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에 맞서려면 연대와 성찰로 인간성 회복해야
영화 ‘벌집의 정령’과 오토 딕스의 그림 ‘전쟁’의 공명
희망과 회복 위한 현실 고발, 아나와 딕스의 이야기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 파멸의 시대 직시하기
우리에게도 현실이 된 내전의 두려움 딛고 나아가자
스페인 내전 후의 침묵하는 현실
1973년 빅토르 에리세 감독이 제작한 영화 ‘벌집의 정령’(El Espíritu de la Colmena)은 스페인 영화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영화는 스페인 내전이 남긴 깊은 상처를 간접적으로 다루며, 진실과 희망을 서정적이고 은유적인 화면 속에 담아낸다. 에리세 감독은 세심하고 절제된 연출로 관객이 시대의 본질을 자연스럽게 체감하도록 이끈다. 과장없는 영상은 관객이 깊은 철학적 성찰을 하도록 돕는다. 특히 어린 소녀의 순수한 시선으로 인간성과 시대의 본질을 탐구하는 감독의 시도는 잔잔하면서도 신선하다.
에리세 감독의 작품 세계는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인간 내면의 섬세함과 상상력을 품어낸다. 그는 시적인 대사와 이미지, 그리고 여백을 활용해 관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첫 장편 영화인 ‘벌집의 정령’은 스페인 내전의 상처를 배경으로, 치유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의 본질을 깊이 있게 고찰한다. 그의 최근작인 ‘클로즈 유어 아이즈’(2023)는 기억과 정체성을 주제로 삼아, 인간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에리세의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인간 존재의 본질적 가치를 포착하는 동시에, 시대적 맥락 속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독창적인 미학을 선보인다.
양봉업을 하는 아버지 페르난도는 체념과 염세적인 생각을 일기에 기록하며 내면의 고뇌를 드러낸다. 어머니 테레사는 실존하지 않는 연인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상실감을 위로하며 과거와 현실 사이에서 흔들린다. 부모의 이러한 모습은 스페인 내전이 남긴 깊은 상처와 시대적 파멸 속에서 단절된 가족 간 소통을 보여준다. 이런 배경에서 아나가 정령을 찾기 위해 마을을 헤매는 여정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상에서나마 회복의 희망을 탐색하는 성장 드라마가 된다.
영화는 1940년 카스티야 지방의 외딴 마을에서 시작된다. 이동 영화 트럭이 마을 회관에서 제임스 웨일의 1931년 영화 '프랑켄슈타인'을 상영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언니 이사벨과 함께 영화를 본 아나는 왜 괴물이 소녀를 죽이고 자신마저 죽음에 이르렀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로 남는다. 아나를 통해 발신되는 내용은 영화의 중심 서사를 이루며, 상상력을 자극하고 내적 성장을 통해 그녀를 변화시킨다.
언니 이사벨은 어린이 특유의 상상력으로 괴물은 죽지 않았고 친구가 될 수도 있다고 아나를 위로한다. 결국 아나의 상상에 불씨를 지피며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된다. 아나는 영화 속 괴물을 찾으려고 마을 곳곳을 헤매다가 외딴 창고에 숨어 있는 한 남자를 발견하게 된다. 그는 내전의 상처를 안고 도망 다니던 사람이었다. 아나는 그를 영화 속 괴물의 영혼이라 믿고 조심스럽게 돌본다. 이 과정은 상상과 현실이 교차하는 순간을 보여주며, 아나가 경험하는 세계의 복잡한 양상을 드러낸다. 동시에 영화는 이 전개를 통해 메시지를 한층 풍부하고 감동적으로 완성한다.
침묵하는 어른들이 가해자가 되는 법
아나는 어느 날 도망자에게 아버지의 코트와 빵을 건네고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면서 장면은 밤으로 전환되고, 창고 안에서 여러 발의 총성이 울린다. 이 장면은 사운드만으로 연출되어 죽음의 순간을 간결하게 전달한다. 다음 날 아나는 정령이라 믿었던 남자가 사라진 자리에서 남겨진 혈흔을 발견한다. 그녀의 순수한 상상과 소박한 믿음은 잔혹한 현실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난다. 이 사건으로 아나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잔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그녀는 깊은 충격과 혼란을 경험하고 낯선 곳을 헤매게 된다. 이 과정은 아버지와의 관계에도 깊은 균열을 남기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의 눈에는 가해자로 비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영화에서 벌집과 육각형 이미지는 프랑코 정권의 억압적 질서와 통제를 말한다. 벌집 모양의 창문은 닫힌 사회의 침묵과 고립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며, 반복적으로 등장해 억압된 시대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그러나 벌집 내부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움직임은, 통제와 억압 속에서도 변화와 희망이 움틀 가능성을 암시한다. 벌집의 규칙적인 구조와 아나의 상상 속 자유로운 세계가 교차한다. 이는 억압된 현실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상징은 인간 본연의 자유와 감정을 되찾으려는 갈망을 담고 있다. 세대 간 단절 극복과 연대의 가능성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한다.
