단체들은 더욱 강력하고 신랄하게 민주당의 우클릭을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당연히 정당하고 필요한 비판인데, 다만 이것이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킨 국민의힘이나 그것을 막은 민주당이나 조금도 다를 게 없다'라는 기계적 양비론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또 민주당을 종북·친중 좌파로 낙인찍어 악마화하며 공격해서 우클릭을 압박해 온 기득권 카르텔과 국민의힘, 재벌, 족벌언론 등에 대한 비판이 항상 우선돼야 한다. 원인을 제거해야 결과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런 압박에 대한 이재명과 민주당의 타협과 후퇴를 비판하고 민주당 안팎에서 그것을 막기 위해 저항하는 사람들을 응원해야 한다. 민주당이 '당원들의 목소리를 민주적으로 반영하는 당원 중심 정당'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클릭'에 반대하는 민주당 당원들의 목소리를 응원하며 더욱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이 공정할 뿐 아니라 실제로 민주당의 후퇴를 막는 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반도체 특별법에서 52시간제 예외를 수용하려던 이재명 지도부가 멈춰서는 데는 민주당 내부에서 반대하던 당원과 의원들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 왼쪽에서 진보정당을 제대로 세워내는 문제이다.
사실 이번에 민주당의 우클릭은 원래 '중도 정당'이라는 성격을 재확인하는 과정이면서도, 동시에 국민의힘의 극우화가 낳은 오른쪽의 공백을 차지하려는 시도의 성격도 있다. 만약 민주당 왼쪽에 강력한 진보정당들이 존재했다면, 민주당은 왼쪽으로 지지자들을 밀어내거나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쉽사리 우클릭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우클릭을 했다면 그것은 진보정당의 기반 확대를 낳을 기회가 됐을 수가 있다. 권리당원만 250만(일반 당원은 500만)에 달할 뿐 아니라 정치적 의제와 사회 개혁에 관심이 있는 민주당 당원들의 상당수를 왼쪽으로 설득하고 견인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의미 있는 진보정당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짧은 성공 이후에 분열과 위기를 벗어나지 못해 온 진보정당들은 지금도 여전히 서로를 탓하는 불신과 갈등 속에 있다. 그래서 갈수록 기반이 줄어들어 왔고, 민주당을 왼쪽에서 위협하며 '우클릭'도 가로막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반동적 극우를 고립시키고 합리적 중도 보수와 진보정당들이 경쟁하는 체제로 한국 정치를 재편하기 위해서도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다.
민주당 왼쪽의 진보 좌파 정당들은 민주당에 대한 태도나 안티테제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려는 관성과, 무조건 민주당을 세게 비판하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이미 실패로 드러난 착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진보정당의 독자적 가치와 정책을 분명히 하면서 불신과 갈등을 벗어나 힘을 뭉치고 기반을 확장할 수 있는 정치적 대안을 세워내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