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일본에 “US스틸 사지 말고 투자만 해라”

이시바 총리와 7일 워싱턴서 첫 정상회담

“유에스 스틸 미국 떠나는 것 보고 싶지 않다”

일본의 대미 투자 증대-미국의 안보공약 교환

기존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 계승

북의 “완전한 비핵화” 위해 협력

“북한, 김정은과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말도

2025-02-08     한승동 에디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오른쪽)이 7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에게  함께 찍은 사진을 선물하고 있다. 2025.2.7. AP 연합뉴스

미국과 일본은 7일(현지시각)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첫 정상회담에서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회사 유에스 스틸(United States Steel) 매수문제를 둘러싼 양국간 알력을 미국이 소유권과 운영권은 유지하되 일본이 ‘투자’하는 방식으로 일단 해소한다는 데 합의했다. 서로의 정치적 입장을 고려해 체면을 세워주는 타협이지만, 구체적인 합의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안보와 경제 분야 현안들에서도 두 정상은 전임 조 바이든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정부 때 합의한 중국 견제 중심의 기존 틀인 미일동맹 및 한미일 준동맹, 이를 토대로 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최근 트럼프와 미국정부 주변 일부 관리들이 ‘핵 보유국’으로 지칭하기도 한 북한의 핵에 대해서도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일본의 대미 투자 증대-미국의 안보공약 교환

일본은 방위비(군사비)와 대미 투자를 늘리고 액화천연가스(LNG) 등 미국산 에너지 자원을 대량 구입하고 석유 가스 공동사업을 벌이겠다고 약속했으며, 미국은 센카쿠 열도(댜오위다오)에 대한 미일 안보동맹 조항 준수를 재확인하면서 일본을 “100% 지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시바 총리는 일본의 대미 직접투자를 지금의 약 8000억 달러(약 1167조 원)에서 1조 달러(약 1459조 원)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매우 신속하게 해결해 나갈 것"이라며, 일본의 대미 투자가 "앞으로 몇 개월 동안 매우 매우 크게 증가해 그 어느나라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는 10~11일 논의해 발표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던 관세에 관해서는, 두 정상의 이번 첫 상견례가 서로 적당히 주고 받는 타협으로 ‘성공적’이었다는 일본 내의 일부 평가와 함께 다소 낙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으나, 무역 상대국에 동일한 관세를 부과하는 상호관세가 “유일하게 공평한 방법”이라는 트럼프식 ‘거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분위기도 있다. 두 나라는 10일이나 11일 관세문제를 논의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그 내용을 밝힐 예정이다.

 

유에스 스틸(U.S. Steel)이 운영하는 인디애나 주 게리의 제철소. 트럼프 대통령은 7일 일본제철이 유에스 스틸을 매수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2월 7일

“유에스 스틸 미국 떠나는 것 보고 싶지 않다”

이날 30분간의 수뇌회의와 점심식사를 겸한 약 1시간 20분간의 정상회담이 끝난 뒤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대미 투자를 환영한다면서, 일본제철이 유에스 스틸을 “소유”(매수)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투자”하는 것은 “엄청 신나는 일”(very exciting)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그들(일본쪽)은 구입이 아니라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유에스 스틸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거액의 투자를 한다는 데 합의했다”며, 일본정부와 그런 인식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그는 유에스 스틸이 “우리(미국)에게는 매우 중요한 회사”라면서 “(유에스 스틸이) 미국에서 떠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고, 실제로 떠나는 일도 없을 것”이라며 소유권이 외국으로 이전되는 것은 “심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했다.

일본제철의 유에스 스틸 매수에 대해 바이든 전 대통령은 “안전보장상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일본제철이 유에스 스틸과 합의한 매수 계획을 퇴임 직전인 지난 1월 “영구히 포기”하도록 대통령령으로 일본제철 쪽에 명령했다. 이에 대해 일본제철과 유에스 스틸은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정치적 결정”이라며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했다. 만성적인 경영적자 상태인 유에스 스틸은 이대로 갈 경우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는 파산상태를 피할 수 없다며 140억 달러에 이르는 유에스 스틸 지분을 모두 사들이겠다는 일본제철의 매수를 환영했으나, 미국 정계와 금속노조 쪽이 이를 반대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유세 때부터 관세정책으로 유에스 스틸을 흑자기업으로 되살릴 수 있다며 일본제철의 매수에 분명한 반대의사를 밝혀 왔다.