영화 제작에 참여한 촬영 감독 루이스 쿠아드라도는 흑백 톤과 절제된 조명을 활용해 서정적 분위기를 한층 북돋웠다. 그는 인물들의 내면적 고뇌와 고립감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마을의 고요하고 닫힌 풍경을 통해 억압된 시대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그려냈다. 빛과 그림자를 정교하게 활용한 그의 연출은 아나의 상상력과 내면세계를 풍요롭게 확장시켜, 영화의 감정적 깊이를 더한다. 억압적 현실 속에서도 희미하게 반짝이는 상상과 자유의 가능성을 담은 이러한 연출은 시적인 대사와 상징적 오브제, 침묵 속 여백 등으로 관객의 감각과 사유를 자극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아나의 내면적 성장을 함께 경험하게 된다.
영화 속에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의 한 장르인 ‘바니타스’도 눈길을 끈다. 해골, 시든 꽃, 촛불 등으로 인생의 유한함과 덧없음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영화의 서사와 긴밀하게 어우러진다.
전쟁 후 독일의 혼란을 심층적으로 고발
오토 딕스(Otto Dix, 1891~1969)의 대표작 '전쟁'(Der Krieg, 1929-32)은 네 개 패널로 된 종교화인데, 전쟁이 남긴 파괴와 인간적 고통을 생생히 드러낸다. 딕스는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을 직접 경험한 후, 신즉물주의(New Objectivity) 운동의 중심에서 전쟁의 폭력성과 인간성의 붕괴를 고발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그의 작품은 해체된 육체와 뒤틀린 환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시대의 폭력과 인간의 상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딕스가 전쟁 속에서 인간들이 겪는 고통을 그린 방식은 영화 벌집의 정령에서 도망자의 죽음을 다룬 장면과 연결된다. 두 작품 모두 억압과 폭력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립과 상실을 그리면서도, 그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변화와 회복의 가능성을 추구한다.
딕스의 ‘전쟁’은 전쟁의 시작, 파괴, 그리고 죽음을 주제로, 전쟁이 남긴 상처를 깊이 있게 담아낸다. 왼쪽 패널은 안개 속에서 행진하는 병사들의 모습으로 전쟁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가 억압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 벌집의 정령에서 벌집이 상징하는 통제된 질서와 연결되며, 억압적 사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중앙 패널은 참호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생생하게 그리는데, 영화에서 도망자의 죽음이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된 것과 달리 전쟁의 잔혹함과 인간성의 붕괴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묘사는 전쟁이 남긴 상처와 고통을 깊이있게 이해하게 한다.
반면, 오른쪽 패널과 하단 패널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아 있는 생존자들의 고통과 기억의 상처를 담았다. 서로 부축하며 걸어가는 상처 입은 병사들의 모습은 영화 속 아나가 상상력을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려는 노력과 상통한다. 두 작품은 모두 어둠으로 가득한 현실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는 변화의 가능성을 찾아내며,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길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연대와 성찰의 중요성을 오늘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신즉물주의는 1920년대 독일에서 등장한 예술 운동으로, 사실주의적 표현을 통해 사회와 시대를 비판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사회의 현실을 냉소적이면서도 날카롭게 비판한다. 사회 부조리와 전쟁의 참상을 신랄하게 고발하며, 표현주의나 추상주의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오토 딕스를 비롯한 신즉물주의 작가들은 폭력과 고통의 실체를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시대의 진실을 직시하도록 촉구했다. 딕스의 작품은 억압과 폭력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고통과 상실을 차분히 응시하며 그 속에서도 연대와 회복의 가능성을 모색한 예술적 시도로 평가된다. 이러한 접근은 시대의 고통을 증언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한 희망과 성찰의 여지를 남긴다.
우리에게 있었을 법한 내전, 극복할 상상력은
‘벌집의 정령’에서 아나가 정령을 찾기 위해 우물이 있는 창고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은 잃어버린 인간성과 진실을 찾아가는 순례와도 같다. 아나의 세계는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상상력과 의지를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이는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언급한 한계 상황(Grenzsituation)과 이어진다. 한계 상황은 인간이 고통, 죽음, 투쟁과 같은 극단적인 경험 속에서 자신의 본질과 마주하는 순간을 의미한다. 특히 오토 딕스의 전쟁에 등장하는 병사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은 폭력의 극단 속에서도 인간의 연약함과 저항 의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처럼 두 작품은 억압된 현실과 극단적 경험 속에서 인간이 새로운 존재로 변모하며,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가는 철학적 여정을 조명한다.
아나가 마을을 배회하며 겪는 여정은 비록 단 하루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두려움과 억압 속에서도 인간성이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야스퍼스는 인간이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칠 때 자신과 세계를 더 깊이 성찰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글에서 소개한 영화와 그림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영화에서 아나의 여정은 억압된 현실과 마주하면서도 순수함과 진리를 구현하려는 노력이다. 딕스의 그림에 등장하는 파괴된 육체와 사물은 폭력의 잔혹함을 넘어, 인간의 저항과 회복의 의지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질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 통찰하게 한다.
결국, 예술 작품은 감상의 대상을 넘어, 우리가 직면한 폭력적 현실을 진단하고 연대와 성찰이야말로 인간 본질을 회복하는 길임을 깨닫게 한다. 최근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과 억압에도, 인간성은 언제나 부단히 저항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부당함을 극복하려면 스쳐 지나가는 의문이 아니라, 무언가를 지키거나 나아지게 만들려는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