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기업 정책의 역설…상장사 5곳 중 1곳 ‘좀비기업’
윤 정부 무능·팬데믹 겹쳐 5년 전보다 2배↑
‘경제 호황’ 미국 빼면 주요국 대비 가장 많아
일시적 한계기업도 증가…좀비기업 늘어날 듯
비효율적 자원 배분 초래…정상기업 성장 발목
빠른 구조조정으로 금융시장 전이 차단이 해법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 5곳 중 1곳이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라는 조사가 나왔다. 일단 한계기업의 수렁에 빠지면 사실상 경영정상화가 어렵다. 버틸 만큼 버티다가 헐값에 매각되거나 파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한계기업이 늘어나면 대출해준 금융기관은 물론 정상기업까지 악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신사업과 기술 혁신에 투입해야 할 자금이 폐업을 앞둔 기업들을 연명하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자원 배분의 비효율이 초래되는 것이다. 한계기업의 별칭이 ‘좀비기업’인 이유다.
한계기업 비중 2016년 7.2%→2024년 19.5%
한계기업이 급증한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정책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이 금리가 치솟고 내수 경기 침체가 길어지며 급속하게 부실해진 탓이다. 특히 내수뿐 아니라 수출 실적도 좋지 않았던 2023년 이후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속도가 빨랐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위기에 빠진 기업을 돕겠다며 펼친 정부의 기업 친화 정책이 오히려 한계기업을 양산하는 꼴이 됐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6일 이런 메시지를 담은 한국과 주요 5개국(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 상장사의 한계기업 현황을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한경협에 따르면 한국의 한계기업은 지난해 3분기 기준 19.5%에 달했다. 전체 조사 대상 2260개 상장사 중 440개 사가 한계기업이었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25.0%)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로 한계기업 비중이 높았다. 프랑스(19.4%)와 독일(18.7%), 영국(13.6%), 일본(4.0%)이 뒤를 이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계기업의 증가 속도다. 지난 2016년만 해도 국내 상장사 가운데 한계기업은 7.2%에 그쳤다. 그로부터 8년도 안 돼 한계기업 비중이 12.3% 포인트(2.7배) 늘어난 것이다.
지난 2020년 확산한 코로나19와 윤석열 정부의 경제 무능이 겹치면서 4년간 한계기업 비중은 6.5%포인트나 상승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하면 한계기업은 5년간 2배가량 증가했다.
일시적 한계기업 비중도 30% 후반대
한국을 포함한 6개국 중에 한계기업 비중과 증가 속도 측면에서 1위를 차지한 국가는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은 특수성이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금리를 빠르게 낮추고 기업에 막대한 돈을 풀었다. 그러나 팬데믹 이후 소비자물가가 폭등하자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올렸다. 그 결과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기업들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현재 생산과 고용 등 경제가 좋은 상황이다. 한계기업이 많아도 이를 감당할 기초 체력이 있다.
반면 한국은 내수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는 데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무역전쟁으로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끼었다. 앞으로 한계기업이 늘면 늘었지 감소할 확률이 낮은 상태다. 한계기업 후보군이라고 할 수 있는 일시적 한계기업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 36.4%을 기록 중이다. 국내 상장사 3곳 중 1곳 이상이 당해 연도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일시적 한계기업 비중은 2023년 말 36.9% 대비 0.5%포인트 낮아졌으나 2년 연속 30% 후반대의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일시적 한계기업 비중 역시 한계기업과 국가별 순위는 같았다. 미국이 37.3%로 가장 높았고 한국에 이어 프랑스(32.5%), 독일(30.9%), 영국(22.0%), 일본(12.3%) 순이었다.
‘상법 개정 중단’이 한계기업 대책이라고?
기업 규모별로는 내수 영업 비중이 큰 중소기업의 한계기업 비중이 대기업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코스닥 상장사의 한계기업 비중은 23.7%로 코스피 상장사 10.9%에 비해 12.8%포인트 높았다. 코스피 상장사는 한계기업 비중이 2016년부터 2024년 3분기까지 2.5%포인트 증가하는데 그쳤으나 코스닥 상장사는 같은 기간 17.1%포인트 늘었다. 한국의 업종별 한계기업 비중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부동산업 33.3%, 전문·과학과 기술 서비스업 24.7%, 도매와 소매업(24.6%), 정보통신업 24.2%를 기록했다. 주요 업종 중 2016년 대비 2024년 3분기 한계기업 비중이 크게 오른 업종 순서는 전문·과학과 기술 서비스(4.0%→24.7%), 정보통신업(4.5%→24.2%), 제조업(7.4%→18.1%), 도매와 소매업(15.0%→24.6%)이었다.
한경협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최근 국내기업들이 극심한 내수 부진과 트럼프 2기에 따른 수출 불확실성으로 경영 압박이 크게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한계기업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처방은 엉뚱했다. 느닷없이 세계 시장에서 기업이 경쟁력을 갖도록 제도적 지원을 강화할 것을 주문했다. 더 황당한 주장은 세계 표준에 맞지 않는 상법 개정 논의를 지양(중단)하라는 대목이다. 한계기업이 급증한 것과 상법 개정은 전혀 관계가 없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것이다.
좀비기업 연명 못 하게 빨리 정리하는 게 바람직
좀비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정공법은 생존 불가능한 곳을 빨리 선별해 정리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작년 11월 열린 정책 심포지엄에서 ‘최근 한계기업 평가 및 시사점’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한계기업은 동종업계의 정상기업의 성장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경쟁 환경이 과도하게 형성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업종 내 한계기업 비중이 10%포인트 높아지면 정상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이 2.04%포인트 줄고, 총자산영업이익률은 0.51%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차입금평균이자율은 0.11%포인트 올라가며 정상기업 부담을 늘렸다.
한계기업이 늘어나면 기업 부문의 전반적인 신용리스크를 증대시킨다. 금융시스템을 위협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금융기관이 한계기업 진입 전후의 재무 건전성 추이를 반영해 기업 금융 위험 관리를 개선해야 하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계기업에 대한 적기 구조조정과 함께 취약 업종 구조개선 노력도 지속돼야 한다”고 권고했다.