트럼프는 지난 달에도 자신의 SNS에 “관세(인상)로 더 높은 수익을 내는 기업이 될 수 있는데, 왜 유에스 스틸을 지금 팔려고 하느냐?”는 글을 올려, 유에스 스틸은 미국 기업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대신에 일본의 “투자는 받아들이겠다”며 일본 쪽 체면을 살려 주는 배려를 하면서, 다음 주 초로 예정된 일본제철 경영진과의 회담 때 자신도 “중재와 조정” 역할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시바 총리도 “매수가 아니라 투자”라면서 “일본의 기술을 제공해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일본과 미국, 세계에 공헌하는 유에스 스틸 제품을 생산하는 일에 일본도 투자하겠다”고 했다.

매수만 중단시킨 “제대로 된 딜(거래)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일본제철의 매수계획을 수정한 것인지, 수정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일본제철의 유에스 스틸 매수계획은 주식 전량을 취득하는 ‘매수’다. 매수가 아니라 투자라면 출자비율을 줄이고 일부 사업에 대한 출자로 바꾸는 등 기존계획을 바꿔야 한다. 일본제철의 한 간부는 “현행 매수계획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라며, “(매수하더라도) 유에스 스틸의 사명이나 본사(소재지)를 바꾸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듯이, 본질적으로 유에스 스틸을 바꾸는 ‘매수’는 아니고, 성장시키기 위한 ‘투자’라는 것으로 이해를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 또한 애매하다.

이에 대해 후쿠이 겐사쿠 변호사는 ‘매수’란 일반적으로 의결권이 있는 주식 과반수 취득이고, ‘투자’는 지극히 다의적인 말로, 예컨대 주식을 취득하면 의결권이 전혀 없어도 투자라면서, “보도를 보면, 두 정상은 단지 ‘매수는 중단한다’는 말만 하고 있을 뿐, 그밖의 모든 것은 희망적 관측”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객관적 사실로만 보면, 일본은 1조 달러 투자를 약속했고, 미국은 무역적자(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를 그만두게 하고, 유에스 스틸 매수도 그만두게 하고, 동맹은 견지하겠다는 상정할 수 있는 범위 내의 말만 했을 뿐인데, 일본이 일제히 안도하고 있다면 (제대로 된) 딜(거래)이 아니다”고 지적했다.(<일본경제신문> 2월 8일)  

북의 “완전한 비핵화” 위해 협력

이시바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에 대해 의견 일치를 봤다며,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일본 미국이 제휴해서 대처하기로 했다”고 했다. 두 정상은 이를 위한 한미일 3국 파트너십의 중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북한과 잘 지내면 "모두에게 엄청난 자산"이라면서 "우리는 북한과 김정은과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밝혀 향후 북미 정상외교를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다시 확인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기존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 계승

공동성명에서 두 나라는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 4국의 쿼드(QUAD)와 한미일, 미일호주, 미일필리핀 등 다층적으로 짜인 공동의 안보협력틀 강화를 통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추구한 바이든 정부와 기시다 후미오 정부의 기본전략을 견지하기로 합의했다.

일본은 2027년까지 5년간 43조 엔(약 412조 원)을 투입해 연간 방위비를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2%로 늘리겠다고 한 기시다 정부의 약속 이행을 재확인했으며, 미국은 이를 환영했다. 공동성명에는 미국의 대일본 방위의무를 정한 미일 안보조약 제5조를 오키나와 현과 센카쿠열도에 적용한다는 내용도 명시했다. 미일 안보조약과 미일 방위협력 지침에 따라 “평시부터 긴급사태에 이르기까지 중단없는 대응을 한다는 일본의 역할을 재확인한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동남중국해에서의 일방적 현상변경도 반대

대만해협과 관련해 두 정상은 “동중국해에서 진행되는 중국의 힘 또는 위압에 의한 모든 일방적인 현상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뜻을 재차 표명했다. 미일 정상이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이런 내용이 명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중국해에서의 중국의 불법적인 해양권익 주장, 매립지의 군사화와 도발적인 군사활동에도 강한 반대의 뜻을 재확인했다.

두 정상은 또 (한국을 포함한) ‘동지국’들이 제3국에서 오픈RAN(기지국 등의 무선 집속 네트워크) 전개를 포함한 지역 투자도 함께 도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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